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44화 (444/599)

<-- [2차 예선] -->

‘큰 깨달음을 얻어가는구나!’

이대로 꼭두각시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아쉬움을 물밀 듯이 밀려왔다. 하지만 힐다 공자의 흉계를 막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아쉬움을 애써 떨쳐내며 내 품에 안겨있는 레이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레이첼 씨, 하녀들의 방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이런 내 물음에 레이첼은 내 품에서 살짝 벗어나,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 건물이 보이느냐?”

“네, 잘 보입니다.”

“3층 중앙 복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쭉 가다보면 여러 개의 방들이 모여 있는 걸 볼 수 있을 거다. 거기가 바로 하녀들이 지내는 방이다.”

“간단하군요.”

다행히도 하녀들이 머무는 건물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었다.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은 뒤에 야수화, 독수리를 사용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독수리로 변하려고 하는데, 돌연 레이첼이 두 손을 쭉 뻗어 내 목을 휘감으며 매달려왔다.

“조심하거라. 어디 다치면 안 된다.”

이리 말하며 내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해주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화답해주었다.

“조심하겠습니다.”

이리 말한 직후, 나는 꼭두각시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제가 없는 동안, 레이첼 씨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마라, 주인. 저 젖소년이 비록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나는 주인의 충실한 꼭두각시니까.”

꼭두각시는 자기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레이첼은 여전히 꼭두각시가 미덥지 못 한 모양인지, 못 마땅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걱정이 좀 되긴 하지만…….’

이제까지 매니저 어플을 통해 얻은 아이템이 내 기대를 배신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아이템뿐이 아니었다.

장비도, 스킬도 전부 다 내 기대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었다. 그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꼭두각시도 이런 내 기대에 충분히 부응해줄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레이첼 보고 꼭두각시와 잘 지내고 있으라는 뜻에서 그녀의 등허리를 몇 번 토닥여주고는 야수화, 독수리를 사용했다.

“야수화, 독수리.”

스킬, 야수화를 사용하자 이전에 한 번 경험했듯이 내 몸집이 점점 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윽고 야수화가 모두 끝나고자나 내 눈높이 레이첼의 발치에 머물게 되었다.

나는 이 이질적인 느낌에 1분 정도 어지러움을 느꼈지만, 그것이 딱 지나고나니 금세 익숙해졌다.

차분히 숨을 고른 나는 있는 힘껏 날갯짓을 해보았다. 그러자 퍼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군복무 시절에 낙하산을 타보았을 때처럼 심한 공기의 저항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저항감을 딛고서 날아야 되는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나는 보다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내 몸이 허공에 날아오르더니 금세 눈높이 레이첼의 머리 위까지 올라갔다.

나는 하늘을 나는데 성공했다는 기쁨을 만끽하면서도 꼭두각시와 함께 남게 될 레이첼에 대한 걱정되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얼른 다녀오거라.”

레이첼은 나와 한시도 떨어져 있기가 싫은 모양인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멀리 떠나보내는 여인처럼 애잔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살짝 약해지긴 했지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 밖에 없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이런 내 말에 레이첼은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뒤로 하고서 하녀들이 머물고 있는 건물 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이윽고 건물에 도착한 나는 종이에 적혀있던 건물의 구조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주방에서 일을 한다는 하녀의 방을 찾아보았다.

‘분명 여기였지?’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방이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던 방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는 창문에 걸터앉은 뒤에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다시 변신할까?’

하지만 만약에 사람으로 돌아온 내 모습을 다른 누군가가 우연히 보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심지어 나는 창문을 통해서 하녀의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 상황이었다.

변태로 오해받기 더없이 충분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지금 나는 연회장에 꼭두각시를 세워놓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여기서 야수화를 푼다는 건, 그다지 좋은 방법 같지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독수리의 모습을 한 채로 방 안으로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끼익.

다행히도 창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3층이나 되는 높이다보니, 누군가 창문을 통해서 방 안으로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여긴 백작이 머무는 성이었다.

아무리 간 큰 도둑이라고 할지라도 구태여 힘들게 3층까지 기어 올라와서, 하녀의 방을 털 생각은 하지 못 할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하녀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딱히 눈에 띄는 건 없는데…….’

방 안은 평범하다 못 해, 놓여있는 물건조차 몇 개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수납장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부리를 이용해서 고리를 잡아당기자, 그 안에 들어있는 옷가지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옷 밖에 없군.’

옷가지를 이리저리 들춰보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옷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여긴 아닌 모양이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도로 수납장을 닫은 뒤에 창문을 통해 방을 빠져나갔다.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첫 번째 방에서 독이 든 병을 바로 발견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도 없었겠지만, 아무래도 그 정도까지 운이 따라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쉬움을 혀를 내두르며 다른 방들을 차례차례 방문했다.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서 두 번째 방에 들어가 보고, 바로 맞은편에 있는 세 번째 방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건물의 지붕을 뛰어넘기도 했다. 하지만 이어진 세 번째 방도, 네 번째 방도, 다섯 번째 방도 전부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운이 없어도 되는 거야?”

거듭되는 실패에 초조해졌다. 벌써 20분이나 지나버린 것이다.

물론 여기서 시간이 더 끌린다고 하더라도 레이첼이 독살당할 리는 없었겠지만, 음식에 손을 전혀 데지 않는 레이첼을 보고 힐다 공자가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의 흉계가 내가 모르는 방향으로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속으로 침음성을 삼키며 여섯 번째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불평 어린 하소연을 토해내고 말았다.

“아니, 여긴 무슨 수납장이 이렇게나 많아?”

다른 하녀들의 방에 비해서 세 배는 더 많아 보았다.

“……이걸 다 뒤지려면 한 세월 걸리겠군.”

나는 볼멘소리로 툴툴 대며 방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자,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하녀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

“…….”

망했다.

독수리가 무슨 소리를 내더라?

“누, 누구세요……?”

뒤늦게 독수리 흉내를 내보려고 했지만 이미 눈앞의 하녀는 내가 사람 말을 했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걸 어쩌지.’

나는 이대로 날아서 도망칠까도 싶었지만, 이미 이렇게 들켜버린 마당에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은 힐다 공자의 흉계에 휘말려서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쓸 하녀를 구해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내가 말만 잘 한다면, 충분히 하녀의 협조를 얻어내는 게 가능할 듯이 싶었다.

이렇듯 생각을 굳힌 나는 날개를 접고, 하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독이 든 병을 찾고 있습니다.”

“네? 도, 독이 든 병이요? 하지만 제 방에는 그런 위험한 물건이 없는데요?”

이런 내 말에 하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내게 연거푸 질문을 던졌다.

“물론 없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힐다 공자의 측근들이 주방 하녀들 몰래 독이 든 병을 숨겨두었으니까요.”

“그, 그런……! 왜요? 전 아무것도 잘 못 한 게 없는데요?”

하녀는 정말로 억울하단 듯이 내게 말했다. 실제로 억울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억울한 것과 누명은 별개의 것이었다.

단지 억울하다고만 해서는 누명이 벗겨지지 않으니 말이다.

“잘 못 한 게 없기에 이용하는 겁니다.”

“전……. 이해가 안 돼요.”

“이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절 도와서 독이 든 병을 찾아내기만 하시면 됩니다.”

“네? 제가 돕다니요?”

“나중에 억울한 누명을 쓰더라도 괜찮으신 겁니까?”

“아, 아뇨! 절대로 싫어요!”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며 소리치는 하녀의 태도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그럼 빨리 찾아보도록 하죠.”

“네, 네!”

이런 내 명령에 하녀는 다급히 소리쳐 대답하고는 수납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나도 그녀를 따라 수납장을 하나둘씩 뒤져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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