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61화 (461/599)

<-- [2차 예선] -->

“그럼 나중에 또 오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네.”

나를 배웅해주는 운피레아를 뒤로 하고서 저택의 중앙 현관으로 가자,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시류 발렌시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웃는 얼굴을 하고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시류 또한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어디에 계셨습니까?”

나는 시류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생기가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 기쁨에 찬 모습이라고 하는 편이 좀 더 옳을 것이다. 어쩐지 나도 덩달아 기분이 들뜨는 듯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이런 내 말에 시류는 아하. 하고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그럼 이제 현실로 돌아가는 겁니까?”

“네.”

이제 그만 현실로 돌아가야 된다는 사실에 시류는 걱정이 많이 되는 모양인지, 불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이길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그것도 아주 손쉽게 이길 겁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시류는 자신이 얼마나 강해진 것인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은 모양인지 여전히 불안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답답하기 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일어났다. 상대 기사에게 얼마나 호되게 당했으면,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던 시류가 이런 반응을 보일까? 만약 이대로 현실로 돌아간다면 시류는 분명 지레 겁을 먹고서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 할 것이다.

“……불안한가요?”

“…….”

시류는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정곡이 찔린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가엾어 보였다.

나는 이런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해서 두 손을 뻗었다. 이럴 땐, 그저 말없이 안아주는 게 제일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시류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주자, 그녀는 감동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냉큼 내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면, 절 믿으세요.”

나는 시류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속삭여주었다. 그러자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네, 믿을게요.”

시류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잔뜩 서려있었다.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짙은 갈색 빛을 머금고 있는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매혹적인 색채였다. 그녀는 더 이상 떨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 갈까요?”

“네!”

방실방실 웃으며 힘차게 대답하는 시류를 보고 있자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대뜸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해주었다. 그러자 한순간, 시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기에 나는 두세 번 더 키스를 해주고는 이계로 돌아갔다.

‘음…….’

이계로 돌아온 순간, 눈앞이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쓰러져 있는 시류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상대 기사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의 검을 어깨 높이까지 치켜들며 힐다 공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공자가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무언가 신호를 주고받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대로 상대 기사는 명예 결투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레이첼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정말 실망이로군! 고작 이 정도 실력 밖에 되지 않는 애송이를 명예 결투의 대리 기사로 내세울 줄이야! 심지어 이바이크 백작 가의 사람도 아니지 않나! 당신들은 신성시 되어야 될 명예 결투를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소!”

상대 기사의 비아냥거림에 레이첼은 무척이나 불쾌하단 듯이 눈살을 와락 찌푸렸다.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분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 한명 쉬이 말문을 열지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상대 기사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예 결투에 내세울 대리 기사를 다시 데려와라.

아무래도 힐다 공자는 고작 한 명 죽는 걸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대로, 상대 기사는 본보기라도 보일 생각인 모양인지 그대로 시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금방이라도 시류의 머리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옆에서 ‘꺄악!’하는 리나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런 비명 소리가 무색하게도 상대 기사의 검은 애꿎은 땅바닥만 때렸다.

까앙!

상대 기사는 설마 시류가 자신의 검을 피할 줄은 몰랐다는 듯이 경악했다. 그가 알고 있는 시류의 상태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헉!”

이처럼 그의 공격이 빗나가자, 시류에게 기회가 생겼다. 그녀는 왼발을 축으로 회전력을 실어, 상대 기사를 걷어찼다.

이전처럼 정직한 공격이었지만, 그 속도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상대 기사는 피할 엄두도 내지 못 한 채 그대로 옆구리를 걷어차이고 말았다.

퍽!

다음 순간, 상대 기사의 육중한 몸뚱이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가 입고 있던 두꺼운 갑주는 알루미늄 깡통처럼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심지어 시류가 걷어찬 옆구리에는 선명한 발자국이 찍혀있기까지 했다.

대체 얼마나 강하게 걷어찼기에 저런 자국이 남는다는 말인가? 살짝 어이가 없어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다들 하나 같이 입을 다물지 못 하고 있었다.

쿵!

이윽고 상대 기사의 몸이 바닥에 떨어지자, 순식간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몇몇은 경외감이 서린 눈초리로 시류를 바라보고 있었고, 또 몇몇은 두려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명예 결투를 중재해야 될 신관조차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저 이 자리에 감도고 있는 소리라고는 상대 기사가 쿨럭쿨럭 대며 기침하는 소리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상대 기사는 시류에게 걷어차이면서 내장이 크게 다친 모양인지, 기침과 함께 새빨간 핏물을 토해내다가 결국 기절한 듯이 추욱 늘어지고 말았다.

“…….”

그 때, 시류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는 듯이 말이다.

‘어떻게 된 거긴…….’

정기 주입으로 레벨을 올려줬지. 하지만 이걸 곧이곧대로 설명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여보이고는 힐다 공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멍하니, 자신의 대리 기사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명예 결투를 빌미로 이바이크 백작 가에 실컷 화풀이를 할 속셈이었을 텐데, 뜻밖에도 자신이 내세운 대리 기사가 시류의 발차기 한 방에 황천으로 가버린 것이었다.

“으으윽…….”

침묵만이 가득한 이 공간에 힐다 공자의 침음성이 조용히 울려 펴졌다.

지금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이 싶었다.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한순간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려버린 탓에 약간 부담스럽긴 했지만, 나는 대담하면서도 침착하게 말문을 열었다.

“명예 결투의 승자가 정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러한 내 말에 다들 겨우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저마다 고개를 주억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명예 결투를 주관하는 신관 또한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다급히 앞으로 나왔다.

“이번 명예 결투의 승자는 이바이크 백작 가의 대리 기사임을 밝힙니다.”

“오오……!”

이처럼 신관이 명예 결투의 승자를 밝히자,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기뻐했다. 그러나 이번 명예 결투에서 패하게 된 힐다 공자는 도저히 이 결과에 승복할 수가 없는 모양인지, 잔뜩 성이 난 표정을 지어보이며 앞으로 나왔다.

“웃기지 마라! 난 승복할 수 없다! 분명히 저 녀석이 비겁한 수를 써서 이긴 것이 틀림없다!”

힐다 공자의 외침에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 또한 이에 질 수 없다는 크게 소리치며 맞받아쳤다.

“억지 좀 그만 부리시오! 이 결투의 승자는 누가 봐도 시류 경이오!”

“그렇소! 언제까지 그런 억지를 계속 부릴 생각이오!”

이처럼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이 격렬하게 반발해보지만, 힐다 공자의 기세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흉험해졌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겠다는 식이었다. 하긴 그의 입장에선 여기서 밀렸다간 꼼짝없이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아니, 잃기만 할까?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험해질지 몰랐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더없이 추하게 발악하고 있었다.

“명예 결투를 다시 신청하겠다!”

“말도 안 되오! 절대로 받아드릴 수 없소!”

두 집단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금방이라도 칼부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신관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명예 결투로 죄의 유무가 명백하게 드러났소! 힐다 공자, 계속 그런 식으로 토를 단다면 나를 비롯한 아단트 교단은 더 이상 묵인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오!”

신관이 큰 소리로 엄포를 내어놓자, 순식간에 두 집단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러나 힐다 공자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또다시 무언가 흉계를 꾸미려는 모양이었다.

‘그건 안 되지.’

이 이상으로 그에게 발목이 잡히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하물며 언제까지고 계속 여기에 머물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이계에 머물고 있는 동안 현계의 시간이 느리지만 꾸준히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되도록 여기서 종지부를 지어야만 되었다.

‘……여기서 힘의 차이를 똑똑히 보여준다면 다른 생각은 절대로 못 하겠지.’

나는 이리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힐다 공자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명예 결투를 좀 더 진행시켜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러한 내 말에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이 다들 하나 얼빠진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시선을 간단히 무시하며 힐다 공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공자는 굉장히 찜찜해하면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처럼 그가 동의하자, 나는 신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명예 결투를 좀 더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이런 경우는 전례가 없었지만……. 가능은 할 겁니다.”

“그럼 됐군요. 바로 진행하지요.”

가능하단 신관의 대답에 나는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을 보채서 다음 명예 결투를 진행하도록 했다. 이에 다들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이바이크 백작 가의 은인인 내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기에 얌전히 따라주었다. 게다가 레이첼 또한 나를 믿는다는 듯이 그리 하라고 하니,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명예 결투가 다시 진행되었다.

이번에 힐다 공자 측에서 나선 기사는 덩치가 무척이나 큰 거구의 사내였다. 그 때문일까?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시류가 어린애처럼 보였다.

“봐주지 마라!”

그 때, 힐다 공자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까 전에 진 것이 상당히 억울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런 공자의 외침에 거구의 사내는 마치 부응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크게 고함성을 내지르며 시류를 향해 달려들었다.

“흐아아압!!”

기합성이 어찌나 크던지, 땅이 울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기합성이 무색하게도, 그가 두 걸음을 채 내딛기도 전에 상반신이 갈라지고 말았다.

촤악!

“컥……. 꺼어억…….”

쿵!

거구의 사내는 지금 자신이 무엇에 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뒤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이런 그의 심정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물론 나 또한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시류가 강해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나는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매니저 어플을 실행시키자,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하나 떠올라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축하합니다!]

[시류 발렌시아가 스킬 ‘쾌속검’을 획득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