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5 [타협] =========================
“……제가……. 제가 다 망쳤어요.”
흐느껴 울며 자기 자신을 탓하는 엘리사의 행동에 나는 보다 강하게 그녀를 비난하고 힐난했다.
그녀의 죄책감을 더욱 더 이끌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습니다. 전부 다 당신이 망친 겁니다.”
그리고 이런 내 비난에 엘리사는 더없이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옥구슬과도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려대었다.
“저, 저 같은 건……. 죽어야 해요. 전 처음부터 사랑 같은 걸……. 받으면 안 되었던 거예요. 흐윽! 흑!”
초점을 잃은 그녀의 눈동자가 허공을 응시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엘리사가 론이란 남자를 얼마나 사랑했었던 것인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론을 잊지 못 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지고지순한 사랑이란 말인가? 물론 그랬기에 집착이란 그릇된 결과를 가져온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주었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으세요. 아직 늦지 않았을 겁니다.”
이리 말한 나는 그녀의 가늘고 매끄러운 손을 살살 어루만져주며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이런 내 위로에도 불구하고 엘리사의 꺾인 마음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 했다.
“아니에요, 이미 늦었어요! 흐윽, 제가 모든 걸 망쳐 버렸는걸요. 론도……. 저 같은 건, 벌써 잊어버렸을 거예요! 제가……. 제가 전부 다 망쳐버렸다고요……. 흑흑.”
“그렇지 않습니다. 엘리사 씨가 그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면, 론 씨의 마음도 다시금 돌아올 겁니다.”
“저, 정말로 그럴까요? 제가 용서를 빈다고 해서…….”
“한 때, 서로 사랑했던 사이가 아닙니까? 심지어 엘리사 씨는 지금도 론 씨를 잊지 못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가 당신을 배신했음에도 불구하고요.”
“마, 맞아요.”
“론 씨도 같은 마음일 겁니다. 비록 배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도 엘리사 씨를 여전히 잊지 못 하고 있을 겁니다.”
나는 론이 엘리사를 여전히 잊지 못 하고 있을 거라는 확인되지도 않는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 마냥 말하며 그녀의 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두 분이 다시 예전처럼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저, 정말로요? 하지만 어떻게요?”
“엘레노아가 서큐버스 퀸이 된다면 엘리사 씨가 꿈의 세계에서 벗어나 론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엘리사의 입술 사이로 짤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더불어 초점을 잃고 허공을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던 눈동자가 비로소 나를 똑바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어떻습니까?”
“네, 네……. 좋아요. 그렇게만 해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인 엘리사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오른손을 허공에 흔들자, 철컥 하고 잠겼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이 방을 빠져나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조심하세요. 마지막 시험은 서큐버스 퀸이 직접 나서서 당신을 시험하니까요.”
걱정 어린 엘리사의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해주었다. 그리고는 열린 문을 통해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음침한 마왕의 성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공동이 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저 앞에서 서큐버스 퀸이 날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과연 어떤 여자일까? 상당히 궁금했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렇게 공동 홀, 안쪽 깊숙이 들어간 순간 나도 모르게 눈살을 와락 찌푸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좌우로 세워져 있는 기둥마다 남자들이 한 명씩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다들 하나 같이 미라처럼 바짝 말라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그들이 시험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남성들이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에 내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 하면 저 꼴이 된다는 건가.’
실로 처참한 대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으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무척이나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왕좌에 앉아있는 여성의 모습이 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어서와.”
남성을 유혹하는 듯한, 감미로운 목소리가 공동 홀을 가득 채웠다.
“……이게 대체 얼마만에 보는 도전자인지 모르겠네.”
왕좌에서 일어난 그녀는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한 계단씩 내려왔다. 그리고 이윽고 그녀가 내 앞까지 다가온 순간, 숨이 그대로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미의 여신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그녀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특히나 피부가 어찌나 눈처럼 새하얗고 투명하던지, 어두웠던 공동 홀이 일순 환하게 밝아지는 듯한 착각마저도 들 정도였다.
‘예상은 했지만…….’
늘씬한 다리를 따라 시선을 올리자, 복숭아처럼 탐스럽고 부드러워 보이는 엉덩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탐스러워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무심코 한 입 깨물어 보고 싶을 정도였다.
에나의 엉덩이와 비교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서큐버스 퀸의 엉덩이에는 검은색 꼬리가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리며 나를 유혹하고 있는 꼬리가 그녀의 엉덩이를 더더욱 사랑스럽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건 예상 이상인데.’
나는 군침을 꿀꺽, 삼키며 시선을 좀 더 올렸다. 그러자 둥글고 예쁜 엉덩이 위로 잘록한 허리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잘록하던지, 한 팔에 두르고도 넉넉히 남을 것만 같았다.
저러다가 톡 하고 부러져버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의 허리를 중심을 꽉 잡아주고 있었다. 심지어 서큐버스 퀸의 크고 풍만한 가슴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기까지 했다.
저 범상치 않은 살덩이들을 보아라!
엘리사의 가슴은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아니, 엘리사뿐일까? 엘레노아도, 운피레아도 서큐버스 퀸의 가슴 앞에선 조용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서큐버스 퀸이라는 호칭에 걸맞은 가슴 크기였다.
그나마 서큐버스 퀸과 자웅을 겨울 수 있는 자라고 한다면 성녀, 모니카 밖에 없었다.
성녀가 아니고서는 서큐버스 퀸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서큐버스 퀸과 성녀의 대립구도라니…….’
두 손으로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커다란 가슴을 출렁출렁 흔들어대며 싸우고 있는 서큐버스 퀸과 성녀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온 몸이 소름이 쫘악 돋았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광경이란 말인가? 나는 몸서리치며 계속해서 서큐버스 퀸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러자 거의 전라라고 해도 좋을 그런 음란한 복장을 입고 있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열일곱, 열여덟을 연상시키는 듯한 동안의 외모가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특히나 서양인 특유의 작고 갸름한 얼굴에 오뚝한 코 그리고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는 눈매가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 때문일까? 성숙한 여성의 몸매와 앳된 소녀의 외모가 서로 상반된 매력을 이끌어내며 치명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저 아름답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게다가 루비처럼 붉은 머리카락 위로 나선형으로 꼬여있는 잿빛 뿔이 그녀를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응?’
잿빛 뿔이라고?
나는 서큐버스 퀸의 뿔을 본 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 했다. 왜냐하면 서큐버스들은 처녀를 잃으면 뿔이 검게 변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엘레노아가 처녀를 상실했을 때, 회색빛 뿔이 검게 물들었었다.
앞서 본 서큐버스들도 마찬가지였다. 엘리사 역시도 검은색 뿔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 서있는 서큐버스 퀸의 뿔은 회색이었다.
‘……서큐버스 퀸이 아닌 건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눈앞의 여성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다른 서큐버스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오히려 비교를 하는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왜 그래? 혹시 내 뿔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 때, 눈앞의 서큐버스가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리며 내게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내 표정을 읽힌 모양이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자기 뿔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맞아, 난 아직 처녀야.”
“어째서입니까? 서큐버스 퀸이 되려면 남성과 서로 사랑해야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응, 맞아. 그렇게 될 수도 있지.”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이 방법 이외에도 다른 방법이 있다는 뜻입니까?”
“당연하지. 만약에 이런 방법으로만 퀸을 뽑았다면 아마도 평생 퀸이 탄생하지 않았을 거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이고 말았다.
실제로 앞선 시험들은 평범한 남자들이 극복해내기엔 지나치게 어려운 시험들이었다. 하물며 마지막 시험에 나오는 게, 서큐버스 퀸이라니……. 나 정도니까 버텨냈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퀸이 된 겁니까?”
“난 특별하니까.”
이리 말한 서큐버스 퀸은 내 앞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마치 자기 자신을 뽐내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말대로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다른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아니, 순수하게 외모만 두고서 뽑아보라고 한다면 지금 내 눈 앞에 서있는 서큐버스 퀸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 작품 후기 ============================
외모 깡패 등장... 그리고 처녀!
deathgun 님 : 헛, 그러네요?ㅋㅋㅋ
꿈속의활로 님 : 균형은 언제나 유지되어야하죠
Lunarctic 님 : 빈유 특공대!
유다빈 님 : 의처증 테스트라기 보단 진실된 사랑을 테스트하는 거죠.
무한의기사왕 님 : 힉! 히익!
神之影 님 : ㄹㅇ 엉덩이였다면 단번에 함락되었을텐데 말이죠
은아준 님 : 서큐버스는 태어날 때부터 거유...!
아마브리르 님 : ;ㅅ; 썼던 작품이 워낙에 많아서, 가끔 실수합니다. 귀엽게 봐주세요~
할레데임 님 : 아뇨, 전 빈유든 거유든 다 좋습니다. 그냥 이 작품에선 빈유 취향인 주인공을 한번 써보자. 라고 해서 쓴 것 뿐입니다.
예비품 님 : ㄴㄴ 전 거유든, 빈유든 가슴이면 다 좋습니다. 그런거 안 따져요!
니알라토텝 님 : 네, 운피레아는 영웅 등급입니다. 이제까지 활약을 안했다 뿐이지, 엄청나게 강합니다. 마정석 파편에 오염됐을 때도 엘프들을 죄다 학살했었잖아요. 근데 그것도 운피레아가 억누르고 있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