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3 [타협] =========================
서큐버스의 안내를 받아 다음에 도착한 곳은 화려하게 잘 꾸며진 휴양지 같은 장소였다. 게다가 특이하게도 이곳만큼은 검은 하늘이 아닌 푸른 하늘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단지 푸른 하늘과 마주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되었다.
나는 녹음이 우거져 있는 정원을 돌아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번엔 서큐버스들이 어떤 유혹을 해올까?’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야시시한 복장을 한 메이드들이 나를 맞이해줄 확률이 가장 높았다. 아니면 불치병에 걸린 미소녀가 요양을 위해서 이곳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휴양차 방문한 공주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세 가지 모두 상당히 끌리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황을 가정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 어떤 상황과 마주하더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나 이곳으로 나를 안내해준 서큐버스는 이번에야 말로 내가 유혹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꽤나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 태도로 보건데 분명 만만치 않은 게 튀어나올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기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유혹에 넘어가나 봐라.’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서큐버스의 뒤를 쫓아가는데, 불현듯 앞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를 타고 들어왔다.
“제가 안내해드릴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리 말하며 옆으로 비켜서는 서큐버스의 행동에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저 멀리 보이는 저택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보아하니 저 저택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정원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저택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굳게 닫혀있는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안쪽에서 밝고 활기 넘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아니나 다를까, 저택 안에는 스무 명 이상의 메이드들이 좌우 일렬로 줄을 지어 서있었다.
심지어 다들 하나 같이 큰 가슴이 거의 다 드러날 정도로 가슴골이 깊게 파인 메이드 복장을 입고 있었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광경이란 말인가? 두려움마저도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정녕 서큐버스 중에는 빈유가 없다는 말인가? 물론 내게 있어선 굉장히 다행스런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에 서큐버스 중에 빈유가 있었다면 나는 꼼짝없이 유혹에 넘어가버렸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좌우에 일렬로 서있는 서큐버스들을 지나쳐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서큐버스들이 하나둘씩 내 곁으로 모여들며 말을 붙였다.
“주인님, 피곤하진 않으신가요? 제가 안마를 해드릴 테니까, 그런 거추장스런 옷은 전부 다 벗어버리세요.”
내 옷을 벗기려는 서큐버스의 행동에 나는 단호히 그녀의 손을 뿌리쳐내며 대답했다.
“안 피곤합니다.”
이리 말하며 앞으로 한걸음 내딛자, 다른 서큐버스가 자기 입을 크게 아~. 하고 벌리면서 말을 걸어왔다.
“소변이 마렵진 않으신가요? 여기 입 변기가 있으니까, 사양 말고 잔뜩 싸주세요.”
“소변 안 마렵습니다.”
이런 내 말에 두 번째 서큐버스는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이 상당히 측은해보였지만, 굳이 동정해줄 필요는 없었다. 나는 단호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세 번째 서큐버스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주인님, 오늘 밤시중은 누구보고 들라고 할까요? 혹시 괜찮다면 제가 해도 될까요?”
“오늘은 혼자 있고 싶습니다.”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법이었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서큐버스를 피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서큐버스들에 비해서 가슴이 압도적으로 커다란 서큐버스가 자기 가슴을 두 손으로 받치며 입을 열었다.
“오늘밤, 베개 대신에 제 가슴을 써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푹신푹신해서 분명 기분 좋으실 거예요.”
“전 딱딱한 목각 베개 아니면 안 씁니다.”
나는 정색하며 폭유 서큐버스를 지나쳐 맞은편에 보이는 문 쪽으로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곧장 저택을 빠져나갈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메이드 복장을 하고 있는 서큐버스들은 간단히 나를 보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제법 끈질기게 내 앞을 가로막았다.
물론 그 때마다 나는 적장의 모가지를 칼로 자르듯이, 서큐버스들의 유혹을 간단히 뿌리쳐내며 기어코 맞은편 문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히잉, 주인님…….”
“가지 마세요, 주인님……. 제가 더 잘 할게요.”
그 때, 뒤에서 잉잉 울어대며 내게 애원하는 서큐버스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다들 하나 같이 거유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인들이었기에 내 마음이 절로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게는 뚜렷한 목표가 아니었다.
엘레노아를 뒷전에 둘만큼 메이드 복장을 입고 있는 서큐버스들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리 마음을 굳힌 나는 앙앙대며 울고 있는 서큐버스들을 뒤로 한 채로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상당히 의외라는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서큐버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해내셨군요…….”
무척이나 놀란 목소리였다. 설마하니 내가 통과할 줄은 몰랐다는 태도였다. 이에 나는 슬쩍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다음 시험은 어디서 합니까?”
이런 내 질문에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던 서큐버스는 이내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살짝 뒤돌아서며 대답했다.
“절 따라오세요.”
서큐버스는 나를 저택의 지하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아래에서 네 번째 시험을 치루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내려갔다.
“……이 길을 따라 쭉 걸어가시면 됩니다.”
앞선 시험들과는 다르게 내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서큐버스다.
아무래도 나를 인정한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에 서큐버스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좌우로 세워져 있는 철창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여긴 지하 감옥인 모양이었다.
‘휴양지로 세워진 저택 아래에 지하 감옥이라니…….’
상당히 악취미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통로를 지나갔다. 그러자 철그렁, 철그렁 거리는 쇠사슬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이에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반쯤 부서진 갑주를 입고 있는 여기사가 쇠사슬에 묶인 채로 몸부림치고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철그렁……. 철그렁…….
하지만 여기사의 양 팔을 묶고 있는 쇠사슬은 결코 풀리지 않았다.
그녀 또한 그 사실을 깨달은 모양인지, 침울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시선을 느낀 모양인지 불현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분한 듯이 입을 열었다.
“큿, 죽여라!”
“…….”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마터면 이대로 철창문을 열고, 여기사를 범할 뻔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부서진 갑주 사이로 여기사의 풍만한 가슴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나는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시도는 좋았지만, 큰 가슴이 문제였다.
‘다행이야.’
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여기사가 눈에 뜨이게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왜, 왜 무시하는 것이냐! 날 범하려던 게 아니었나? 봐라, 난 이렇게 쇠사슬에 묶여있다! 그대가 날 억지로 범한다고 해도 난 저항할 수가 없다! 긍지 높은 여기사인 나를 육변기로 만들기 위해서 사로잡은 게 아니었느냐? 자, 어서 날 범해라!”
“…….”
어서 빨리 자기를 범하라며 소리치는 여기사의 행동에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가로저었다.
왜냐하면 저건 긍지 높은 여기사가 아니라 악당에게 범해지고 싶어서 발정난 마조 여기사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완전히 마음을 접은 뒤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해적 모자를 쓰고 있는 서큐버스가 철창 밖으로 손을 쭉 뻗으며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봐, 젊은 형씨! 나 좀 풀어주지 않을래?”
“……?”
“날 풀어준다면 내가 일곱 바다를 항해하면서 모아놓은 보물 중의 절반을 형씨에게 주도록 하지!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아?”
“글쎄요.”
“이거 욕심이 많은 형씨구만……. 어쩔 수 없지. 자존심이 꽤 상하긴 하지만 내가 기꺼이 다리를 벌려주도록 하지. 그거 알아? 내가 일곱 바다에게 꽤나 알아주던 처녀였다는 사실을 말이야! 꽤 많은 녀석들이 날 노렸다고? 하지만 결국 날 따먹은 건, 내 포도주 병이었지. 낄낄.”
포도주 병에게 처녀가 따인 해적 선장이라……. 이것도 꽤 재밌는 설정이긴 했지만,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나는 해적 선장의 모습을 한 서큐버스도 간단히 지나쳤다. 그러자 뒤이어 각각양색의 서큐버스들이 철창에 갇힌 채, 내게 애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좀도둑부터 시작해서 부패한 귀족, 몰락한 귀족 영애 그리고 전쟁 포로가 되어버린 공주까지……. 한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여자들이 감옥에 갇힌 채, 날 유혹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마저도 간단히 무시하며 기어코 맞은편 문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윽고 문을 열고 나가자, 앞에서 본 지하 감옥과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화사한 방 안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그와 동시에 밝은 목소리로 나를 맞이해주는 서큐버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마지막 시험! 이것만 통과하면 엘레노아도 영웅 등급이 되는군요.
매실농축액2 님 : 매번 감사합니다!
엔루 님 : 네!
asdfqwzx 님 : 엌ㅋㅋ 하긴 그렇죠 ㅋㅋ
Bathin 님 : ....!!하지만 걱정마세요! 서큐버스 종족 특성으로 죄다 거유입니다.
harpsichords 님 : 큰 가슴 한정 여포 ㅋㅋㅋㅋ
Lunarctic 님 : 큰 가슴은 거절해야 제맛!
현실과소설 님 : 응원 감사합니다!
asdf8849 님 : 히익ㅋㅋ 전철에서 읽으시다닠ㅋㅋ
으찡 님 : 빈유로맄ㅋㅋㅋ
harrymoon 님 :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쿠폰도 감사합니다!
토노와나나야 님 : 사실 그것도 생각했는데, 그냥 예정대로 가려고요. 풍유환은 따로 줄 사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