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39화 (439/599)

<-- [2차 예선] -->

‘오호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하녀들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는 시류의 모습을 보고 나니,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기회에 시류한테 환심 좀 사볼까?’

마침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시류와의 사이가 좋다고도, 그렇다고 안 좋다고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시류에게서 하녀들을 떼어놓아 준다면 십중팔구 내게 고마움을 느낄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어떤 식으로 시류를 도와줄지 생각하며 하녀들을 따라 욕실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이 때, 레이첼과 리나와는 중간에 헤어졌다. 아무래도 목욕 시설이 남녀로 나뉘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뭐, 그게 정상일 테지.’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나는 혀를 내두르며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윽고 욕실 앞에 도착하자, 시류가 하녀들을 제법 강하게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저 혼자서도 충분히 씻을 수 있으니까, 이 손 좀 놔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런 시류의 말에 하녀들 모두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가 맡은 일이 손님의 목욕 시중인지라……. 정히 불편하시다면 저희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아니, 사람들이 이렇게 버젓이 있는데 어떻게 없는 사람 취급을 하라는 겁니까?”

“하지만 손님…….”

시류는 어지간히도 하녀들이 불편한 모양인지, 완고한 뜻을 내비쳐보였다. 덕분에 시류의 목욕 시중을 맡은 하녀들 모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채, 쩔쩔 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레이첼에게 따로 잘 말해둘테니, 그리 해주십시오. 물론 제 목욕 시중을 맡으신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정말인가요?”

하녀들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네, 그러니 걱정 마시고 돌아가 있으세요. 여러분이 혼나실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하녀들을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하녀들은 안심을 한 모양인지, 저마다 다행스럽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조아렸다. 몇몇은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계속 입 아프게 시류와 말씨름을 하느니, 차라리 이렇게 마음 편하게 쉬는 편이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희는 여기서 손님 분들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리 말하며 하녀들이 물러나주자, 나는 감사의 뜻에서 가볍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여 보이고는 시류와 함께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시류가 슬쩍 내게서 손을 빼내며 몸을 피했다. 이에 내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시류를 바라보자, 시류는 뭐가 그리도 부끄러운지 양 볼을 살짝 붉히며 내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류는 슬쩍 내 쪽으로 곁눈질 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녀들을 물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긴요. 저도 시류 씨와 마찬가지로 하녀들이 부담스러웠던 참이었습니다.”

내가 손사래를 치며 말하자, 시류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 그……. 현자님도 부끄러움 같은 걸 느끼십니까?”

나를 현자라고 부르는 게, 어지간히도 어색한 모양인지 시류는 어눌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물었다.

‘내가 그렇게 마왕 같나?’

속으로 끙, 침음성을 삼킨 나는 시류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야 저도 시류 씨와 같은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절 현자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시다면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세요. 아, 혹시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건 아니죠? 전 스물다섯 살인데, 시류 씨는 몇 살이십니까?”

“올해로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그럼 아무런 문제도 없네요. 괜찮죠?”

“아, 네. 괜찮습니다…….”

시류는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지만 나는 그것을 꾹 참으며 윗옷을 벗었다. 그러자 내 뒤에 서있던 시류가 움찔하고 떠는 게 살짝 엿보였다.

설마하니 내가 대뜸 옷을 벗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기가 욕실이란 사실을 깨달은 듯이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물론 냉정을 되찾은 것과는 별개로 자기도 나를 따라 옷을 벗으려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기가 여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단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거나 말이다.

‘일단은 모르는 척 해주는 편이 좋겠지.’

여기서 괜히 시류에게 ‘왜 옷을 벗지 않느냐?’라던가, ‘같은 남자끼리 뭘 부끄러워하는 거야?’라며 말을 걸었다간 방금 전에 쌓은 환심이 단번에 증발해버릴 것이다. 그러니 여기선 시류의 상황을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리고 이런 내 행동 덕분인지, 시류의 경계심이 다소 느슨해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나는 금방이라도 올라갈 것 같은 입꼬리를 애써 억누르며 옷을 다 벗었다. 그리고는 아직까지 옷을 벗지 않고 있는 시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먼저 들어가 있겠습니다.”

“아? 네, 네.”

이런 내 말에 시류는 다소 얼빠진 목소리로 정신없이 대답했다.

자기를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내 태도에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시류를 뒤로 하고서 먼저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현대의 목욕탕과 비교했을 때, 이것저것 많이 부족해 보이는 욕실 내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래도 단 한 가지, 욕실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만큼은 대단히 훌륭했다.

‘귀족을 위한 목욕탕이란 건가.’

딱 그 말이 맞았다.

나는 대리석 바닥의 시원한 감촉을 밟으며 탕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발을 담그자, 발끝이 저릿하면서 근육이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마치 무언가 특별한 효능이라도 들어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 나는 단번에 몸을 담갔다. 그러자 나른해지는 기분이 전신을 부드럽게 감쌌다. 역시 목욕은 현대나 이계나, 개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그리고 이처럼 목욕을 즐기고 있는데, 저 멀리서 자박하고 누군가 욕실 안쪽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그곳에는 수건으로 하반신을 가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모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긴 다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다리부터 향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에 불과했다. 내 시선이 위로 들어올려진 순간, 나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허…….’

감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에나와 비교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물론 에나보다는 살짝 더 큰 것 같았지만 과하지 않게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피부는 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특히 보는 사람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듯한 옅은 분홍색의 유두는 어서 빨리 자기를 빨아보라는 듯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어떻게 내가 저런 복덩이를 못 알아보고 있었지?’

뜻밖에 횡재를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 티내며 좋아하기에는 아직까지 시류의 경계심이 덜 풀려 있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환호성을 애써 꾹꾹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몸이 상당히 좋군요.”

“그렇습니까?”

이런 내 칭찬에 시류는 무척이나 기뻐해하며 작게 웃어보였다. 동시에 안심한 듯한 기색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하긴 아무리 수건으로 하반신을 가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반신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내게 자신이 여자라는 걸 들키면 어쩌나 조마조마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성별을 의심하기보다는 몸이 좋다며 칭찬해주니, 마음이 한결 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근면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만큼 자기 단련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 편이기도 할 테니, 이런 식의 칭찬은 시류에게 있어서 단연 최고의 칭찬일 것이 분명했다.

“탕의 온도가 딱 좋습니다. 이리 와서 몸 좀 녹이세요.”

“네.”

그리고 이런 내 의도대로 시류는 아무런 의심 없이 나를 대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안심이었다. 지금 시류는 나를 전혀 경계하고 있지 않았다. 그게 바로 중요한 것이었다. 친밀감이야 말로 시류의 성별을 알아내기에 더없이 적합한 무기였다.

“……음.”

탕 안에 발을 담근 시류는 살짝 기분이 좋아진 모양인지, 자그맣게 신음하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

“어때요? 기분 좋죠?”

“아, 네. 굉장히……. 딱 좋습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시류의 태도가 굉장히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어쩐지 시류가 내 연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 내 착각에 불과했다. 혹여나 착각을 현실로 오인해 시류를 덮칠 수도 있었기에 나는 애써 현실을 일깨웠다.

“그렇게 발만 담구고 있지 말고 이리로 오세요. 몸까지 담그고 있으면 더 기분 좋아질 겁니다.”

나는 내 옆자리를 오른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러나 시류는 여전히 나와의 거리감을 느끼는 모양인지, 어색하게 웃으며 나와 살짝 떨어진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으며 몸을 담갔다.

“아뇨, 전 여기면 충분합니다.”

아쉬운 일이었지만,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데려와 앉혀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직은 이르다는 건가.’

하지만 경계심이 많이 옅어져 있는 만큼 친해지는 것 정도는 금방 해낼 수 있었다.

나는 평소보다 훨씬 더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시류에게 질문을 던졌다.

“던전 생활은 어떻습니까? 어디 불편한 곳은 없습니까?”

이런 내 물음에 시류는 별다른 고민 없이 곧바로 대답해주었다.

“의외로 편해서 놀랐습니다. 딱히 힘든 노동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뭐랄까.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용병 일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그야 비교도 안 되죠. 용병 일이란 게 사실 말이 용병이지, 막노동꾼이나 다름이 없거든요. 게다가 어지간히 실력이 좋지 않는 이상,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합니다.”

“굶을 때도 있었습니까?”

“맡은 의뢰를 실패하면 그 날 저녁은 쫄쫄 굶어야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기서 일이 틀어져서 위약금까지 물어야 된다면……. 다음 날까지 굶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뭐, 물론 그 전에 냇가에서 물고기를 낚아서 먹거나, 산 속에서 사냥을 해서 끼니를 때우지만요.”

시류는 용병 일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나름 즐거운 일도 있었던 모양인지, 얼굴에는 구김살이 하나도 없었다.

“동료들과 싸운 적은 없었습니까?”

“저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가끔씩 동료들끼리 싸운 적은 있었습니다.”

“시류 씨는 주로 말리는 쪽이었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매번 싸움을 중재할 때마다 리더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솟아나곤 했습니다.”

“시류 씨가 고생을 많이 했군요.”

“고생이랄 것 까지는…….”

“고생이죠.”

“그런가요? 후후.”

이런 내 위로에 시류는 무척이나 기뻐해하며 작게 웃어보였다.

‘기분 좋겠지.’

이제껏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자신의 노고를 다른 누군가가 알아봐 준 것이다.

시류에게 있어서 그것만큼 기쁜 일은 또 없을 것이다. 하물며 시류는 파티의 리더이기도 했다.

언제든지 리더에게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파티원들과는 다르게 리더는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할만한 기둥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주니, 시류로서는 이런 내가 의지할만한 기둥처럼 느껴질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고 보니 시류 씨가 소피아에게 검술을 가르쳐주고 있었던 것 같은데, 소피아가 가르쳐 달라고 한 겁니까?”

“네.”

“소피아가 시류 씨 보고 검술을 가르쳐달라고 부탁 할 정도인 걸 보니, 검술 실력이 상당한 모양이로군요.”

“네? 아닙니다! 아직 그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쑥스러움을 타는 모양인지, 시류는 열심히 손사래를 치며 자신을 낮추었다.

“그런 것 치고는 몸에 붙어있는 근육양이 제법 많은데요?”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시류의 몸은 운동 좀 한다는 여타 남성들과 비교했을 때, 턱 없이 초라했다. 그러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새빨간 거짓말을 한 이유는…….

“정말로 그렇게 보이십니까? 후후, 이제야 좀 운동의 성과가 나오나보군요.”

……첫째로는 시류의 기분을 띄우고자 함이었고…….

“저한테도 그 운동법 좀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시류 씨의 팔을 보니, 욕심이 나는군요.”

“운동법이라고 해도 별다른 건 없습니다만…….”

“그런가요? 그런 것 치곤 몸이 제법 잘 만들어져 있는 것 같은데요? 이쪽에 어깨 근육도 상당히 잘 빠졌고요.”

이리 말하며 시류의 어깨에 두 손을 얹자, 시류가 화들짝 놀라며 내 손을 뿌리쳐내려고 했다.

“아! 저…….”

물론 그런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나줄 내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시류에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한 두 번째 이유는…….

“그런데 근육이 좀 많이 뭉쳐있는 것 같은데요?”

……시류의 몸을 만져볼 구실을 만들어보고자 함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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