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59화 (459/599)

<-- [2차 예선] -->

“이제 그만 슬슬 일어날까요?”

“벌써요……?”

짧게 자른 갈색단발과 짙은 갈색 빛이 감도는 눈동자, 갸름한 턱과 유려한 콧날, 가는 선을 가진 전형적인 미소년상의 시류가 마치 어리광을 부리듯이 내 품 안으로 파고들어왔다.

만사가 귀찮아진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렇게 내 품에 안겨있는 게, 너무 좋던가.

물론 후자일 확률이 더 높았다.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고서 내 몸을 두 팔로 꽈악 끌어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떨어지기 싫다며 칭얼대는 어린애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나는 이처럼 칭얼대는 시류를 달래주고자, 등허리를 부드럽게 토닥여주며 입을 열었다.

“명예 결투는 어쩌고요?”

“아……! 그, 그건…….”

이런 내 말에 그제야 자기가 명예 결투 도중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시류가 짤막한 탄성을 터트리며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렸다.

“나중에 또 안아드릴 테니까, 너무 그렇게 아쉬워하지 마세요.”

“정말요?”

나중에 또 안아주겠다는 내 말에 시류가 반색하며 크게 소리쳐 물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도 모르게 ‘쿡.’하고 웃고 말았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웃자, 시류는 움찔 어깨를 떨면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동시에 시류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내가 웃는 걸 보고, 자신이 얼마나 애처럼 좋아했던 것인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시류는 애꿎은 손가락을 자꾸만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 그러니까……. 꼭 안아달란 건 아닌데……. 아니, 안아주셨으면 하는데……. 우읏.”

하지만 좀처럼 자기가 생각대로 말이 나오질 않는 모양인지, 자꾸만 말이 뚝뚝 끊겼다.

이제껏 살면서 연애라곤 한 번도 해보지 않는 시류에게 있어서, 하물며 남자로 살아온 시류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건, 너무나도 낯설고 어려운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랬기에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시류의 몸을 꼬옥 끌어안아주며 입을 열었다.

“시류 씨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안아드릴 테니까, 너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러한 내 말에 시류는 삐죽 입술을 내밀며 대꾸했다.

“자꾸 그렇게 받아주시니까……. 제가 꼭 어린애처럼 떼를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원래는 이러지 않았는데…….”

“원래 사랑에 빠지면 다들 어린애가 되는 법입니다.”

“현자님은 안 그렇잖아요.”

시류를 무척이나 억울하단 듯이 말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떡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시류와는 다르게 나는 아주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가졌었다. 아무리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사실을 대놓고 가르쳐 줄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간 시류가 분명 실망할 테니까.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참고 있는 겁니다.”

이리 말한 나는 시류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끌어안았다.

내가 지금 그녀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 것인지, 얼마나 참고 있는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억세게 끌어안자, 시류는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몸을 마주 안아주었다.

“저도 꾹 참아보겠습니다.”

시류는 마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말하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이에 대견한 마음이 든 나는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찌걱이는 음란한 소리와 함께 질 내에 삽입되어 있는 남근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

동시에 시류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서렸다. 그녀는 자신의 뱃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내 남근이 빠져나가자, 그 빈자리의 허전함을 감출 수 없다는 듯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서 배꼽 위에 살살 문질렀다.

그리고는 이내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어떤 느낌이요?”

“아주 오랫동안……. 원래부터 있었던 게,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요.”

이리 말한 시류는 고개를 살짝 들어, 내 남근을 힐끔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곤 다시 시선을 땅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내 남근을 마주보니, 새삼 부끄러움이 또다시 밀려온 모양이었다.

‘으음…….’

이처럼 부끄러움을 타는 시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욕정이 불 같이 일어났다.

이거 너무 치명적일 정도로 귀여운 게 아닌가? 게다가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는 분홍빛 유두는 국보 1호 마냥 태곳적부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 유네스코에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신청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남들과 공유하는 것이니, 나는 이 마음을 차분히 억눌렀다.

아무리 보기 좋다고는 하지만, 이런 세계의 보물을 남들과 함부로 나눌 수는 없지 않는가? 원래 좋은 건, 나 혼자 독식해야하는 법이었다.

“혼자서 일어나실 수 있겠습니까?”

“아, 네! 아……. 앗!”

혼자서 일어날 수 있겠냐는 내 말에 시류를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하지만 그녀가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손을 뻗어, 시류의 몸을 번쩍 들어서 안았다.

흔히들 공주님 안기라고 부르는 자세로 말이다.

그리고 이처럼 내 품에 안기게 된 시류를 자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입을 열었다.

“……저, 저 혼자서 걸을 수 있는데…….”

이리 말하며 부끄러워하는 시류의 태도에 나는 부드럽게 미소지어보이며 대답했다.

“원래 이럴 땐, 혼자 못 일어나겠다면서 어리광을 피우는 겁니다.”

“그, 그런가요?”

시류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이렇게 내 품에 안겨있는 게 그다지 싫지 않은 모양인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얌전히 내 품에 안겼다. 그리고 나는 이처럼 시류를 품에 안은 채로 저택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이계로 돌아가도 되었지만, 지금 시류의 몸에는 애액과 정액 그리고 오줌이 잔뜩 묻어있는 상태였다. 물론 이대로 이계로 돌아간다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 사라지겠지만……. 아무래도 정신적으로는 찝찝함이 남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시류에게 잠깐 씻을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린과 운피레아에게 따로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저택으로 돌아간 뒤에 시류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 후, 샤워기의 사용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이런 건, 난생 처음 봅니다.”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쏴~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에 시류는 굉장히 신기하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긴 중세 시대 정도의 과학 기술을 보유한 이계에서 살고 있는 시류에게는 이런 식의 기계장치가 무척이나 생소할 것이다.

실제로 이바이크 백작 가의 목욕탕에는 이런 장치가 없었으니 말이다.

“천천히 씻고 나오세요.”

“네!”

이런 내 말에 시류는 무척이나 신이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반대로 나를 살짝 실망하고 말았다.

‘어리광 좀 부려도 된다니까…….’

물론 시류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한 평생을 남자처럼 살아왔는데, 그게 쉽게 바뀌겠는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겉으론 웃으며 화장실을 나가주었다.

‘……차차 바꿔나갈 수밖에.’

나는 이리 생각하며 1번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류의 옷을 발견한 나는 그걸 주워든 뒤에 다시 화장실로 돌아가서 문 앞에 두었다. 이러면 씻고 나온 시류가 알아서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이처럼 깔끔하게 뒤처리까지 한 나는 아이린과 운피레아를 찾아 저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소파에 나란히 마주앉은 채로 한가롭게 다과회를 즐기고 있는 하이 엘프 모녀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메이드들이라니…….’

누가 보면 메이드가 아니라 귀부인들이라고 착각할 것이다.

새삼 이바이크 백작 가의 시녀들과 비교가 되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바이크 백작 가의 시녀들은 전문 시녀로서의 교육을 받은데다가 시녀장이라는 총괄 책임자가 있었다. 반면에 아이린과 운피레아는 어떤가? 시녀로서의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데다가 총괄 책임자라는 것도 없었다.

마치 내가 메이드란 이름의 게임을 구매했더니, 속 내용물은 전혀 다른 엉뚱한 게 들어있었고 정작 메이드는 DLC로 따로 구매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딱 두 가지, 다행인 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등장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린과 운피레아가 엄청난 미인들이라는 점과 모녀라는 점이었다.

“크흠, 여기 계셨습니까?”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말문을 열자, 아이린과 운피레아, 두 사람 모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린은 언제나처럼 별다른 표정 없이 나를 바라보았고, 운피레아는 이런 딸과는 다르게 화사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너무나도 상반된 모녀의 반응에 두 사람이 정말로 모녀지간인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 경험상, 두 사람은 틀림없는 모녀지간이었다.

그 증거로 내 품에만 안기면 아이린의 얼음장 같던 표정이 눈 녹듯이 스르륵 녹아내려, 그 아래 꽁꽁 숨겨두었던 속살까지 훤히 보여주니 말이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아이린과 운피레아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운피레아가 엉덩이를 들어, 살짝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보고 여기에 앉으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나는 사양하지 않고,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았다.

“어쩐 일이세요, 주인님?”

운피레아는 은근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내게 물으며 빈 찻잔에 차를 따랐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어떤 거요?”

뭐든지 물어보라는 식으로 말하며 내게 찻잔을 내리는 운피레아의 행동에 나는 감사의 뜻에서 살짝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찻잔을 건네받았다. 찻잔 안에 담겨져 있는 차는 연한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한 모금 마셔보니, 살짝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느껴졌다. 마치 뜨거운 매실차를 마시는 것만 같았다.

“엘레노아는 지금 어떻습니까?”

나는 일단 엘레노아의 근황부터 물어보았다.

분명히 운피레아에게 맡기고 갔을 텐데, 이 저택 어디에서도 엘레노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엘레노아 양이라면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요.”

“아직도요?”

“네. 혹시 뭔가 문제라도……?”

내가 깜짝 놀라서 묻자, 운피레아는 혹시 자기가 무언가 실수한 줄 알고 한층 더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나는 그녀를 안심시켜주고자, 평소보다 더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여주었다.

“그건 아닙니다.”

이러한 내 말에 운피레아는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따가 찾아가봐야겠네.’

나는 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뒤에 아이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이린 씨, 주방에 가보니까 쿠키가 있던데 그거 더 있습니까?”

“응? 아……. 그걸 그대가 먹었던 것이냐?”

“네. 혹시 먹으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다. 애초에…….”

여기까지 말하던 아이린은 돌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모양인지, 귀를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위아래로 파닥파닥 흔들어댔다. 저러다가 정말로 귀만 뚝 떨어져서 날아가 버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아이린이 숨기고 있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애초에 뭐요?”

“벼, 별거 아니다.”

이처럼 내가 보채자, 아이린은 획 하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이미 발동한 내 호기심은 멈출 줄 몰랐다. 아니, 오히려 아이린을 괴롭히고 싶다는 가학심마저도 일어나고 있었다.

“어서 말하지 않는다면 아까 전에 있었던 일을 운피레아 씨에게 전부 다 말할 겁니다.”

“……!”

이런 내 말에 아이린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동시에 옆에서 가만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운피레아가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게 물었다.

“어머, 아까 전에 있었던 일이라니요? 그게 대체 뭔가요?”

이리 물으며 운피레아가 내 곁으로 바짝 다가오자, 아이린이 재빨리 내 팔을 붙잡아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며 소리치듯 말했다.

“어머니는 모르셔도 됩니다!”

이리 말한 직후, 아이린은 무지하게 원망하는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이윽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워, 원래부터 그대에게 주려고 했었던 쿠키다.”

부끄러움에 젖다 못 해, 푹 절여진 듯한 목소리가 아이린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내 입가에 절로 아빠 미소가 매달렸다. 시류와는 또 다른 귀여움이었다.

‘둘 다 왜 이렇게 귀엽냐?’

시류가 겁 많은 토끼라면, 아이린은 까탈스런 고양이었다.

나중에 아이린과 시류, 두 사람을 나란히 세워둔다면 제법 볼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아이린의 입술에 키스해주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잘 먹었습니다. 쿠키가 아주 맛있던데요?”

“…….”

이런 내 말에 아이린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기쁜 듯, 수줍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운피레아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단 걸 깨닫고는 황급히 나를 밀쳐내었다.

어지간히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린이었다.

나는 허허, 웃고는 운피레아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운피레아 씨, 저를 엘레노아 씨가 있는 방까지 데려다주시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절 따라오세요.”

운피레아는 귀찮다는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내 부탁을 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나는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아이린에게도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아참, 아이린 씨. 다음에 또 쿠키를 만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 생각나면…….”

다소 퉁명스런 대답이긴 했지만, 아이린의 성격상 날 위해서 반드시 쿠키를 만들어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미리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고는 운피레아를 따라 엘레노아가 있는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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