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85화 (48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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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나는 잠시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그러자 아이린의 사나운 눈길을 피해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 여성 엘프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다들 하나 같이 힐끔힐끔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녀들이 왜 저리도 나를 애타게 쳐다보고 있는 건지, 그리고 리샤가 말한 그 일이란 게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아무리 엘프라도 조교의 방 앞에선 어쩔 수 없다는 건가?’

하긴 엘프들도 인간들과 다를 바 없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물이었다.

그런 이상 성욕이란 게 없을 리가 없었다. 만약에 그들에게 성욕이란 게 없었다면 엘프라는 종족은 진작 멸종되어 버렸을 것이다.

‘이거 재밌는데…….’

아주 재밌는 상황이었다.

평상시보다 민감해져 있는 탓에 다들 하나 같이 욕구 불만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그 욕정은 이성과의 접촉으로 간단히 가라앉힐 수가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곳에는 이성이라 부를 수 있는 남성 엘프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그들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겠는가?

바로 나였다.

‘……이 세계의 유일한 남자라…….’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일이었다.

전염병이든, 전쟁이든, 뭐로든 간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남성들이 모두 죽어버린 상황……. 그리고 그렇게 홀로 살아남은 자신을 차지하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여성들이 달려는 것이다.

실로 꿈만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꿈만 같은 상황이 지금 내 눈 앞에서 펼쳐지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은 모른 척 하고 있는 편이 좋겠지?’

만약에 이 모든 게, 내 착각이었다면 그만큼 창피한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나중에 리샤가 내게 그 일에 대해서 말해주거나, 다른 여성 엘프들이 내게 자신의 욕정을 드러냈을 때 그녀들을 안아주는 편이 좋았다.

이리 생각을 끝마친 나는 아이린을 따라 어느 움막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사는 거예요?”

“엘프들은 다 이렇게 사는구나.”

움막 안으로 들어간 순간, 채원이와 예지가 저마다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이린은 이 상황이 마냥 쑥스럽기만 한 모양인지 어색하게 웃었고, 운피레아는 그런 딸을 바라보며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이린 씨, 운피레아 씨.”

이런 내 말에 두 사람의 고개가 내 쪽으로 향했다. 물론 움막 안을 둘러보고 있던 마물 사냥꾼들의 시선도 내게로 향했다.

“……지금부터 아이린 씨는 신 혜진 씨를 가르쳐주십시오. 뭘 가르쳐주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활쏘기를 가르쳐주셔도 되고, 나무를 타는 법을 가르쳐주셔도 됩니다. 그저 신 혜진 씨가 싸움에 능숙해지기만 하면 됩니다.”

“누구하고 싸우는 것인지? 인간? 마물?”

“오크 같은 마물들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아이린은 잠시 세 명의 마물 사냥꾼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당돌하게 쳐다보고 있는 신 혜진을 발견하곤 흥미롭단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신 혜진인가?”

“네.”

“좋군. 따라와라.”

이리 말한 아이린은 신 혜진을 데리고서 그대로 움막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처럼 아이린과 신 혜진이 떠나자, 나는 이번에는 운피레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운피레아 씨는 한 채원 씨를 가르쳐주십시오. 마법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시면 됩니다.”

“네, 걱정 마세요.”

운피레아는 언제나 그랬듯이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녀라면 충분히 채원이를 잘 가르쳐줄 수 있을 듯이 싶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이처럼 자기를 가르쳐줄 사람이 운피레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채원이는 한껏 긴장된 목소리로 인사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해요, 인간 아가씨.”

운피레아는 그런 채원이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미소로 화답하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다정해보이던지, 지켜보고 있던 나조차도 절로 부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걸 받는 당사자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채원이는 한껏 감동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네! 네!”

채원이는 아까 전과는 사뭇 다르게, 힘찬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한 눈에 딱 봐도 사이좋은 사제지간이 될 듯이 싶었다.

“그럼 나가볼까요? 먼저 가볼게요, 주인님.”

아이린과 마찬가지로 밖으로 나가서 훈련을 할 모양인지, 운피레아는 내게 이리 말하고는 채원이를 데리고서 움막 밖으로 나갔다.

덕분에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은 나와 예지 밖에 없었다.

나는 홀로 남은 예지를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이제 남은 건, 예지뿐인데…….’

문제는 예지를 가르쳐줄 만한 선생님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맡고 있는 역할은 치유사였기 때문이었다. 딱히 앞장서서 싸울 필요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뒤에서 상처 치유와 체력 회복만 사용해주면 될 뿐이었다.

“음…….”

나는 잠시 고민어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예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런 내 시선을 받은 그녀는 자신을 어떤 사람이 담당하게 될지, 한껏 기대감에 부푼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기대 어린 또랑또랑한 시선을 받고 있자니, 심히 부담되었다.

‘붙여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는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마땅히 붙여줄만한 사람도 없으니, 실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에 나는 무슨 대답을 해줄까 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김 예지 씨는 제가 맡겠습니다.”

“어? 저, 정말요?”

이런 내 말에 예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설마하니 내가 자기를 맡아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 사실에 흥분한 듯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했다.

“하지만 당장은 가르쳐 드릴만 한 게 없으니,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며 돌아다니죠.”

“구경이요?”

“구경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이리 말한 나는 예지를 데리고서 움막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저 멀리 채원이를 데리고서 마을 밖으로 나가고 있는 운피레아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본 나는 내 뒤를 따라 움막 밖으로 나온 예지를 향해 말을 이었다.

“……운피레아 씨가 한 채원 씨를 어떻게 가르치는지부터 구경해볼까요?”

“네!”

예지도 마침 채원이가 어떤 식으로 훈련을 받게 될지 궁금했던 모양인지, 곧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나는 예지와 함께 운피레아의 뒤를 쫓았다.

운피레아와 채원이가 걸음을 멈춘 곳은 사방이 탁 트인 공터였다. 보아하니 여기서 훈련을 진행할 모양이었다.

나는 운피레아에게 다가가 양해를 구했다.

“잠깐 구경 좀 하고 가고 괜찮겠습니까?”

“어머, 물론이죠. 얼마든지 구경하세요.”

이런 내 말에 운피레아는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내 부탁을 허락해주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우리가 자신들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예지와 함께 적당히 뒤로 물러났다.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채원이가 훈련받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우리가 뒤로 물러나자, 운피레아가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채원 씨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해볼게요. 지금 심장에 마나의 띠가 얼마나 둘러져 있나요?”

“마나의 띠요?”

마나의 띠라는 말에 채원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이런 소녀의 태도에 운피레아는 잠시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윽고 채원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마나의 띠를 모르나요? 잠시만요.”

이 말과 함께 오른손으로 채원이의 어깨를 움켜쥔 그녀는 잠시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이윽고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마법을 쓸 줄 모르셨군요.”

“네? 아니에요. 저 마법 쓸 줄 아는데요?”

운피레아의 말에 채원이는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이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운피레아는 그럴 리가 없단 말투로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마나의 띠가 심장에 둘려져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잠시 말끝을 늘리던 운피레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럼 아무 마법이나 한 가지 사용해보시겠어요?”

이런 그녀의 말에 채원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봉인된 마도서를 어깨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무척이나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쳤다.

“화염구!”

소녀가 화염구를 사용한 순간, 보유하고 있는 스킬 중에 하나인 화염의 마녀가 함께 발동하며 어머아머한 크기의 화염 구체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화염구는 저 멀리 우뚝 서있던 바위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앙!

“…….”

운피레아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보기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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