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0화 〉 [또 다른 이계]
* * *
끼이익.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여전히 잠을 자고 있는 알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에 나는 근처 탁자 위에 가져온 음식을 올려놓은 뒤에 침대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곤 알마의 적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감겨있던 두 눈이 조금씩 떠지는 게 보였다.
“으음, 유현 씨……?”
“먹을 것 좀 만들어왔습니다.”
“아……. 어쩐지 맛있는 냄새가 나더라.”
킁킁, 냄새를 맡으며 몸을 일으킨 알마가 눈에 붙어있는 눈곱을 떼어내며 하품을 했다. 털털한 그녀의 모습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나는 알마가 잠을 깨는 동안, 탁자 위에 올려놨던 요리를 가져와서 그녀의 손에 그릇을 쥐여주었다.
“잘 먹을게요.”
“입맛에 안 맞을지도 모릅니다.”
“에이, 겸손도 참. 한눈에 딱 봐도 맛있어 보이는데요?”
활짝 웃은 알마는 거침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삶은 감자를 으깬 뒤에 구운 사슴 고기를 얇게 썰어서 올려둔 간단한 요리였지만, 알마는 무척이나 마음에 든 듯 맛있게 먹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 요리를 먹으면 먹을수록 아쉬움이 짙게 남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에 마요네즈 소스를 뿌릴 수만 있어도 훨씬 더 맛있을 텐데.’
물론 이곳의 소스도 매우 훌륭한 편이긴 했다.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게,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이런 요리에는 마요네즈 소스가 딱 적격이었다.
‘현실에 잠깐 갔다 올까?’
마요네즈 소스를 만드는 법만 알아내고 돌아와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나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알마가 식사를 다 끝마치기를 기다린 뒤에 입을 열었다.
“알마 씨.”
“네?”
“혹시 제가 괜한 참견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손님을 끌어모을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한 번 들어봐 주시겠습니까?”
“손님을요? 어떤 방법인데요?”
다행히도 알마는 불쾌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이에 나는 야시장을 통해서 식당을 홍보하는 방법을 그녀에게 제안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식당이 외진 곳에 위치한 만큼, 손님들이 그나마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표지판을 세워두자는 이야기도 했다.
“음, 이런다고 해서 정말로 손님이 찾아올까요?”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알마가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죠.”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하던 알마가 문득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뭘 팔 건가요?”
“사슴 꼬치구이를 팔 생각입니다.”
“아, 그거라면 뭐……. 자신 있죠.”
사슴 꼬치구이라는 말에 알마의 얼굴에 약간 안도감이 서렸다. 적어도 손해를 보지 않겠구나, 싶은 표정이었다. 그만큼 자기가 구운 꼬치구이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는 뜻이겠지. 실제로도 맛있는 편이었고.
“근데 손님을 끌어모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맛있어져야 할 겁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요? 어떻게요?”
“지금부터 같이 궁리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옅게 웃은 나는 알마에게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내려오라고 말한 뒤에 빈 그릇을 챙기고 먼저 방을 빼져 나갔다.
그 후, 1층으로 내려온 나는 꼬치구이를 만들 준비를 해뒀다.
‘내가 꼬치구이를 만든다면.’
[예상 결과]
맛 : 6
향 : 5
알마의 레시피를 적용해보았지만, 결과는 형편없었다. 아마 이토록 낮은 예상 결과가 나온 건, 내가 불을 다루는 솜씨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나는 알마만큼 불을 잘 다룰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선 크게 걱정이 없었다. 내겐 다른 사람에겐 없는 시스템이 존재했으니까.
‘덜 익거나, 태울 걱정이 없지.’
이건 매우 큰 이점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준비를 완벽하게 끝마쳤을 때쯤, 알마가 말끔한 차림새로 계단에서 내려오는 게 보였다. 그녀는 주방 입구에 걸려있는 앞치마를 둘러 입고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뭐부터 해볼래요?”
“일단 간단하게 각자 꼬치구이를 만들어볼까 합니다.”
“좋죠.”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 알마는 곧바로 사슴 꼬치구이를 만들 준비했다.
나 또한 빠르게 손을 움직여서 꼬치구이에 쓸 사슴 고기를 손질했다. 크기는 시스템이 알려주는 대로 모두 똑같은 크기로 잘랐기에 마치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낸 듯, 개성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옆에서 알마가 자른 고기와 비교하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게 맛을 좌우하진 않을 테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자른 고기와 야채 등을 기다란 꼬챙이에 꽂은 다음에 불에 굽기 시작했다. 이 다음은 시스템이 표시해준 시간을 확인하며 뒤집어주기만 하면 됐다.
화륵.
알마도 나와 마찬가지로 꼬챙이에 고기와 야채를 꽂은 다음에 굽고 있었다. 다만, 그녀는 나하곤 다르게 수시로 꼬치를 앞뒤로 돌려가면서 골고루 굽고 있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꼬챙이에 꽂혀있는 고기와 야채에 미세하게 칼집이 나있었다.
그걸 보니, 저건 차이가 꽤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은 왜 나한테 저걸 안 가르쳐준 거지?’
내가 음식을 먹을 때, 눈치채지 못해서? 아니면 맛에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해는 잘 안 됐지만, 일단 요리가 완성되고 난 뒤에 확인해봐야 할 듯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알마를 계속 지켜보는데, 확실히 그녀가 경력이 긴 요리사라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노련하네.’
또한, 그녀가 요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런 요리사가 만든 요리가 맛이 없을 리가 없다.
물론 시스템은 상품 가치를 7점이라고 정했지만, 나는 그게 무조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맛이란 건, 사람마다 전부 다 다르게 느끼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알마를 보고 있다 보니, 어느샌가 꼬치구이와 완성됐다.
나는 완성된 요리를 앞에 두고서 결과를 확인해봤다.
[사슴 고기로 만든 꼬치구이]
맛 : 6점
향 : 6점
상품 가치 : 6점
평가 : 절묘한 마이야르 반응! 잘 구워진 사슴 고기에서 좋은 향이 솔솔 풍기고 있습니다. 이대로 먹어도 충분히 맛있지만, 소금에 살짝 찍어 먹으면 훨씬 더 좋은 풍미를 맛볼 수 있을 겁니다.
향이 1점 더 오르긴 했지만, 결국 예상 결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반면에 알마가 만든 꼬치구이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맛과 향 모두 7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같은 재료와 같은 레시피를 사용했다는데도 이 정도 차이가 났다.
‘정말로 칼집의 차이일까?’
나는 혹시나 싶은 생각에 다시 꼬치구이를 만들어봤다. 이번엔 알마가 했던 것처럼 고기와 야채에 칼집을 내서 구워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맛이 7점으로 나왔다. 아쉽게도 향은 오르지 않았지만, 이것만 해도 충분히 큰 발전이었다.
“여기서 맛을 끌어올리려면 뭐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까?”
내 물음에 잘 구워진 꼬치구이를 먹던 알마가 입을 열어서 대답했다.
“손이 더 많이 가긴 하겠지만, 손질해둔 고기를 하루 전날에 미리 재워두면 아무래도 더 맛있어지겠죠.”
“양념 갈비처럼요?”
“양념 갈비요? 아, 양념에 재워두자고요? 흠,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근데 그러면 불에 구웠을 때, 색이 예쁘게 나오지 않을 걸요?”
확실히 알마의 말대로 양념에 미리 재워두면, 불에 구웠을 때 색이 마치 탄 것처럼 새까맣게 나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무래도 손님의 입장에선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음, 양념 말고 우유나 양파물을 써보는 게 어때요?”
“그거 좋네요. 근데 그것만 써서 맛이 좋아질 것 같습니까?”
“당연히 향신료도 같이 써야죠. 근데 이러면 값이 너무 비싸질 것 같은데, 야시장에서 팔기엔 너무 과하지 않을까요?”
“적당히 타협을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싸다고 해서 무조건 맛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고개를 끄덕인 알마가 향신료를 꺼내기 위해서 주방 서랍장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나는 머릿속으로 레시피를 조금씩 개량하면서 예상 결과를 도출해봤다. 일단 처음에는 우유에만 재워둔 고기.
[예상 결과]
맛 : 7
향 : 7
‘양파물은 어떨까?’
우유를 양파물로 바꾸자, 맛이 8로 올라갔다. 이건 확실히 큰 변화였다. 충분히 상품 가치 8점까지 노려볼만 했다.
희망이 생기자, 나는 알마가 꺼내서 보여준 향신료들을 레시피에 대입해가면서 예상 결과를 확인해봤다. 그러자 어떤 건 변하지 않고, 또 어떤 건 오히려 하락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모두가 부정적인 결과만 나타낸 건 아니었다.
[예상 결과, 향이 상승합니다.]
[사슴 고기로 만든 꼬치구이를 변형합니다.]
[현재 자신의 수준보다 높은 요리의 레시피를 변형시켜서 맛을 상승시켰습니다. 요리 연구가로서의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요리 연구가 레벨이 상승합니다.]
‘됐다.’
[예상 결과]
맛 : 8
향 : 8
요리 연구가의 레벨이 5로 상승하는 것과 동시에 예상 결과 8점짜리 요리가 완성되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곧장 양파를 꺼내서 잘게 썬 다음에 최대한 즙을 짜서 큰 그릇에 담았다. 그리곤 잘 손질된 사슴 고기와 향신료를 잘 섞어서 담가뒀다.
“이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다른 건, 더 시험하지 않아도 되나요?”
“네, 이거면 충분합니다.”
“되게 자신감 넘치네요. 이랬다가 내일 만들었을 때, 맛없으면 어쩌려고요?”
“그 땐, 알마 씨의 소원을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정말이죠?”
“네.”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하고는 알마와 함께 어지러워진 주방을 정리하고는 2층 침실로 올라갔다. 원래대로라면 여관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알마가 너무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나를 유혹했기에 어쩔 수 없이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식당 2층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나는 알마와 함께 외출했다. 야시장에서 장사를 하려면 따로 신청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중세 수준의 문명을 누리고 있었기에 야시장에서 장사하는 건, 따로 허락이 필요 없을 줄 알았는데 이건 상당히 의외였다. 게다가 나를 또 놀라게 만든 건, 장사 신청을 내자 포장마차 같은 것도 함께 대여해준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따로 돈을 내야 했지만.
“이 정도는 제가 내도 되는데.”
“제가 말을 꺼냈으니, 제가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비용을 지불했다는 사실에 알마가 상당히 미안해했지만, 나는 괜찮다는 듯 손짓하며 말했다. 그리곤 그녀와 함께 광장으로 가서 우리에게 배정된 자리를 확인해보았다.
“여긴가 보군요.”
조금 구석진 자리이긴 했지만, 딱히 나쁜 자리도 아니었다. 이 정도면 적당하고 볼 수 있었다.
“불을 피워도 된다고 했죠?”
“네, 그것도 확인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나는 광장까지 나온 김에 알마와 함께 꼬치구이에 쓸 재료를 구입했다.
그 후, 식당으로 돌아온 우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식당을 청소하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물론 손님이라고 해봤자, 노부부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알마가 노부부 손님을 상대하는 동안, 나는 저번에 만들어봤던 간식을 만든 다음에 광장으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가게를 찾아갔다.
딸랑. 딸랑.
“계십니까?”
“앗, 어서 오세요!”
잡화 상점인 듯, 선반 위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놓여있었다.
나는 그걸 잠시 살펴보고는 계산대에 앉아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만들어온 간식을 건네주었다.
“간식을 만들어왔는데, 좀 드셔보시겠습니까?”
“에휴, 미안하지만 안 사요.”
“하하, 파는 게 아닙니다.”
“정말요?”
“네.”
파는 게 아니란 말에 잡화 상점의 여주인이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가져온 간식을 건네주자, 그녀는 마침 배고팠다는 듯 산딸기 잼이 듬뿍 뿌려져 있는 빵을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흐음~. 맛있네요. 어디 빵집에서 온 거예요?”
“알마 씨라고 아십니까?”
“아, 그 별난 요리사 아가씨요? 알죠. 설마 거기서 오신 거예요? 언제 빵집으로 바꿨대? 혹시 식당 망했어요?”
생각보다 알마가 유명 인사인 모양인지, 잡화 상점의 여주인이 대번에 아는 척을 하며 깔깔 웃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래요? 그럼 알마하고 무슨 사이예요? 설마 사귀는 사이예요?”
“그렇다고도 볼 수 있죠.”
“어머, 어머!”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은 듯, 연신 어머를 연발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이에 나는 적당히 맞장구쳐주며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다가 적당한 때를 보아서 본론을 꺼냈다.
“그나저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호호, 무리한 부탁은 아니죠?”
“간단한 겁니다. 그냥 여기 가게 옆에 조그마하게 길 안내판을 매달아두고 싶을 뿐입니다.”
“길 안내판이요?”
“알마 씨의 식당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안내판입니다.”
“뭐, 그 정도라면 간단하죠. 들어줄게요. 대신, 나중에 또 간식을 만들어주세요. 매주 주면 더 좋고요.”
“그러겠습니다.”
다행히도 잡화점의 여주인은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이에 나는 기꺼이 매주 간식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밖으로 빠져나왔다.
‘좋아.’
이로써 손님들이 알마의 식당을 찾기 위해서 길을 헤맬 필요가 없었다.
나는 광장과 마주보고 있는 잡화 상점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겨서 목공소를 찾아갔다. 이번에 잡화 상점 옆에 매달아둘 길 안내판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필요한 일을 모두 마친 뒤에 알마의 식당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어젯밤에 재워뒀던 고기를 꺼내서 알마와 함께 꼬치구이를 만들었다.
[사슴 고기로 만든 꼬치구이]
맛 : 8점
향 : 8점
상품 가치 : 8점
평가 : 감칠맛이 폭발합니다. 사슴 고기로 만든 꼬치구이지만, 전혀 사슴 고기 같지 않습니다. 향긋하고 부드러우며, 먹는 이로 하여금 감동마저 느끼게 만듭니다. 이걸 먹고도 행복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현재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는 요리를 완성했습니다. 요리사로서의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요리사 레벨이 상승합니다.]
결과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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