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33화 (433/599)

<-- [2차 예선] -->

내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자, 힐다 공자도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는 도무지 믿기 어렵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손에 들려있는 명패와 나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그가 믿든, 믿지 않던 간에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명패는 명백한 진품이었다.

성녀, 모니카가 내게 가짜 명패를 줬을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

공자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나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이쯤에서 그만 둘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대로 힐다 공자는 톡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로 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네 녀석……! 사칭이 얼마나 큰 죄인 줄 아는 것이냐?”

“사칭이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일부러 비웃음을 흘리며 되받아쳤다. 그리고 이런 내 비웃음에 아니나 다를까, 힐다 공자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단순하네.’

알기 쉬운 남자였다.

여자를 밝히는 색골에 다혈질……. 거기에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콧대 높은 도련님이었다.

여느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철부지 귀족 청년이었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철부지들의 말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물론 가끔씩 개과천선해서 주인공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최소한 내 앞에 서있는 힐다 공자는 아니었다.

애당초 남자라는 성별자체부터가 글러먹었다.

만약에 힐다 공자가 여자였다면 지금 내 뒤에 있는 레이첼처럼 잔뜩 귀여워해주기라도 했겠지만, 나와 같은 물건이 달려있는 남자여선 그런 게 되지가 않았다.

할 생각도 없고 말이다.

“좋아!”

이처럼 내가 상념에 잠겨있을 때, 불현듯 힐다 공자가 기세등등하게 소리치며 처음 중재를 위해 나섰던 중년인을 향해 손짓했다.

“……네 놈이 그렇게나 떳떳하다면 어디 한번 확인해보도록 하지!”

바라던 바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대신에 이 명패가 진짜라면 레이첼 영애를 용서해주시겠습니까?”

“용서해주도록 하지. 하지만 만약에 지금 네 녀석이 들고 있는 명패가 위조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 땐 내가 직접 네 놈의 목을 베어 개밥으로 던져버리겠다!”

제법 살벌하게 협박을 한 그는 내 손에 들려있는 명패를 낚아채듯이 가져다가서는 옆에 있던 중년인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건네받은 중년인은 조심스럽게 명패를 살펴보더니 이내 나지막이 탄성을 터트렸다.

“오오, 이토록 섬세한 음각이라니……! 정말로 대단합니다. 게다가 명패에 새겨진 날개가 정확히 여섯 쌍인 것을 보면 성녀님의 신분을 증명하는 명패임이 틀림없습니다. 물론 아단트 신전에 가져가서 대신관님의 확인을 받아본다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일주일 전에 온 공문의 내용이 진실이라면 이건 틀림없는 진품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잠시 뜸을 들인 중년인은 이내 경외어린 시선으로 나를 조심스레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10대 후반의 젊은 외모에 황갈색 피부 그리고 검은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청년……. 공문에 적혀있는 외양 묘사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이리 말하며 고개를 조아린 중년인은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내게 명패를 돌려주었다.

“현자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러한 중년인의 말에 힐다 공자는 물론이고, 내 주변에 서있던 이들까지도 놀라움에 가득찬 표정을 지어보였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시류 발렌시아의 표정이 단연 압권이었다.

내가 분명히 미리 언질을 주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류는 내 정체가 현자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넘어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시류에게 있어서 나는 던전을 지배하고 있는 마왕과도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마왕이 현자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나는 중년인이 돌려주는 명패를 건네받은 뒤에 힐다 공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공자님?”

“…….”

이런 내 물음에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입을 꾹 다문 채로 양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힐다 공자는 자기가 한 성깔 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모양인지, 아니면 이대로 고분이 물러나기엔 자존심이 상하는 건지 쌩양아치처럼 침을 퉷! 하고 뱉었다.

“……참 대단한 분이 납시셨군!”

힐다 공자는 괜히 큰소리치며 나를 쏘아보았다.

“그래서 그 잘나신 분께서 여긴 어쩐 일로 오셨나?”

마치 내 인내심을 시험하듯이 건들거리는 태도로 묻는 힐다 공자의 태도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우연치 않게 레이첼 영애를 구하게 되어서 이곳까지 모셔오게 되었습니다.”

“오호라! 그러니까 우리 잘나신 현자님께서 고블린 따위에게 강간이나 당하고 있었던 저 더러운 년을 우연히 구해서 여기까지 데려왔다는거군!”

힐다 공자는 내 등 뒤에 서있는 레이첼을 향해 노골적으로 혐오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받은 레이첼은 수치심에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더불어 하소연이라도 하고픈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당장에라도 사실대로 밝히고 싶은 모양이었다.

자신의 처녀를 가져간 건, 고블린 따위가 아니라고 말이다.

실제로 그녀의 처녀를 가져간 건, 바로 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밝힐 순 없지.’

그랬다간 안 그래도 복잡한 이 상황이 더욱 더 복잡하게 되어 버릴 테니 말이다.

나는 레이첼을 진정시켜주고자,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아주고는 힐다 공자를 향해 말했다.

“말 좀 가려서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말을 가려서 하라고? 하! 누가 보면 내가 지금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는 줄 알겠군!”

그는 레이첼을 놀리는 것이 어지간히도 재밌는 모양인지, 혼자 낄낄대며 웃었다.

“……어이, 레이첼! 말 좀 해봐. 고블린 말고도 또 어떤 놈에게 강간당했지? 오크? 오우거? 트롤? 혹시 그 더러운 놈들의 애새끼를 베고 있는 건 아니겠지? 키킥, 그거 참 대단하겠군! 괴물의 아이를 임신한 귀족 영애라니 말이야! 아, 물론 걱정은 하지 마. 예정대로 네 년이랑은 결혼해 줄 테니 말이야. 어때?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날 것 같지 않아? 고블린한테 강간당한 년과 결혼해주겠다고 하는 남자는 이 세상에 나 밖에 없다고?”

힐다 공자는 자신의 시꺼먼 속내가 훤히 드러내며 온갖 추잡한 말들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이처럼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내 주변에 서있던 이들의 표정이 지금 당장에라도 그를 찢어 죽여 버릴 것처럼 험악하게 변해갔다.

“적당히 하라고 했습니다.”

물론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

내가 한 걸음 성큼 내딛으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으름장을 내어놓자, 힐다 공자의 어깨가 눈에 띌 정도로 크게 들썩였다.

누가 봐도 겁먹은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는 주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잔뜩 기가 질린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의외로 겁쟁이인건가?’

잠깐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지금 내 몸의 상태를 떠올리니 힐다 공자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키가 180cm를 훌쩍 넘기는 장신의 사내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으름장을 내어놓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최근에 매니저 어플 덕분에 몸에 근육까지 붙게 되어버렸으니…….’

물론 이게 매니저 어플 덕분에 생긴 근육인지, 아니면 하루가 멀다 하고 해대는 섹스 탓에 생긴 근육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를 혀를 끌끌 차며, 뒷걸음치는 그를 따라 재차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힐다 공자는 그제야 자기가 뒷걸음질을 쳤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굴을 시뻘겋게 붉혔다. 그리고는 이내 잔뜩 분한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이, 이건 내 약혼녀와의 일이다! 현자 나부랭이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현자 나부랭이요?”

“윽……!”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식의 어투로 내가 묻자, 힐다 공자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전 레이첼 영애를 구해왔습니다. 충분히 끼어들만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이리 말한 나는 힐다 공자에게 은근슬쩍 명패를 보여주었다.

레이첼 영애를 구한 은인이란 사실만 강조하더라도 충분하겠지만, 성녀가 보증하는 현자라는 점도 힐다 공자를 압박하기에 유용한 카드였다. 그리고 이런 내 의도대로 그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단 듯이 허둥대고 있었다.

“으으……. 마음대로 해라! 제기랄!”

힐다 공자는 죽어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는 모양인지, 씩씩대며 바닥을 발로 세게 걷어차더니 이내 훽하니 뒤돌아섰다. 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복도 모퉁이를 돌자, 처음 힐다 공자와 함께 등장했었던 가슴 커다란 여자 또한 허둥지둥 그를 따라 사라졌다.

가슴을 출렁출렁, 흔들면서 말이다.

역시 다시 봐도 미련해보일 정도로 커다란 가슴이다.

‘못 볼 걸 봐버렸군.’

나는 내 안구가 급격하게 피로해지는 걸 느꼈다.

지금 당장 에나를 불러내서 내 안구의 피로를 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현자님.”

그 때, 레이첼이 내 팔을 꼬옥 끌어안으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더불어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내 팔을 감싸며 부드러운 감촉을 남겼다. 그러나 그걸로는 내 안구의 피로를 풀 수 없었다.

아니, 도리어 내 안구의 피로가 가중 되는 듯이 싶었다.

하지만 그걸 대놓고 티냈다간 레이첼이 삐질 게 분명했기에 나는 짐짓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해주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끼어든 게 폐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군요.”

“폐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레이첼은 요조숙녀처럼 호호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새삼 레이첼이 귀족 여식이란 사실이 와닿았다.

물론 이런 레이첼도 나와 단 둘이 남게 된다면 서큐버스 못지않은 색기를 풀풀 풍겨대며 내게 엉겨 붙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엘레노아와 함께 레이첼을 안아주었을 때, 그런 모습을 마치 뽐내듯이 내게 보여줬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 날의 기억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쓰게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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