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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어플-527화 (527/599)

〈 527화 〉 [비밀 연구소]

* * *

‘또 갱신됐다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이계 퀘스트 항목 중에 두 개가 바뀌어 있었다.

대체 이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나는 속으로 침음을 삼키며 새롭게 갱신된 이계 퀘스트를 살펴봤다.

‘심연의 마녀라.’

이건 얼핏 기억에 남아있는 이계 퀘스트였다.

‘퀘스트 이름이 불치병에 걸린 딸이었던 건가? 그때 이후의 상황인 건가.’

퀘스트의 내용으로 보건데, 라인펠덴 가주가 나를 부르기 위해서 모았던 마정석 파편 때문에 화를 입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벨포 왕국은 마정석 파편을 연구하다가 사고가 나버린 거고.’

비밀 연구소라는 명칭이 붙어있는 만큼, 이들도 마정석 파편이 위험한 물건이란 건 인지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어쩌면 이전에 내가 정석 파편에 대해서 경고를 해줬던 걸, 하폰 왕국과 아단트 교단을 통해서 들은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처럼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연구소를 세워가면서까지 마정석 파편을 연구한 걸 보면, 마정석 파편이 가진 힘을 눈치챈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힘을 통제하기 위해서 마물들을 상대로 실험하다가 사고가 나버린 것이고…….

‘결국엔 자업자득이구만.’

어딜 가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벨포 왕국에 대한 건, 무시하고 싶었지만 폭주한 마물이 어디까지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내가 직접 나서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심연의 마녀가 사라지기 전에 이것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운피레아 때처럼 하면 되려나.’

이렇듯 결정을 내린 나는 신발을 신고는 심연의 마녀를 선택했다.

[이계 퀘스트 [심연의 마녀]를 수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지체없이 네를 누르자, 일순 눈앞의 시야가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환하게 밝아지며 피처럼 새빨간 물을 높게 내뿜고 있는 분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분 나쁜 풍경이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자, 조각조각난 채로 아무렇게나 너부러져 있는 시체들이 보였다.

속이 뒤집힐 것만 같은 역겨움이었다. 사방에서 풍겨오는 고약한 냄새에 눈살을 찌푸린 나는 서둘러 에나와 운피레아를 불러냈다.

“에나 소환, 운피레아 소환.”

두 사람을 소환하자, 양옆에 얼음꽃처럼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여기사와 모든 걸 포용해줄 것처럼 자애로워 보이는 엘프 여성이 나타났다.

“유현 님.”

“어머, 주인님!”

에나는 항상 그랬듯이 주변을 경계하며 내 앞에 섰고, 운피레아는 자기를 불러줄 줄은 몰랐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이에 나는 조금 들뜬 모습을 보여주는 운피레아를 진정시켜주며, 칠흑의 지팡이와 보호의 반지를 소환해서 착용했다.

“에나 씨, 다시 불러드릴 테니 로브를…….”

“로브라면 미리 챙겨두었습니다.”

이어지는 내 말에 에나가 품에 안고 있던 검은색 로브를 내게 건네주었다. 이에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로브를 입었다.

‘그래, 이래야지.’

로브를 입고 칠흑의 지팡이를 오른손에 쥔 채로 땅을 짚으니, 참을 수 없는 고양감이 치밀어 올랐다.

온몸의 신경이 떨리고, 무서울 게 아무것도 없어졌다. 하물며 내 곁에는 에나와 운피레아가 있었다. 그야말로 천군만마가 따로 없었다.

차분히 숨을 내쉰 나는 두 여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두 분을 부른 이유는 이곳에 마정석 파편에 삼켜진 여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

내 설명에 운피레아가 짤막한 외마디 탄성을 내뱉으며 눈꺼풀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예전의 일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분명 그녀에겐 안 좋은 기억이겠지. 하지만 이번 일에는 반드시 운피레아의 도움이 필요했다.

“힘드시겠지만, 절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억지로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운피레아 씨의 의견을 존중하니까요.”

“주인님……. 괜찮아요. 도와드릴게요.”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의 저처럼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있다면, 마땅히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나요?”

운피레아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금 설명을 이어나갔다.

“마정석 파편에 삼켜진 여성은 과거에 불치병을 겪었던 여성입니다.”

“설마, 치료 목적으로 마정석 파편을 사용한 건가요?”

“네, 운피레아 씨의 추측대로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지만, 결국엔 이렇게 된 겁니다.”

“그렇군요.”

내가 저택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운피레아 또한 저택을 바라보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되도록 마정석 파편에 삼켜진 여성을 구해주고 싶습니다.”

“예전의 저를 구해주셨던 것처럼요?”

“네.”

운피레아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그녀가 갑자기 예전 일이 떠오른 듯 몸을 살짝 떨며 입을 열었다.

“음, 설마 마정석 파편을 강제로 적출하시려는 건 아니죠?”

“사실 그것 때문에 운피레아 씨를 부른 겁니다.”

“하아, 다행이네요. 만약에 저한테 하셨던 것처럼 마정석 파편을 뽑아버리셨으면, 분명 죽었을 테니까요.”

“그렇죠, 불치병을 앓고 있었던 만큼 몸이 약할테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자, 돌연 운피레아가 손을 흔들며 반박했다.

“아뇨, 그건 건강한 인간이었어도 죽을 거예요.”

“그 정도입니까?”

“엘프와는 다르게 인간의 몸은 무척이나 연약하니까요. 아……. 물론 예외도 존재하지만요.”

자랑스럽다는 듯 대답하던 운피레아가 돌연 에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마지막에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우리 에나가 좀 강하긴 하지.’

물론 그래봤자 침대 위에선 나한테 안 되지만.

나는 속으로 음흉하게 웃다가 도로 운피레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주인님께서 마정석 파편에 삼켜진 아이를 제압해주신다면 나머지는 제가 해볼게요. 몸으로 직접 겪었던 만큼 어떤 상황인지는 짐작이 가니까요.”

역시 경험자를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에나와 운피레아를 데리고서 저택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정원 쪽으로 나있는 창문 유리가 처참하게 박살나 있는 덕분에 거길 통해서 손쉽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유현 님, 무언가 기척이 느껴집니다.”

이렇듯 저택 안의 복도에 서자, 에나가 정면과 위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에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미니맵을 확인해봤다. 그러자 마정석 파편이 있다고 생각되는 장소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좀 떨어져 있는데……. 뭐지?’

에나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제법 가까운 곳에서 기척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혹시 사람입니까?”

“사람과는 다릅니다. 뭔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여러 개의 발자국 소리가 동시에 들립니다.”

“운피레아 씨, 뭔가 짐작 가는 게 있으십니까?”

내 물음에 운피레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마정석 파편의 힘에 사로잡혔다고 해서 모두가 다 똑같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럼 일단 부딪쳐 봐야 한다는 거군요.”

물론 피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긴 했지만, 에나와 운피레아가 내 곁에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에나도 딱히 적을 경계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거겠지.’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깨진 유리와 부서진 액자, 찢어진 커튼 따위로 엉망이 되어있는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에나가 언급한 무언가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끄……. 으윽……. 끅…….”

내 눈에 비추어 보인 건, 거대한 핏덩이 같은 형상이었다. 하지만 그건 결코 무거워 보이는 살덩어리 같은 게 아니었다. 수십 개의 팔과 다리가 나있는 근육질의 괴물이었다. 게다가 놈의 손에는 검, 창, 도끼 같은 온갖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너도……. 우리와 함께…….”

“기분, 기분 좋아…….”

“주, 죽여줘……. 더는 싫어…….”

머리 쪽에 있는 수십 개의 입이 제각기 떠들어댔다. 그걸 보아하니, 단순히 한두 명 정도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게 아닌 모양이었다.

최소한 여덟 명……. 어쩌면 열 명 이상일지도 몰랐다. 처참한 광경에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운피레아 씨, 저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아뇨, 저건 이미 죽었다고 보시는 게 맞을 거예요. 키메라라고 보기엔……. 망자에 가까운 형태니까요.”

“망자라…….”

망자라는 말에 나는 잠시 보유 중인 장비 목록을 살펴봤다.

[장비 ‘이프리의 유물, 지팡이(S)’]

[효과 1 : 턴 언데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경 5M 이내, Rare 등급 이하의 모든 언데드를 소멸시킵니다. (5초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효과 2 : 권능 : 소생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대상을 치유할 경우, 치유 속도가 30% 증가합니다. (1분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효과 3 : 소생의 빛을 사용 할 수 있습니다. 반경 10M 이내 존재하는 아군의 상처와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5분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세트 (2/4) : 신의 가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자세히 보기 (10분 동안 지속됩니다.)]

[세트 (3/4) : 전장의 처녀 : 발키리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최대 1마리)]

[세트 (4/4) : 권능 : 부활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30일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걸 써볼까?’

물론 언데드의 등급이 희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영웅 등급 이상이라면 효과가 없었지만, 영웅 등급이 무슨 옆집 개 이름도 아니고 눈앞의 언데드가 영웅 등급의 개체일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에나가 아직 영웅 등급인데.’

그래도 만약에 혹시라는 게 있었기에 나는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도록 스마트폰을 왼손에 꽉 쥔 채로 이프리의 유물, 지팡이를 소환해서 오른손에 쥐었다.

“턴 언데드.”

그리곤 장비 효과 1에 붙어있는 턴 언데드를 사용하자, 날 중심으로 빛의 원이 빠르게 퍼져나가더니 이윽고 여러 명의 사람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합성 언데드를 덮쳤다.

“비, 빛이다……! 구원……!”

“감사…….”

“드디어…….”

빛에 휩싸인 언제드는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병장기만 놔둔 채 사라졌다.

“유현 님…….”

“주, 주인님? 방금 주인님께서 하신 건가요? 세상에, 이토록 강력한 고위 신성 마법이라니!”

그리고 이처럼 언데드가 사라지자, 에나가 놀란 듯 나를 돌아보았고 운피레아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군요.”

언데드의 등급이 희귀 이하여서 다행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안도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곤 에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주변에서 또 인기척이 느껴집니까?”

“정확히 5미터 이내의 모든 기척이 사라졌습니다.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에나가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우러러보았다. 그리고 이건 운피레아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처럼 감탄하는 것도 잠시, 저택 전체가 쿵쿵 울리는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쿠웅, 쾅!

심지어 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기까지 했다. 이에 에나가 검을 뽑으며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봤던 망자들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습니다.”

“아까 주인님이 사용하신 신성 마법에 자극을 받은 것 같네요. 주인님은 좀 쉬고 계세요. 그 정도로 강한 고위 신성 마법을 사용하셨으니, 피곤하실 거 아닌가요?”

에나와 운피레아는 마치 자기들한테 맡기란 듯이 나를 뒤로 밀어내며 전투 준비를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도로 주머니 안에 집어넣은 뒤에 왼손으로 에나와 운피레아의 엉덩이를 한 대씩 때려주었다.

“읏?”

“꺗!”

찰싹, 소리와 함께 에나와 운피레아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이에 나는 나는 살짝 웃으며 이프리의 유물, 지팡이를 흔들었다.

“괜히 힘 빼지 마시고, 이건 저한테 맡기십시오.”

딱 잘라서 말한 나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좀비 대여섯 마리가 우릴 향해 뛰어오른 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턴 언데드.”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지팡이로 바닥을 탁, 소리 나게 치자 빛의 원이 빠르게 퍼져나가며 적들을 덮쳤다.

“빛이여…….”

“고마워요, 정말…….”

“끝났어……. 끝이야.”

빛에 휩싸인 채로 불타는 적들의 모습에 운피레아가 반쯤 넋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마치 무언가 깨달은 듯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내 몸을 붙잡았다.

“주인님, 설마……. 수명이 깎인 건 아니죠?”

“네?”

난데없이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운피레아의 말에 내가 놀란 목소리로 반문하자, 그녀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치듯 말했다.

“이만큼이나 강력한 신성 마법을 연달아 사용하고도 수명이 깎이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설마……. 길 잃은 망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일부러 무리하신 건가요? 자신의 수명을 깎아가면서까지…….”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러니 진정하세요.”

“저, 정말인가요? 정말로 무리하고 계신 게 아닌가요?”

“네, 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나는 일부러 평소보다 훨씬 더 목소리에 힘을 주어서 대답했다. 하지만 이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운피레아는 내가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급기야 눈물까지 뚝뚝 흘려댔다.

“흐윽, 흑.”

“에나 씨, 에나 씨도 한 마디 해주세요.”

이런 상황에 에나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았지만, 불운하게도 그녀도 나를 오해한 모양인지 존경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현 님 덕분에 저들 모두 편안한 안식에 들어갔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운피레아 씨의 말대로 무리는 하지 말아주십시오. 제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유현님이니까요.”

“…….”

에나의 말이 기특하고 예쁘긴 했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운피레아의 오해를 더욱더 키우고 있었다.

결국, 나는 상당히 긴 시간을 들여서 운피레아를 진정시켜주고는 장비 효과를 자세히 설명해주어야 했다.

물론 별로 안 믿는 눈치였지만.

“일단……. 주인님의 말을 믿을게요. 근데 정말로, 수명이 깎이거나 그러는 건 아니죠?”

“아닙니다.”

딱 잘라서 말한 나는 운피레아의 눈가에 여전히 매달려 있는 눈물을 손수 닦아주고는 이프리의 유물, 지팡이를 앞세워서 저택 안의 적들을 처리했다.

“턴 언데드.”

턴 언데드를 사용할 때마다 빛의 불길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적들을 보고 있자니, 확실히 템빨이 좋긴 좋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는 속으로 흐뭇하게 웃으며 깨끗하게 정리된 복도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방금 전에 적들이 몰고 온 흙먼지가 코로 들어가자, 나는 재빨리 고개를 옆으로 돌린 뒤에 작게 기침을 했다.

“콜록.”

“……!”

그 순간, 운피레아가 뾰족하게 길게 나있는 귀를 쫑긋쫑긋 세우며 나를 돌아보았다.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돌겠네.’

언제쯤 오해가 풀리려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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