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협] -->
“중국이 뭘 믿고 저러나 싶었더니, 저 검 때문이었구나.”
누나가 자그맣게 탄성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검 때문이라니요?”
“저 중국인들이 들고 있는 검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안 들어?”
이 말에 나는 중국인 출신의 마물 사냥꾼들이 들고 있는 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특이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글쎄요?”
“일본.”
딱 한 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아주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도 나름 침착하게 반론했다.
“그렇지만 제가 일본인들에게 줬었던 검하고는 생김새가 완전히 다른데요?”
우연인지는 몰라도 지금 중국인들이 들고 있는 검의 숫자와 저번에 내가 일본인에게 주었던 검의 숫자가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나 문제는 둘의 외관이 전혀 달랐다. 그 날 내가 주었던 검은 분명히 외관이 수수한 바스타드 소드였는데, 지금 중국인들이 들고 있는 검은 무협 영화에서나 볼만한 화려한 외관을 가지고 있는 장검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반론에 누나는 우습다는 듯 대답했다.
“그거야 바꾸면 그만이지. 그리고 검을 쓰는데 있어서 중요한 건 검신이지, 외관 장식은 아니잖아. 그렇지?”
“…….”
그 말을 들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뭘요?”
“일본이 지금 네 뒤통수를 때린 거잖아.”
“…….”
일본이 내 뒤통수를 때린 건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일본에게 준 검은 그다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하잘 것 없는 검을 가지고서 거창하게 일본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니 뭐니 하는 건, 역시 좀 그랬다.
“왜? 뒤통수가 별로 안 아파?”
“뭐……. 실감이 잘 안 가요.”
“그래, 그럴 거야. 근데 그러면 안 돼.”
누나는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요?”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 들어봤지? 사람의 마음이란 게 말이야, 계속 잘 못 된 행동을 반복하다보면 결국엔 큰 잘못까지 저질러버리거든. 그런데 여기서 네가 당장은 괜찮다고 해서 일본은 봐주면, 결국 또 기어오를 거야.”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특히나 옛말 중에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하는 김에 아예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이번에 제가…….”
“나한테 맡겨.”
누나가 내 말을 중간에 자르며 말했다.
어찌나 칼 같이 자르던지, 내 혀가 베이는 줄 알았다.
“누나한테요?”
“그래. 왜 싫어?”
“아뇨, 싫은 건 아닌데…….”
“왜 또 뭐 하고 싶은 게 있어?”
“…….”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 누나의 태도에 말문이 턱 막혔다. 마치 내가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느껴졌다.
나는 왠지 모르게 몸이 움츠러드는 걸 느끼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리고 이런 내 태도에 누나는 마치 내가 뭘 말하려고 했었던 것인지,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뭘 말하고 싶었던 건지 대충 알겠네. 근데 그러면 안 돼. 내가 분명히 말했지. 국가의 일은 국가가 알아서 하도록 놔두라고. 네가 여기서 아무리 국가를 위해서 헌신해도 결국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물론 아주 잠깐은 널 칭찬해주겠지. 잘 했다면서 말이야. 근데 그거 알아? 이게 끝이야.”
누나의 말대로였다. 칭찬은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영원히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너 하나만 생각해. 역사를 보면 알잖아? 친일파며 그딴 놈들 전부 지금 뭐하고 있어? 다 재벌이며 장차관이야. 근데 국가를 위해서 몸이며 재산이며 다 받친 독립 운동가들의 후손은 다 어떻게 됐어? 한 달 60만원 연금도 못 받으면 다 굶어죽어. 근데 이래도 또 하고 싶어?”
구구절절 옳은 말들뿐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네요. 근데…….”
“고집 좀 그만 부려.”
“…….”
어린아이를 혼내는 듯한 말투로 나를 꾸중하는 누나의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빳빳이 든 채로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런 내 태도에 누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알았어. 일본한테 돈 좀 뜯어내면 네가 원하는 거, 작은 거라도 해줄게.”
“정말로요?”
“정말이니까, 불쌍한 표정 좀 그만 지어.”
이리 말한 누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홱 하니 돌렸다. 무척이나 퉁명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내 눈에는 너무나도 예뻐 보였다.
나는 함박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대로 두 팔을 쭉 뻗어, 누나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자 누나가 얼굴을 붉히며 내게서 떨어지려고 바동거렸다. 하지만 나는 누나가 바동거리면 바동거릴수록 더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누나, 사랑해요.”
나는 내 품에서 자꾸만 벗어나려고 하는 누나의 몸을 꼬옥 끌어안은 채로 허스키하게 속삭였다. 그리고 이런 내 고백에 누나는 잠시 몸을 굳혔다가 이내 ‘나도 참 바보야.’라고 중얼거리며 얌전히 내 품에 안겼다.
이처럼 누나가 내 품에 얌전히 안길 때쯤에 중국인 마물 사냥꾼들과 오크가 맞부딪쳤다.
탕!
가장 먼저 총성이 울려 퍼졌다.
건물 옥상에 자리를 잡고 있던 저격수가 오크를 향해 사격을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갑작스런 저격에도 불구하고 오크는 끄덕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녀석의 화를 돋운 모양인지, 오크들이 성난 포효성을 터트리며 중국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
오크들이 달려들자, 중국인 마물 사냥꾼들이 순식간에 산개해서 두셋 씩 짝을 이루어 오크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체계적이었다.
마치 하나의 잘 짜인 무예 시범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크들에게 그 어떠한 상처도 입힐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물 사냥꾼이 아닌 일반인이 오크에게 상처를 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저 검으론 마물을 쓰러트릴 수 없는 거야?”
“네.”
“중요한 건, 무기가 아니라 사람이란 거구나.”
누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물 사냥꾼은 아무나 임명할 수 있는 거야? 제약 없이?”
“아마도 그럴 거예요.”
“나는?”
“안 돼요. 될 수 있다고 해도 누나는 절대로 마물 사냥꾼으로 만들지 않을 거예요.”
“왜?”
“위험한 일이니까요.”
단호히 말한 나는 누나의 몸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내 품에 안겨있던 서연이 누나의 입가에 예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지금 마물 사냥꾼들로 뽑힌 애들은 어떻게 뽑은 거야?”
“무작위로 뽑았어요.”
“무작위로 뽑았는데, 전부 다 한국인?”
“그건 제가 국적을 한국으로 설정해서 그런 거예요.”
누나는 이런 내 말에 수긍했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화면 쪽으로 던졌다. 이에 나 또한 누나를 따라 시선을 화면 족으로 돌렸다. 그러자 한창 오크와 싸우다가 돌연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하는 중국인 마물 사냥꾼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오크에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도망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꿋꿋이 남아서 오크들을 상대로 싸우는 중국인 마물 사냥꾼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나머지 중국인들이 무사히 도망칠 수 있도록 오크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필사적으로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컸던 모양인지, 그들은 3분도 채 되지 않아서 오크가 휘두른 주먹에 피곤죽이 되고 말았다.
“이걸로 결정 났네.”
누나는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중국 정부가 내세운 중국인 출신의 마물 사냥꾼들이 마물을 사냥하는데 실패했다.
이 사실 하나로 중국 정부는 절대적인 약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상당히 우스운 일이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초강대국이 마물 하나를 막지 못 해서 절대적인 약자의 위치로 떨어지다니 말이다.
“……만약에 여기서 네가 저 마물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문득 누나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저번에 한번 보니까, 거점 같은 걸 만들어서 다른 마물들을 불러내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베이징은 쑥대밭이 되겠네?”
“아마도 그렇게 되겠죠?”
마물은 오로지 마물 사냥꾼으로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대로 방치해둔다면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은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마물들로 들끓게 될 것이다.
“무섭네. 지금 그 말은 네가 마음만 먹으면, 나라 하나를 눈 깜짝할 사이에 멸망시켜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잖아?”
“그렇긴 하죠. 근데 그러면 저도 위험해져요.”
“어째서?”
“마물들이 자꾸만 현계에 나타나는 이유가 바로 저 때문이거든요.”
“널 죽이려고?”
“아마도……. 그럴 거예요.”
내가 보유하고 있는 정기를 빼앗기 위해서 나타나는 것이니까, 얼추 맞을 것이다.
‘설마 내 정기를 빼앗는다는 게…….’
마물들에게 억지로 범해지는 내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리자, 명치 부근에서 시작된 구역질이 목까지 치밀고 올라왔다.
두 번 다신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상상이었다. 차라리 깔끔하게 죽는 게 더 나을 거란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그런 의미는 아니겠지.’
나는 힘겹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누나가 내 손등을 탁 소리 나도록 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슬슬 준비해야겠네.”
누나의 말에 고개를 다시금 화면 쪽으로 돌리자, 건물 외벽을 타고서 올라가고 있는 오크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허…….”
6층 높이의 건물을 기어 올라가고 있는 여섯 마리의 오크를 본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어느새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온 오크 하나가 옥상에서 대기 하고 있던 헬기를 향해 달려들어, 그 안에 타고 있던 헬기 조종사와 다른 사람을 우악스레 붙잡았다.
물론 이 때, 탕탕! 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려 퍼졌지만 그런 게 오크에게 통할 리가 만무했다.
“으아아악!!”
오크에게 산 채로 물어뜯기는 사람의 비명 소리가 여과 없이 방송을 통해 그대로 송출되었다. 그리고 그 비명소리가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방송 화면이 스튜디오의 모습으로 전환되었다.
“…….”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나운서와 전문가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한 채, 멍하니 있었다.
이건 비단 그들뿐이 아니었다.
오크에게 산채로 물어뜯기던 사내의 비명 소리는 여전히 내 귓가에 남아,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뭐해.”
그 때, 누나가 내 몸을 재차 툭 치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 후, 매니저 어플을 실행시키자 화면에 새로운 현계 퀘스트가 떠올랐다.
[현계 퀘스트 ‘오염된 오크들’이 발생했습니다!]
[마정석 파편에 의해서 정신이 오염된 오크들이 현계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마정석 파편을 소유하고 있는 족장을 오랫동안 보필하면서 그 정신이 심하게 오염되어버린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결코 나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마정석 파편에 의해서 정신이 오염된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포악해졌으며 잔인해졌습니다. 또한 인육을 즐기며, 산 채로 물어뜯어 먹기를 즐깁니다. 어서 그들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다음 차례는 당신이 될 겁니다.]
-오크를 처리하세요! (0/10) (보상 : 랜덤 장비 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