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0화 〉 [비밀 연구소]
* * *
“다들 조용히! 조용히 좀 하시오!”
나와 함께 천막 안으로 들어간 사령관이 앞에 놓인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세게 내려치며 소리치자, 순식간에 천막 안이 조용했다.
사람들은 뒤늦게 이성을 되찾은 듯 조용히 자리에 앉으며 우리를 바라보았고 이에 사령관이 작게 기침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토론은 나중에 얼마든지 계속해도 되니, 지금은 현자님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시오.”
“현자? 누가 현자란 말인가?”
“이분이오.”
사령관이 옆으로 비켜서며 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하자, 수많은 시선이 집중되었다. 다행히도 대부분 내게 호의적인 시선이었다. 물론 몇몇은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검은 머리의 현자라면 나도 들어본 적이 있지. 다른 대륙에서 넘어온 이방인이라고 했던가?”
“마정석 파편에 대해서 아주 잘 안다고 들었는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가? 그리고 어쩌다가 대륙이 멸망한 거지?”
“잠깐 이리로 와보시게. 우리와 이야기를 나눠보지.”
사람들이 저마다 입을 열며 내게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히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마물들을 이끄는 라미아를 처치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한시가 급한 일이 아닙니까?”
“라미아를 처치하겠다고? 자네 제정신인가?”
내 말에 다들 화들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심지어 몇 명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두려움에 떠는 걸까? 마정석 파편을 한 서른 개쯤 때려 박기라도 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을 돌아보는데, 턱에 길게 수염이 난 사내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현자라고 했던가? 과연, 자네가 라미아를 직접 보고도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대체 어떤 상태이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주 위험한 상태지. 이제껏 수많은 마물들을 다뤄봤지만, 그녀는 아주 특별했다네. 라미아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 아마 이건 여기 있는 모두가 인정하는 것일 게야.”
사내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주변을 돌아보자, 천막 안의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럼 이대로 라미아를 놔둘 생각입니까?”
“어쩔 방도가 없지 않나? 이대로 병사들을 이끌고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봤자, 개죽음밖에 되지 않을 걸세. 아니, 오히려 놈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셈이 될테니, 개죽음보다 더한 셈이지. 그러니 우린 이대로 라미아를 내버려 둘 생각이라네.”
사내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옳소!’ ‘그 말 맞아.’ ‘괜히 벌집을 들쑤실 필요는 없지.’라며 아우성쳤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오직 한 명, 처음 천막 안으로 들어왔을 때 홀로 라미아의 처단을 주장하던 사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반박했다.
“저런 겁쟁이들의 말은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네! 현자라고 했던가? 내가 연구소 안으로 데려가 주겠네! 나와 함께 라미아를 처치하는 게 어떻겠나?”
“두둔! 아직도 그 소리인가? 제발 좀 정신 차리게!”
“자네들은 아무것도 몰라! 그녀에 대해서 모른다고! 라미아, 그녀는 반드시 추위를 극복할 거야!”
“물론 우리도 그녀가 특출날 정도로 강한 마물이란 사실은 잘 알고 있네. 하지만 결국엔 라미아이지 않는가? 도대체 무슨 수로 이 날씨에 밖으로 나온다는 말인가? 하물며 추운 북부의 환경은 라미아는 물론이고 다른 마물들에게 독이나 다름없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노리고, 일부러 더운 지방에 서식하는 마물을 데려와서 실험한 게 아닌가?”
“그, 그건…….”
“그러니 허튼짓하지 말고, 얌전히 앉아 있게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철저히 계획적으로 마물들을 데려와서 실험했던 모양이었다.
‘일부러 더운 지방의 마물들을 데려와서 실험했다라.’
그 말은 즉, 처음부터 마물들의 폭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로 일을 크게 벌이려면 상당히 큰 배후가 있어야 할 텐데.’
그렇다면 역시, 벨포 왕국인가?
물론 어느 한 귀족의 일탈 혹은 개인적인 욕심으로 마법사들을 모아서 마정석 파편을 연구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가능할까? 더운 지방에 서식하는 마물들을 몰래 잡아 와서 실험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귀족의 힘이 강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만약에 그게 가능하다면, 지금 벨포 왕국의 상황이 개판이란 뜻이겠지.’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서있는 사령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도저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부패한 군인? 글쎄? 오히려 올곧고, 강직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더욱이 실력도 상당해 보였다. 처음 에나를 본 것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강한지 한 눈에 알아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일단 라미아를 처리한 다음에 저 사람한테서 들어보자.’
나는 고개를 돌려서 두둔이란 이름의 사내를 바라봤다.
그는 자리에 앉은 채로 ‘이건 말도 안 돼.’ ‘우린 모두 다 죽고 말 거야.’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어째서 몰라주는 거야.’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혼잣말을 들어보니, 아직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수염이 난 사내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충고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라미아를 처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자라는 자가 어찌 이다지도 고집불통이란 말인가?”
“저도 한때는 여러분들처럼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오만한 생각입니다. 마정석 파편을 삼킨 마물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고, 빠르게 진화합니다. 그 때문에 제가 살던 대륙이 멸망한 것이고요. 여러분들도 이미 한 차례 목격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진지한 목소리로 묻자, 다들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의 반대는 없는 것 같았다. 이를 확인한 나는 두둔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두둔 씨라고 하셨습니까? 괜찮으시다면 연구소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시겠습니까?”
“각오는 되어있는가? 죽을지도 모른다네.”
“각오는 진작 했습니다.”
“좋아. 그 말, 기억해주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두둔은 내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한시라도 빨리 라미아를 처치하기 위해서 천막을 떠날 준비를 했다. 이에 나 또한 떠날 준비를 하자, 뒤에 서있던 사령관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뭔가 도울 건 없나? 병사나 기사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내어주도록 하지.”
“괜찮습니다.”
“흠, 하긴. 자네에겐 그녀가 있으니……. 그럼 잘 부탁하겠네.”
사령관은 에나를 슬쩍 한 번 바라보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이처럼 대화를 끝마치기가 무섭게 두둔이 지도를 한 손에 쥐고서 소리쳤다.
“필요한 건, 다 챙겼으니 어서 가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두둔과 함께 천막을 벗어나 연구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는 눈이 쌓여있지 않아서 비교적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자네가 살던 대륙은 어쩌다가 멸망한 건가?”
“두둔 씨가 지금 몸소 겪고 있지 않습니까?”
“…….”
순간 말문이 턱 막힌 모양인지, 두둔이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이에 나는 그에게 용기를 돋워주고자, 다시금 입을 열었다.
“물론 모든 과정이 똑같진 않습니다. 적어도 저와 두둔 씨가 연구소로 가고 있는 동안만큼은요.”
“그 말은 우리가 라미아, 그녀를 처치한다면…….”
“아쉽게도 이게 끝이 아닙니다. 아직도 무수히 많은 위협이 남아있으니까요.”
“하. 그래, 그렇겠지.”
내 말에 두둔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썩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금 더 빨라진 걸음으로 나를 연구소 쪽으로 이끌었고, 우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체를 끌고 갔군.”
입구 앞에 선 두둔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바닥에는 무언가 질질 끌려간 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보아하니 마물들이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죽은 사람들의 사체를 연구소 안으로 끌고 들어간 모양이었다.
“……역시 식량 확보가 목적이겠지. 무언가 꾸미고 있는 건가? 아니, 그녀라면 분명 꾸미고도 남겠지. 젠장!”
한 차례 분통을 터트린 두둔은 나를 데리고 다급히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밖은 아직 환한 대낮이었지만, 안은 눈앞의 사물이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빛이여, 어둠을 몰아내고 주변을 밝혀라. 라이트.”
두둔이 마법을 사용해서 주변을 밝히자, 두꺼운 판자 따위로 창문이 막혀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광경이었다. 두둔도 그걸 확인하고는 자신의 추측을 늘어놓았다.
“건물 내부의 온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 창문을 모조리 막은 건가? 자네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나?”
“네, 그렇게 보이는군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두둔이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능이 높아. 정말로 자네의 말대로 진화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역시, 그녀는 신이었던 건가? 도대체 우린 무엇을 만든 거지?”
“진정하십시오.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래. 그렇지. 어서 가자고.”
두둔을 진정시킨 나는 그와 함께 연구소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흰색 몸통에 골프공처럼 생긴 얼굴을 가진 생명체가 바닥을 질질 끌며 돌아다니고 있는 게 보였다.
“무호오. 무효오. 무호요. 무효오.”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였다. 어찌나 소름이 끼치던지, 닭살이 쫙 돋을 정도였다.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두둔이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내게 작게 속삭였다.
“조심하게. 저놈은 우리가 만들어낸 키메라 중에 하나인데, 과도하게 마정석 파편을 흡수한 탓에 하반신이 불구가 되어버렸다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하는 건, 금물이야.”
“어째서입니까?”
“엄청나게 강하기 때문이지. 특히나 우리 마법사들의 천적이나 다름없네. 어지간한 위력의 마법은 모조리 무효화시켜버리는데…….”
“그럼 기사는 상관없겠군요.”
“뭐? 아, 기사라면 괜찮네. 근데 워낙에 저놈의 몸이 단단해서.”
내 말에 두둔이 설명을 덧붙이려고 했지만, 그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에나가 키메라에게 달려들어서 단칼에 목을 베어버렸다.
“……허.”
그 광경에 두둔은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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