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87화 (487/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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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저주 받은 마리오네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딱히 무서워하다거나, 싫어하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저주 받은 마리오네트 역시도 예지를 좋게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마리오네트는 자신의 입가를 가리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 때, 말을 거는 대상은 나였다.

“그런데 어쩐 일로 날 부른 거야, 젊은 주인?”

그 질문에 나는 맞은편에 서있는 예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마리오네트 씨를 김 예지 씨에게 드리려고 부른 겁니다.”

“깔깔깔, 그럼 이제 내 주인은 저 마음이 여린 아가씨가 되는 건가?”

“그렇게 될 겁니다.”

“정말로 아쉽네. 젊은 주인하고는 한번 꼭 자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마리오네트의 목소리는 인형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요염했다.

만약에 그녀가 인형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한번쯤 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 자본다니…….”

그 때, 예지가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양 볼을 붉게 물들이며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녀가 처녀라는 걸,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인형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마리오네트는 깔깔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깔깔깔,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니? 아가씨는 남자랑 자본 적 없어?”

“당연하죠!”

제법 낯뜨거운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예지는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자기가 처녀라는 것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태도였다. 실로 바람직한 태도였다. 그러나 마리오네트는 이런 그녀의 태도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거 참 이상한 일이네. 그 나이가 되도록 처녀라니……. 설마 아가씨는 그런 취향?”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왜 남자랑 자본 적이 없는 거니?”

정말로 이상하다는 듯이 질문을 던지는 마리오네트의 태도에 예지는 당황한 듯이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며 쭈뼛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아직 전 어리니까…….”

“깔깔깔! 아이고, 배야! 다 큰 아가씨가 자리를 아직 어린다고 하다니……!”

이런 예지의 대답에 마리오네트는 두 손으로 자기 배를 움켜쥐며 큰 소리로 웃어대었다.

“왜, 왜 웃는 거예요!”

“웃을만하니까 웃지! 깔깔깔!”

확실히 마리오네트 입장에선 웃길만했다. 하지만 반대로 예지의 입장에선 이게 정상이었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여자애가 처녀가 아니라니……. 그건 사회적 통념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예지와 마리오네트를 번갈아보던 나는 이내 살짝 장난기가 가미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리오네트 씨는 다른 남자와 자본 적이 있습니까?”

“그야 당연하지.”

“그 모습으로요?”

내 물음에 마리오네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습으로도 해봤고, 저주를 받기 전에도 해봤지. 음, 처음 해봤을 때가 열 두 살이었나? 여든 먹은 늙은이가 힘도 좋지. 열두 살 여자애랑 좀 해보겠다고 돼지처럼 달려드는데, 그 꼴이 어찌나 웃기던지! 게다가 물건은 또 얼마나 작은지, 그게 들어간 건지 안 들어간 건지도 모르겠더라고. 깔깔깔! 내 첫 경험이었는데, 아무것도 못 느꼈어. 그래서 처녀가 아프다는 건, 절대로 믿지 않아.”

“…….”

마리오네트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반쯤 장난삼아 물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마리오네트에게 사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내 표정을 읽은 마리오네트가 별거 아니란 듯이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깔깔,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마. 정말로 별거 아니었으니까.”

그 말에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생각을 존중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처럼 잠깐 침묵이 흐르는데, 예지가 측은하단 시선으로 마리오네트를 바라보며 조심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쩌다가 저주를 받게 된 건가요?”

“내 분수에 맞지 않는 물건을 훔치려다가 저주에 걸린 거지.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 이런 모습이 된 덕분에 여러 멋진 남자들을 만나보게 되었으니까! 아, 맞아. 아가씨는 그거 알아? 인형을 보고 발정하는 남자가 있다는 걸 말이야! 까르륵, 정말 웃긴 일이지 않아? 멀쩡하게 잘 살아있는 여자한테는 성욕을 전혀 느끼지 못 하는 주제에 인형한테는 엄청난 성욕을 느끼는 거야. 깔깔깔! 날 보면서 아랫도리를 손으로 열심히 문지르던 모습이란……. 나 혼자서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니까? 깔깔!”

정말 웃기다는 듯, 깔깔대며 웃는 마리오네트의 태도에 불구하고 예지의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마리오네트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왜 네가 풀어주려고? 깔깔깔, 꿈도 꾸지 마렴.”

마리오네트는 손사래 치며 말했다.

“왜요?”

“내가 이 저주를 풀어보려고 얼마나 노력해봤을 것 같니? 눈에 보이는 인간들을 닥치는 대로 꽤서 저주를 풀어보려고 했는데도 전부 다 실패해버렸어. 아니, 오히려 더 인형 같아져버렸지! 이것 좀 보렴. 내 모습에서 인간 같은 모습이 남아있긴 하니?”

이리 소리쳐 말한 마리오네트는 드레스를 들쳐, 앙상하게 나무 막대기만 남아있는 자신의 다리를 보여주었다.

“…….”

“저주를 풀려고 하면 할수록 더 강해진다. 그게 바로 저주인거야. 깔깔깔.”

“죄송해요.”

예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 떨어트릴 것만 표정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태도에 마리오네트는 항상 그랬듯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꾸했다.

“깔깔깔! 넌 또 사과하는구나! 누가 보면 날 이렇게 만든 사람이 아가씨인 줄 알겠어!”

“그래도 제가 괜히 물어보는 바람에 안 좋은 기억을…….”

“이봐요, 마음 여린 아가씨! 나한텐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없어. 그저 다 추억일 뿐이야. 깔깔, 그보다 이렇게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니까 즐겁네! 깔깔, 아가씨가 앞으로 내 주인이 될 거라고 했지? 한동안 심심하지 않을 것 같구나. 젊은 주인은 그 동안 나를 너무 불러주지 않아서 서운했거든?”

마리오네트는 이 모든 말을 아주 빠르게 이야기했다. 더 이상 이걸 가지고 왈가불가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화두를 내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나는 이걸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윽고 그녀의 말에 적당히 맞춰주었다.

그게 예지를 위해서나, 마리오네트를 위해서나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저도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십자 모양의 나무를 예지에게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김 예지 씨와 잘 지내보세요.”

마리오네트는 나한테서 십자 모양의 나무를 건네받고 있는 예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윽고 그녀가 십자 모양의 나무를 건네받는 순간, 따각 소리와 함께 허리를 살짝 숙여 우아하게 인사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새로운 주인 아가씨.”

“아,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마리오네트의 인사에 예지 또한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일단 분위기는 좋네.’

좋은 단짝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리오네트와 예지를 잠시 번갈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마리오네트를 사용하실 때, 한 가지 조심해야 될 점이 있습니다.”

“조심해야 될 점이요?”

“전투 중에 마리오네트가 파괴되면 예지 씨가 죽게 된다는 겁니다.”

“주, 죽어요?”

죽는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는 예지다.

“마리오네트와 생명력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리오네트를 사용할 때는 항상 신중하게 사용해야 될 겁니다.”

“네, 조심할게요.”

이런 내 말에 예지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마리오네트가 깔깔대며 끼어들었다.

“깔깔깔, 너무 그렇게 겁먹지 마. 난 절대 약하지 않으니까.”

그 말대로 희귀 등급의 장비이니, 결코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맹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마리오네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해보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이 소현 씨와 유 지아 씨가 훈련을 받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 보죠. 거기서 한번 시험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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