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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어플-464화 (464/599)

<-- [2차 예선] -->

“그거 잘 되었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 되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자 시류가 한 걸음 성큼 내딛어,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자기를 좀 더 칭찬해주고 쓰다듬고 보듬어달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너무나도 노골적인 어리광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헤헤…….”

헤실거리며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시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의 모습을 흥미진진하단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나는 곤란함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래도 우리의 이런 행동이 너무 많은 이목을 집중시킨 모양이었다. 이를 느낀 나는 시류의 머리에서 손을 떼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잠깐 자리를 옮겨도 될까요?”

“네?”

“따로 할 말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시류를 데리고서 인적이 드문 한적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윽고 우리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나는 그녀를 마주보며 본론을 꺼냈다.

“이제 그만 여기를 떠날까 합니다.”

“아! 지금 바로 떠나는 겁니까? 제가 뭐 따로 준비할 건 없습니까?”

아무래도 내 말을 오해한 모양인지, 시류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끙…….’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정녕 이 귀여운 생물을 여기에 두고 떠나야 된다는 말인가? 나는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걸 느꼈다. 말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말해야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나는 미어지는 마음을 억지로 억누르며 말했다.

“아뇨, 시류 씨는 저와 함께 가지 않을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리나 씨와 함께 여기에 남아서 레이첼 씨를 보호해주세요. 제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요.”

이런 내 말에 시류는 크게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 언제 돌아오시는 건데요……? 저도 현자님과 함께 가면 안 되는 겁니까? 하시는 일을 절대로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따라가게만 해주십시오.”

확실히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만약에 그랬다가 은하나 다른 애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복잡해질 것이 틀림없었다. 안 그래도 서연이 누나 때문에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데, 여기에 시류까지 더해진다면 도저히 감당이 되지가 않았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여기에 남게 될 레이첼이 너무나도 걱정되었다.

물론 그녀의 충직한 가신들이 그녀의 곁에 머물면서 철통 같이 지켜내겠지만, 앞서 들었다시피 이바이크 백작 가에는 마땅히 있어야 될 기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병사도 부족해서, 라인펠덴 공작 가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시류를 데려간다면 레이첼은 몹시도 곤란해질 것이다. 더욱이 지하 감옥에 갇혀있는 힐다 공자가 또다시 무슨 발악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말이다.

“저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절 사랑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안 된다며 딱 잘라 말하자, 시류가 대뜸 내 몸을 와락 끌어안으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몸을 마주 안아주며, 우는 어린아이를 달래주듯이 다정한 어투로 속삭여주었다.

“지금도 시류 씨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절 사랑하고 있다면서……. 어째서 절 떠나려고 하시는 겁니까?”

시류의 눈망울에는 어느새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진주알 같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릴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또다시 마음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그냥 데려갈까? 레이첼을 지키기 위해서 구태여 시류를 여기에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만약에……. 그 놈의 만약에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내가 없는 사이에 레이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불쾌함이 끝을 모르고 치밀어 올랐다. 막말로 지하 감옥에서 탈출한 힐다 공자가 레이첼을 죽이거나, 억지로 범한다고 생각하면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진절머리가 났다.

‘시류는 여기에 있어야해.’

시류라면 나를 대신해서, 어쩌면 나보다도 훨씬 더 안전하게 레이첼을 지켜줄 수 있을 게 틀림없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약해진 마음을 애써 다그치며, 최대한 침착하게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시류 씨, 진정하세요. 제가 영원히 떠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싫습니다. 잠시도 떨어져있고 싶지 않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이러한 내 말에 시류는 마음이 약해진 모양인지, 내 몸을 끌어안고 있던 양 팔의 힘을 느슨하게 하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잠깐인 겁니까?”

“음……. 어쩌면 생각보다 길어질지도 모르겠네요.”

금방 돌아올 거라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쓸데없이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대답에 아니나 다를까, 시류는 다시금 내 몸을 억세게 끌어안으며 고집을 피웠다.

“그럼 역시 싫습니다! 저도 현자님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시류 씨……. 제가 시류 씨를 데려가면 레이첼 씨는 누가 지킵니까?”

“그녀는 충분히 안전한 상태입니다! 힐다 공자도 지하 감옥에 갇혀있는데, 누가 그녀를 위협한다는 말입니까?”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

이런 내 말에 시류는 말문이 탁 하고 막힌 모양인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표정만큼은 여전히 심통이 나있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단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납득시켜주고자,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시류 씨가 레이첼 씨를 지켜주세요.”

“…….”

“제 말을 얌전히 따르고 있는다면 나중에 시류 씨를 제가 사는 곳으로 데려가 드리겠습니다.”

“현자님이 사시는 곳이요? 아까 본 그 저택이요?”

“아니요, 거긴 잠깐 머무는 곳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전혀 다른 곳입니다. 게다가 맛있는 음식들도 잔뜩 있으니까, 시류 씨가 분명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시류는 결국 마지못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고집을 꺾은 모양이었다. 나로서는 무척이나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왼손으로 그녀의 등을, 오른손으로는 짙은 갈색빛을 머금고 있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시류는 이런 내 행동에 아무런 저항감도 가지지 않은 채, 얌전히 손길을 받으며 내 가슴팍에 자기 뺨을 기대었다.

“금방 돌아오실 거죠?”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시류를 빼꼼, 고개를 들어 올리며 날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약속해주십시오.”

“…….”

“금방 돌아오겠다고…….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현자님을 못 보낼 것 같습니다.”

시류의 목소리엔 불안감이 가득 실려 있었다. 어지간히도 내가 미덥지 못 한 모양이었다.

나는 이런 그녀의 불안감을 가라앉혀주고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금방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걸 본 시류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가 내민 새끼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이에 나는 조용히 그녀의 오른손을 붙잡아, 나와 마찬가지로 새끼손가락을 펴도록 만들었다.

“……제가 사는 곳에선 이렇게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거는 것으로 약속합니다.”

“아…….”

“그리고 도장도 찍고요.”

나는 엄지손가락을 내밀어, 시류의 엄지손가락에 꾹 하고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러자 시류의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번졌다.

이런 식으로 약속을 하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마치 무언가 의식을 하는 것 같습니다.”

“비슷하죠.”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엄지로 도장을 찍으니 말이다.

나는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시류의 손을 놓아주었다. 이에 그녀는 이대로 나와 헤어지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운 모양인지, 자그맣게 한숨을 토해내며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바로 떠나시는 겁니까?”

“그럴 생각입니다.”

“그럼 헤어지기 전에…….”

잠시 말끝을 흐린 시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어리광 한번만 부려 봐도 괜찮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해주자, 시류는 그대로 두 눈을 꼬옥 감고서 까치발을 들었다. 이대로 내 입술에 키스를 해줄 생각인 모양이었다.

“…….”

매끄러운 윤기를 머금고 있는 그녀의 입술은 마치 잘 익은 앵두처럼 붉은색을 머금고 있었다. 한 입에 꿀꺽 집어 삼키고 싶을 정도로 먹음직스러워보였다. 그리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쯤 시류의 입술이 내 입술에 맞닿았다.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했다. 그녀의 가슴처럼.

말랑거리면서도 탄력이 느껴지는 입술을 한동안 음미하던 나는 혀를 내밀어 부드럽게 핥았다. 마치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핥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혹시라도 흘러내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들여서 맛보았다.

“으음…….”

이처럼 내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자, 시류의 입술 사이로 자그마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이는 키스로 인해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모양인지, 시류는 그대로 숨을 멈추고서 내가 해주는 키스를 정신없이 받아들였다.

무척이나 사랑스런 반응이었다.

순진하기 그지없는 반응에 가슴이 절로 뛰었다.

“하아…….”

이윽고 입술이 떨어지자, 그녀의 입술을 뚫고 달뜬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황홀해하는 반응을 보이는 시류의 모습에 나는 만족스런 미소를 띠워보였다. 이젠 안심하고 떠나도 될 듯이 싶었다.

물론 이대로 시류와 헤어져야 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까지고 여기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하물며 아주 헤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잠깐 현실로 돌아가서 한숨 자고난 뒤에 은하와 다른 애들의 2차 예선을 봐주고 돌아오면 되는 일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서연이 누나도 있었지…….’

지금도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을 서연이 누나를 떠올리자, 가슴이 저절로 먹먹해졌다. 게다가 만약에 누나가 내 정체를 은하와 예은이한테 알려주기라도 한다면……. 그 뒷감당이 도저히 되지가 않았다.

무슨 변명을 해야 될지, 선뜻 판단이 서지도 않았다. 아니, 애당초 변명이 들어 먹히기나 할까, 의문이 들었다.

“현자님?”

그 때, 시류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자기가 무언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그녀를 안심시켜주고자, 다정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막상 시류 씨와 헤어지려고 하니까 아쉽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대로 계속 쭉 같이 있고 싶습니다.”

시류는 한층 더 감격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품에 포옥 안겼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몸을 다정히 끌어안아주며 잠시 서연이 누나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여기서 아무리 고민해보았자,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일 몸으로 부딪쳐봐야겠지.’

나는 이리 마음의 결정을 내리며 시류와 떨어졌다.

그녀는 내가 떠나려고 한다는 걸 직감한 모양인지, 서글픈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애써 담담한 척 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대견했기에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해주고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 후, 현실로 돌아가자 한순간 눈앞이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낯익은 방 안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응? 내가 불을 껐었나?’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방 안의 풍경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녀 모니카와 왕자 베네딕트가 내게 주었던 명패를 챙긴 뒤에 불도 끄지 않은 채로 다시 던전으로 돌아갔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이 잘 못 됐나?’

뭐, 내가 무심코 불을 끄고 던전으로 돌아간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별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불을 켰다. 그리고는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두 개의 명패를 서랍 속에 넣기 위해서 몸을 돌리는데…….

파지지직!!

“으아아아아아악!!”

갑자기 온 몸이 물어뜯기는 것만 같은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정신이 절로 아찔해졌다. 나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누가 나를 공격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너무나도 익숙한 여성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안녕? 오래 걸렸네? 많이 기다렸어.”

파지지직!

서연이 누나였다.

나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걸 느끼며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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