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협] -->
“하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긴 입맞춤은 내가 입술을 떨어트리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에나는 타액으로 반들거리는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아쉬운 듯이 길게 숨을 토해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또다시 키스를 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이상으로 마물 사냥꾼들을 기다리게 만들 수는 없었다.
나는 에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그녀의 옷가지들을 집어 들었다. 이에 그녀는 잠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로 호흡을 가다듬다가 이윽고 내가 내민 자신의 옷가지를 챙겨 입기 시작했다.
스스륵.
새하얀 팬티가 그녀의 다리를 쓸며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에나한테 속옷이라도 하나 사줘볼까?’
현대의 감각에 걸맞은 세련된 속옷을 입고 있는 에나의 모습……. 가터벨트도 괜찮고, 섹시한 슬립 란제리도 괜찮을 듯이 싶었다. 아니면 티팬티라던가……. 물론 에나가 지금 입고 있는 수수한 속옷도 괜찮았다.
때 하나 없이 깨끗한 팬티가 에나의 심성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이 싶었으니 말이다.
“다 입었습니다.”
이처럼 내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 에나가 꽤 기운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인 뒤에 그녀와 마찬가지로 내 옷도 추슬러 입었다. 그리고는 얼굴에 가면을 쓰며 입을 열었다.
“에나 씨는 잠깐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실수로라도 제 이름은 부르지 마시고요.”
“이름을요?”
“네.”
물론 마물 사냥꾼들이 내 이름이 뭔지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날 찾아올 확률은 거의 없다시피했지만……. 어지간하면 내 이름을 들키지 않는 게 좋을 듯이 싶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에나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확인하는 나는 1번 방의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그 후, 방 문을 열자 앗! 하는 소리와 함께 우르르 떼를 지어 뒤로 물러나고 있는 마물 사냥꾼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듣고 있었나보네.’
나는 그 모습을 혀를 찼다. 왜냐하면 다섯 명 모두 누구랄 것 없이 양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큼.”
괜히 멋쩍어진 나는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마물 사냥꾼들이 서둘러 자세를 똑바로 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잠시 마물 사냥꾼들을 바라보다가 언제나 그랬듯이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마물 사냥꾼 여러분.”
이런 내 인사에 다들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분위기를 전환해보고자 나름 산뜻하게 인사말을 건넸음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공기가 좀처럼 사라지지가 않았다.
‘이거 참…….’
생각 이상으로 무안해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이 어색함을 몰아내고자 서둘러 본론을 꺼냈다.
“이번에 중국에서 마물이 나타난 걸 알고 계십니까?”
“네…….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었어요.”
내 물음에 소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다른 마물 사냥꾼들도 저마다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마저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나타난 오크의 숫자가 열 마리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오크들과는 약간 다릅니다.”
“다르다니요?”
“무척이나 잔인합니다. 인간을 산채로 잡아먹을 정도로요.”
“…….”
한 순간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다들 겁먹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단지 긴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그 동안 겪어온 마물들과의 전투가 이들의 정신력을 강하게 단련시켜준 모양이었다.
‘나쁘지 않긴 한데…….’
정신력만으로는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여러분들을 단련시켜주고 합니다.”
“단련이요? 저번처럼 능력치를 올려준다는 건가요?”
“물론 그것도 함께 할 겁니다.”
“……?”
이런 내 말에 다들 이해하지 못 하겠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에 나는 그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고자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에나를 불렀다.
“에나 씨, 들어와 주세요.”
이처럼 방 안으로 에나를 불러들이자, 마물 사냥꾼들의 얼굴에 저마다 감탄한 기색이 떠올랐다.
“와아……!”
“사과녀!”
특히나 그 중에서도 예지와 채원의 반응이 가장 격했다. 두 사람은 마치 텔레비전 속에서나 보던 연예인을 실제로 보게 된 것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마물 사냥꾼들이 에나를 반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 지아는 무언가 승부욕 같은 게 들끓고 있는 모양인지, 에나를 향해 적개심 같은 걸 불태우고 있었고, 마물 사냥꾼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이 소현은 무언가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색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저번에 에나한테 도움을 받은 것 때문에 그런가?’
그도 그럴 것이 소현이 위험에 처했을 때, 에나가 시기적절하게 나타나 모든 오크들을 처리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때의 일을 떠올리고서 저렇게 어색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이리 단정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에나 씨가 이 소현 씨와 유 지아 씨를 가르칠 겁니다.”
이러한 내 말에 이 소현과 유 지아, 두 사람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반면에 에나를 가장 열렬히 환영하고 있었던 예지와 채원이는 이런 내 결정이 불만이란 듯이 투정 어린 말들을 쏟아내었다.
“우리는요? 우리도 사과녀한테 배우고 싶어요!”
“맞아요! 제발요~. 사과녀한테 배우면 안 돼요?”
양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서 내게 투정 어린 말들을 쏟아내는 두 소녀의 태도에 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안 됩니다.”
이처럼 내가 딱 잘라 말하자, 예지와 채원이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리고는 저들끼리 무언가 신호를 한번 주고받더니, 불쑥 내 곁으로 다가와 애교를 피우기 시작했다.
“히잉, 정말로 안 돼요?”
“앞으로 말 잘 들을게요. 네? 우리도 사과녀한테 배우게 해주세요!”
두 손을 가슴께에 모으고서 어리광을 피우는 두 소녀의 애교 공세에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당초 두 사람이 지금 맡고 있는 역할이 무엇이던가? 한명은 힐러였고, 또 한 명은 마법사였다. 그런데 이런 두 사람이 기사인 에나한테서 대체 뭘 배운다는 말인가?
힘 사제, 힘 법사 같은 게 될 것이 아니라면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이 소현 씨와 유 지아 씨만 에나 씨에게 훈련 받을 겁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은 엘프에게 훈련을 받을 거고요.”
“엘프요?”
엘프라는 말에 한창 내게 애교를 부리고 있던 두 소녀의 입에서 놀람에 가득찬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엘프라면 설마 그 엘프요? 예뻐요? 얼마나 예뻐요?”
“막 영화 속에서나 보던 그런 엘프를 말하는 건가요? 꺅!”
두 소녀는 엘프가 어떻게 생겼을지, 잔뜩 기대되는 모양인지 꺅꺅 대며 좋아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에나에게 교육을 받지 못 해서 잔뜩 아쉬워했던 주제에 말이다. 소녀들의 변덕에 절로 쓴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랬기에 또 귀여웠다.
나는 두 소녀를 번갈아보다가 이윽고 방 안에 있는 여섯 명의 여자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절 따라 오세요.”
이리 말한 나는 에나와 마물 사냥꾼들을 데리고서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방 밖의 풍경을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인 마물 사냥꾼들이 저마다 감탄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다가 예지와 채원이 후다닥 내 곁으로 달려와 양 팔에 매달리며 입을 열었다.
“여기 우주선 안이 아니었어요? 대체 여기가 어디에요? 다른 행성?”
“막 메이드 같은 것도 있어요? 혹시 막 외계 행성의 왕자님 같은 건가요?”
두 소녀의 쉴 새 없는 질문 공세에 머리가 다 울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답을 안 해주면 또 아쉬워 할 테니, 나는 내 나름대로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여긴 이세계 같은 곳입니다. 그리고 메이드도 있습니다. 지금은 잠깐 숲 속에 가있지만요. 그리도 또 저는 왕자님 같은 게 아닙니다.”
이리 대답한 나는 저택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드넓은 펴원과 저 멀리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숲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여기라면 에나가 이 소현과 유 지아를 훈련시키기에 더없이 적합할 것이다.
“에나 씨, 그럼 두 사람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런 내 말에 에나는 자기만 믿으란 듯이 듬직하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