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4화 〉 [또 다른 이계]
* * *
용사 파티에서 추방당한 나는 근처의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길은 다른 사람들이 알려줘서 헤매는 일 없이 곧장 갈 수 있었다.
“차라리 잘 된 걸지도.”
해가 중천에 뜬 점심때가 되어서야 도시에 도착한 나는 지금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물론 용사 파티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세계를 멸망에서 구원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지긴 했지만, 애초에 처음부터 한 번에 세계를 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마,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선 몇 번의 재도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 이 시간을 잘 활용해서, 요리사로서 성장할 필요가 있었다.
‘요리를 잘하게 되었다고 해서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멸망한 세계의 탑이 내게 요리사라는 직업을 부여한 건,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다음 회차에서도 용사 파티에서 추방당하지 않으려면, 어찌 되었든 간에 요리 실력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이렇듯 생각을 정리한 나는 신분 증명패를 성문 경비병에게 보여줘서 도시 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거리의 식당들을 살펴봤다.
‘어디서 요리를 배우는 게 제일 나으려나.’
손님으로 가득 붐비는 식당이 가장 좋을지도 몰랐다. 손님이 많다는 건, 그만큼 요리사의 실력이 좋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식당일이 바쁜 만큼, 내게 제대로 요리를 가르쳐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나는 되도록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걸 배워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손님이 적은 식당이 가장 적합할지도 몰랐다.
나는 식당에서 풍기를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적은, 그러면서 좋은 냄새가 나는 식당을 찾다보니 점점 식당은 줄어들고 주택들이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주택가까지 너무 깊숙이 들어온 게 아닌가 싶었을 때, 문득 내 눈에 한적해 보이는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여기서 한 번 먹어볼까?’
마침, 오랫동안 걸은 탓에 배가 고픈 상태였다.
나는 식당 입구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열린 문을 통해 보인 식당 내부는 굉장히 깔끔했다. 다만, 한참 점심을 먹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부부뿐이었다. 이래서야 제대로 장사가 될지 의문이긴 했지만, 어차피 그건 나한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요리를 배울 수 있기만 하면 돼.’
맛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조심스럽게 식당 안으로 발을 들이자, 주방 너머에서 상체만 빼꼼 내밀고 있던 여성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어서 오세요. 한 분이신가요?”
“네, 저 혼잡니다.”
“자리는 편한대로 앉으세요. 메뉴판은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여성의 말에 나는 입구 주변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주방에서 나온 여성이 나무판으로 만든 메뉴판을 가져와서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글자는 처음 보는 글자였지만,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읽어졌다.
“사슴 고기 스튜……. 이걸로 하겠습니다.”
“다른 건, 더 필요한 거 없으신가요?”
“음, 꼬치구이도 하나 가져다주시겠습니까?”
“네!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주문을 받은 여성은 메뉴판을 가지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주방은 좁은 창을 통해서 안이 보였는데, 여성은 혼자서 모든 걸 다 하고 있었다. 고기를 썰고, 철판 위에 굽고, 솥에서 스튜를 끓이고 있었다.
몸은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손은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실력은 좋아 보이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주방 너머로 좋은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요리가 거의 다 됐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대로, 여성이 나무 그릇에 담겨있는 사슴 고기 스튜와 꼬치구이를 가져왔다.
[사슴 고기 스튜]
맛 : 6점
향 : 5점
상품 가치 : 6점
평가 : 질 좋은 사슴 고기를 사용해서 만든 스튜입니다. 다만, 비린내는 완전히 잡지 못했습니다.
[사슴 고기로 만든 꼬치구이]
맛 : 7점
향 : 7점
상품 가치 : 7점
평가 : 강한 화력에서 고르게 잘 구워진 사슴 고기가 좋은 향을 내고 있습니다. 맛 또한 질 좋은 사슴 고기를 사용했기에 매우 좋습니다. 곁들인 소스도 일품이지만, 소금에 살짝 찍어서 먹는 것 또한 훌륭한 방법입니다.
내 앞에 놓인 두 가지 요리 모두 준수한 점수를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이란 뜻이었다. 최소한 내가 아침에 만들었던 사슴 고기 스튜보다는 훨씬 더 나았다.
나는 기대감을 가진 채, 숟가락을 들어서 사슴 고기 스튜의 맛을 봤다.
‘맛있다.’
시스템은 비린내를 완전히 잡지 못했다고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잡았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스튜를 반쯤 먹어치우고는 꼬치구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옆에 작은 그릇에 갈색 소스가 담겨져 있었지만, 나는 일단 시스템이 추천한대로 소금에 살짝 찍어서 먹어봤다. 그러자 약간의 짠맛과 함께 고기의 담백한 맛이 느껴졌다. 확실히 신선한 고기였다.
‘소스는 어떨까?’
꼬치구이 하나를 다 먹은 나는 다음 건, 소스에 찍어서 먹어봤다. 갈색 소스는 굉장히 질척거렸는데, 입에 넣고 맛을 보자 약간 시면서도 단맛이 느껴졌다. 데리야키 소스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뭔가, 이쪽 세계만의 소스인 듯싶었다.
내 입에는 익숙하지 않은 소스 맛이긴 했지만, 사슴 꼬치가 워낙에 잘 훌륭하다 보니 충분히 맛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 입, 두 입 먹으며 스튜와 꼬치구이가 담겨있던 나무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사슴 고기 스튜와 사슴 고기로 만든 꼬치구이를 먹었습니다.]
[미식의 관심이 높아집니다. 다른 세계의 요리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현재 자신의 수준보다 훨씬 더 높은 요리를 먹음으로써 미식가로서의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미식가 레벨이 상승합니다.]
[사슴 고기 스튜의 레시피를 획득합니다.]
[사슴 고기로 만든 꼬치구이의 레시피를 획득합니다.]
‘미식가 레벨? 설마…….’
눈앞에 갑자기 뜬 알림창을 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상태창.”
조용히 읊조리자,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 또 다른 알림창이 떴다.
[김 유현]
요리사 레벨 : 2
미식가 레벨 : 4
도축자 레벨 : 0
요리 연구가 레벨 : 2
상태창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조촐하긴 했지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내용물은 실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미식가 레벨 4를 제외하곤 전부 다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자취를 하면서 요리를 하곤 그랬었는데 설마하니 2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내가 요리를 그렇게 못했나?’
이런 식으로 나 자신을 뒤돌아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나는 평소에 라면만 주구장창 끓여 먹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알림창들을 모두 껐다. 그리곤 용사 파티에서 추방당하면서 가져온 배낭을 열어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배낭 안에는 여벌의 옷과 약간의 돈이 들어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말로는 한 달 정도는 충분히 놀고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했다.
‘한 달까진 필요도 없겠지.’
나는 돈을 반으로 나눈 다음에 요리사 여성을 불렀다.
“뭔가 더 시키실 게 있으신가요, 손님?”
“음식값을 계산하고 싶은데…….”
나는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돈을 여성 쪽으로 밀었다.
“으, 음식값치고는 너무 많은데요?”
“요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이 돈을 전부 다 드릴 테니까, 일주일 동안만 제게 요리를 가르쳐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요리를요?”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여성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더불어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설마 내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돈을 준 거라고 생각한 건가? 확실히 이런 상황에선 오해할 수 밖에 없긴 했다. 누가 요리를 배우자고, 이렇게 큰돈을 덜컥 내겠는가? 그것도 손님도 별로 없는 식당의 요리사에게.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보단 다른 요리사에게 배우는 게 훨씬 더 나을 텐데요.”
“이 가게가 마음에 들어서 그렇습니다. 요리도 맛있었고요. 게다가 무엇보다 요리사 분이 미인이지 않습니까?”
내가 살짝 웃으며 대답하자, 여성의 얼굴이 눈에 띄게 빨갛게 물들었다. 칭찬에 약한 타입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여성이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하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돈을 집어 들었다.
“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네요. 이런 식으로 제게 접근하는 남성 분은 처음 봤지만, 뭐……. 나쁘진 않네요. 크흠.”
“그럼 허락하시는 겁니까?”
“네, 저한테 뭘 배우고 싶으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나름대로 열심히 가르쳐드릴게요.”
이처럼 허락을 받아낸 나는 여성 쪽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김 유현입니다. 유현이라고 편하게 부르시면 됩니다.”
“알마예요.”
서로 악수를 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녀에게 바로 요리를 배우기를 희망했고, 알마는 내게 무슨 요리를 배우고 싶냐고 물었다. 여기서 내가 대답할 건, 하나밖에 없었다.
“사슴 고기 스튜를 먼저 배우고 싶습니다.”
“좋아요. 가르쳐드릴 테니까 주방으로 따라 들어오세요.”
알마를 따라 주방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훨씬 더 넓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창으로 봤을 때하곤 완전히 딴판이었다. 이처럼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알마가 앞치마와 식칼을 내게 건넸다.
“고기 자를 줄은 아세요?”
“네.”
“그럼 잘라보세요.”
알마가 사슴 고깃덩어리를 꺼내서 올려놨다. 이에 식칼을 든 채로 다가가자, 눈앞에 새로운 알림창이 나타났다.
[사슴 고기 스튜를 요리합니다.]
[예상 결과]
맛 : 3
향 : 2
오늘 아침에 만들었던 사슴 고기 스튜와 같은 결과였다.
[사슴 고기 스튜 레시피를 사용합니까?]
[예상 결과]
맛 : 5
향 : 4
뒤이어서 레시피를 사용할 거냐고 묻는 알림창과 더불어 새로운 예상 결과가 표시되었다. 이를 본 나는 고개를 끄덕여서 레시피를 사용했다. 그러자 마치 고도로 발달된 미래 과학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사슴 고기에 실선이 표시되었다. 심지어 실선 끝에는 칼질 표시가 되어있었다.
‘이건 좀 편하네.’
나는 실선을 따라 칼질을 하며 사슴 고기를 잘랐다.
“잘하시네요? 많이 썰어보셨나 봐요?”
“그렇게 보이나요?”
“크기가 전부 다 똑같은데, 당연히 그렇게 보이죠. 아무튼 이제 지방 부분을 도려내 주세요.”
“지방은 왜 자르는 겁니까?”
“국물이 느끼해지거든요. 물론 너무 많이 자르면 스튜 맛이 제대로 안 나니까 적당히 남겨두는 게 제일 중요해요.”
나는 그녀의 요구대로 지방을 적당히 자르고, 물이 팔팔 끓고 있는 솥 안에 고기를 집어넣었다. 그리곤 향신료와 소금을 넣고 국자로 젓다가 중간에 맛을 한 번 본 뒤에 간이 부족하다는 알마의 말에 따라서 소금을 조금 더 넣었다.
“잘 먹을게요.”
“맛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내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알마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까 보니까 잘만 하던데요? 분명 맛있을 거예요.”
알마의 말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사슴 스튜를 한 그릇 떠서 결과를 확인했다.
[사슴 고기 스튜]
맛 : 7점
향 : 5점
상품 가치 : 6점
평가 : 비린내를 완전히 잡진 못했지만, 스튜 안에 담긴 고기의 크기가 균일하고 씹는 맛이 훌륭합니다. 지방은 느끼하지 않을 정도로 딱 적당히 있고, 국물의 간은 알맞습니다. 호불호를 크게 타지 않는 맛있는 사슴 고기 스튜입니다.
예상 결과보다 점수가 훨씬 더 높게 나왔다. 비록 알마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내 손으로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든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스튜를 한 숟가락 떠서 먹었다. 그러자 풍미가 제대로 살아있는 스튜의 맛이 느껴졌다.
[현재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는 요리를 완성했습니다. 요리사로서의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요리사 레벨이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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