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예선] -->
소피아의 말대로 에나는 안 데려가는 편이 훨씬 더 좋아 보였다. 괜히 데려갔다가 오해를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납득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레이첼 씨를 던전 코어의 방으로 불러주시겠습니까?”
“던전 코어의 방으로? 아! 과연……! 던전 코어를 이용해서 이동할 생각인가? 좋은 생각이다.”
자그맣게 탄성을 터트린 소피아는 이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고는 레이첼에게 내 말을 전하기 위해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이처럼 소피아가 자리를 떠나고 나자, 나는 멀뚱하니 서있는 시류 발렌시아와 리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도 어서 가죠.”
“네.”
이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 대답한 시류는 마치 리나를 보호하듯이 자기 등 뒤에 숨기고서 내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시류 발렌시아가 리나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란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동료를 아끼는 마음이었다.
동료애.
하지만 불운하게도 리나라는 여성은 이걸 동료애가 아닌 사랑으로 느끼고 있는 듯이 싶었다. 뭐, 그렇게 느끼는 것도 사실은 무리가 아니었다. 시류 발렌시아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미청년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서 자신을 보호해준다면 그 어떤 여성이라도 마음이 홀라당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시류 발렌시아가 보통 사람이던가?
무려 영웅의 씨앗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만약에 시류가 내 던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차후 레벨을 50까지 올려서 영웅 등급에 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던전에 들어오게 된 게, 고블린 때문이라고 했었지?’
내가 엘레노아와 마틸다 그리고 아라크네에게 명령을 내려서 던전 근방의 고블린들을 싹 정리해버리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시류 일행이 이 근방을 조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사를 하던 도중에 내 던전을 발견하게 되었고…….
‘……결국엔 사로잡히게 되었지.’
어지간히도 재수가 없다고 볼 수가 있었다.
‘만약에 그 때, 내가 시류를 죽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시류 발렌시아는 영웅의 씨앗을 품은 예정된 영웅이었다. 그런데 그 영웅을 내가 죽여버린다면? 예정된 영웅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게임으로 따지자면 게임 오버. 즉, 주인공이 죽은 셈이었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었다.
‘……아니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웅의 씨앗은 말 그대로 씨앗이었다.
즉, 이 세계에는 시류 발렌시아처럼 영웅의 씨앗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최악의 경우, 수백 명의 영웅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거네.’
이 점을 염두에 두어두고 본다면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최대한 조용히 지내는 편이 좋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영웅의 씨앗이 발화하기 전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정된 영웅들을 내 노예로 만들던가 말이다.
시류 발렌시아처럼.
하지만 전자에 비해서 후자는 지극히 실행 가능성이 낮았다. 어느 세월에 예정된 영웅들을 내 노예로 만든다는 말인가? 애당초 이 세계 사람들은 매니저 어플로 검색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상 영웅의 씨앗을 품고 있는 예정된 영웅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도 같았다.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던전 내부의 서늘한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그러자 머리가 한결 개운해지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복잡한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짓을 하는 건지.’
내 소원은 이곳에서 조용히 마정석 파편이나 수거하면서 사는 것이었다.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았다.
어느 게임 속, 소설 속 마왕들처럼 세계를 정복하고 싶단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상납에 필요한 마정석 파편만 채취하면서 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베네딕트 왕자와 모니카 성녀의 도움으로 마정석 파편 수급에 아무런 지장이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딱 현상 유지만 하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던전의 안전만 확보되면 되었다.
[던전 마스터…….]
이처럼 상념을 정리하며 던전 코어의 방 안으로 들어서자, 다 죽어가는 던전 코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방금 전에 내가 너무 심하게 괴롭힌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던전 코어를 바라보다가 이내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은색 돌을 주워들었다.
[……아!]
순간 던전 코어가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짤막한 탄성을 터트렸다. 또다시 내가 자기를 괴롭힐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약간 서운해지려 했다. 아무래도 던전 코어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줄 필요성이 있어보였다.
나는 던전 코어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자, 조심스럽게 던전 코어의 본체인 검은색 구슬을 옷으로 닦아주었다. 흙먼지로 더럽혀진 구슬의 표면을 최대한 깨끗하게 닦아주는 것이었다.
갈라진 틈새에 들어가 있는 흙도 깨끗이 털어주었다.
[하으, 아……. 던전 마스터……. 후아, 아! 흐읏…….]
던전 코어는 부끄러운 모양인지, 제 가슴 앞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왜 자꾸 던전 코어만 보면 괴롭히고 싶어지는 걸까? 나는 구슬의 표면이 반짝반짝 빛이 날 때까지 옷으로 닦아준 뒤에 다정함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아, 으……. 조, 좋습니다. 훌륭합니다. 후아.]
내 말에 허둥거리면서도 예의 바르게 대답하는 던전 코어를 보니 장난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꾸물꾸물 치솟았다. 나는 내 손에 잡혀있는 검은색 구슬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이내 입술 쪽으로 가져간 뒤에 혀로 낼름 핥았다.
[……꺗! 뭐, 뭘 하시는 겁니까! 히익! 자, 잠깐! 하으읏! 던전 마스터! 꺄읏!]
여전히 검은색 구슬의 표면은 달콤한 맛을 내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좀 더 위쪽은 쓴 맛을 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혀를 이리저리 놀리며 던전 코어의 표면을 타액으로 질철질척하게 만들었다.
[햐으으읏! 아아……! 거긴, 히익! 안 됩니다! 끈적끈적해져버립니다! 저……. 꺄읏!]
내가 검은색 구슬의 표면을 핥을 때마다 던전 코어는 숨을 헐떡이며 양 팔로 자기 몸을 꽉 끌어안았다. 더불어 잔뜩 오므라져 있는 다리는 쉴 새 없이 벌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더 이상 서있을 수가 없게 된 모양인지, 풀썩 주저앉은 채로 애처로운 교성을 터트리는 던전 코어다.
[……하으으으윽!]
결국 절정에 달하고만 던전 코어는 그대로 까무러치며 바닥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더불어 내 손에 잡힌 채로 덜덜덜 떨던 검은색 구슬은 곧장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여전히 쾌감에 약한 던전 코어였다.
이래서야 내가 괴롭힘을 멈출 수가 없었다.
혀를 내두른 나는 타액으로 흠뻑 젖어있는 검은색 구슬을 옷으로 닦은 뒤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시류 발렌시아와 무슨 핵폐기물 보듯이 쳐다보고 있는 리나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
“…….”
아무래도 실수한 듯이 싶었다. 한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 하고 던전 코어를 괴롭힌 대가였다.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였다. 실로 뼈아픈 실책이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한들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아니었다.
“흠…….”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 던전 코어의 본채를 마저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방 중앙에 검은색 구슬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타이밍 좋게 레이첼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보!”
나를 여보라 부른 레이첼은 그대로 내 품에 뛰듯이 안겨왔다. 제법 세게 안겼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첼의 몸이 워낙에 가볍다보니, 거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내 손에 잡힌 잘록한 허리와 살이 거의 없다시피 한 팔이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레이첼의 몸을 조심스럽게 마주 안아주며 입을 열었다.
“여보라니요?”
“나와 그대가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응당 여보라고 해야 되지 않겠는가? 왜? 혹여…….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냐?”
레이첼의 목소리가 일순 흔들렸다. 혹시라도 내가 거절하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이에 나는 이걸 어쩌나 고민하다가 이내 레이첼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며 대답했다.
“마음에 들지 않긴요? 마음에 듭니다. 다만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여보라 부르는 건 조금 이르지 않겠습니까?”
“그, 그런가? 음……. 확실히 내가 성급했구나. 그럼 그대를 무어라 불러야 되는가?”
이어지는 레이첼의 질문에 나는 잠시 마땅한 호칭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레이첼과 함께 영지를 방문해야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현자가 괜찮겠네.’
대륙 이곳저곳에 퍼져있는 마정석 파편을 찾아 떠돌아다니던 현자가 우연치 레이첼 영애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거의 숨이 끊어져서 죽어가던 영애를 말이다.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내가 레이첼 영애를 구했다고 한다면 다들 납득할 테니 말이다.
물론 내 명성이 이바이크 백작령에까지 퍼졌을지는 의문이었지만, 일단 시험해볼 가치는 있었다.
‘……아니, 이왕에 이렇게 된 거 명패도 가져올까?’
좋은 생각이었다.
모니카 성녀가 내게 준 명패까지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더 이상 아무도 나를 의심하지 못 할 것이다.
‘좋군.’
이렇듯 생각을 굳힌 나는 내 품에 안겨있는 레이첼을 내려놓은 뒤에 입을 열었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잠깐이면 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이리 속삭여 말한 나는 레이첼의 입술에 다시금 입술을 맞춰주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녀의 표정이 황홀하게 녹아내렸다. 더불어 내 몸을 끌어안고 있는 손아귀에 조금 힘이 실린 것이 느껴졌다. 키스 하나로 이렇게나 좋아하니, 이쪽이 다 무안할 지경이었다.
쓴웃음을 터트린 나는 레이첼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입술을 떼어내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거라.”
내 몸을 보다 세게 끌어안으며 날 걱정해주는 레이첼의 태도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던전을 나갔다. 그러자 일순 눈앞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호텔 방 안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공간 이동 반지 소환.”
이처럼 현실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공간 이동 반지를 소환했다.
그 후, 자취방 내부의 모습을 상상하자 불현듯 내 몸이 허공에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곧 발바닥에 땅이 닿는 느낌이 들며 자취방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성공적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네.”
휴, 하고 한숨을 토해낸 나는 서랍장을 열어서 명패를 챙겼다.
‘팔찌도 챙길까?’
그러다가 문득 서랍장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팔찌가 내 눈에 들어왔다.
‘……서연이 누나한테 전부 다 들킨 마당에……. 뭐, 상관없겠지.’
쓴웃음을 터트린 나는 팔찌를 손목에 차고는 매니저 어플을 사용해서 던전으로 이동했다. 물론 여기서 곧장 호텔로 이동한다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공간 이동 반지는 1시간이라는 대기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즉, 호텔로 다시 가기 위해서는 1시간을 기다릴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니 그 긴 대기 시간을 기다릴 바에는 차라리 던전으로 가서 레이첼의 일을 마무리 지은 뒤에 현실로 돌아와 호텔로 이동하는 편이 좋았다.
“아!”
그리고 이처럼 던전으로 돌아오자, 레이첼을 비롯한 시류 발렌시아, 리나. 세 사람이 모두 벙찐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입을 살짝 벌린 게, 꽤 놀란 모양이었다. 하긴 갑자기 사람이 뚝 떨어지듯이 나타난 것이었다. 나라도 놀랄 것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입을 열었다.
“준비 됐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여전히 바닥에 앉아있는 던전 코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던전 코어, 우리를 이바이크 백작령 근처로 이동시켜줄 수 있겠어?”
[가, 가능합니다!]
왜인지 던전 코어는 온갖 호들갑을 떨며 크게 소리쳐 대답했다. 슬쩍 표정을 보아하니, 또다시 내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이쯤 되니, 슬슬 던전 코어가 불쌍해질 정도였다.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나는 레이첼과 시류, 리나를 내 쪽으로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
“바로 이동시켜줘.”
[알겠습니다. 인적이 드문 숲 속으로 이동시켜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한 던전 코어가 두 눈을 감자, 황금빛 물결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곧 눈앞이 서서히 빛무리가 되어 사라지더니, 이내 화악 하고 폭사하며 한순간 눈을 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점차 시야가 회복되더니 화창한 오후의 숲속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여, 여긴…….”
그 때, 시류가 정신을 차리고서 살짝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리나와 레이첼이 두 눈을 껌뻑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난생 겪어본 공간 이동에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처음에는 이것 때문에 꽤 당혹스러웠다. 이런 느낌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던전 코어를 이동해서 공간 이동을 하는 건, 매니저 어플을 이용해서 현계와 이계를 오갈 때보다 훨씬 더 난폭한 느낌이 들었다.
매니저 어플이 시원하게 뚫려있는 고속도로라고 한다면 던전 코어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라고 할 수 있었다.
“다들 문제없습니까?”
내가 이리 물으며 세 사람을 번갈아 보자, 다들 자기 몸 상태를 한 번씩 확인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니 다들 제대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나는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에나를 소환했다. 그러자 산들바람과도 같은 미풍과 함께 내 앞에 에나의 모습이 나타났다.
물론 그녀의 손에는 로브와 가면이 들려있었다.
“유현 님.”
부드러운 목소리가 더없이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여행에는 에나를 동반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로브를 건네받으며 입을 열었다.
“에나 씨, 이번에는 같이 움직이지 못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내 말에 에나의 얼굴에 살짝 실망감이 서렸다.
“제가 있으면……. 안 되는 일입니까?”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파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 레이첼 영애와 함께 이바이크 백작령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나 씨와 함께 방문하기가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이바이크 백작령이라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납득한 모양인지, 에나는 고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언제든 자신을 돌려보내도 괜찮다는 듯이 두 눈을 꼭 감았다. 그 모습이 보니 더더욱 마음이 미어져 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 불러드리겠습니다. 에나 역소환.”
이번 일을 끝내거든 에나를 호텔에서 잔뜩 안아줘야 될 듯이 싶었다. 마침 혼자서 쓰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방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점차 사라지는 에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로브를 입었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을 향해 돌아서며 입을 열었다.
“……레이첼 씨, 앞으로 절 어떻게 부르면 되겠냐고 물으셨죠?”
“아, 그래. 그랬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레이첼의 태도에 생긋 다정하게 웃어 보인 나는 천천히 앞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현자라고 부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