〈 533화 〉 [비밀 연구소]
* * *
“으허억! 좋다, 좋아! 간드앗!”
“메에에에!”
염소 수인의 몸 위에 올라탄 채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어대던 두둔이 사정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다른 수인들이 코를 킁킁대며 그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이에 두둔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수인들의 품에 얼굴을 처박고서 숨을 헐떡였다.
‘엄청 빨리 싸네.’
삽입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사정해버리는 그의 능력에 살짝 감탄이 나왔다. 과연 두둔이 조루인 걸까? 아니면 염소 수인의 조임이 엄청난 걸까? 문득 호기심이 든 나는 염소 수인의 엉덩이를 쳐다보았다.
‘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엉덩이를 수북이 뒤덮고 있는 털과 짧고 뭉툭한 꼬리였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인간의 다리라곤 볼 수 없는 짐승의 다리라고 할 수 있었다. 전형적으로 허벅지 살이 두껍고, 종아리로 갈수록 얇고 가늘어지는 것이었다. 당연히 발은 발굽으로 되어있었다.
‘여기까진 어찌저찌 해볼만할 것 같은데.’
문제는 얼굴이었다. 조금이라도 사람을 닮았다면 두 눈 딱 감고서 한 번쯤 시도해볼 만 했지만, 안타깝게도 얼굴이 염소 그 자체였다.
이로 보나, 저로 보나 염소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불가능.’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수인들의 품에 안긴 채, 숨을 돌리고 있는 두둔에게 다가갔다.
“두둔 씨, 괜찮으십니까?”
“응? 아, 어? 아! 이, 이건……!”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당황한 듯, 두둔이 허둥대며 몸을 일으켜보려고 했다. 이에 나는 손을 내밀어 그를 진정시키며 차분히 말했다.
“진정하시죠. 전부 다 이해하니까요.”
“아닐세! 자네가 오해하고 있는 거라네! 이건 라미아의 매혹 마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말로 라미아의 매혹 마법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그건…….”
“라미아가 걸었던 매혹 마법이 중간에 풀렸다는 걸, 눈치채지 않으셨습니까? 더구나 두둔 씨는 마법사가 아닙니까? 설마 몰랐다고 하실 생각입니까?”
“…….”
이어지는 내 추궁에 두둔이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도 자기한테 걸려있던 매혹 마법이 풀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취향을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본디, 개개인의 취향이란 각자 다른 법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충분히 두둔 씨의 취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두둔의 표정이 서서히 풀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저, 정말로 날 이해해주는 건가?”
“물론입니다.”
“내가 징그럽다거나 혐오스럽지는 않나?”
“두둔 씨가 제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지 않는 이상, 굳이 싫어할 이유는 없죠. 제가 두둔 씨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처럼 두둔 씨도 제 취향을 존중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서로 불편할 건 없죠. 안 그렇습니까?”
“허……. 그래, 자네의 말대로라네. 역시 현자로구만.”
두둔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나라는 존재의 등장에 은근히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살짝 긴장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라미아, 그녀는 어떻게 됐나? 설마…….”
“일단은 제압해둔 상태입니다.”
“라, 라미아를 제압했다고? 그게 정말인가?”
“네.”
“다행이야. 다행. 정말로 잘 됐어.”
두둔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전신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우 수인이 푹신해 보이는 가슴 털로 그의 머리를 받쳐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건 좀 부러웠다. 보기만 해도 푹신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더 푹신할까? 두둔에게 양해를 구해서 수인 한 명을 빌릴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수인들의 얼굴을 보고는 마음을 바꿨다.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되네.’
한 차례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수인들의 품에 안겨있는 두둔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두둔 씨,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묻고 싶은 거? 뭔가? 내가 아는 한, 최대한 자세히 대답해주겠네.”
“좋습니다. 우선 이곳, 연구소를 짓게 만든 사람이 누구입니까?”
“위대한 존재라네.”
“위대한 존재?”
“그래, 드래곤이지.”
전혀 예상지도 못 한 대답에 나는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설마하니 여기서 드래곤이 나올 줄이야. 나는 기껏 해봐야 왕족이나 사악한 이도교 집단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연구소의 배후에 드래곤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래서 사령관이 모르고 있었던 건가?’
잘 생각해보면 폭주 퀘스트의 설명에서도 벨포 왕국의 주도 하에 마정석 파편을 연구했다는 이야기가 한마디도 없었다.
반대로 비밀 연구소란 이름의 이계 퀘스트에선 ‘하폰 왕국을 제외한 다른 왕국들은 저마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비밀리에 마정석 파편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정확히 들어가 있었다.
즉, 이번 일은 벨포 왕국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봐도 좋을 듯 싶었다.
여기까지 이해한 나는 다시 두둔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드래곤이 왜 마정석 파편을 연구하려는 겁니까?”
“위대한 존재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우린 그저 위대한 존재에게 고용되었을 뿐이라네.”
“혹시 드래곤도 이곳에서 함께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까?”
“그랬다면 우리가 벨포 왕국에게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없었겠지.”
두둔의 말을 들어보니, 벨포 왕국 몰래 마정석 파편을 연구하던 마법사들이 라미아의 폭주로 인해서 연구소를 빼앗기게 되자 이를 되찾으려고 왕국에게 도움을 요청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왕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3군 사령관은 파견했던 거고.
‘그 와중에 내가 온 건가.’
각자의 이해관계를 파악한 나는 두둔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봤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실은 나도 그게 고민이라네. 솔직히 마음 같아선 계약이고 뭐고, 전부 다 내팽개치고서 수인들을 데리고 도망치고 싶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북부의 추위가 유난히도 혹독하지 않나? 도망쳐봤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부 다 죽고 말겠지.”
두둔이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자, 주변에 있던 다른 수인들도 덩달아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되겠습니까?”
“제안? 뭔가?”
“두둔 씨를 포함해서 여러분 모두를 안전한 장소까지 옮겨다 드리겠습니다. 여기보다 훨씬 더 따뜻한 남쪽으로요.”
“그게 정말인가?”
“대신 제가 가지고 있는 던전의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던전의 일원으로 합류하시겠습니까?”
던전의 일원이 되라는 제안에 두둔이 화등잔만 하게 눈을 뜨고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건 다른 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처럼 다들 당황하고 있는데, 불쑥 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 할래.”
등 뒤에서 기척도 없이 나타난 라미아가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기다란 혀를 내밀었다. 동시에 갈라진 혀끝이 내 뺨과 입술을 핥으며 지분거렸다.
“허억! 라미아!”
그 모습을 본 두둔이 기겁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금세 도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에 라미아가 깔깔, 웃음을 터트리더니 내 몸을 한 바퀴 빙 두르며 꼬리로 휘감았다.
“겁쟁이 두둔. 왜 그렇게 놀라고 그래? 누가 보면 내가 널 잡아먹는 줄 알겠어?”
“으윽!”
라미아의 놀림에 두둔이 분한 듯 얼굴을 붉히며 신음했다. 그러자 그의 곁에 있던 수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며 반박했다.
“두둔 아저씨는 겁쟁이가 아니에요, 여왕님!”
“맞아요, 두둔 아저씨가 얼마나 용감한데요? 저번에 다른 아저씨들이 우리를 키메라 재료로 사용한다는 걸, 두둔 아저씨가 엄청 화내면서 반대했었는 걸요!”
수인들의 옹호에 두둔이 ‘너희들…….’이라며 엄청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꽤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그래, 알았어. 나도 아니까 두둔은 안 건드린 거잖아.”
라미아가 재미없단 표정을 지으며 손짓하고는 다시 내 몸을 만지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노골적으로 내 아랫도리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마치 나보고 한 판 더 하자며 보채는 것만 같았다.
나는 찌릿찌릿 치밀어 오르는 쾌감을 애써 외면하며, 두둔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아무튼 두둔 씨, 어쩌시겠습니까? 던전의 일원이 되시겠습니까?”
“혹시 우리를 속이는 건, 아니겠지?”
“약속하겠습니다. 제가 했던 말 중에 거짓은 없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제야 결심이 선 듯 두둔이 입을 열었다.
“좋아, 던전의 일원이 되겠네.”
이처럼 두둔이 결정을 내리자, 다른 수인들도 뒤따라서 던전의 일원이 되었다. 이에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알림 문구를 확인해보았다.
[축하합니다!]
[라미아 1마리를 던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현재 던전 인원 (244/300)]
[축하합니다!]
[인간 1명과 수인 6마리를 던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현재 던전 인원 (251/300)]
이처럼 모두가 던전의 일원이 된 걸 확인한 나는 여전히 내 몸을 돌돌 감싸고 있는 라미아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혹시 더 데려갈만한 수인이 있습니까?”
“아니, 없어. 다른 애들은 전부 다 키메라가 되어버렸으니까.”
라미아의 대답을 들은 나는 이번에는 두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둔 씨, 혹시 연구소 안에 남은 마정석 파편이 더 있습니까?”
“어? 응? 아아, 마정석 파편이라면……. 끙, 미안하네. 다리가 도통 움직이질 않아서 직접 안내해줄 수가 없겠구먼. 대신 아쉬운대로 지도에 표시해주겠네.”
몸을 일으키려던 두둔이 도로 철퍼덕 주저앉으며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얼마나 쥐어짜였으면 다리에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인가? 나는 어처구니없단 표정을 짓다가도, 발정난 표정을 짓고 있는 수인 6마리를 보고는 곧바로 납득했다.
“……이곳에 보관하고 있네. 자물쇠가 걸려있긴 하지만, 자네의 여기사라면 아주 손쉽게 열수 있을테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충분하다니 다행이구만. 근데 그보다 아까부터 계속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데, 이건 도대체…….”
허기가 느껴지지 않으니, 두둔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두둔 씨가 던전의 일원이 된 덕분이죠. 아무튼, 약속대로 두둔 씨와 다른 분들 모두 안전한 곳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저는 조금 이따가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스마트폰을 조작해서 라미아와 두둔 그리고 수인 6마리를 던전으로 먼저 보냈다. 그리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마정석 파편을 회수하기 위해서 몸을 돌리는데, 갑자기 쿵! 소리와 함께 건물 한쪽이 무너졌다.
와르르!
“보호막!”
화들짝 놀란 나는 서둘러 보호막을 사용해서 내 몸을 보호했다. 그러자 반투명한 막이 무너지는 건물 잔해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
‘뭐지?’
나는 칠흑의 지팡이를 꽉 움켜쥔 채로 흙먼지가 완전히 걷히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윽고 먼지가 걷히자, 무너진 건물 틈새로 좌우로 길게 찢어진 파충류의 거대한 눈동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