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7화 〉 [또 다른 이계]
* * *
‘오늘 저녁은 다른 식당에서 한 번 먹어볼까?’
생각해보면 이곳에 와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해본 건, 알마의 식당을 제외하곤 없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서 손님이 가장 많이 보이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한 분이신가요?”
“네.”
“자리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식당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서 안으로 들어서자, 밖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고풍스러워 보이는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공을 많이 들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벽은 이곳이 얼마나 청결한 장소인지를 알려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곳이 중세 수준의 문명을 누리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확실히 파격적이었다.
‘음식 맛은 어떨까?’
잘하면 7점 이상 되는 음식을 먹어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분명 미식가 레벨을 올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안내를 받아 빈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나무판으로 된 메뉴판을 내게 건네주었다.
‘비싸네.’
메뉴 하나하나가 터무니없이 비쌌다. 문득 고개를 들어서 식당 안의 손님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다들 하나 같이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평민들이 아니었다.
‘귀족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식당이었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음식을 못 시켜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터무니없이 비싸다고는 해도 결국엔 음식이었으니까. 물론 이것 때문에 당분간 무리한 지출은 할 수 없겠지만, 어차피 여긴 일주일 후면 멸망할 세계였다. 돈을 아낄 필욘 없었다. 그리 생각을 마친 나는 메뉴 하나를 골라서 시켰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조금 기다리자, 종업원이 나무 그릇에 담긴 요리를 가져왔다.
[흰살생선 완자 튀김]
맛 : 8점
향 : 7점
상품 가치 : 7점
평가 : 흰살생선을 으깨고 뭉친 다음에 기름에 바싹하게 튀겨냈습니다. 곁들인 소스는 무척이나 시고 맵지만, 그 강렬함이 튀김의 느끼함을 완전히 잡았습니다. 민물 생선 특유의 흙내나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7점 요리가 나왔다. 물론 속으로는 은근히 8점 요리를 기대했지만, 그건 무리인 모양이었다. 혹시 더 비싼 음식을 시키면 8점 요리가 나오는 건 아닐까? 혹시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건 다음에 시켜 먹어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음식이 식기 전에 서둘러 튀김을 하나 들어서 먹어보았다.
[흰살생선 완자 튀김을 먹었습니다.]
[미식의 관심이 높아집니다. 다른 세계의 요리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현재 자신의 수준보다 훨씬 더 높은 요리를 먹음으로써 미식가로서의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미식가 레벨이 상승합니다.]
[흰살생선 완자 튀김의 레시피를 획득합니다.]
입안에서 튀김이 바스러지며, 그 안에 갇혀 들어있던 뜨거운 육즙이 넘쳐 흘러나왔다. 겉에 묻어있던 소스도 훌륭했다. 무엇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게다가 미식가 레벨이 오른 탓인지, 평소보다 더 혀가 민감하게 느껴졌다.
‘완자라는 게 원래 이런 요리였구나.’
달콤한 살맛과 소스의 매우면서도 신맛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완자 튀김을 하나씩 먹으며 레시피도 살펴봤다.
‘아하, 이렇게…….’
흰살생선 완자 튀김은 튀김 요리답게 상당히 손이 많이 가는 요리였다. 번거롭다고 해야 할까? 완자를 감쌀 반죽을 만들고, 기름을 데우고, 생선의 살코기 부분만 따로 발라내서 조리해야 했으니 말이다.
물론 손이 많이 가는 맛이 좋기는 했다.
‘내가 이걸 만든다면 어떨까?’
나는 흰살생선 완자 튀김을 만드는 상상을 해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앞에 또 다른 알림창이 나타났다.
[예상 결과]
맛 : 6
향 : 5
‘아직 내 실력으론 힘들다는 건가?’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이긴 했지만, 그래도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완전히 실망하기엔 아직 일렀다.
‘예상 결과는 어디까지나 예상 결과일 뿐이니까.’
실제로 직접 만들었을 때, 예상 결과보다 훨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낸 적이 몇 번 있었다.
나는 흰살생선 완자 튀김을 깨끗이 다 먹고는 식당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거리의 노점을 적당히 구경하고는 여관으로 돌아와서 한숨 잤다. 어제 밤을 새워서 많이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요리를 할 때는 전혀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아서 몰랐지만, 막상 여관으로 돌아오니 피로함이 몰려왔다.
‘샤워하고 싶네.’
마음 같아선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싶었지만, 여기엔 그런 시설이 없었다. 만약 목욕을 하고 싶으면 여관 종업원에게 돈을 주고, 뜨겁게 데운 물을 가져다 달라고 주문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사치를 부릴 여유는 없었기에 나는 직접 우물로 가서 찬물에 간단히 몸을 씻는 것만 해야 했다.
그렇게 때 아닌 냉수로 몸을 씻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금세 아침이 되었다.
“오늘도 힘내볼까.”
몸을 일으킨 나는 여관 밖으로 나가서 우물에서 간단히 씻고는 시장을 방문했다. 아직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수의 상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번에 흰살생선 완자 튀김을 도전하기 위해서 물고기 몇 마리를 구입한 뒤에 나머지 재료들도 적당히 샀다. 그리곤 알마의 식당을 찾아가자, 문 앞을 빗자루로 쓸며 청소를 하고 있던 그녀가 나를 발견하곤 활짝 웃었다.
“오늘도 일찍 왔네요?”
“네, 아직 식사 전이시죠?”
“또 해주시게요?”
“그럴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저야 언제든 환영이죠!”
기운차게 대답한 알마는 옆으로 살짝 비켜서며 나를 식당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이에 나는 식재료를 바리바리 든 채로 주방까지 곧장 걸어 들어갔다. 그리곤 어제 먹어본 흰살생선 완자 튀김을 만들기 시작했다.
“음.”
생선 손질은 난생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다행히도 내게는 시스템이 있었다. 레시피를 적용하자, 어떻게 생선을 손질해야 할지 홀로그램처럼 실선으로 표시되며 내게 알려주었다.
초보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가르쳐주었기에 조금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걸 제외하곤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민물고기를 손질했습니다.]
[첫 도전은 언제나 설레는 법입니다. 생선을 손질함으로써 도축자의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도축자 레벨이 상승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생선도 도축에 포함되는 건가? 꽤나 후한 인심이었다.
나는 도축자 레벨이 오른 걸 확인하고는 생선 손질을 끝마쳤다. 그 후, 비린내를 잡기 위해서 물에 희석한 식초를 사용하고, 반죽은 레시피가 시키는대로 감자 전분을 사용했다. 나중에 기름에 튀길 때,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름 잘 만들어졌다.
‘시스템이 편하긴 해.’
흰살생선 완자를 기름에 넣기가 무섭게 알림창으로 몇 초 뒤에 건지라고 알려줬으니 말이다. 덕분에 완자 튀김을 덜 익히거나, 태우는 일 없이 전부 다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흰살생선 완자 튀김을 완성한 나는 미리 만들어둔 소스를 가지고 주방 밖으로 나갔다.
“다 된 거예요?”
“네, 다 됐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먹죠.”
내 말에 알마는 두말할 것 없이 곧장 자리에 앉아서 나를 기다렸다. 이에 나는 식탁 중앙에 흰살생선 완자 튀김을 올려두고는 소스를 위에 뿌렸다. 그러자 바삭한 튀김옷 위로 소스가 흘러내리며 레시피대로 요리가 완성되었다.
[흰살생선 완자 튀김]
맛 : 7점
향 : 6점
상품 가치 : 6점
평가 : 절묘하게 잘 튀겨진 완자 튀김입니다. 또한 사용된 재료들 역시 신선하고 품질이 매우 좋습니다. 다만 그걸 다루는 솜씨가 아직 부족해서, 맛을 완전히 이끌어 내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매력적인 요리입니다.
‘6점.’
아쉽게도 7점 요리를 만들진 못했다. 하지만 시스템은 한없이 7점에 가까운 6점 요리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또 다른 알림창을 내 눈앞에 띄워주었다.
[현재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는 요리를 완성했습니다. 요리사로서의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요리사 레벨이 상승합니다.]
‘됐다.’
나는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서 확인했다.
[김 유현]
요리사 레벨 : 6
미식가 레벨 : 6
도축자 레벨 : 1
요리 연구가 레벨 : 4
드디어 요리사 레벨도 6이 되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요리사 레벨이 2였는데,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었다.
“세상에!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요? 정말로 유현 씨가 만든 거예요?”
“네.”
“먹고도 믿겨지지가 않네요. 하음.”
알마가 흰살생선 완자 튀김을 하나씩 집어 먹으며 행복하단 표정을 지었다. 어지간히도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름에 튀기면서 겪었던 고생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작은 그릇에 조금만 완자를 덜어간 뒤에 나머지는 전부 다 그녀에게 주었다. 그러자 알마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유현 씨는 안 드세요?”
“알마 씨가 맛있게 먹어주시니까, 그냥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네요.”
“뭐예요, 갑자기 느끼하게……. 안 되겠다. 술 좀 가져올게요!”
“장사는 어쩌고요?”
“조금만 마실게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알마가 나무로 된 큰 잔에 맥주를 한가득 따라서 가져왔다. 그리곤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완자 튀김을 안주 삼아서 술을 마셔댔다.
“좋다!”
꿀꺽, 꿀꺽 소리를 내며 술을 마실 때마다 알마의 얼굴이 점점 더 빨갛게 물들어갔다. 보아하니 술에 약한 타입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걱정이 앞섰다.
‘요리하다가 사고 나는 거 아냐?’
더욱이 요리사는 불과 칼을 다루는 직업이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순식간에 큰 사고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알마는 그런 것 따윈, 잊어버린 지 오래라는 듯 술을 연신 들이켰다. 그리고 그렇게 잔을 거의 다 비웠을 때쯤엔 아예 고개를 식탁에 처박은 채로 혼자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행복이란 거……. 흐아, 멀지 않구나. 이게 행복이지……. 하아.”
진리를 깨우친 여성은 금세 잠에 들었다.
“알마 씨?”
“…….”
“장사 안 하실 겁니까?”
알마를 깨우기 위해서 어깨를 붙잡아 두어 번 흔들어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깊이 잠에 든 듯, 작게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네.’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니, 눈 밑에 거무스름한 다크 서클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약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여자 혼자서 식당을 운영하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나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도록, 2층 침실까지 데려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분명 식당 2층에서 살고 있다고 했었지?’
요리를 배울 때, 얼핏 들은 이야기이긴 했지만 아마 맞을 것이다. 나는 이리 짐작하며 알마의 몸을 일으켜 세운 뒤에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렸다.
‘조금 무거운 편이려나.’
체중이 조금 많이 나가긴 했지만, 서양의 특성상 체격이 크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여기엔 알마의 커다란 가슴도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나는 살짝 흘러내린 옷 틈 사이로 엿보이는 가슴을 내려다보다가 2층 침실로 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익. 끼익.
계단을 오를 때마다 알마의 가슴이 심하게 출렁거렸다. 또한 그 반동으로 옷이 조금씩 흘러내리더니, 급기야 연한 빛의 가슴 돌기를 노출하기까지 했다.
확실히 이건 매력적인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나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건, 손바닥에 닿아있는 부드러운 허벅지라고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감촉이 좋네.’
요 이틀 동안 요리만 해대서 그런지, 약간 욕구 불만 같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나는 말랑거리는 허벅지를 주물럭대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는 알마의 방으로 보이는 침실을 찾아선 침대 위에 그녀를 조심히 올려두었다.
“으음.”
푹신한 침대 위에 눕히자, 알마가 기분 좋게 신음하며 갑자기 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잘 때는 옷을 벗고 자는 타입인 모양이었다. 이에 당황한 나는 방을 나가려다가 알마가 바지를 벗고 엉덩이를 훤히 드러낸 걸 보고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좋은 엉덩이네.’
나는 잠깐 알마의 눈치를 살펴보고는 살며시 손을 뻗어서 엉덩이를 만져보았다. 그러자 손바닥에 탱글하면서도 탄력 넘치는 엉덩이 감촉이 느껴졌다.
상당히 야한 엉덩이였다. 발칙하다고 할까? 손바닥으로 탁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쳐서, 발갛게 손자국을 남기고 싶을 정도였다.
“흐읏.”
엉덩이를 움켜쥐듯이 매만지던 나는 알마가 입고 있는 팬티 쪽으로 손을 뻗었다. 현대의 속옷에 비하면 결코 좋은 속옷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딱 한 가지 좋은 점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역시나 천의 면적이 적다는 걸 들 수 있었다.
손끝을 살짝 움직여 팬티를 들치자, 알마의 머리카락과 같은 적갈색의 음모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금 과감하게 천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곱슬기가 있는 음모를 건드렸다. 그리곤 꽉 다물고 있는 균열을 살짝 만지자, 알마의 다리가 움찔하며 움츠러드는 게 보였다.
‘이거 잘 못 하면 깰지도 모르겠는데.’
순간, 이성을 되찾은 나는 서둘러 손을 뺀 뒤에 방을 빠져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뒤돌려는 찰나, 갑자기 알마가 내 팔을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지, 진짜로 갈 거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