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63화 (463/599)

<-- [2차 예선] -->

“크으윽!”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힐다 공자가 두 눈을 부릅뜨고서 침음성을 흘렸다. 어지간히도 분한 모양이었다.

공자는 눈에 붉은 핏발까지 세우며 악을 질렀다.

“……이것도 인정할 수 없다! 재대결을……. 재대결을 요청하겠다!!”

그의 외침에 나는 여유롭게 대꾸해주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경험치가 알아서 굴러와 주겠다고 하는데, 구태여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내 대답을 들은 힐다 공자는 서둘러 자신의 대리 기사를 새로 뽑아, 다시 내보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퍽!

“크억!”

[축하합니다!]

[시류 발렌시아가 스킬 ‘영웅의 격투술’을 획득했습니다!]

[효과 : 맨손 격투를 할 경우,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5%씩 상승합니다.]

……시류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 했다.

“인정 못 해!”

그러나 이런 명백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힐다 공자는 끊임없이 재대결을 요구했다.

서걱!

“억!”

[축하합니다!]

[시류 발렌시아가 스킬 ‘피의 일격’을 획득했습니다!]

[효과 : 일격을 가해서 적을 쓰러트릴 때마다 300초 동안 힘이 5% 상승합니다. (최대 누적 10회)]

“재대결을 요구한다!”

퍽!

“케엑!”

[축하합니다!]

[시류 발렌시아가 스킬 ‘속전속결’을 획득했습니다!]

[효과 : 자신보다 약한 자를 상대할 경우,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재대결!!”

시류는 힐다 공자가 내세운 기사들은 마치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말이다. 차례차례 쓰러져 나가는 기사들을 바라보며, 다들 혀를 내둘렀다.

“억……. 끄윽.”

[축하합니다!]

[시류 발렌시아가 스킬 ‘격돌’을 획득했습니다!]

[효과 : 상대에게 공격력의 250%의 피해를 입힙니다. 상대를 죽이지 못 했을 경우, 200%의 공격력으로 상대를 다시 한 번 더 공격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30초)]

가장 마지막에 나온 기사는 흰 게거품을 물더니, 뒤로 고꾸라지며 기절해버렸다.

“더 내보낼 기사 없습니까?”

순식간에 힐다 공자의 대리 기사들을 모두 쓰러트려버린 시류는 무언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공자에게 물어보았다.

그 태도가 마치 식당에서 디저트를 찾는 사람 같았다. 디저트 없냐고. 실제로 시류의 목소리에는 악의라곤 조금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힐다 공자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더 싸우고 싶은데, 더 내보낼 기사 없냐면서 말이다.

“으으으!!”

그러나 이런 시류의 의도를 상대가 있는 그대로 순진하게 받아드릴 리가 없었다. 하물며 그 상대가 힐다 공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공자는 시류의 질문을 받는 동시에 울화통이 터져버릴 것 같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자기 뒷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저러다가 억! 하고 뒤로 고꾸라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내, 내 기사들이……. 어떻게 저딴 용병 나부랭이한테……. 끄으윽!”

힐다 공자는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연신 끅끅대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레이첼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고소하단 듯이 쿡쿡 대며 웃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이 상황이 너무나도 유쾌하단 듯이 숨 죽여서 웃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즐기다가 힐다 공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더 내보낼 기사가 없으면, 이만 지하 감옥으로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이, 죽일 놈……! 컥!”

이런 내 말이 결정적이었던 모양인지, 힐다 공자는 그만 자기 화를 이기지 못 하고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헉! 공자님!”

“공자님을 모셔라!”

쿵! 소리와 함께 힐다 공자가 쓰러지자, 그의 측근들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어찌나 호들갑을 떨던지, 누가 보면 힐다 공자가 죽었다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나는 혀를 내두르며 치료술사의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힐다 공자 쪽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잠깐 비켜주십시오.”

“비키라니! 그게 대체 무슨……!”

“걱정 마십시오. 치료만 해줄 생각이니까요.”

괜히 이대로 방치했다가 뭔가 잘 못 되어서 힐다 공자가 죽기라도 한다면 레이첼의 입장이 곤란해질 것이 틀림없었다. 더욱이 화병을 이기지 못 하고 기절한 사람을 몰인정하게 감옥에 가두어둘 수도 없을 테니, 그건 또 내 입장에선 찜찜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힐다 공자를 온전한 몸 상태로 만들어서 지하 감옥에 가둬놓는 것이 가장 깔끔한 마무리였다.

“……상처 회복, 체력 회복.”

내가 주문을 외자, 새하얀 수증기가 지팡이 밖으로 흘러나와서는 힐다 공자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끙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공자가 깨어났다.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힐다 공자의 측근들이 도무지 믿을 수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토록 효과가 빠른 치료 마법이라니…….”

“현자라는 명성이 결코 허명이 아니었구나!”

다들 하나 같이 경외감이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거였어?’

나는 입 안이 떨떠름해지는 것을 느꼈다.

왜냐면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치료술사의 지팡이는 일반 등급 밖에 되지 않는 장비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이토록 경외하며 바라볼 정도로 대단한 장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너, 너 이 자식……!”

그 때, 정신을 완전히 차린 힐다 공자가 날 향해 삿대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가신들이 기겁하며 공자를 서둘러 말리기 시작했다.

“공자님, 진정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지금은 화를 내실 때가 아닙니다!”

이리 말하며 힐다 공자를 진정시킨 측근들은 이후, 그의 귀에 입술을 바짝 데고서 무어라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자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일색 되더니, 이윽고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 태도가 어쩐지, 나를 굉장히 어려워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뭐지?’

뭔가 굉장히 찜찜했다. 하지만 그다지 나쁜 예감은 들지 않았다.

뭐랄까, 오히려 좋은 예감이 먼저 들었다.

‘……뭐, 일단은 내버려둬 볼까?’

굳이 여기서 그를 추궁해보았자, 순순히 대답해줄 것 같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힐다 공자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에 중년인, 로버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힐다 공자를 지하 감옥으로 끌고가 주시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현자님!”

로버트는 기세등등하게 대답하며, 경비병들을 시켜 힐다 공자를 끌고가기 시작했다.

물론 공자의 측근들도 같은 신세였다. 그리고 그렇게 힐다 공자와 그 측근들이 모두 끌려가고 나자,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많이 정돈되었다.

아니, 정돈되기만 할까? 다들 이제야 겨우 숨통이 트였다는 듯이 마음 놓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이 중에 몇몇 사람들은 시류에게 다가가 그녀의 활약을 칭송하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레이첼도 시류에게 고마움을 느낀 모양인지, 자기가 직접 다가가 감사의 말을 전하기까지 했다.

그 덕분에 시류는 자기가 의도치 않게,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다들 기분 좋아 보이네.’

물론 딱 한 명만 제외하고서 말이다.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애꿎은 엄지손톱을 입으로 물어뜯으며 불안에 떨고 있는 리나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으으, 시류의 주변에 사람들이 저렇게나 많이 몰려들다니……! 나만의 시류인데……! 시류는 나만의 왕자님인데……! 시류, 너무 그렇게 웃지 마! 웃으면 저 여우같은 계집애들이 반해버리잖아! 으으, 시류! 시류우……!”

애타게 울부짖고 있는 리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쓴웃음부터 새어나왔다.

저렇게 불안에 떨 바엔 차라리 자기가 직접 나서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나는 이런 의문을 가진 채로 리나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내가 다가온 기척을 느낀 모양인지, 리나가 혼잣말을 딱 멈추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왜 자기한테 다가오냐며 묻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불안하시면 리나 씨가 직접 시류 씨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을 쳐내면 되지 않습니까?”

“흥! 저라고 해서 그러고 싶지 않은 줄 아세요? 진짜 마음 같아선……. 저 불여시 같은 것들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싶지만……. 시류가 싫어하는 걸요. 저번에도 그랬다가……. 혼나기도 했고…….”

리나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서럽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확실히 혼날만 했다.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긴다니……. 민폐도 그런 민폐가 또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재밌게 하느냐?”

언제 온 걸까. 레이첼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질투가 섞여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리나에게 작업을 걸고 있다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그녀의 질투심은 완전히 잘 못 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향하고 있는 애정의 대상은 시류였기 때문이었다.

리나는 그저 시류를 더욱 맛있게 먹기 위해서 준비하는 조미료에 불과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물론 있으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잠깐 연애 상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 누가 연애 상담을 했다는 건 가요! 게다가 도움이라곤 하나도 안 됐거든요!”

연애 상담이란 말에 리나가 격렬하게 반응했다. 분하고 억울하단 기색마저도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리나와는 다르게 레이첼은 흥미가 돋는다는 듯이 어머 하고 작게 탄성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그대가 연애 상담을 하다니……. 그럼 나도 도와줘야겠구나.”

“네?”

이리 말하며 리나를 바라보는 레이첼의 태도에 리나는 적잖게 당황한 듯이 벙찐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가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만들어주마. 시류, 그와 둘이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거라.”

“저, 정말로요?”

“정말이다.”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주자, 리나는 꺅! 하고 촐싹 맞는 탄성을 터트리며 두 팔을 하늘 높이 번쩍 들었다.

단 둘이 있게 해준다는 게, 어지간히도 좋은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 텐데…….’

너트끼리 백날 맞춰봐라. 끼워지나.

너트란 자고로 볼트와 함께 있을 때, 빛이 나는 법이었다.

그리고 참고로 볼트에는 여러 개의 너트를 끼워 넣을 수 있다. 길면 길수록 더 많은 너트를 끼워넣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내 볼트는 상당히 긴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너트 대여섯 개 정도는 거뜬히 끼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잘 하면 열 개까지 될지도.’

언제 한 번 시험해봐야 될 듯이 싶었다.

나는 이런 생뚱맞은 생각을 하며 레이첼과 리나를 바라보다가 슬슬 현계로 돌아가야 된다는 걸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레이첼 씨.”

“응? 왜 부르느냐?”

내 부름에 레이첼이 날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어보았다. 이에 나는 다정하기 짝이 없는 손길로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그만 슬슬 돌아가 볼까 합니다.”

“뭐?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려고 하느냐? 아직 하룻밤도 보내지 않았건만…….”

레이첼의 목소리에선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실의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는 이상, 언제까지고 계속 여기에만 머물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하룻밤이라도 자고 가고 싶지만……. 해야 될 일이 많이 밀려있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부탁해도 안 되겠느냐?”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눈망울을 글썽이는 레이첼의 태도에 가슴이 미어져왔다.

만약에 레이첼의 가슴이 조금만 더 작았다면 나는 감히 떠날 생각을 하지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레이첼의 가슴은 상당히 큰 편이었다.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다그치며 입을 열었다.

“시간 날 때마다 오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그렇게 아쉬워하지 마세요.”

“그대가 밉구나.”

이런 내 위로에도 불구하고 레이첼은 좀처럼 마음이 풀리지 않는 모양인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에 나는 그녀의 입술을 도로 넣어주고자, 고개를 숙여 키스를 해주었다. 그러자 삐죽 나와 있던 입술이 언제 자기가 튀어나왔냐는 듯이 스르륵 들어가며 얌전히 입술을 벌렸다.

나는 그녀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어,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치열과 혀를 훑어내며 진심으로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농밀한 키스 끝에 입술을 떼어낸 나는 레이첼의 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며 속삭였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

레이첼은 마뜩찮은 표정을 지어보이면서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이처럼 레이첼을 충분히 달래준 나는 저 멀리,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시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쩔까.’

시류한테도 인사를 하고 가는 편이 낫겠지? 하지만 차마 시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류가 눈물이라도 뚝뚝 흘리면서 나보고 자기를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기라도 한다면 나는 여기를 영영 떠날 수 없게 될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날 수도 없고…….’

만약에 시류에게 미움이라도 받게 된다면……? 말없이 떠나버린 나를 원망하는 시류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그래, 역시 무리다. 작별 인사를 하고 가자.

속으로 끙끙 앓던 나는 이윽고 결단을 내렸다.

“떠나기 전에 잠깐 시류와 이야기를 나누고 가겠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레이첼의 입술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키스를 해주고는 시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이처럼 자기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나를 발견한 시류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밀어내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현자님, 말씀대로였습니다! 정말로……. 믿으니까 되었습니다.”

활짝 웃고 있는 시류의 모습이 만개한 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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