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3화 〉 [또 다른 이계]
* * *
“오늘 손님이 얼마나 찾아올까요?”
알마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8점짜리 요리였다고는 하지만 결국엔 꼬치구이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먹자고 이른 아침서부터 이런 외진 식당까지 찾아올 손님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대로 아침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조금은 기대했는데.”
평소와 똑같은 아침 풍경에 알마가 적잖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벌써부터 실망하기엔 너무 일렀다. 그도 그럴 것이 꼬치구이를 먹으려고 하는 거라면, 보통은 저녁때부터 손님이 몰려들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아니나 다를까 슬슬 해가 저무는 저녁 시간이 되자, 어제 야시장에서 봤던 손님들이 한두 명씩 식당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리 왔어요! 꼬치구이 있죠?”
“이야, 이렇게 외진 곳에 식당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이처럼 손님들이 식당을 찾아와 주자, 알마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잔뜩 떠올랐다.
“어서 오세요! 자리 안내해드릴게요!”
그녀는 정말로 기쁜 듯, 손님 한 명 한 명을 소중하게 대했고 손님들도 그녀의 응대에 무척이나 만족한 눈치였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많이 오네.’
나는 식당 안으로 끊임없이 밀려들어 오는 손님들을 바라보며 조금 감탄했다.
이게 8점짜리 요리의 위력인가? 물론 8점짜리 요리를 과소평가할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내가 이곳에 와서 먹어본 8점짜리 요리라곤 귀족들이 이용하는 고급 식당 정도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아, 값이 싼 것도 한몫한 건가.’
아무리 식당이 멀고 외진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값이 저렴하고 맛이 좋다면 손님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굳이 시간을 들여서 찾아올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그리 생각하니, 이토록 많은 손님이 식당을 찾아온 게 이해되었다.
“유현 씨, 꼬치구이 주문 들어왔어요!”
“네,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손님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알마가 주방 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이에 서둘러 대답한 나는 주문받은 사슴 꼬치구이를 부지런히 굽기 시작했다.
“여기 꼬치구이하고 술도 가져다주세요!”
“술 석 잔 더 주시오!”
손님이 생각보다 많이 몰려든 만큼, 주문도 정신없이 이어졌다. 덕분에 알마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손님 응대도 해야 했고, 요리도 해야 했고, 서빙도 해야 했다.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다, 라는 말이 실감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나도 그녀를 도와서 서빙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손님들은 나보다는 알마 쪽을 더 좋아했다.
‘저렇게 행복하게 웃으면서 접대하는데, 싫어할 손님이 어디 있을까?’
단언컨대 아무도 없었다. 실제로 식당을 찾는 게 너무 힘들었다며 투덜거렸던 손님도 알마의 응대를 받고는 금세 화를 풀고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손님도 몇몇 존재하긴 했지만, 방금 막 구워낸 꼬치구이와 술이 입에 들어가니 금세 잠잠해졌다. 오히려 여기까지 힘들게 찾아온 보람이 있다며, 호탕하게 웃을 정도였다.
[당신이 만든 ‘사슴 고기로 만든 꼬치구이’로 많은 수의 손님들을 만족시켰습니다.]
[요리사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요리사 레벨이 상승합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꼬치구이를 굽다 보니, 눈앞에 새로운 알림창이 나타났다. 드디어 요리사 레벨이 오른 것이었다.
‘드디어 8이구나.’
[김 유현]
요리사 레벨 : 8
미식가 레벨 : 6
도축자 레벨 : 1
요리 연구가 레벨 : 5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요리사 레벨이 2밖에 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지금이라면 용사도 만족하지 않을까?’
순간, 나를 추방했던 용사 세르니아의 모습이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 용사 일행은 어디까지 갔으려나.’
용사 파티에서 추방된 이후, 바로 이곳 도시로 왔기 때문에 용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신경 쓸 여유도 없었고 말이다.
나는 꼬치구이를 굽다가 슬쩍 고개를 들어서 식당에서 한참 떠들썩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저들 중에 용사 일행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이토록 사람이 많이 모여있다면, 한두 명쯤은 이야기할 법도 했다.
더욱이 술을 마시면서 안줏거리로 말하기에는 용사 일행의 이야기가 딱 적격이었다. 그런 생각에서 귀를 기울여 보지만, 딱히 용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뭐, 그렇게 쉽게 용사 소식을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아쉽긴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론 이해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으로 삼일만 지나면 세계가 멸망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즉, 용사 일행이 지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어쩌면 용사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 모두 전멸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안 좋은 소식을 일부러 사람들에게 알려서 좋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을 안심시키고자, 일부러 숨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역시 숨기고 있다고 하는 게 맞겠지.’
용사가 어째서 세계를 구하지 못했는가? 그것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선 다시 한번 더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 생각하며 다시 요리에 집중하려는데, 문득 알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시작하면…….’
알마는 나를 잊으려나?
그리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가슴 한켠이 휑하니 빈 것처럼 쓸쓸해졌다. 하지만 이내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어차피 인연은 다시 쌓으면 됐다. 이미 한 번 쌓아 올렸던 만큼, 다시 쌓는 것도 크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애써 아쉬움을 떨쳐낸 나는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렇게 저녁 늦게까지 손님을 받으며 요리를 한 끝에 우리는 겨우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나와 알마는 어지럽혀져 있는 식당을 정리하며 오늘 야시장에 나갈지, 말지 고민했다.
“막상 야시장에 나가도 팔 수 있는 고기가 별로 없는데 어쩌죠?”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 그건 바로 남아있는 식재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손님이 많이 찾아올 줄 알았다면 더 많이 준비했을 텐데.’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우리는 일부러 식당까지 찾아와준 손님들을 실망시키지 않고자, 야시장에서 쓸 고기까지 끌어다가 꼬치구이를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야시장에서 사용해야 할 고기가 거의 다 동나고 말았다.
“저는 파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휴, 역시 그렇겠죠?”
분명 오늘도 꼬치구이를 먹으려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손님들에게 내일도 장사를 할 거라고 말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야시장에 나오지 않는다면, 분명 적잖게 실망할 것이다.
그건 솔직히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알마도 나와 같은 마음인 모양인지, 우린 비록 적은 양이긴 해도 남은 식재료들을 챙기고 야시장으로 향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매일매일이 축제 같네요.”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수레를 끌고 있으니 옆에서 알마가 해맑게 웃었다. 그녀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앞으로는 더 즐거워질 겁니다.”
“그럴까요?”
“네.”
우린 그렇게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광장으로 향했고, 이윽고 포장마차 안에서 장사를 할 준비를 끝마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몇몇은 어제 봤던 손님들이었다. 심지어 오늘 저녁에 식당을 찾아왔던 손님도 있었다.
알마도 그 손님을 알아보고는 아는 척을 했다.
“어라? 여기서 또 보네요? 배가 안 부르셨나요?”
“하하, 배는 부릅니다. 근데 왠지 또 생각나서 왔네요.”
“좋아해주니까 제가 다 기쁘네요.”
손님의 말에 알마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면서 꼬치구이를 구웠다. 확실히 이만큼이나 계속 찾아와주는 손님만큼 반가운 손님은 또 없었다. 그렇게 우린 손님들을 받으며 순식간에 꼬치구이를 전부 다 팔았다.
“내일도 장사하시나요?”
“아뇨, 오늘로 끝이에요. 대신 또 드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알마의 식당을 찾아와주세요!”
“꼭 찾아갈게요.”
오늘로 끝이란 말에 손님들이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식당에서도 판다는 이야기에 다들 기뻐하며 꼭 찾아갈 거란 말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그 말에 알마가 무척이나 기뻐하며 ‘네, 부디!’라고 말했다.
“그렇게 기쁩니까?”
“당연히 좋죠! 일부러 우리 식당까지 찾아와주신다는데 싫다는 요리사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확실히 그러네요.”
알마의 말에 동의한 나는 그녀와 함께 포장마차를 정리한 뒤에 빈 수레를 끌고 식당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처럼 식당으로 돌아온 우리는 몸을 씻고, 내일 쓸 식재료를 다듬으며 쌓였던 이야기를 했다.
“오늘 일하면서 느낀 건데, 서빙을 해줄 직원이 한 명 필요해요.”
“직원은 어떻게 뽑으실 생각이십니까?”
“내일 아침에 고아원에 가서 한 명 데려오죠. 마침 2층에 빈방도 많으니까, 먹고 재우는 건 문제 없을 거예요.”
“고아원 말입니까? 음, 보통은 구인 공고를 내서 직원을 뽑지 않습니까?”
“보통은 그러죠. 근데 요새는 고아원에 아이들이 넘쳐나서 다들 이런 식으로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유현 씨도 아시잖아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물들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마을을 습격하고 있다는 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물들에게 습격을 받아서 부모를 잃게 된 아이들이 고아원으로 대거 몰려들게 되었고, 그 때문에 고아원들이 곤란을 겪게 되자 16세에 가까워진 아이들부터 고용하도록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영주가 이런 정책까지 시행할 정도면 정말로 많이 위험하다는 건데.’
알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삼 세계 멸망이 가까워졌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내 걱정과는 다르게, 알마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용사님이 금방 해결해주시겠죠?”
용사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보여주는 그녀의 태도에 문득 호기심이 든 나는 슬쩍 물어봤다.
“용사님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뇨, 직접 보진 못했어요. 근데 소문으론 굉장히 강한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혼자서 오우거를 쓰러트렸다고 하니까 말 다 한 셈이죠. 안 그래요?”
혼자서 오우거를……. 에나보다 약한 거 아닌가?
나는 진심으로 용사가 걱정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