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2화 〉 [또 다른 이계]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는 평소처럼 식당을 청소하고 장사를 할 준비를 했다.
알마는 굳이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내가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주는 거라고 말하자 어째선지 알마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심지어 조금 기쁜 기색도 비쳤다. 이에 내가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알마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꼭 부부가 된 것 같아서요.”
알마의 말에 나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이런 작은 것 하나에도 설레고 좋아하는 그녀가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유현 씨는 안 설레세요?”
문득 알마가 내 팔을 살짝 끌어안으며 물었다.
“음, 알마 씨가 키스해주면 설렐 것 같은데…….”
키스란 말에 알마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쭉 내밀어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쪽, 소리와 함께 닿는 부드러운 감촉이 제법 좋았다.
“어때요?”
“충분히 설렜습니다.”
“한 번으로요?”
“더 해주시면 저야 좋죠.”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알마가 다시 고개를 내밀어서 키스를 했다. 쪼옥, 쪽. 야릇한 소리가 서늘한 새벽 공기를 타고서 밖으로 새어나갔지만, 그걸 듣고서 찾아오는 손님은 없었다. 그렇게 우린 청소를 잠시 뒷전으로 미뤄둔 채, 서로의 입술을 탐했다.
“하아, 그냥 오늘 장사 확 접을까요?”
“항상 찾아오는 노부부 손님이 실망할 겁니다.”
“치, 농담해본 거예요.”
내가 진지하게 답하자, 알마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댔다. 보아하니, 진짜로 장사를 접을까 고민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조금 삐진 듯한 알마를 살살 달래주며 식당을 마저 청소하고는 식재료를 손질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침이 지나 점심때가 되자, 어제 손자를 보고 온 노부부가 식당을 찾아왔다. 알마는 노부부를 살갑게 맞이하며 어제 손자를 잘 봤는지, 여쭈어봤다. 당연히 노부부는 손자를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딜 가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주 사랑은 똑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알마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목공소에 방문해서 어제 주문한 길 안내판을 챙겼다.
그 후, 잡화점 여주인에게 말해서 길 안내판을 잡화점 옆에 걸어둔 뒤에 식당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윽고 점심이 지나 저녁이 되자, 우리는 슬슬 야시장에 나가볼 준비를 했다.
“창고에 수레가 있으니까, 거기에 싣고 가죠.”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짐이 많아지자, 알마가 창고에서 수레를 가져왔다. 이에 나는 수레에 짐을 싣고는 그녀와 함께 야시장이 열리고 있는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벌써 다들 하고 있네요.”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장사를 하고 있는 노점상들이 보였다.
우린 수레를 부지런히 끌며 저번에 배정받은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이미 포장마차 한 대가 놓여있었는데, 내가 당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깔끔해서 놀랐다.
다만 진짜로 포장마차만 빌려주는 모양인지, 안에는 아무런 조리 기구가 없었다.
“작으면 어쩌나 했는데, 이 정도면 둘이 같이 들어와서 요리를 해도 되겠네요.”
알마도 나와 같은 걱정을 했던 모양인지, 포장마차 내부를 둘러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서로 부딪히지 않게 조심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혹시라도 부딪혀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후, 상상만 해도 싫네요.”
고개를 가로저으며 몸서리친 알마는 수레에 싣고 온 짐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이에 나도 그녀를 도와서 포장마차 안으로 짐들을 들이기 시작했다.
요리에 필요한 조리 도구부터 시작해서 꼬치구이에 쓸 나무꼬챙이까지. 모든 준비를 끝마친 우리는 포장마차 안에 마련되어 있는 화로에 불을 피우고는 꼬치구이를 굽기 시작했다.
“으음, 긴장되네요.”
“긴장 푸세요. 다 잘 될 겁니다.”
긴장한 듯 손을 떠는 알마를 부드럽게 다독여준 나는 꼬치 굽는 냄새가 광장에 잘 퍼질 수 있도록 일부러 부채질까지 해가면서 구웠다. 그리고 그렇게 냄새를 퍼트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냄새에 이끌린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
“어서 오세요!”
첫 손님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중년 사내였다. 그는 화구 위에서 자글자글 소리를 내며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는 사슴 꼬치구이를 바라보면서 알마에게 물었다.
“처음 보는 꼬치구이 집이구먼. 무슨 꼬치구이인가?”
“사슴 고기로 만든 꼬치구이예요.”
“다른 고기는 없고?”
“네, 하지만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그럼 하나 줘보시게.”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주문을 받은 알마는 정성스럽게 구워낸 꼬치구이를 중년 사내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처음에는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꼬치구이를 받았지만, 이내 한 입 크게 베어 물고는 태도를 완전히 바꿨다.
“허허, 이거 맛이 제법이구만!”
무척이나 마음에 든 듯, 중년 사내는 정신없이 꼬치구이를 먹어치웠다. 하지만 하나로는 배가 차지 않는 모양인지, 곧바로 하나 더 주문해서 그 자리에서 단숨에 먹어치웠다.
“아가씨, 내일도 나와서 장사하나?”
“네, 내일도 나와서 장사할 생각이에요. 근데 혹시 낮이나 저녁때도 드시고 싶으시면, 알마의 식당에 찾아와주세요!”
“알마의 식당? 거긴 어딨나?”
“저기에 잡화점 하나 보이시죠? 가게 옆에 보시면 길 안내판이 붙어있어요. 그걸 보고 찾아오시면 돼요.”
“그래? 내 기억해두지.”
“감사합니다!”
만족한 표정을 지은 채 뒤돌아서는 중년 사내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단골이 될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알마도 그런 예감이 든 모양인지, 잔뜩 신이 난 표정을 지은 채 적극적으로 호객행위를 했다.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손님들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그리고 당연하게 다들 꼬치구이를 먹어보고는 입이 찢어질 정도로 좋아했다.
“와, 이렇게 맛있는 꼬치구이는 처음 먹어봐요!”
“진짜 맛있네요. 내일 또 올게요.”
이처럼 반응이 좋다 보니, 식당의 홍보에도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알마는 틈이 날 때마다 사람들에게 식당을 홍보했고, 대부분의 사람이 꼭 식당을 찾아갈 거란 말을 해줬다. 물론 이 사람들 모두가 식당까지 찾아올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중에 절반만 찾아와도 많이 온 거겠지.’
하지만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대박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던 식당에서 그나마 사람들이 찾는 식당이 된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걸 발판삼아서 차근차근 인지도를 쌓으면 되었다.
“와, 다 팔았다!”
정신없이 손님을 맞이하다 보니, 어느새 꼬치구이가 동났다. 알마는 식재료가 한가득 들어있던 통이 텅 비어있는 걸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돈을 많이 번 것보다 그날 재료를 전부 다 소진한 게 더 기쁜 모양이었다.
“……유현 씨, 보여요? 우리가 다 팔았다고요!”
“네, 보입니다.”
“하아, 이게 대체 얼마만인지.”
그녀의 말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했던 건지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몸을 끌어안아 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내 위로에 알마가 기운을 얻은 듯, 배시시 웃으며 가슴팍에 얼굴을 문댔다.
“고마워요.”
“벌써부터 고마워하기엔 너무 이른 거 아닙니까?”
“뭐가 또 남아있어요?”
“내일 손님을 맞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올까요?”
“올 겁니다.”
물론 나도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손님들이 찾아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한두 명……. 최소한 오늘보단 더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런 낙관적인 생각을 하며 웃고는 알마와 함께 포장마차를 정리했다.
그 후, 빈 수레를 끌면서 식당으로 돌아온 우리는 간단하게 씻고 내일 팔 식재료를 다듬었다.
“하암.”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고달팠던 만큼, 알마가 드물게 하품을 하며 꾸벅꾸벅 졸았다. 이에 나는 혹시라도 그녀가 칼질을 하다가 손가락이 베일까, 걱정이 되어서 그녀의 몸을 받쳐주며 입을 열었다.
“졸리면 먼저 올라가서 주무셔도 됩니다.”
“네? 아, 아니에요! 이런 건, 같이 해야죠.”
“내일도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지 않습니까?”
“으음, 그렇긴 하지만……. 제가 없으면 유현 씨 혼자서 해야 하잖아요. 혼자서 하면 늦을 테고, 늦으면……. 못하잖아요.”
“못하다뇨?”
“그, 그거요.”
내가 의아해하며 묻자, 알마가 슬쩍 내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가 뭘 원하는 건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피곤해도 할 건 해야죠!”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알마가 강한 의지를 내비치며 말했다. 이에 픽, 웃은 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얼른 끝내죠.”
“네!”
큰 소리로 대답한 알마는 곧바로 다시 집중해서 식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잠이 완전히 달아난 모양이었다. 심지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성욕의 화신이었다. 실은 서큐버스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알마와 함께 식재료를 전부 다 다듬고는 2층 침실로 올라갔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내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오늘은 상냥하게 해주세요.”
“그러죠.”
살짝 웃은 나는 그녀의 요구대로 상냥하게, 그리고 진득하게 시간을 들여서 애무해줬다. 특히나 내가 그녀의 음부를 입으로 빨며 핥아줬을 땐, 몸 둘 바를 몰라하며 기뻐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여기선 남자들이 여성의 음부를 더럽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근데 이러는 주제에 자신의 성기는 여자의 입에 잘도 물린다고 한다.
‘안타깝네.’
이렇게 달고 맛있는 걸 맛보지 못하는 남자들이 불쌍해졌다.
나는 정액과 애액으로 흠뻑 젖어있는 알마의 음부를 만지작거리며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렇게 깊게 잠들었다가 인기척이 느껴져서 깨어나보니,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내 남근을 맛있게 빨고 있는 알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쭈읍, 쭙.
아침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맞춰, 알마의 입술 사이로 음란한 소리가 쉴 새 없이 새어 나왔다.
나는 하복부에서 치밀어오르는 기분 좋은 쾌감을 느끼며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내 손길에 기분 좋게 미소를 지은 알마가 살짝 고개를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쮸읍. 하아, 좋은 아침이에요.”
“네, 좋은 아침입니다.”
우린 그렇게 서로 아침 인사를 나누고는 마저 행위에 몰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