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86화 (486/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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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요?”

그 때,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채원이었다. 소녀는 마치 대승리를 거둬낸 개선장군마냥 자기 어깨를 쫙 펴고 있었다.

자기가 말한 게,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게 어지간히도 뿌듯했던 모양이었다.

반면에 운피레아는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그녀의 당황한 기색이 여기까지 전해져오고 있었다.

운피레아는 이전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나버린 바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운피레아는 말끝을 흐리며 오른손으로 자기 이마를 짚었다. 할 말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시선이 한 채원에게로 향했다.

“……심장에 마나의 끈을 두르지도 않았으면서 마법을 사용하다니……?”

이런 그녀의 말에 채원이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물었다.

“저한테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아니요, 문제라기보다는…….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

운피레아와 한 채원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는 순간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한 채원이 마법을 쓸 수 있는 이유, 그건 바로 내가 준 봉인된 마도서 덕분이었다. 하지만 운피레아는 채원이가 들고 있는 마도서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토록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곧바로 운피레아에게 사실을 알려주었다.

“한 채원 씨가 마법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봉인된 마도서 때문입니다.”

“봉인된 마도서라니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주인님?”

“그건…….”

나는 잠시 말끝을 늘리며 채원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여기서 내가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운피레아가 직접 봉인된 마도서를 들고서 마법을 사용해보는 것이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 채원 씨, 잠깐 봉인된 마도서를 운피레아 씨에게 건네주시겠습니까?”

“아, 네!”

이런 내 말에 채원이는 곧바로 운피레아에게 봉인된 마도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이처럼 마도서를 건네받게 된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마도서의 표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굉장한 물건이네요. 이건…….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마도구라고 하더라도 마나의 끈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인간이 마법을 쓴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에요.”

운피레아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져 있었다.

‘이계의 마도구들은 이 정도 성능을 내지 못 하는 건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계의 마도구를 한번 사용해 봐야 될 듯이 싶었다.

나는 이리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아까 전에 한 채원 씨가 하신 것처럼 화염구를 사용해보세요.”

“네.”

운피레아는 똑바로 선 다음에 왼손을 빈 허공을 향해 쭉 뻗었다.

“……화염구. 아……!”

그녀가 주문을 외운 순간, 화염구가 허공에 나타났다.

“이게 도대체…….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니……!”

운피레아의 반응은 이제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그녀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 경악하고 있었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도록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그게 그렇게 놀랄만한 일인가요?”

하지만 마나에 대한 개념 자체를 모르고 있는 채원이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운피레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에 운피레아는 거의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그럼요! 마나를 소모하지 않고 화염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건, 마법에 문외한 자라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화염구를 무한하게……. 응? 어째서 이번엔 마나가…….”

채원이의 이해를 돕고자 두 번째 화염구를 사용한 순간, 자신의 마나가 소모되자 운피레아는 또다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아까는 분명히 마나가 소모되지 않았는데…….”

그녀의 말투에는 어이없다는 뜻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운피레아가 두 번째 화염구를 사용했을 때, 왜 마나가 소모되었던 것인지 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마나가 소모된 이유를 가르쳐주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끝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네? 재사용 대기 시간이요? 그게 대체 뭔가요?”

“제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화염구를 한번 사용하고 나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다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내 설명에 운피레아의 얼굴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는 크게 충격을 먹은 듯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런 건……. 마법이 아니에요.”

그 말대로였다.

봉인된 마도서를 사용해서 쓰는 화염구나 신비한 화살은 마법이되 마법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마법이라 하는 것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소모해서, 그 힘이 다 할 때까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애당초 봉인된 마도서처럼 재사용 대기 시간이란 것도 없었다.

“그래서 제가 운피레아 씨에게 한 채원 씨를 맡겼던 겁니다.”

내 말을 들은 운피레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으음……. 그러면 한 채원 씨는 마나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는 건가요?”

“네.”

현대인이 마나에 대해서 알 리가 만무했다. 하물며 채원이는 몸이 아파서, 마물 사냥꾼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계속 병원에서만 지냈었다. 자신이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말이다. 그런 아이가 어떻게 마나에 대해서 알겠는가?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런 내 대답을 들은 운피레아는 나와 한 채원을 번갈아보다가 이윽고 조심스런 목소리로 재차 질문을 던졌다.

“혹시 서둘러야 되는 일인가요?”

그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마법을 가르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뭐, 그 정도야 각오한 일이니까.’

하루이틀 만에 채원이가 마법을 익힐 거란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도 않았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이 세상에는 마법사가 차고넘칠테니 말이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충분한 시간을 드릴 테니까 되도록 자세히 가르쳐주세요.”

“네, 그럼 맡겨두세요.”

고개를 끄덕인 운피레아는 봉인된 마도서를 채원이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소녀의 손을 두 손으로 꼬옥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대로 서있으세요. 제가 마나가 어떤 건지 가르쳐……. 아.”

운피레아는 설명을 하다말고 돌연 감탄성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주인님……. 이 아이……. 인간이 맞는 건가요?”

“네? 그게 무슨…….”

“몸속에 이토록 순수하면서도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니……. 이런 건 말이 안 돼요! 마나의 끈을 심장에 두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마력 82이란 수치가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인지, 운피레아의 시선이 채원이에게서 떨어질 줄이 몰랐다.

“……한 채원 씨라고 했죠? 지금 제가 이끄는 마나가 느껴지시나요?”

“마나요? 지금 이게 마나라는 건가요? 네, 느껴져요.”

“그걸 잡아당겨보세요. 어디로든 좋아요. 당기기만 한다면 주변의 마나가 당신의 심장 주변으로 모여들 테니까요.”

“네! 잠시만요……. 아! 됐어요! 어? 어라……. 뭔가 가슴에…….”

“세상에……. 정말로 해낼 줄이야.”

운피레아의 입술 사이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흥분되는 마음을 도저히 주체하지 못 하겠는 모양인지, 뾰족한 귀를 연신 위아래로 흔들어대었다.

“……어쩌면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도사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 정도인가요?”

“그럼요.”

운피레아는 채원이의 손을 꼬옥 부여잡으며 축하해주고 있었다.

소녀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도사가 될 것임을 절대로 의심치 않는 눈초리였다. 상당히 부담스런 말이었지만, 채원이는 부끄러워하기 보단 좋아하고 있었다. 자기가 강해지면 앞으로 마물 사냥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됐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더 구경을 해보았자, 도움이 될 건 하나도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도 잘 풀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말이다.

나는 기뻐하는 두 사람을 뒤로 하고서 예지와 함께 숲 속을 걷기 시작했다.

아이린과 함께 훈련을 떠난 신 혜진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처럼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예지가 부럽다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저도 채원이처럼 강해질 수는 없는 건가요?”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저도 치료 말고도……. 마물과 싸우는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치료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치료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 지팡이만 있으면요.”

예지는 자기가 들고 있는 성자의 지팡이를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성자의 지팡이만 있다면 아무나 치료 마법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그럼 김 예지 씨는 지금 자신의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겁니까?”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짐은 되고 싶지 않아요.”

“자기 자신을 방어 할 수 있을만한 수단을 가지고 싶다는 뜻이로군요.”

일 리 있는 주장이었다.

물론 맹약의 반지라고 해서, 피해를 나누어 받는 장비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피해를 나누어 받는 것이지 마물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치료와 방어를 병행하면서 할 수 있는 거라…….’

내가 가진 장비 중에서 그런 게 있었던가?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저주 받은 마리오네트를 떠올릴 수 있었다.

‘……확실히 그거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저주 받은 마리오네트는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인형이었다.

그 말은 즉, 누가 따로 조종을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움직여서 전투를 한다는 뜻이었다.

치료를 전담해야하는 예지에게 있어서 충분히 유용한 방어 수단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저주 받은’이라는 수식어가 다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저번에 소환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봤을 때 그렇게 막 사악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 했다.

오히려 유쾌한 편이기까지 했다.

나는 이리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저주 받은 마리오네트 소환.”

저주 받은 마리오네트를 소환하자, 곧 내 앞에 하나의 인형이 나타났다.

“와…….”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귀여운 여자 아이 인형이 나타나자, 예지가 작게 탄성을 터트리며 관심을 보였다. 이에 나는 허리를 숙여, 십자 모양의 나무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인형이 몸을 똑바로 일으켰다.

“어머, 오랜만이야. 젊은 주인! 깔깔깔! 그리고 거기 아가씨는 처음이네. 안녕, 귀여운 아가씨?”

전에 봤던 그대로 여전히 유쾌한 인형이었다.

“어? 어……. 지금 말을…….”

그리고 이 모습에 예지가 더없이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와 인형을 번갈아보았다.

그래, 나도 예전에 인형이 말하는 걸 듣고서 그녀처럼 깜짝 놀랐었다.

“내가 말을 해서 놀란 거니?”

“네? 아……. 죄송해요.”

“깔깔깔, 죄송하긴! 뭘 그런 거 가지고 일일이 사과하는 거야? 정말 마음이 여린 아가씨구나.”

인형은 한손으로 자기 입을 가린 채, 나름 우아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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