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48화 (448/599)

<-- [2차 예선] -->

“이 일을 대체 어떻게 합니까?”

“명예 결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지 않는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로버트조차도 갈피를 잡지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소란스런 분위기를 틈타, 힐다 공자가 경비병들을 밀쳐내며 선언하듯 말했다.

“명예 결투는 30분 뒤에 하도록 하지! 그 전까지 기사를 준비시켜둬라! 뭐, 있다면 말이지. 크큭.”

이리 말한 힐다 공자는 기분 나쁘게 낄낄대며 자신의 측근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반면에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은 분하다는 듯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점점 멀어지는 힐다 공자의 모습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나저나…….’

이 일을 어쩐다는 말인가?

에나를 불러온 다음에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보는 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다른 누군가가 에나를 알아보기라도 한다면 엄청나게 큰 소란이 일어나게 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대신 나가도 괜찮겠습니까?”

그 때, 시류가 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아무래도 다들 곤란해 하고 있으니, 자기라도 나서야 될 것 같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류의 레벨이 고작 7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낮은 레벨과는 다르게 등급이 Rare이긴 했다.

또한 시류의 스킬 중에는 영웅의 씨앗이란 게 존재했다.

그런 이상, 다른 평범한 사람보다는 훨씬 강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힐다 공자가 자신을 대신해서 내보낼 기사를 그저 그런 평범한 기사로 내보낼 리가 만무했다.

십중팔구 시류보다 강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험합니다.”

“하지만…….”

내가 단칼에 거절하자, 시류의 표정에 약간 불만이 서렸다. 시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윽고 결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기서 저 말고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사지로 뛰어들 필요는 없습니다.”

“사지라니요? 전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시류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인지, 표정에 화난 기색이 떠올랐다.

‘이걸 어쩌지.’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여기서 내가 시류를 아무리 말려보았자 소용없겠지?’

도리어 크게 반발을 할 것이다. 그러니 여기선 시류를 말리기보다는 차라리 허락해주는 편이 더 나을 듯이 싶었다. 그리고 시류가 명예 결투에 나가서 질 것 같으면, 그 땐 내가 나서서 도와주면 그만이었다.

‘아니지.’

가만 생각해보니, 이건 오히려 내게 기회인 듯이 싶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웃음기를 꾹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시류 씨가 명예 결투에 나가서 질 것 같을 때, 제가 나서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지면 졌지, 질 것 같을 때는 또 무슨 뜻입니까? 게다가 명예 결투는 주신, 아단트 여신님 앞에서 행하는 신성한 결투입니다. 결투 도중에 제 3자가 난입한다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도와드리겠다는 건 아닙니다.”

“설마……! 마법을 쓰시겠다는 겁니까? 그런 비겁한 수는 제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마법도 아니니까 걱정 마십시오.”

물론 이것도 마법의 일종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시류, 본인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니 내가 쓰는 마법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나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말했다.

“……그냥 제가 아주 작은 도움을 드리는 것뿐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도움이란 겁니까?”

“이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아시게 될 테니까요.”

“…….”

이런 내 말에 시류는 심정이 복잡하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디서부터 믿고, 어디서부터 믿지 말아야 될지 쉬이 감이 잡히질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시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대신에 시류 씨는 그 때가 되면 제 말에 철저히 따르셔야 합니다.”

“따라야 된다니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편하게 벌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분명히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피우신 건, 바로 시류 씨니까요. 그러니까 그에 합당한 벌을 받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벌이라니…….”

시류는 뒤늦게 아차 싶은 생각이 든 모양인지, 주춤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나는 시류를 따라 한걸음 성큼 내딛으며 입을 열었다.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시류 씨가 명예 결투에 나서서 이기기만 하면 그만 아닙니까?”

“…….”

“아까 전의 그 자신감은 다 어디 갔습니까? 설마 겁이라도 먹은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내 도발에 시류는 아니나 다를까, 큰 목소리로 반박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주변의 이목이 우리에게로 집중되었다. 이에 나는 마침 잘 되었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에게 시류를 소개시켜주었다.

“여러분, 잠시 여길 봐주시겠습니까? 여기 제 옆에 서있는 시류 발렌시아가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명예 결투에 나서겠다고 합니다! 어떻겠습니까? 한번 믿어보시지 않겠습니까? 참고로 시류 발렌시아의 실력은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이리 말하며 시류를 내세우자,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이 저마다 감탄성을 터트리며 넙죽 절을 하기 시작했다.

“현자님께서 추천해주신 기사분이라면 충분히 믿을만하지요!”

“현자님은 진정으로 이바이크 백작 가의 은인이십니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처럼 고마움을 표시하는 가신들의 행동에 시류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매달렸다.

떨떠름해하고 있다는 게, 내 눈에 훤히 보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쩐다는 말인가? 다들 이렇게나 고마워하고 있는데, 여기서 ‘전 못 나갑니다.’라며 발을 뺀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그건 시류의 성격상 절대로 하지 못할 발언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게 생겼군.’

이 얼마나 고마운 상황이란 말인가? 나는 남몰래 웃음을 삼키며 시류와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을 지켜보았다. 한편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리나는 한층 더 반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시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 볼을 붉게 물들인 채로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걸 보아하니, 시류가 명예 결투에 나가서 이길 거라고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있는 듯이 싶었다.

대체 얼마나 콩깍지가 쓰이면 저런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좋았다. 저렇게나 시류를 믿고 의지하고, 다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는 리나 앞에서 시류를 안는다면 분명 내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여줄 것이 틀림없었다.

‘……기대되는 걸.’

분함에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을 리나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가신들과 함께 명예 결투를 벌일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명예 결투를 벌일 결투장은 굉장히 넓은 야외 수련장이었다.

결투를 벌이기에 더없이 적합해보였다. 하물며 주변에 서서 구경하기에도 좋았다.

나는 시류와 헤어져, 가신들의 안내를 받아 레이첼 곁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이런 내 기색을 느낀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싱긋 웃어보였다.

“힐다 공자가 명예 결투를 신청했다지?”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길 수 있을까?”

“이기게 만들 겁니다.”

이 방법은 에나에게도 한번 사용했던 방법이니, 실패할 리가 없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며 그녀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은근슬쩍 오른손을 뻗어, 내 허벅지를 만지는 레이첼이다. 어서 빨리 이 복잡한 일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와 섹스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실제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에서 요염함이 한 가득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런 레이첼을 달래주고자,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데고서 속삭여주었다.

“이따가 잔뜩 안아드릴 테니, 지금은 얌전히 계세요.”

이러한 내 속삭임에 레이첼은 한층 더 흥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기대하고 있으마.”

흥분으로 얼룩진 숨결이 내 목을 간질였다. 나는 그 감촉을 기분 좋게 즐기며 결투장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오늘 연회장에서 보았던 신관이 앞으로 나와서 시류와 힐다 공자의 대리 기사를 불렀다.

아무래도 주신 아단트 여신이 보는 앞에서 행하는 명예 결투이다 보니, 신관이 주관하게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신관에게 호명된 시류는 무척이나 긴장된 표정을 지어보이며 결투장 위로 올라왔다.

반면에 힐다 공자가 내세운 기사는 무척이나 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자신만만해 보이는군.’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이바이크 백작가 내에는 마땅히 있어야 될 기사가 단 한명도 없었다.

전부 다 에나의 손에 크게 다치거나 죽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기사가 명예 결투에 나올 리가 만무했다. 설혹 나온다고 할지라도 실력이 아주 형편없을 거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시류의 레벨은 상당히 낮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력은 어떨까?’

레벨과 실력이 항상 비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나 이건 게임이 아닌 현실이었다. 내가 예상지도 못한 변수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었다.

나는 흥미진진해짐을 느끼며 명예 결투를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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