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예선] -->
“없군요.”
마지막 책상 서랍장까지 확인을 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이 든 병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 방도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아쉬움에 부리로 서랍장을 콕콕 쪼아댔다. 반면에 나와 함께 자기 방을 뒤졌던 하녀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 모양인지,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방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휴……. 이러면 전 문제없는 거죠?”
자기 가슴을 오른손으로 쓸어내리며 내게 질문을 던지는 하녀의 태도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직 안심하기엔 이릅니다. 다른 하녀의 방에 독이 든 병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설마……. 제가 그 일을 도와드려야 하는 건 아니겠죠?”
하녀의 떨떠름한 표정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제 와서 모른 척 하려고요?”
“그건 아니지만……. 위험한 일 아니에요?”
하녀는 쭈뼛거리며 내게 재차 물어보았다. 하지만 다행이도 이 일은 그다지 위험한 일이었다.
이건 그저 힐다 공자의 측근들이 하녀의 방에 몰래 숨겨둔 독이 든 병을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하녀가 내게 물어본 대로 위험한 일이 생길 지도 몰랐다.
원래 세상일이란 게,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익히고 있는 스킬을 활용해서 그녀를 지켜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여차하면 치료술사의 지팡이를 사용해서 상처를 회복시켜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하녀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해주었다.
“걱정 마세요.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까요. 만약에 생긴다고 하더라도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드리겠습니다.”
“…….”
이런 내 대답에 하녀는 양 볼을 붉게 물들이며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왜 그러십니까?”
“네? 아……. 그게……. 누가 저를 지켜주겠다는 말은 난생 처음 들어봐서요.”
“저한테 반하셔도 좋을 건 하나도 없습니다만?”
“저,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독수리 주제에 너무 잘 생긴 거 아니에요?”
내 핀잔에 하녀는 발끈이라도 한 모양인지, 되레 크게 화를 내며 나를 원망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벼운 농담과도 같은 원망이었기에 나는 기껍게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짧은 만담을 끝으로 나는 다음 방을 찾아 떠나기 위해서 창틀 위로 뛰어올랐다.
그 후, 나는 하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왼편 방으로 넘어가서 문을 열어드릴 테니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서 오세요.”
“아, 네!”
하녀의 대답을 들은 나는 곧장 날아서 옆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굳게 닫혀있는 창문을 열어, 그 안으로 들어간 뒤에 하녀가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여기도 뒤지면 되나요?”
“네, 독이 든 병을 찾으시면 됩니다.”
“맡겨만 두세요!”
방 안으로 들어온 하녀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서 서랍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 혼자서 할 때는 15분도 더 걸렸을 일이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끝나버렸다.
확실히 하나보다는 둘이 더 나았고, 새보다는 인간이 훨씬 나았다.
‘데려오길 잘했네.’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된 것이다.
나는 이리 생각하며 다른 방으로 넘어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녀가 내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저기요, 독수리 님.”
“왜 그러십니까?”
“혹시 여자 친구 있으세요?”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그만 벙찌고 말았다.
지금 도대체 뭘 묻고 있단 말인가? 내가 어처구니가 없단 듯이 하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그만 머쓱해진 모양인지 헤헤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세요? 사람 무안해지게……. 제 농담이 그렇게나 방패였나요?”
“네? 방패요?”
“창의적이라고요.”
“…….”
“어? 안 재밌어요? 이거 듣고 안 터진 사람이 없는데?”
“…….”
안 터진 사람이 없다고? 칼 들고 쫓아오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만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그대로 획 하니, 창틀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는 다음 동그라미 쳐져 있는 방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다음 방은 여기서 왼편으로 세 번째에 있는 방입니다. 방금 전처럼 문을 열어 드릴 테니까, 조심해서 따라오세요.”
“아앗! 독수리 님, 정말 끝까지 안 웃으실 거예요?”
내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은 모양인지, 이상한데서 고집을 피우는 하녀다. 하지만 그것에 일일이 반응해줄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가볍게 무시하며 다음 방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짧은 비행 끝에 다음 방에 도착한 나는 방금 전처럼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하녀가 쨘! 하고 입소리를 내더니 내게 질문을 던졌다.
“독수리 님은 진짜 새가 뭔지 아세요?”
“글쎄요?”
“참새요!”
아니다, 이 악마야!
나는 진심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하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내 모습은 독수리였다.
독수리가 제아무리 얼굴을 찡그려보았자, 인간의 눈에는 거기서 거기였다.
“아몬드가 죽으면? 다이아몬드!”
“…….”
“소나무가 삐지면? 칫솔!”
“…….”
그, 그만……. 차라리 날 죽여줘.
나는 애원에 가까운 표정으로 하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아재 개그는 멈출 줄 몰랐다.
“소금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천일염!”
“…….”
나는 그만 절망한 나머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러자 하녀가 살짝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웃질 않으세요? 제 농담이 그렇게나 재미없었나요? 이상하네. 독수리하고 사람은 개그 코드가 서로 다른 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하녀의 태도에 나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한숨을 꾹 억누르며 말했다.
“그만하고 독이 든 병이나 찾아보죠.”
“네.”
이러한 내 말에 하녀는 그제야 독이 든 병을 찾을 마음이 든 모양인지, 방 안의 서랍장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때도 가끔씩 내게 되도 않는 아재 개그를 던지기도 했다.
“아, 맞아. 독수리 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도형이 뭔지 아시나요?”
“…….”
“원통이래요! 아이고, 원통해라! 쿠쿠쿡!”
내가 더 분하고 원통하다, 이 여자야!
지금 당장 부리로 물고 있는 옷가지를 하녀에게 던지고 싶었지만, 나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꾹 참았다.
여기서 하녀와 사이가 틀어져봤자, 하등 좋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하녀와 함께 이런 식으로 방 안을 뒤지는 것이 혼자 할 때보다 훨씬 더 빨랐다.
그런 이상, 아쉬운 쪽인 내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도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윽고 방 안을 다 뒤지고 나자, 하녀가 양 손을 제 어깨 높이까지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에 나는 요령 좋게 발로 서랍을 밀어 닫으며 대답했다.
“그런 것 같군요. 아무래도 다음 방으로 넘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방이 얼마나 더 남은 건가요?”
“다섯 개 정도 더 남아있는데……. 다음 방에서 독이 든 병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야겠죠.”
그래야지 저 하녀의 아재 개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이러한 생각에서 창틀 위로 올라간 뒤에 입을 열었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방입니다. 거기로 오세요.”
“네!”
자기가 원하는 만큼 아재 개그를 한 덕분인지, 하녀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물론 그 반대로 내 정신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이 일이 어서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건물 지붕을 넘어 맞은편 방의 창틀에 앉았다.
‘어라? 잠겨있네?’
이번 방의 창문은 잠금 장치로 단단히 잠겨있었다.
‘……뭔가 냄새가 나는데.’
왠지 모르게 이 방 안에 독이 든 병이 들어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잠금 장치로 잠겨있는 이상,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나는 창틀에서 살짝 물러선 뒤에 입을 열었다.
“슬라임 소환.”
슬라임을 소환하자, 내 몸집만한 슬라임이 흐물흐물거리며 나타났다. 이를 확인한 나는 부리로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잠근 장치를 가리키며 물어보았다.
“……창틀 사이로 들어가서 잠근 장치를 풀 수 있겠습니까?”
이런 내 물음에 슬라임은 촉수로 창문을 몇 번 만지더니, 이내 창틀 사이로 제 몸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액체 상태의 슬라임답게 좁디좁은 창틀 사이를 여유롭게 통과했다. 그리고는 내가 원하는 대로 잠근 장치를 풀어주었다. 이에 나는 곧바로 창문을 연 뒤에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큰 도움을 받았군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따로 상이라도 챙겨드리겠습니다.”
“…….”
이러한 내 말에 슬라임은 무척이나 신이 난 듯이 위아래로 꿀렁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나도 덩달아 신이 나는 듯했지만 언제까지고 하녀를 복도에 세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슬라임을 역소환한 뒤에 방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녀가 방 안으로 들어서며 입을 열었다.
“이번엔 자신작입니다!”
“아뇨, 그만하셔도 됩니다만…….”
나는 좋은 말로 사양하려 했지만, 하녀는 결코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흡사 소방차 놀이를 하고 있는 듯이 싶었다.
내가 아무리 빨간불을 외쳐도 멈추지 않는 소방차……. 소방차는 결코 멈추지 않아, boy.
“우유가 넘어지면 뭐라 하게요?”
“그, 글쎄요……?”
“아야!”
“…….”
너무나도 창의적이었기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체 어디서 저런 생각이 나오는 걸까? 나는 지금 당장 하녀의 정신세계를 해부해보고 싶단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그 충동을 차분히 억눌렀다.
왜냐하면 이 방 안에 독이 든 병이 들어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한번만 더 참아서, 독이 든 병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저 하녀와도 작별이었다.
더 이상 만날 일이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생각에서 서랍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이 방 안에 독이 든 병이 숨겨져 있을 것 같습니다. 어서 빨리 찾아보도록 하죠.”
“에에, 이번에도 안 웃으시는 거예요? 그렇게나 재미없었어요? 나름 자신작이었는데…….”
어지간히도 실망한 모양인지, 하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에 나는 예의상, 한번 대충 웃어주었다.
“하하, 재밌었습니다.”
“피, 거짓말~.”
“…….”
내 말이 거짓말이라며 핀잔을 주는 하녀의 태도에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이상으로 하녀와 말을 섞었다간 내 정신이 먼저 망가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묵묵히 서랍장을 뒤지기기 시작하자, 하녀도 나를 따라 서랍장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찾았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간 찾아 헤맸을까? 책상 옆에 놓여있는 서랍장 속에서 독이 든 병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물론 이게 독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투명한 유리로 된 병 안에 담겨져 있는 녹색 액체는 누가 보더라도 독처럼 보였다.
“여긴 없……. 어라? 찾으신 거예요?”
그 때, 하녀가 놀란 목소리로 내게 물어보았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독이 든 병을 보여주었다.
“네, 찾았습니다. 이제 이걸로 힐다 공자는 더 이상 무고한 하녀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수 없을 겁니다.”
“잘 됐네요!”
하녀는 진심으로 기뻐해하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에 나는 동감이란 뜻에서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독이 든 병을 발로 쥔 채로 날아올랐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버, 벌써요?”
“독이 든 병을 찾았으니, 더 이상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무언가 망설이는 듯, 말끝을 흐리던 하녀는 이윽고 힘겹게 용기를 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또 만날 수 있을까요?”
“…….”
아무래도 그 짧은 사이에 정이라도 든 모양이었다.
나는 무어라 대답을 해줘야 할지 한동안 고민하다가 이내 좋은 말로 헤어지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구태여 모난 말로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이게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제가 먼저 찾아가겠습니다.”
“항상 창문을 열어둘게요!”
“알겠습니다.”
“다음에도 꼭 와주셔야 해요!”
두 손을 꼬옥 모으고서 내게 간청하는 하녀의 태도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창밖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하녀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나를 지켜보았다.
어지간히도 나와 헤어지는 게, 섭섭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이었다.
나는 하녀의 시선을 무심하게 떨쳐내며, 힐다 공자의 방 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