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예선] -->
‘힐다 공자가 어디에 있으려나.’
방 밖으로 나간 나는 힐다 공자가 어디에 있을지, 알 만한 사람을 찾아 무작정 복도를 따라 걸어 나아갔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하녀 한 명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잠깐 뭣 좀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재빨리 손을 들어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앗! 하는 소리와 함께 하녀가 종종 걸음으로 다가왔다.
살짝 동경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내가 누구인지 얼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성 안의 소문은 빠르다.
내심 감탄하던 나는 이내 본래의 목적을 떠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힐다 공자가 어디서 머물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아, 네. 알고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자세히 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이런 내 물음에 하녀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힐다 공자가 머물고 있는 장소를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복도를 쭉 따라가시다가 오른편으로 꺾으시면 가장 큰 방이 보이실 겁니다. 거기가 바로 힐다 공자님께서 머물고 계신 방입니다, 현자님.”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하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렇게 하녀가 일러준 길을 따라 걸어가자, 저 멀리 두 짝 문으로 되어 있는 방이 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여타 한 짝 문으로 되어있는 다른 방들과는 무척이나 달랐다.
‘저긴가 보군.’
게다가 무엇보다도 저 방만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수상한 냄새가 나는군.’
모르긴 몰라도 저 방 안에서 힐다 공자가 무언가 흉계를 꾸미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잠시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매니저 어플을 실행시킨 뒤에 내 정보를 확인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아이템이…….’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 내가 보유하고 있는 아이템 중에 투명 스프레이와 최면이 있을 것이다.
[김 유현]
[나이 : 25살]
[직업 : 대학생 4학년]
[현재 레벨 : 11 (다음 레벨에 필요한 정기 : 1500)]
[보유 스킬 : 고속 이동(+1), 고블린 소환(+6), 정력(+1), 오크 소환(+2), 매력(+1), 체력, 속박, 꾸짖음, 힘, 칭찬, 야수화(곰), 슬라임 소환, 정기 주입, 쾌감 공유(+1), 다이어 울프 소환, 트롤 소환, 치유, 정화, 야수화(독수리)]
[보유 아이템 : 빈유환 (1회), 풍유환 (1회), 염색약(블루 블랙 : R61 G79 B105) (1회), 무료 장비 조합(2회), 풍둔환 (1회), 폭유환 (1회), 소물환 (1회), 랜덤 스킬 교환권(1회), 어디로든 문(1회), 꽃미남 스티커(1회), 투명 스프레이(1회), 꼭두각시(1회), 강아지(1회), 인터넷 검색(1회), 절정 금지 스티커(1회), 진동 스티커 (1회), 병풍 스티커 (1회), 등급 상승 (장비), 등급 상승 (인물), 등급 상승 (인물), 강화 보호권 (장비) (1회), 최면 (1회), 민감도 2배 스티커 (1회), 추남 스티커 (1회)]
[보유 장비 : 칠흑의 지팡이(R)(+4), 치료술사의 지팡이(N)(+1), 보호의 반지(N), 저주 받은 마리오네트(R), 은장도(N), 딜도(R), 클레이모어(N), 유령 기사의 장갑(S), 강철 창(N), 탐험가의 모자(N), 밀어를 속삭이는 깃펜(N), 유령 기사의 중갑(S),노예의 목걸이(R), 공간 이동 반지(B), 사슬 낫(N), 고양이 귀(S), 이프리의 유물, 지팡이(S)]
[보유 인첸트 : 굳건한]
그리고 이런 내 생각대로 보유 아이템 목록에 투명 스프레이와 최면이 있었다.
‘됐군.’
여기서 아이템을 두 개씩이나 써야 된다는 게 조금 아깝긴 했지만, 이 방법이 아니면 힐다 공자의 흉계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나는 아쉬움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투명 스프레이를 소환했다. 그러자 화장품 가게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스프레이 통이 내 손에 잡혔다.
“그냥 뿌리면 되는 건가?”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스프레이 통을 위아래로 두세 차례 흔들 뒤에 내 왼팔을 향해 분사했다.
치익!
익숙한 분사 소리와 함께 스프레이가 내 왼팔에 닿자, 순식간에 왼쪽 팔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에 깜짝 놀란 내가 오른손으로 왼손을 만지자, 신기하게도 왼쪽 팔뚝의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기분이 묘하네.’
분명히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지금 내 오른손에는 왼팔이 붙잡혀 있었다.
잠시 기분이 싱숭생숭해지긴 했지만, 투명 스프레이의 지속 시간이 고작 5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린 나는 다급히 스프레이를 내 몸에 구석구석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잔뜩 뿌리고 나니, 내 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디 덜 뿌린 곳은 없지?’
어딘가 혹시 실수로 덜 뿌린 곳은 없는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꼼꼼히 확인한 후에 나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슬라임 소환.”
슬라임을 소환하자, 내 앞에 무채색의 슬라임이 흐물흐물거리며 나타났다.
여전히 약해보이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방의 문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병사들을 유인하는데 있어서 이보다 더 적합한 몬스터는 없었다.
‘고블린이나 오크를 소환했다간 큰 소란이 일어날 테니까.’
슬라임 정도라면 큰 소란 없이, 병사 두 명이서 조용히 처리하려 들 것이 틀림없었다.
이렇듯 생각을 끝마친 나는 슬라임에게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의 눈에 띄게 움직이세요.”
이런 내 말에 슬라임은 마치 알았다는 듯이 위아래로 크게 꿀렁꿀렁거리더니, 이내 병사들의 눈에 들려는 듯이 촉수 같은 걸 위로 쭈욱 뻗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슬라임으로 운피레아와 내기를 했을 때, 보았던 촉수였다.
그 때 분명히 10분도 채 버티지 못 하고 절정에 달했었지? 물론 내가 그녀 몰래 민감도 스티커를 붙이긴 했었지만 말이다.
나는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며 슬라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슬라임은 마치 이런 내 시선에 힘이라도 얻은 것처럼 보다 힘차게 촉수를 사방으로 뻗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늦게 이 모습을 발견한 병사들이 살짝 기겁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각자 검을 뽑아들었다.
“여기에 왜 갑자기 슬라임이……?”
“이젠 성 안에까지 슬라임이 나오는군. 제길, 어서 처리하자고.”
병사 둘은 불만을 토로하며 슬라임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나는 서둘러 병사 둘을 지나쳐 힐다 공자의 방 쪽으로 다가갔다.
그 후, 최대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
다행히도 문의 경첩은 기름칠이 잘 되어 있었기에 별다른 소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실수 없이 해야 된다. 결코 이번 일이 실패해선 안 돼.”
“걱정 마십시오, 공자님. 빈틈없이 해내겠습니다.”
게다가 힐다 공자를 비롯한 그의 측근들은 한창 흉계를 꾸미느라고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나는 그들이 흉계를 꾸미는데 집중한 사이에 방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굳게 닫았다. 이로서 내가 힐다 공자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어보이고는 힐다 공자와 그 측근들 쪽으로 다가갔다.
“그나저나 아버지가 레이첼, 그 년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걸 아시면 뭐라고 하실 것 같아?”
“도련님을 도로 불러들이실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습니다.”
“빌어먹을……. 역시 그렇겠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죽여야만 합니다. 물론 도련님이 레이첼 영애와 결혼을 하신다면…….”
“고블린 따위에게 윤간당한 그 더러운 년하고 결혼할 바엔 차라리 길거리 창녀와 결혼을 하겠다.”
힐다 공자는 측근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레이첼을 험담했다. 하지만 단순히 험담만 하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인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생각 보니 고블린 같은 괴물들은 인간 여자를 임신시킬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데, 어때? 그 년이 고블린의 애새끼를 뱃속에 뱄을 것 같나? 나하고 내기 한번 해보지 않겠나? 나는 그 년이 애새끼를 뱄다는 데에 걸지.”
이리 말하며 힐다 공자가 품속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들자, 그 측근들도 저마다 금화 하나씩 꺼내들며 내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도 공자님과 마찬가지로 애새끼를 뱄다는데 걸겠습니다.”
“이거 만약에 고블린 애새끼를 뱄다면 귀족 영애 중에는 최초 아닙니까? 더군다나 이바이크 백작 가의 마지막 핏줄이 고블린 새끼라니……. 그거 참 걸작일 것 같군요. 저도 뱄다는 거에 걸겠습니다.”
“이러면 전 안 뱄을 거란 쪽으로 걸어야 되겠군요.”
레이첼이 임신을 했을지, 안 했을 지를 놔두고서 내기를 하는 힐다 공자와 그 측근들의 행태에 눈살이 절로 찌푸렸다.
‘귀가 썩을 것 같군.’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이 시답잖은 음담패설을 그만 듣고자,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매니저 어플을 실행한 뒤에 내가 보유한 아이템 중에 하나인 최면을 사용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아이템 ‘최면’을 대상 ‘힐다 라인펠덴’에게 사용합니다.]
[대상의 수준을 확인합니다.]
[중하로 판단합니다.]
[최면이 40분 동안 유지됩니다. 원하실 때, 최면을 푸시는 것이 가능합니다.]
‘중하라…….’
귀족 자제라고 하기에 조금은 강할 줄 알았는데, 힐다 공자의 수준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낮았다.
혀를 내두른 나는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어, 힐다 공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예전에 마물 사냥꾼의 악성 댓글 사건 때, 이 유리라는 이름의 여성에게 최면을 사용했을 때처럼 힐다 공자 역시 눈이 풀린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누가 봐도 최면에 걸려있는 모습이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힐다 공자 쪽으로 다가가, 그의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 당장 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세요.”
이런 내 명령에 힐다 공자의 시선이 자신의 측근들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뒤, 그는 측근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불 같이 화를 냈다.
“지금 뭣들 하고 있는 거냐? 당장 나가지 못 해!”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누가 내 말에 토를 달아도 된다고 했지?”
“죄, 죄송합니다.”
“당장 나가!”
얼굴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큰소리치는 힐다 공자의 태도에 측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면서도 이내 서둘러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처럼 모든 측근들이 방 밖으로 빠져나가자, 힐다 공자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뭔가 반응이 생생한데?’
뭐랄까? 저번에 이 유리란 여성에게 최면을 사용했을 땐,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을 상대하는 듯한 느낌이 받았었는데 지금 힐다 공자는 미묘하게 감정이 살아있는 듯했다. 하지만 딱히 이상한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수준이 중하라서 그런 건가?’
확실히 대상의 수준에 따라 최면의 유지 시간도 달라지니, 감정이 어느 정도 남는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나는 잠시 힐다 공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투명 스프레이의 지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서둘러 흉계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힐다 공자, 당신이 꾸민 흉계가 대체 뭡니까?”
“레이첼, 그 년을 독살하는 것이다.”
“독살이요?”
“그래, 굉장히 볼만할 거다. 악마의 입맞춤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독한 녀석이니까.”
“그 독을 무슨 수로 먹인다는 겁니까?”
“파티를 열어줄 거다. 그 년의 측근을 통해서.”
아무래도 이바이크 백작 가의 가신들 중에 배신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누구입니까?”
“길렌이란 자다.”
길렌……. 기억해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길렌이란 이름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계속 그에게 물어보았다.
“파티를 열어서 어떤 식으로 레이첼에게 독을 먹일 생각입니까?”
“그 년이 먹을 케이크에 독을 탈거다. 후후, 케이크에 독이 섞여있는 줄도 모르고 먹겠지. 그리고는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꺽꺽대며 게거품을 물 거다. 숨통이 서서히 조여들어가는 거지. 그러다가 그 년은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 하고 손톱으로 자기 목을 벅벅 긁어댈 거다. 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올 때까지 말이야. 고블린의 애새끼를 밴 년의 최후로 딱이지 않나?”
힐다 공자는 마치 예전에 이 독을 다른 누군가에게 먹여본 것처럼 생생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레이첼이 죽으면 당신이 가장 먼저 의심받을텐데요?”
“오, 나는 그럴 일 없어. 왜냐하면 그 년에게 먹일 케이크를 만들 하녀의 방에 독이 든 병을 미리 숨겨둘 거거든. 내 부하들은 내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레이첼이 죽자마자 곧바로 그 하녀부터 붙잡을 거야. 그리고 쨘, 하고 독이 든 병을 찾아내는 거지.”
“그렇게 되면 당신은 풀려나고, 그 하녀는 영문도 모른 채 죽게 되겠군요.”
“그래, 바로 그거야! 그리고 나는 예정대로 이바이크 백작령의 영주가 되는 거지.”
그는 어지간히도 자신의 계획이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흐흐 웃으며 만면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좋습니다. 그 외에 다른 계획은 없습니까?”
“당장은 없다. 왜냐면 레이첼, 그 년은 독이 든 케이크를 먹고 뒈질 거니까.”
힐다 공자는 굉장히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언제쯤 계획을 실행에 옮기실 생각이십니까?”
“나흘 뒤에 할 예정이다.”
“왜요? 오늘 당장 할 순 없는 겁니까?”
“물론 나야 지금 당장 하고 싶지! 하지만 괜히 섣불리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가 들키기라도 한다면 나는 끝장이다.”
확실히 그 말대로 귀족 영애를 독살하는 일이었다.
만에 하나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는 저 밑바닥까지 끌어내려질 것이다. 아니, 귀족을 독살하려했다는 이유로 평생 지하 감옥에서 썩거나 단두대의 이슬로 생을 마감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일이지.’
나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계획,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기세요.”
“알았다. 오히려 바라는 바지.”
계획을 당장 실행하란 내 말에 힐다 공자는 무척이나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어지간히도 계획을 실행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한테 있어선 잘 된 일이었다.
나는 방을 나가기 직전, 힐다 공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힐다 공자, 당신은 여기서 저와 만나지 않았던 겁니다. 전부 잊으세요.”
물론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 유리 때와는 다르게 힐다 공자의 감정이 조금 남아있었기에 조심해둬서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그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았다.”
이처럼 그에게서 확답을 들은 나는 힐다 공자의 계략을 레이첼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