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84화 (484/599)

<-- [타협] -->

에나의 대답을 들은 나는 소현과 지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여자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 소현은 어딘가 심난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유 지아는 잔뜩 심통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이 도대체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잠시 두 여자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계신 겁니까? 혹시 뭔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이런 내 질문에 소현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아니에요! 아무것도……!”

석연찮은 대답이었지만, 나는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더 물어본다고 한들, 대답해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소현의 말이 끝나자, 옆에 있던 유 지아가 보란 듯이 호기롭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난 마음에 드는데? 오히려 바라던 바야. 한번쯤 저 여자하고 겨뤄보고 싶었거든.”

유 지아는 호승심을 불태우며 에나를 노려다보았다. 상당히 위압적인 시선이었다. 하지만 에나는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 한 모양인지, 그저 담담하게 그녀의 시선을 받아줄 뿐이었다.

상당히 재밌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에나가 어련히 잘 하겠지.’

어차피 이 소현이나 유 지아의 실력으로는 에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막말로 에나가 맨손으로 싸우더라도 마물 사냥꾼 다섯 명 전원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마물 사냥꾼들의 현 주소이기도 했고 말이다.

나는 실없이 웃고는 남은 세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머지 분들은 절 따라오세요.”

이리 말한 나는 한 채원과 김 예지 그리고 신 혜진을 데리고서 숲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는 길이었기에 땅바닥에 울퉁불퉁하고 거칠었지만, 딱히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길이었기에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감상 할 수가 있었다. 비단 이건 나 혼자만의 감상이 아닌 모양인지,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던 세 사람도 주변 자연 경관에 압도당한 듯이 감탄한 얼굴로 시시때때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소풍이라도 나온 거 같네.’

이런 감상적인 기분이 들 때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만큼 수풀이 우거진 곳과 마주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아이린이나 운피레아를 불러내야 될 듯이 싶었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두 사람의 도움 없이 엘프 마을을 찾아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엘프 마을의 모습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꽤 깊이 들어온 거 같은데…….’

대체 얼마나 깊은 숲속에 엘프 마을을 지어놓았기에 이 정도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혀를 내두른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운피레아를 불러내었다.

“운피레아 소환.”

운피레아를 불러내자, 우리 앞에 금발의 엘프 한 명이 나타났다.

“우와아……!”

“크다아……!”

그 순간, 채원이와 예지의 입술 사이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두 소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넋이 나간 듯이 운피레아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그 옆에 서있던 신 혜진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탄성만 터트리지 않았다 뿐이지, 시선만큼은 운피레아의 가슴에 정확히 꽂혀있었다.

다들 하나 같이 운피레아의 가슴 크기에 압도당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그녀의 가슴은 저게 정말로 가슴일까 싶을 정도로 커다랬다.

“어머, 주인님.”

운피레아는 언제나 그랬듯이, 상냥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더불어 그녀가 날 향해 한 걸음 내딛자, 크고 풍만한 가슴이 위아래로 출렁이며 파도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 모습이 결코 천박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청초해보이기까지 했다.

‘음…….’

그 모습을 보니, 또다시 욕정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나란 인간은 시도 때도 없이 발정도록 만들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에나와 섹스한지 대체 몇 분이나 지났다고 또다시 욕정을 느낀다는 말인가? 나는 들끓는 욕정을 애써 억누르며 내 앞에 선 운피레아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런데 이분들은……?”

운피레아의 시선이 채원이와 예지 그리고 신 혜진 쪽으로 향했다. 이에 나는 세 명의 마물 사냥꾼들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마물 사냥꾼들입니다.”

이런 내 말에 채원이와 예지, 혜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한 채원이라고 해요!”

“전 예지에요. 김 예지요!”

“안녕하세요, 신 혜진입니다.”

이처럼 세 사람이 인사하자, 운피레아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녀는 마물 사냥꾼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는 듯이, 부드럽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내 눈에는 운피레아가 더욱 사랑스러워보였다.

도저히 한 아이의 어머니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예쁜 아가씨들이네요. 근데 마물 사냥꾼이라니요?”

운피레아는 마물 사냥꾼들을 칭찬하는 한편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게 물었다.

“그건 이따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일단 엘프 마을에 가보고 싶은데, 길 안내 좀 해주시겠습니까?”

“어머, 그럼요. 절 따라오세요.”

이런 내 부탁에 운피레아는 흔쾌히 허락을 해주고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부터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운피레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심 감탄하던 나는 이윽고 마물 사냥꾼을 데리고서 운피레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10분 정도를 걸어서 숲 속으로 들어가자, 저 멀리 움막 같은 것을 지어서 생활하고 있는 엘프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그와 동시에 머리 위쪽에서 낯익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자, 나뭇가지를 사뿐사뿐 밟으며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는 아이린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무협 영화 속에서 경공을 시전하고 있는 무협 고수 같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리고 그대가 왜……. 그대가 어머니를 부른 것이냐?”

이처럼 우리가 있는 곳에 도착한 아이린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내게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운피레아가 사라져버린 탓에 크게 놀랐던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그녀를 진정시켜주고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이곳을 찾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려서 운피레아 씨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부르면 될 것을……! 나는 그것도 모르고…….”

말하는 도중에 감정이 북받쳐 오른 모양인지, 아이린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어지간히도 효심이 깊은 엘프 아가씨였다. 나는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미안해서, 두 팔을 뻗어 아이린의 몸을 가볍게 끌어안아주었다.

“죄송합니다.”

“그대가 밉다……. 정말…….”

이런 내 사과에 아이린은 작게 투정부리면서도 나를 밀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팔로 내 몸을 꼬옥 끌어안으며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모습에 운피레아는 엄마 미소를 지어보이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반면에 마물 사냥꾼들은 저마다 얼굴을 붉힌 채, 꺅꺅 거리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이에 괜히 무안해진 나는 천천히 아이린의 몸을 놓아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엘프 마을로 가죠.”

이리 말하며 아이린의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을 손끝으로 닦아내어주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이 부끄럼 탔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모양인지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레 말했다.

“날 따라오거라.”

아이린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자, 운피레아가 그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빠른 걸음이었지만, 뒤따라가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게다가 바로 눈앞에 엘프 마을이 있었기에 아까처럼 길을 잃어버릴 걱정도 없었다.

“와아…….”

“저기 봐, 채원아. 다들 귀가 뾰족해.”

하이 엘프 모녀의 길안내를 받아서 엘프 마을에 도착하자, 세 명의 마물 사냥꾼들이 정신없이 고개를 돌리며 엘프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멀리서 얼핏 보았을 때와는 다르게 엘프 마을이 제법 그럴듯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

한편 엘프 부락 내의 엘프들은 다들 같이 얼굴을 붉히고서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어찌나 뜨겁던지, 내 낯이 절로 화끈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나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서 아이린에게 물어보려고 하는데, 저 멀리서 앗! 하는 탄성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어쩐 일이야?”

리샤르였다.

그녀는 한달음에 달려와 내게 물었다.

“엘프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한번 와봤습니다. 그리고 따로 할 일도 있고요.”

리샤는 여전했다. 그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괜히 엘프인 게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감탄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 또한 호기심 가득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따로 할 일? 설마 그 일?”

“그 일이요?”

아무래도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흥미가 동하는 걸 느끼며 재차 물었다. 그리고 이런 내 물음에 리샤는 잠시 옅은 갈색 빛이 감도는 눈썹을 아래로 내리깔았다가 이윽고 수줍게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그대여! 무언가 할 일이 있어서 여기에 온 게 아니었나?”

리샤가 수줍은 목소리로 그 일에 대해서 말하려는 찰나, 아이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약간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할 일이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면 어서 하거라. 리샤르, 넌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더냐?”

아이린은 한시라도 빨리 나와 리샤를 따로 떼어놓고 싶은 모양인지, 상당히 격양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쫓기게 된 리샤는 찔끔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아, 네! 그럼 난 가볼게. 이따 봐.”

“리샤르!”

“이크! 네!”

아이린의 외침에 서둘러 대답한 리샤는 그 길로 곧장 마을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아이린은 단순히 리샤를 내쫓은 걸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 모양인지, 아까부터 계속 힐끔거리며 날 훔쳐보고 있는 엘프들을 향해 사나운 시선을 쏘아 보냈다.

그러자 방금 전 리샤와 마찬가지로 다들 찔끔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뿔뿔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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