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36화 (436/599)

<-- [2차 예선] -->

“힐다 공자가 무슨 수작을 부려올 것 같아? 그가 아무리 라인펠덴 공작 가의 차남이라고는 하지만 끝까지 결혼을 고집할 수만은 없을 텐데?”

“물론입니다, 레이첼 아가씨. 하지만 지금 아가씨가 처하신 상황도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

중년인의 대답에 레이첼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되뇌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모습에 중년인은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이었다.

“아가씨는 지금 이바이크 백작 가의 유일한 후계자입니다. 게다가 이제 막 도착한 상태지요. 영지민의 대다수는 지금 아가씨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으며, 여기서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라인펠덴 공작령에는 아직 이 소식이 전해지지도 않은 상황입니다.”

“그가 날 죽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인가?”

레이첼의 목소리가 사납게 올라갔다. 굉장히 불쾌하단 어투였다. 그러나 중년인은 현재 상황에 마치 낙담이라도 한 것처럼 한층 더 절망적인 어조로 읊조렸다.

“지금 영지 내의 경비는 물론이고, 성의 경비까지 대부분 라인펠덴 공작령에서 온 병사들이 맡고 있습니다.”

“뭐?”

이바이크 백작령의 병사가 아닌 다른 영지의 병사들이 영지와 성의 경비를 맡고 있다는 중년인의 말에 레이첼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건 나 역시도 크게 놀라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상황은 상식적이지 못 했다.

“……아버님의 병사들은 어쩌고?”

“그게……. 그들 모두 소피아란 이름의 수녀가 데려온 용병에 의해서 죽거나 다쳤습니다.”

“히르페 경은 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다른 기사들은?”

“히르페 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르블 경도, 이타크 경도, 세르츠 경도……. 심지어 지하 감옥에 갇혀있던 쿨츠 경도 토니 님께서 풀어주셨지만, 그마저도 이름 모를 용병에게 살해당했습니다.”

“…….”

이런 중년인의 설명에 레이첼의 얼굴이 마치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물론 이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에나가 강하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영지 하나를 초토화 시킬 정도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에나의 강함에 살짝 몸서리쳐졌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든든함도 느꼈다. 이토록 강한 여기사가 날 지켜주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이계든 현계든 간에 마음 편하게 돌아다니더라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든든한 마음과는 별개로 소피아와 에나가 저지른 일의 뒷수습은 내가 해야 될 듯이 싶었다.

“최악의 경우, 힐다 공자가 레이첼 아가씨의 목숨을 노릴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힐다 공자와 결혼이라도 하라는 거야?”

레이첼은 자꾸만 자신을 몰아붙이는 중년인의 태도에 굉장히 언짢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실제로 내가 듣기에도 중년인의 언행은 레이첼 보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힐다 공자와 결혼하라고 종용을 하는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반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라인펠덴 공작 가에 편지를 보내서 공작이 힐다 공자에게 주었던 권리를 거두어들이기를 기다리는 게 현재로선 최선일 겁니다.”

“얼마나 걸릴까?”

“짧으면 한 달하고도 보름, 길면 두 달 정도일 겁니다.”

“너무 길어.”

레이첼은 자기 이마를 오른손으로 짚으며 우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 말대로 두 달 가까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지내야 한다는 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피로한 일이었다.

“참고 견뎌내셔야 합니다, 아가씨.”

“그렇습니다, 저희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레이첼 아가씨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영주님에 이어서 토니 님, 헤레스 님 그리고 아가씨까지 잃을 수는 없습니다.”

이 방 안에 모여 있는 일곱 명의 가신들이 레이첼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입을 모아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반드시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레이첼 또한 그들의 진심을 느낀 모양인지,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뜻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힘이 없으면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나는 레이첼과 일곱 명의 가신들을 돌아보며 잠시 시기를 가늠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모두 끝나고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을 무렵,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비록 외부인이긴 하지만 한 마디 해도 괜찮겠습니까?”

이러한 내 말에 중년인은 물론이고, 다른 가신들 또한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서둘러 고개를 주억였다.

“물론입니다. 현자님이야 말로 이바이크 백작 가의 크나큰 은인이 아니십니까? 원하는 대로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재차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니, 힐다 공자가 레이첼 아가씨의 목숨을 노릴지도 모르는 상황이더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가지 작은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도움이라면……?”

“제가 힐다 공자의 계획을 알아보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일순 방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더불어 가신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의문이 떠올랐다.

“제가 현자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 무슨 수로 알아보시겠다는 겁니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는 중년인의 태도에 나는 일부로 최대한 겸손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제가 비록 가진 능력은 부족하지만, 몇 가지 특출난 재주가 있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이전에 배운 스킬 중에 하나인 야수화, 독수리를 사용했다.

물론 야수화 스킬 중엔 곰으로 변하는 것도 있었지만, 역시 현자라고 한다면 독수리가 가장 어울렸다.

“야수화, 독수리.”

처음 사용해보는 거라서 잘 될 지는 의문이었지만, 매니저 어플을 통해서 익힌 스킬은 언제나 그랬듯이 내 기대에 부응해주었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대로 스킬 야수화(독수리)를 사용하자, 눈높이가 점차 작아지는 게 느껴졌다.

“오오……!”

이윽고 야수화가 모두 끝나자, 방 안의 모든 이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감탄성을 터트렸다.

반면에 나는 생각보다 불편한 독수리의 모습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몸이 무겁네?’

독수리라고 해서 가벼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묵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날개를 펼치는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나는 잠시 독수리의 몸 상태를 살펴보다가 이내 신기하단 듯이 나를 구경하고 있는 가신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저를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내 물음에 가신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현자님. 이런 모습을 보고 어찌 믿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다.”

“현자님께서 힐다 공자의 계략을 알아내어 주시기만 한다면 레이첼 아가씨의 안전은 이미 확보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현자님은 진정으로 이바이크 백작 가의 은인이십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내게 감사의 인사와 칭찬을 퍼부었다. 덕분에 내 얼굴이 금칠이 되는 듯했다.

나는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그치며 야수화를 해제했다.

“야수화, 독수리 해제.”

이처럼 야수화를 해제하자, 바닥에 가까웠던 눈의 높이가 순식간에 올라가선 처음 내가 보고 있었던 눈높이까지 올라왔다.

‘윽……. 좀 속이 울렁거리네.’

다만 이런 식으로 눈높이가 왔다 갔다 하니 속이 살짝 뒤집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걸 사람들 앞에서 내색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멀미가 가시지를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1분 정도를 기다리자, 울렁거리던 속이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괜찮은가?”

그 때, 레이첼이 조심스레 내 팔을 부여잡으며 물어보았다.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내 팔을 감싸는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모습을 무슨 일에서인지, 가신들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나와 레이첼을 이어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뭐, 그들 입장에선 하등 나쁠 게 없었다.

현자라는 내 입장은 이 대륙에서 꽤나 좋은 위치에 속해있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성녀 모니카와 왕자 베네딕트와도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런 내가 이바이크 백작 가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된다면, 이바이크 백작 가의 입장으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나 논할 문제였다.

지금은 힐다 공자를 내쫓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한 뒤에 입을 열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제가 힐다 공자의 계획을 금방 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말씀이십니까?”

잠시 기다려달라는 내 말에 중년인이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가 지금 당장 움직일 줄은 몰랐단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현실에선 아이돌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여기서 시간이 질질 끌려서, 아침까지 현실로 되돌아가지 못 한다면 큰 일이 일어날게 틀림없었다.

“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힐다 공자가 자신의 측근들을 잔뜩 모아서 흉계를 꾸미고 있기를 기대했다.

물론 그가 흉계를 꾸미지 않고 있더라도 상관없었다.

‘흉계가 없다면 내가 만들어내면 그만이니까.’

실제로 내가 보유한 아이템 중에는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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