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46화 (446/599)

<-- [2차 예선] -->

마침 힐다 공자의 방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었다. 나는 창문에 걸터앉은 뒤에 방 안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군.’

방 안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나는 창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독이 든 병을 숨겨둘 만한 장소를 물색해보았다.

‘……역시 책상 서랍 속이 가장 좋겠지?’

예로부터 중요한 물건은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것이 소설 속이든, 게임 속이든, 만화 속이든, 영화 속이든 말이다. 나는 그대로 껑충 뛰어 책상 위로 올라간 뒤에 서랍장을 열고, 그 안에 독이 든 병을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이걸로 됐군.”

누가 봐도 깔끔한 일처리였다.

나는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힐다 공자의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연회장 쪽으로 날아갔다.

‘두 사람 모두 잘 하고 있으려나.’

꼭두각시의 정체가 들킨 건 아닌지, 레이첼이 혹시라도 독이 든 음식을 먹은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너무 늦지 않게 일을 끝마치고 온 모양인지, 연회는 별다른 소동 없이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좋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나는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레이첼과 꼭두각시를 찾아보았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하하호호,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위장된 겉모습에 불과했다.

얼핏 보기엔 굉장히 다정해보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선 숨길 수 없는 혐오감과 살기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실제로 나는 두 사람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연회 중간 중간 말다툼을 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용케 안 들키고 있었군.’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준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두 사람에게 어떻게 알리지 고민해보았다.

‘내가 갑자기 연회 한복판에 나타나면 이상하게 여길 테니까 그건 할 수 없을 테고…….’

그렇다면 어딘가 적당한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뒤에 꼭두각시나 레이첼이 나를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이 싶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두 사람이 금방 눈치를 채서 나를 찾아와준다면 더없이 좋긴 하겠지만, 저렇게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 나를 귀신 같이 찾아내줄 거라고는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잠시 고민에 빠져있는데, 저 멀리 리나와 시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마침 두 사람 모두 연회장 외곽의 인적 드문 곳에 있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었다.

‘잘 됐군!’

나는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곧바로 시류와 리나 쪽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갑작스런 내 등에 리나가 ‘꺅!’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반면에 시류는 놀라기보다는 리나를 자기 등 뒤로 숨기며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자기도 같은 여자인 주제에 기사도 정신 하나만큼은 여느 남자 못지않은 대단한 시류였다.

“혀, 현자님……?”

이처럼 서로 상반된 두 여자의 태도를 평가하고 있는데, 리나가 조심스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이에 정신을 차린 나는 사죄의 뜻에서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네? 아, 아니에요! 막 그렇게까지 대단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거든요.”

“그렇습니까? 그럼 다행이군요.”

황급히 도리질을 하며 괜찮다고 말하는 리나의 태도에 나는 안심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바라보자, 시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이 계속 잊히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한 가지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부탁이요? 뭔가요?”

“지금 바로 연회장으로 돌아가서 레이첼 씨와 제 꼭두각시를 여기로 데려와주시겠습니까?”

이 주변에는 나와 시류, 리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딱히 자리를 옮길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내 부탁에 리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꼭두각시요?”

“지금 레이첼 씨와 함께 있는 건, 제가 만든 꼭두각시입니다.”

“에……? 에엑! 그럼 그게 가짜였다는 건가요?”

꼭두각시라는 말에 리나는 물론이고 시류까지도 경악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꼭두각시가 완벽하게 내 흉내를 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매니저 어플의 아이템은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이러한 내 말에 리나는 믿기 어렵단 표정을 지어보이긴 했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여기서 계속 물어보기보다는 직접 레이첼과 꼭두각시를 여기로 데려오는 것이 더 빠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리나는 ‘알았어요. 금방 데려올게요!’라고 말한 뒤에 시류와 함께 두 사람을 데리러 갔다. 그리고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나자, 저 멀리 반가운 표정을 짓고서 날 향해 뛰어오고 있는 레이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

그녀는 나를 구박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돌아와 준 것이 어지간히도 기쁜 모양인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내 몸을 꼬옥 끌어안았다. 반면에 꼭두각시는 이제야 겨우 해방되었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개운해하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보다 제가 없는 동안에 무슨 일은 없었습니까?”

“별다른 일은 없었다. 단지 저 못된 녀석이 자꾸만 나를 밀쳐내려 했다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이리 말하며 레이첼이 꼭두각시를 사납게 노려보자, 꼭두각시 또한 억울하단 듯이 항변했다.

“너야말로 쓸데없이 그 천박한 가슴을 자꾸만 내 팔에 가져다댔잖아! 눈이 있으면 이것 좀 봐봐라! 내 팔에 소름이 돋아난 게……! 지금도 그 때만 떠올려도 치가 떨린다.”

“쓸데없이 라니! 나라고 해서 네 녀석과 붙어있고 싶었는지 아느냐!”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나는 잠시 레이첼과 꼭두각시를 번갈아보다가 이내 리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기하단 듯이 꼭두각시를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와 쏙 빼닮은 꼭두각시가 무척이나 신기한 모양이었다.

‘신기하긴 하지.’

어디 한 곳 흠잡을 데 없이 외형적으로 완벽하게 닮았으니 말이다. 만약에 나중에 또다시 꼭두각시 아이템이 나온다면, 두고두고 잘 사용해먹을 수 있을 듯이 싶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매듭지은 뒤에 입을 열었다.

“준비를 다 끝마쳤으니, 이제 그만 돌아갈 준비를 하죠.”

이러한 내 말에 레이첼과 한창 말다툼을 하고 있던 꼭두각시가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내 역할은 이제 모두 끝난 건가, 주인?”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야수화, 독수리를 풀었다. 그리고는 꼭두각시를 마주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제야 속이 다 후련하군.”

꼭두각시는 진심으로 후련해하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레이첼이 싫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대로 헤어지려니 아쉽군요.”

이러한 내 말에 꼭두각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워 보이더니, 나와 악수를 하는 대신에 내 몸을 끌어안았다.

“나는 항상 주인과 함께 하고 있으니 아쉬워하지 말거라. 그리고…….”

꼭두각시는 시류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마저 말을 이었다.

“……시류, 그녀는 에나 못지않은 보물이다. 반드시 손에 넣어라.”

“…….”

진심 어린 목소리가 내 귓가를 세차게 두드렸다. 날 흥분시키는 울림이었다. 나는 가슴 속에서 거센 파문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이러한 내 대답을 들은 꼭두각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게 웃으며 내 몸을 놓아주었다.

그 모습에선 한 점 미련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나는 한동안 꼭두각시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아이템 ‘꼭두각시’의 사용을 끝마치시겠습니까?]

[주의. 남은 지속시간과는 상관없이 본 아이템은 삭제됩니다.]

[네 / 아니요]

정말로 사용을 끝마치겠냐고 묻는 알림문구에 나는 흡사 영혼의 반쪽을 놓아주는 심정으로 네를 선택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히 내 눈 앞에 서있던 꼭두각시가 마치 신기루라도 된 것처럼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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