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예선] -->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울 수가 있는 거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매번 볼 때마다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이런 복덩이를 놔두고서 며칠 동안이나 방치했었던 내가 머저리처럼 느껴졌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이미 벌어지고 난 뒤였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현재에 충실하게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시류가 마신 이뇨제의 효과가 충분히 발휘될 때까지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해대며 시간을 보냈다.
시류는 이런 내 행동에 약간 의아해하긴 했지만, 간식거리가 맛있어서 그런지 별다른 의심 없이 내 이야기에 어울려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40분쯤 지났을 무렵, 나는 손을 털고 일어났다.
시류에게 두 번째 벌을 주기 위해서였다.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
“네…….”
이런 내 말에 시류는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대답했다. 흡사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도 같았다.
측은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여기서 용서를 해주었다간 죽도 밥도 되지 않았다.
내가 뭣 땜에 시류 몰래 이뇨제를 먹였던가? 전부 다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나는 흐트러진 마음을 굳게 다잡은 뒤에 입을 열었다.
“너무 그렇게 기죽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두 번째로 줄 벌은 아주 간단한 거니까요.”
“간단한 거라면……. 어떤 겁니까?”
조심스레 질문을 던지는 시류의 태도에 나는 빙긋, 웃어 보이며 대답해주었다.
“산책이나 나가볼까 합니다.”
“네? 산책이요?”
시류는 전혀 생각지도 못 했다는 듯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하긴 누가 산책을 벌이라고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유감스럽게 시류가 할 산책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었다.
나는 온갖 도구들이 놓여있는 서랍 쪽으로 다가간 뒤에 목줄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시류가 움찔 몸을 떨면서 뒷걸음질 쳤다. 동시에 자신의 목에 채워져 있는 가죽 스트랩으로 되어 있는 개 목걸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지금부터 내가 뭘 하려는 것인지, 본능적으로 눈치 챈 모양이었다.
“……그, 그건 왜 갑자기 꺼내시는 겁니까?”
“왜 꺼냈겠습니까?”
“농담……. 이지요?”
“농담이라니요? 애완견과 함께 산책을 하려면 당연히 목줄을 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법으로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동물보호법 제 13조 2항. 소유자들은 등록대상 동물을 동반하고 외출 할 때에는 농림축산신품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목줄 등 안전조치를 해야 된다고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현실의 법이긴 했지만……. 뭐, 어떻겠는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였다.
“전 애완견 같은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시류가 분개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에 나는 입가에 머금고 있던 미소를 거두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제 애완견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제가 시류 씨에게 드리는 두 번째 벌이기도 하지요.”
“아무리 벌이라도 그렇지……. 사람을 애완견 취급하다니…….”
시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게 소리쳤다. 그러나 여기서 아무리 그녀가 납득하지 못 한다고 하더라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목줄을 오른손에 쥔 채로 시류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때마다 시류도 내 발걸음에 맞춰,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그래서 벌을 받기 싫으시다는 겁니까?”
“벌을 받기 싫다는 게 아니라……. 애완견 취급 같은 걸, 받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하다못해 옷이라도 갈아입게 해주십시오.”
“그건 안 됩니다. 그 옷을 입고 있지 않으면 벌의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그, 그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벌을 받기 싫으시다면, 지금이라도 리나 씨와 바꾸셔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상관없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시류가 아니어서는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시류를 몰아붙이지 못 하면 내가 원하는 바를 결코 얻어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대며 시류를 벽까지 몰아붙였다. 그리고 이윽고 그녀의 등이 벽에 맞닿게 되자, 시류는 암담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에 나는 그녀의 고민을 해결해주고자, 무척이나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여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는 인적이 뜸한 곳이라서 돌아다니는 사람도 얼마 없으니까요.”
좀 더 정확히는 열 네 명의 엘프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 엘프들은 전부 다 하나 같이 숲 속 깊은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내가 일부러 숲 속까지 들어가지 않는 이상, 마주칠 일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하지만 그 사실은 모르는 시류는 불안감과 수치심에 물든 표정을 짓고서 어쩔 줄 몰라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걱정되신다면 제가 한 가지 좋은 방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좋은 방법이요?”
기대 어린 목소리로 묻는 시류의 태도에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해주었다.
“진짜 개처럼 네 발로 걸어보세요. 그러면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시류 씨의 모습을 보더라도, 그저 개라고만 생각할 테니까요.”
그러면서 나는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시류의 목걸이에 목줄을 채웠다.
“아윽!”
그 후, 목줄을 잡아당기자 시류의 몸이 앞으로 허물어졌다. 그리고 이처럼 강제로 땅바닥에 주저앉게 된 시류는 굉장히 분하다는 듯이 나를 사납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갑자기 이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사람을 개로 착각하는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 큿!”
내게 따지듯이 소리친 시류는 서둘러 제 몸을 일으켜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그녀는 미처 일어날 겨를도 갖지 못 한 채 네 발로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자, 잠깐……!”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멈춰 세워보려는 시류였지만, 나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발걸음을 옮겨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텅 비어있는 저택 내의 풍경과 함께 창문 너머로 붉은 노을빛이 한가득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잘 됐군.’
곧 있으면 해가 저물 것이다. 그러면 주변은 순식간에 어두워질 테고, 시류의 경계심은 극한까지 치솟을 것이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아주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시류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자, 절로 즐거워졌다.
“갈까요?”
“윽! 제, 제발……. 일어날 시간을……. 아읏!”
그 때, 시류가 수치심에 물든 얼굴로 내게 애원했다.
짐승처럼 네 발로 기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데, 그녀는 지금 전라에 가까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변태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시류가 이토록 내게 애원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더욱이 그 모습이 무척이나 불쌍했기에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쩔까?’
솔직히 나도 네 발로 기게 하는 건, 조금 심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물론 시류의 수치심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면서 네 발로 기게 하는 편이 가장 좋았다. 그리고 저택 밖에서는 개처럼 소변까지 보게 할 예정이었다. 그 때문에 이뇨제를 먹였던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나를 애타게 올려다보고 있는 시류를 보고 있자니, 안쓰러움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안 돼. 봐주지 말자.’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이건 시류에게 주는 벌이기도 했다.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일어나시려고요? 그랬다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더 잘 띌 텐데요? 혹시 다른 사람에게 알몸을 보여주는 취미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 그게 무슨…….”
“이거 알고 보니, 시류 씨는 노출증 변태였었군요.”
이러한 내 말에 시류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내가 한 말이 확실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장에 일어날 것처럼 자세를 취하던 그녀가 지금은 네 발로 엎드린 채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 어서 빨리 끝내주십시오.”
드디어 시류의 입술 사이로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이대로 네 발로 기어가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걱정 마세요. 금방 끝내드릴 테니까요.”
내가 의도한대로 움직이는 시류의 행동에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저택, 현관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윽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자, 금방이라도 붉은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노을 아래 드넓게 펼쳐진 들판과 그 옆에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숲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하아.”
그리고 이처럼 저택 밖으로 나오자, 시류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안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이 근처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안심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재미가 없었다.
나는 시류에게 겁을 주고자 이리 말했다.
“아직 안심하긴 이릅니다. 숲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까요.”
나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새빨간 거짓말을 술술 내뱉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시류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와 숲 속을 번갈아보았다. 이에 나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자, 어서 숲 속으로 들어가죠.”
“으윽.”
시류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숲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 발로 기어본 적이 없었던 만큼 그녀의 움직임은 부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시류가 한걸음씩 대딛을 때마다 크게 실룩거리는 엉덩이는 육감적인 자태를 뽐내며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너, 너무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이런 내 시선을 의식한 모양인지, 시류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애원했다.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내게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부끄러움이 그녀의 정신을 괴롭히고 좀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 괴로움 뒤에는 묘한 쾌감이 시류의 육체를 쿡쿡 쑤셔대고 있었다.
“흐읏…….”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나신에 가까운 옷차림을 하고서 밖을 돌아다닌다는 행위에 대한 배덕감이 시류의 육신을 휩쓴다. 그리고 그 배덕감이 그녀의 뱃속을 간질이며, 뜨거운 한숨을 내뱉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빠른데?’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이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시류의 모습에 나는 흥미를 느꼈다.
‘……조교의 방, 효과로 민감해진 만큼 더 빨리 느낀다는 건가.’
확실히 숲 속의 서늘한 공기가 내 피부를 스칠 때마다 오싹거렸다.
내가 이런데, 시류는 오죽 할까? 하물며 시류는 자신의 성별을 속여가면서까지, 자신을 꽁꽁 동여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이제껏 꽉 껴입고 있었던 답답한 가죽 갑옷을 벗어던진 채, 나체에 가까운 상태로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해방감은 분명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할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했다.
‘그러니 실험해봐야겠지.’
시류가 정말로 이 상황에서 느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 내 착각에 불과했던 것인지 말이다.
나는 시류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가 보는 앞에서 목줄을 놓아주며 입을 열었다.
“앞에 뭐가 있는지, 먼저 가서 살펴보고 오세요.”
“네? 저, 저 혼자서요……? 하지만 만약에 다른 사람하고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러면……. 저, 절대로 못해요.”
그저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모양인지, 시류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몇 번이고 가로저었다. 이에 나는 그녀를 안심시켜주고자, 다정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속삭여주었다.
“이 앞부터는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있어서, 누가 있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저 수풀 속에 들어가서 앞에 누가 없는지 살펴보고 오세요.”
“하지만……! 마, 만약에라도 들키기라도 하면요?”
“그러니까 들키지 않게 조심하셔야죠.”
이리 말한 직후, 나는 시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을 이었다.
“……아니면 밤새도록 여기에 있고 싶으신 겁니까?”
이런 내 물음에 시류는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이내 용기를 낸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제, 제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 있어주셔야 합니다. 절대로요! 어디 가시면 안 됩니다!”
“약속하겠습니다.”
간절한 목소리로 내게 신신당부를 하는 시류의 태도에 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해주었다. 그러자 시류는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낮은 포복 자세로 엉금엉금 기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느긋하게 구경하며 팔짱을 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