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42화 (442/599)

<-- [2차 예선] -->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하녀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옷만 잘 골라주면 그만이었다.

실제로 이런 내 기대대로 하녀들은 내게 최근 유행하는 디자인이라며 흑백으로 된 옷 한 벌을 추천해주었다.

물론 내게 있어서 유행하는 디자인이라는 건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지만, 흰색과 검정색이 적절히 조합되어 있는 옷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나쁘지 않네.’

검정색은 적당히 활용하면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너무 많이 사용하면 우울하고 활기가 없어진다.

반면에 흰색은 주변의 색감을 빼앗으며 모든 색을 하나로 통합시킨다. 게다가 흰색은 순결함을 상징하며 이 색으로 만든 물건은 청결하단 느낌을 준다. 다만 그만큼 눈에 거슬리거나 박력이 없게 느껴지지만, 이런 식으로 검정색과 조합하게 되면 상당히 눈에 띄게 된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시선을 끌 수 있겠지.’

하녀들의 안목은 탁월했다.

나는 내심 하녀들에게 옷을 골라주기를 부탁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옷으로 하겠습니다.”

이러한 내 말에 하녀들은 저마다 방긋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보아하니 내 옷시중이라도 들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얌전히 하녀들의 옷시중을 받으며 옷을 입기 시작했다.

“어머나.”

하녀들은 내 옷시중을 들다가도 드문드문 놀람을 가장한 환호성을 터트렸다.

어쩔 때는 실수를 가장해서 내 복근을 어루만지기도 했었다. 이에 슬쩍 곁눈질로 살펴보니, 하녀 세 명 모두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황홀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좋은 모양이었다.

‘귀엽긴…….’

이 자리에서 하녀들을 확 잡아먹어버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굶주린 짐승마냥 게걸스레 하녀들의 고운 살결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이제 곧 연회가 시작될 거란 사실을 상기시키곤 마음을 다 잡았다. 괜히 여기서 시간이 끌려서, 계획을 망가트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내 손으로 직접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하녀들이 ‘앗!’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탄성을 터트렸다.

안타깝다는 감정이 가득 실려 있었기에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을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이처럼 옷을 다 입은 나는 아쉬움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하녀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연회장으로 안내해주시겠습니까?”

“네? 아……! 네.”

이러한 내 말에 하녀 하나가 그제야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이건 다른 두 명의 하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녀들은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려온 모양인지, 양 손으로 자기 볼을 감싸며 종종 걸음으로 나를 연회장까지 안내해주었다. 그리고 이윽고 연회장에 도착하자,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이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나를 반겨주었다.

“연회에 참석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현자님.”

“아닙니다. 저야말로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대답했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게, 이곳 예법에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함박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는 걸 보면 다행히도 맞는 예법인 듯이 싶었다.

중년인, 로버트는 무척이나 흡족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럴 게 아니라 현자님에게 다른 가신들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 오시죠.”

내게 다른 가신들을 소개시켜주겠다며 나를 이끄는 로버트의 태도에 나는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을 하며 그를 따라 나섰다. 왜냐하면 이바이크 백작 가를 배신한 길렌이란 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로버트의 소개를 받아,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렇게 네 명 째 소개를 받았을 때, 돌연 힐다 공자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났다.

“아니, 이게 대체 누구신가! 이름 높으신 우리 현자님이 아니신가?”

그는 어지간히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잔뜩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최면은 진작 풀린 것 같네.’

아쉬운 일이었다. 만약에 최면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면, 지금 당장 저 재수 없는 면상을 치워 버릴 텐데 말이다.

나는 아쉬움을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별건 아니고, 아단트 신전 쪽에서 우리 현자님을 정말 애타게 보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셔서 잠깐 소개 좀 시켜주려고 온 거야. 어때, 괜찮지?”

그의 말투로 보건데, 여전히 내 정체를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런 곳에 성녀의 명패를 든 현자가 나타난다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물며 그 현자라는 사람이 실종되었던 귀족 영애를 데려오기까지 했다.

힐다 공자의 입장에선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내가 미울 법도 했다. 그렇기에 이토록 필사적으로 나를 깎아내려고 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그의 노력은 전부 다 허사였다.

“괜찮습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자 힐다 공자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너무나도 당당한 내 태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모양이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이윽고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손짓했다.

그러자 힐다 공자의 측근으로 보이는 이가 일전에 한 번 본적이 있는 신관복장을 차려입고 있는 사내 한 명을 데려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번에 성녀, 모니카를 보필하던 신관들이 입고 있었던 복장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가 모니카와 같은 교단의 사람이란 사실을 확인하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말을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러한 내 인사에 아단트 신전의 신관 또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현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은 뭘요.”

“아닙니다. 현자님께서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 마물들을 처리하고 계시다는 건, 이미 온 대륙에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충분히 존경받으실만한 일이지요.”

신관은 어째서인지, 나를 현자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이 싶었다.

‘생김새 때문에 그런가?’

확실히 이 세계에서 동양인은 이질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사칭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사칭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내 의문은 힐다 공자도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그가 신관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명패를 확인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그의 말에 신관은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현자님의 품속에서 강한 신성력을 품고 있는 물건의 기운이 느껴지니까요. 그리고 이토록 짙으면서도 순수한 신성력을 품고 있는 물건은 이 세상에 몇 개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관의 설명에 나는 내심 놀라고 말았다.

설마하니 모니카가 내게 준 명패가 그토록 대단한 물건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으득.”

그리고 이처럼 내가 놀라고 있을 때, 힐다 공자가 분하다는 듯이 이를 빠득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분통함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죽일 듯이 노려보더라도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힐다 공자도 그 사실을 깨달은 모양인지, 괜히 씩씩대며 자리를 떠났다.

반면에 내 옆에 서있던 중년인, 로버트는 무척이나 속이 시원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웃음을 홀로 삼키고 있었다. 만약에 여기에 아무도 없었다면 그는 세상 떠나가라 웃어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현자님께선 어쩐 일로 이런 곳까지 오시게 된 겁니까?”

신관은 무척이나 조심스런 어투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라페스 때와 같은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그 당시, 일천에 달하는 오크들이 라페스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만약에 그 때, 내가 왕자 베네딕트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라페스는 오크들의 수중에 떨어졌을 것이다.

나는 신관의 걱정을 덜어주고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연히 레이첼 영애를 구하게 되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레이첼 영애라면……. 실종되었던 이바이크 백작의 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정말 훌륭한 일을 해내셨군요.”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기회가 닿았을 뿐입니다.”

이런 내 말에 신관은 더더욱 감동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겸손하신 분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토록 자기 수양이 대단하신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성녀님께서 왜 그렇게까지 현자님을 믿고 계신 건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신관의 태도에 낯이 화끈거려왔다. 하지만 구태여 그의 생각을 바로 고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잠자코 넘어갔다. 그리고 이처럼 신관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 멀리서 리나와 함께 연회장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레이첼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주인공이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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