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47화 (447/599)

<-- [2차 예선] -->

“방금 그 꼭두각시가 뭐라고 말한 거예요?”

그 때, 리나가 호기심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별거 아니었습니다.”

나는 스마트폰을 주머니 속에 도로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연회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어서 빨리 돌아갑시다. 자리를 너무 오랫동안 비우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테니까요.”

이러한 내 말에 다들 군말 없이 고개를 주억이며 수긍해주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레이첼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내 팔을 꼬옥 끌어안았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걸 보아하니, 어지간히도 내 몸이 그리웠던 모양이었다.

나는 내 팔에 닿는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을 만끽하며 레이첼과 함께 연회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처럼 우리가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던 사람들이 다들 언제 잡담을 나누고 있었냐는 듯이 하나둘씩 무리를 지어 우리 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세요. 호호.”

“그러게요. 그런데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그렇지, 자리를 너무 자주 비우시는 게 아닌가요?”

“어머, 왜 그러세요? 보기 좋기만 한 걸요. 전 오히려 부러울 지경인데요?”

귀부인들은 다들 하나 같이 레이첼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반면에 남성들은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굳이 따로 묻지 않더라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오해라고 할 수도 없겠네.’

물론 레이첼과 관계를 맺은 건,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혀를 내두르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저 멀리서 자신의 측근들과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힐다 공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슬슬 계획을 진행시키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대로,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거대한 케이크를 실은 수레가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엄청 크네.’

무척이나 호화로운 케이크였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케이크의 크기에 감탄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길렌이 아가씨를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케이크입니다.”

그러던 중에 중년인, 로버트가 우리 곁으로 다가와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배불뚝이 사내가 레이첼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서 무사히 돌아오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케이크는 제 작은 성의입니다.”

길렌은 자신이 직접 케이크를 잘라서 접시에 담았다.

누가 보더라도 굉장히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케이크 조각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아주 조금만 먹어도 치명적인 독이었다.

배불뚝이 사내는 케이크 조각이 담겨져 있는 접시를 레이첼에게 내밀었다.

“고맙구나.”

레이첼은 탐탁치 않아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면서도 순순히 접시를 건네받았다.

그 태도를 보아하니, 그녀 또한 직감적으로 이 케이크에 독이 들어있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않은 까닭은 분명 나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런 그녀의 믿음에 부응하고자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내 목소리가 연회장 안을 가로질렀다. 동시에 레이첼의 손도 멈췄다.

“왜 그러는가?”

“케이크 안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누군가 독을 탄 것 같군요.”

이런 내 말에 로버트가 깜짝 놀라며 소리치듯 물어보았다.

“독이라니요? 그게 정말입니까?”

“확실히 알 순 없지만, 제가 느끼기엔 그렇습니다.”

내 설명을 들은 로버트는 곧바로 케이크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케이크를 한 움큼 움켜쥐더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가롭게 땅바닥을 쪼고 있던 새들을 향해 케이크 조각을 뿌렸다. 그러자 여러 마리의 새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케이크 조각을 쪼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아니나 다를까, 새들이 하나둘씩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경악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성을 되찾은 로버트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경비병!”

그의 외침을 들은 경비병들이 연회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로버트는 그들을 향해 재차 명령을 내렸다.

“……연회장 밖으로 단 사람도 빠져나가지 못 하도록 철저하게 막게!”

중년인은 이렇게 명령을 내린 직후,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길렌을 향해 추궁하기 시작했다.

“길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설마 자네가 케이크 안에 독을 탄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로버트의 추궁에 길렌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발악하듯 소리쳤다. 그러나 그걸 곧이곧대로 들어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게! 그렇지 않으면 자네는 레이첼 아가씨를 독살하려 했단 혐의로 평생 죽을 때까지 지하 감옥에 처박혀 있어야 될 테니까! 물론 자네 가족들도 함께 말이야!”

“이, 이보게, 로버트! 나는 정말로 아니야!”

“자네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거듭되는 추궁에 길렌은 사시나무 떨 듯이 벌벌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언가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모양인지, 다급한 목소리로 말문을 떼었다.

“주, 주방에서 일하는 하녀……! 그래, 이번에 케이크를 만든 하녀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확실히 길렌의 말에는 일 리가 있었다.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비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좋아, 경비병! 이번에 케이크를 만든 하녀의 방을 샅샅이 뒤져보게! 독이 든 병이 나온다면 그 하녀가 범인이겠지.”

이런 그의 명령에 경비병들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길렌은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이 자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태도를 보아하니, 무조건 주방 하녀의 방에서 독이 든 병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기대는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독이 든 병은 없었습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돌아온 경비병이 이렇게 보고했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는 주방 하녀로 보이는 여자가 같이 있었다. 하녀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주변을 정신없이 돌아보고 있었다.

로버트는 그런 하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하녀가 이번에 케이크를 만든 하녀인가?”

“그렇습니다. 혹시 몰라서 데려왔습니다.”

이러한 경비병의 대답에 로버트는 허리를 숙여, 하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사실대로 말해라. 케이크에 누가 독을 넣었지?”

“저,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전 그저 케이크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하녀는 벌벌 떠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겁에 질려있는 하녀의 태도에 로버트는 마치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폈다. 그리고는 당장에라도 상대방을 찢어죽일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서 길렌을 쏘아보았다. 이에 지레 겁을 먹은 길렌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이 힐다 공자를 쳐다보았다.

물론 그 시선을 받은 힐다 공자는 와락 눈살을 찌푸리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

그건 명백한 실책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길렌의 행동은 그가 힐다 공자와 모종의 계약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다른 사람들도 본 모양인지,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서 길렌과 힐다 공자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쉬이 말문을 열지 못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길렌이 바라본 상대는 힐다 공자였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섣불리 공자를 추궁했다가는 되레 역으로 곤경에 처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로버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함부로 입을 열지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독이 든 병을 누가 하녀의 방에 숨겨두었는지, 레이첼을 독살하려고 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독이 든 병을 중간에 빼돌려서 힐다 공자의 방, 책상 서랍에 도로 넣어두기까지 했다.

나는 다른 이들을 대신해서 길렌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길렌 씨, 지금 어째서 힐다 공자를 바라본 겁니까?”

“그, 그게 무슨…….”

이런 내 말에 길렌은 그제야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오리발을 내밀어보려고 했다.

“방금 전에 분명히 쳐다보지 않았습니까? 무언가 숨기고 계신 것 같군요.”

“숨기다니! 나는…….”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털어놓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안 그러면 길렌 씨, 당신은 물론이고 무고한 가족들까지도 고통을 받게 될 텐데요? 설마 가족들과 함께 지하 감옥에서 평생 썩고 싶으신 겁니까?”

“…….”

협박에 가까운 내 말에 길렌은 입술을 꾹 다물고서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에 나는 허리를 숙여, 그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해주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죠.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다 밝힌다면 당신 하나만으로 끝내드리겠습니다.”

이러한 내 제안에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하지만 이내 그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내가 아무리 사실대로 밝힌다고 하더라도 힐다 공자가 범인이란 증거가 없는데…….”

“걱정 마십시오. 독이 든 병은 힐다 공자의 방에 있으니까요.”

“……!”

길렌의 얼굴에 경악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어째서 힐다 공자의 계획이 실패했던 것인지, 지금 이 순간 내 말을 듣고 깨달은 모양이었다. 동시에 그는 나를 진심으로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동안의 고생이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거절하실 겁니까?”

이어진 내 질문에 길렌은 한동안 침묵하더니, 이윽고 손으로 힐다 공자를 가리키며 말문을 열었다.

“저, 전부 힐다 공자가 지시한 일이었습니다.”

그의 고발에 힐다 공자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거짓말 치지 마라! 이건 모함이다!”

힐다 공자의 외침에 그 주변에 있던 측근들도 함께 모함이라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건 앞으로 두고 보면 알 일이었다.

나는 로버트에게 말했다.

“힐다 공자의 방을 뒤져보도록 하죠.”

이런 내 말에 로버트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만약에 힐다 공자의 방에서 독이 든 병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되레 현자님께서 위험해지실 겁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로버트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경비병, 나를 따라와라! 내가 직접 힐다 공자의 방을 뒤져보겠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힐다 공자님도 모셔와라!”

로버트는 혹시라도 힐다 공자가 나중에 딴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도 데려갔다.

이 때, 힐다 공자가 나와 길렌을 향해 무시무시한 눈길을 쏘아붙이며 으름장을 내어놓았다.

“날 건드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내 무고함이 밝혀지는 순간, 네 놈들은 전부 죽은 목숨인 줄 알고 있거라!”

그의 태도는 무척이나 자신만만했다.

자신의 방에서 독이 든 병이 발견될 거라고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걸 어쩌나? 그의 방, 서랍 속에 독이 든 병이 버젓이 들어있는데 말이다.

나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리며 로버트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이윽고 힐다 공자의 방에 도착하자, 로버트와 경비병들이 방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찾았습니다!”

불과 3분도 채 되지 않아서 한 병사가 서랍 속에서 독이 든 병을 발견했다.

“……!”

곁눈질로 힐다 공자의 안색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다 못 해 퍼렇게 질려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이건 그의 측근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하나 같이 끔찍한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기겁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힐다 공자!”

“…….”

로버트가 독이 든 병을 들이밀며 힐다 공자를 추궁하자, 공자는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끝이었다.

그가 빠져나갈 구멍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모험이오! 이건 분명 공자님을 모함하기 위해서 꾸민 흉계가 틀림없소!”

그 때, 힐다 공자의 측근 중에 하나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에 로버트가 즉각 반박했다.

“증거가 이토록 명백하게 있는데, 뭐가 모험이란 말인가!”

“아니오, 이건 틀림없이 모함이오!”

“계속 억지를 부리고 있군!”

로버트가 크게 화를 내며 한 걸음 성큼 내딛자, 힐다 공자의 측근 또한 이에 질세라 한 걸음 성큼 내딛으며 크게 소리쳤다.

“명예 결투를 신청하는 바이오! 주신, 아단트 여신님이 보는 앞에서 힐다 공자님의 결백을 증명해보이겠소!”

“……!”

이런 그의 외침에 로버트의 얼굴이 와락 찌푸렸다.

이건 이바이크 백작 가의 다른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힐다 공자는 마치 한 줄기, 광명이라도 본 것처럼 구김살 없이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명예 결투! 으하핫, 명예 결투를 신청하겠다!”

힐다 공자는 벌써부터 자신이 이긴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에 이해가 안 된 나는 주변 가신들을 붙잡고서 물어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힐다 공자의 기사가 그렇게나 강합니까?”

이런 내 물음에 가신들은 하나 같이 낙담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해주었다.

“강하기야 하지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 겁니까?”

거듭되는 내 추궁에 다들 하나 같이 근심 가득한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현재 이바이크 백작 가에는 명예 결투에 나설만한 기사가 단 한명도 없습니다.”

“…….”

그 말에 나는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나보다 먼저 이곳을 방문했었던 소피아와 에나가 장남 헤레스와 차남 토니를 납치하면 이바이크 백작가의 기사들을 모두 때려눕혔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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