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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누나한테서 스마트폰을 돌려받게 된 나는 서둘러 전원을 켰다. 그러자 가장 먼저, 화면에 부재중 통화 목록이 잔뜩 찍혀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문자 메시지도 잔뜩 와있었다.
누가 나를 이토록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인지, 따로 확인해 볼 필요도 없었다.
은하와 예은이, 그리고 지현이었다.
‘이런…….’
안 봐도 뻔했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 전화며, 문자며 잔뜩 보낸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서둘러 문자 메시지로 얘들에게 ‘급한 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갔어. 말도 없이 먼저 돌아가서 미안해.’라고 보냈다.
다소 성의가 없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렇게나 잔뜩 화가 나있는 서연이 누나 앞에서 태연하게 은하나 지현이한테 전화를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문자 메시지를 보낸 나는 누나가 시킨 대로 민서를 부르기 위해서 매니저 어플을 실행시켰다.
그러자 곧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출석 체크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아이템 상자가 주어집니다.]
[랜덤 아이템 상자를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오늘의 출석 체크 보상은 랜덤 아이템 상자였다.
나는 곧바로 네를 눌러서 랜덤 아이템 상자를 수령했다.
[축하합니다!]
[아이템 ‘상식 변경권 (1회)’을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 대상의 상식을 한 가지에 한해서 영구적으로 변경시킵니다.]
‘상식 변경권이라니…….’
이번에 나온 아이템은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다. 심지어 최소 0초에서 최대 1시간이라는 제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최면과는 다르게 영구적으로 상대방의 상식 한 가지를 바꾸는 것이 가능한 아이템이었다.
내가 만약에 이걸 악용하려 든다면, 얼마든지 악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상대방에게 야외에선 옷을 벗고 돌아다녀야 된다는 상식을 주입한다던가, 처음 만난 상대방에게 인사를 할 때는 펠라치오를 해야 된다던가, 이런 식으로 상식을 주입하게 되면 그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변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니, 변태가 되기만 할까?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파탄이 나버릴 게 틀림없었다.
‘……잠깐 이거…….’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내가 누나의 상식을 일부일처에서 일부다처제로 바꾼다면, 지금까지 내가 민서를 비롯한 여러 여자들과 관계를 가진 것을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니, 지금까지 뿐이겠는가? 상식 변경권은 영구적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누나한테서 이걸로 혼나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쓸까, 말까.’
하지만 기본적으로 누나는 질투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내가 이걸 쓴다고 해서 누나의 질투심이 가라앉을지는 미지수였다. 어쩌면 나를 자기 혼자서 독차지하기 위해서 더 심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단 보류하자.’
어차피 당장 급한 것도 아니었다.
상황을 보고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옳을 듯이 싶었다. 그리고 이처럼 마음의 결정을 내린 엄지로 화면을 꾹 눌렀다. 그러자 곧 새로운 알림문구가 차례대로 떠올랐다.
[일간/주간 퀘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일간/주간 퀘스트는 새롭게 추가된 퀘스트 목록창을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은하는 현재 아이돌 프로젝트 2차 예선을 진행 중입니다.]
[진행 현황을 확인하시려면 이곳을 눌러주세요.]
[신 예은은 현재 아이돌 프로젝트 2차 예선을 진행 중입니다.]
[진행 현황을 확인하시려면 이곳을 눌러주세요.]
[김 민서는 현재 GS 칸텍스 전을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진행 현황을 확인하시려면 이곳을 눌러주세요.]
내가 서연이 누나한테 납치당한 사이에 대규모 업데이트라도 한 것인지, 이전엔 못 봤던 새로운 알림문구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이라고 한다면 역시나 퀘스트 목록창이었다.
‘일간, 주간 퀘스트라니?’
상당히 본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확인하기에는 독기를 품고서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서연이 누나의 눈치가 보였다. 그랬기에 나는 다음 기회에 확인하기로 마음을 먹고서 다시 확인을 눌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내게 알려줄 것이 남아있는 모양인지, 여김 없이 이번에도 또 다른 새로운 알림문구가 나타났다.
[아이템/스킬/장비 제조 목록이 활성화됩니다.]
[현재 보유하고 정기를 사용하여 아이템/스킬/장비를 제조할 수 있습니다.]
[임시로 정기 100을 제공합니다.]
[임시로 즉시 제조권을 제공합니다.]
[아이템/장비 목록을 선택해주세요.]
“…….”
랜덤 상자로는 부족했던 모양인지, 이번엔 제조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이번 건, 앞선 알림문구와는 다르게 내 행동을 강제하고 있었다.
나는 어서 빨리 이 알림문구를 처리하고자,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는 아이템/스킬/장비 목록을 선택했다.
그러자 곧 화면에 무언가를 제조하는 듯한 공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이템/스킬/장비 제조에 사용할 정기의 양을 결정해주십시오.]
[최소 100부터 최대 10000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조에 사용된 정기의 양에 따라 제작 시간이 증가합니다.]
[제작이 완료되면 아이템/스킬/장비 중에 한 가지가 무작위로 등장합니다.]
[해당 아이템/스킬/장비 제조는 랜덤 장비 상자보다 훨씬 더 높은 확률로 S등급 혹은 H등급의 장비를 제조합니다.]
‘오…….’
랜덤 장비 상자보다 훨씬 더 높은 확률로 S등급 혹은 H등급의 장비를 제조한다는 말에 나는 내심 감탄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무언가 말장난에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이러면 아이템이랑 스킬은?’
그도 그럴 것이 아이템이랑 스킬에는 등급이 붙어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대량의 정기를 투입했다가 높은 등급의 장비가 아니라 아이템이나 스킬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임시로 드린 정기 100을 제조에 투입하세요.]
그 때,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이에 나는 고분이 아이템/스킬/장비 제조에 정기 100을 투입했다.
[제조 완료까지 남은 시간 : 1시간 10분]
남은 시간이 1시간 10분이라니……. 어째서인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시간이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고양이 귀를 달고 있는 녀석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임시로 드린 즉시 제조권을 사용하여 제작을 완료해보십시오.]
이처럼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또다시 내게 지시를 내리는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이에 나는 즉시 제조권을 사용해서 제조를 완료시켰다. 그러자 찌이잉! 하고 금속 기계가 바쁘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윽고 파앗! 하고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제조가 완료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축하합니다!]
[스킬 ‘고블린 소환’을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 고블린 1마리를 소환합니다.]
[강제로 역소환되었을 시, 1시간 뒤에 다시 소환 할 수 있습니다.]
“…….”
나는 이걸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 했다.
‘고블린 소환이 필요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쉬도 때도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이건 마치 매니저 어플이 나보고 ‘귀여운 고블린을 드리겠습니다!’하면서 빅엿을 날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우거나 트롤 소환도 좀 달라고…….’
하다못해 오크 소환이라도 좋았다.
[현재 사용자는 ‘고블린 소환’과 중복되는 스킬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중복되는 스킬을 획득할 시에는 스킬 강화 혹은 정기 교환을 하실 수 있습니다. (단, 이 경우 정기 획득양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스킬 강화 / 정기 교환]
이처럼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이에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스킬 강화를 선택했다.
[주의. 5단계 강화부터는 일정한 확률로 강화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주의. 강화에 실패할 경우 1단계 하락하게 됩니다.]
[스킬을 강화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그래, 이왕에 이렇게 된 거 7강 올리자! 고블린이면 어때? 물량이면 장땡이지!’
이런 생각에서 나는 네를 눌렀다. 그러자 돌연 스마트폰 화면에 환한 빛이 서리더니, 곧 고블린 스킬창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몇 초 동안 환한 빛을 뿜어내던 고블린 스킬창은 곧 팡파르와 함께 새로운 알림문구로 바뀌었다.
[축하합니다!]
[스킬 ‘고블린 소환(+6)’이 ‘고블린 소환(+7)’로 강화되었습니다!]
[효과 : 고블린 192마리를 소환합니다.]
[강제로 역소환 되었을 시, 1시간 뒤에 다시 소환 할 수 있습니다.]
“…….”
고블린 192마리, 실화냐?
나는 그만 벙찌고 말았다.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로 강화에 성공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이 기쁨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쥐고 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서연이 누나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
망했다. 너무 열중한 나머지 민서를 불러야 된다는 걸, 그만 깜빡 잊고 말았다.
나는 비지땀을 흘리며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누나는 별달리 화가 나지 않은 모양인지……. 아니, 오히려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시선을 느낀 모양인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 눈엔 검은 화면 밖에 안 보이는데……. 이거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검은 화면 밖에 안 보인다고요?”
“그래.”
누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은 매니저 어플을 볼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예전에 누나가 내게서 스마트폰을 빼앗은 뒤에 꼼꼼히 살펴보았을 때도 매니저 어플을 발견하지 못 했었다.
“……너 혹시 만약에 민서, 걔 안 부르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라면…….”
“수작은요! 아니에요, 누나. 진짜로요.”
그 때, 날 향해 으름장을 내어놓는 누나의 태도에 나는 서둘러 입을 열어 내 결백함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노예 목록으로 들어간 뒤에 민서를 조교의 방으로 호출했다.
[김 민서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이 물음에 나는 곧장 네를 눌렀다. 그러자 뒤이어서 [바로 조교의 방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라는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이에 나는 재차 네를 눌러 조교의 방으로 이동했다.
“…….”
조교의 방으로 이동한 순간, 눈앞이 잠시 어두컴컴해졌다가 이내 환하게 밝아지며 낯익은 저택 내부의 풍경이 나타났다.
이를 확인한 나는 다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한가롭게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곤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린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너, 너……. 지금 그게 대체 무슨 꼴인가! 혹시 적에게 공격이라도 받은 것이냐?”
내 곁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아이린은 정신없이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내 옷차림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정신없이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어디 다친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그제야 겨우 안심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대체 뭘 하다가 옷이 그리 된 것이냐?”
나를 질책하는 말투와는 다르게 아이린의 목소리에는 걱정스러움이 뚝뚝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내 옷차림은 마치 야수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흉물스럽게 찢겨져 있었다.
이게 다 서연이 누나가 내 상의를 거칠게 찢어버린 탓이었다.
“그런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자리 좀 잠깐 비켜주시겠습니다. 아니, 운피레아 씨와 함께 오늘 하루 동안만 숲 속에 가있어 주시겠습니까?”
“응? 어머니와 함께 숲 속에 가있으라니……?”
깜짝 놀란 목소리로 되묻는 아이린의 태도에 나는 적당히 이유를 둘러대었다.
“중요한 손님을 여기로 부를 거라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내가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
“그게 좀 곤란합니다.”
아이린이나 운피레아와 마주친 서연이 누나가 내게 무슨 말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괜한 트집을 잡히기 전에 미리 숨겨두는 편이 좋았다.
“음……. 그대가 그리 말한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이런 내 말에 아이린은 석연찮은 표정을 지어보이면서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과거에 내 조언을 무시하고 마정석 파편을 가져갔다가, 크게 곤혹을 치렀던 적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처럼 고개를 주억이며 내 의견을 받아들인 아이린은 슬며시 내 손을 부여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가 강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무모한 짓은 하지 말거라.”
나를 걱정해주는 아이린의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게다가 이 순간, 찰나이긴 했지만 그녀의 어머니인 운피레아의 모습이 엿보이기까지 했다.
역시 모녀는 모녀인 모양이었다.
아이린의 새로운 일면을 발견한 나는 조금 기분이 들뜨는 걸 느끼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걱정 마세요. 위험한 일은 절대로 아니니까요.”
이처럼 내게서 입맞춤을 받은 아이린은 수줍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내가 부탁한대로, 운피레아를 데리고서 저택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저택의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민서가 있는 1번 방과 내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번갈아보았다.
‘민서한테 지금 이 상황을 알려줘야 할까?’
아니면 알려주지 말고, 서연이 누나와 대면시켜야 될까?
잠시 고민 끝에 나는 민서에게 알려주지 않고, 서연이 누나와 대면시키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에 민서가 서연이 누나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면, 분명히 누나가 내가 민서와 서로 짜고서 자기를 놀리고 있다고 생각할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민서가 서연이 누나를 보고서 화들짝 놀라도록 하는 편이 가장 나았다.
‘……민서한테는 미안하지만…….’
내 코가 석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