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29화 (429/599)

<-- [2차 예선] -->

‘뭐지?’

호기심이 불쑥 치미는 것을 느낀 나는 재빨리 숨어서 소피아와 시류 발렌시아, 두 사람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았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감탄 어린 시류 발렌시아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어왔다.

“익히기 어려우셨을 텐데, 벌써 이 정도까지 따라오시다니……! 소피아 양은 정말로 타고나신 것 같습니다. 이대로 3년……. 아니, 1년만 지난다면 어지간한 용병은 소피아 씨의 앞에서 찍 소리도 내지 못 할 겁니다. 물론 그 안에는 저도 포함되겠지요. 하핫!”

넉살 좋게 웃음을 터트린 시류 발렌시아는 양 손을 과장되게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단순히 입에 발린 칭찬은 아닌 듯이 싶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소피아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아니다, 아직 부족하다. 이 정도론 만족할 수 없다.”

“너무 그렇게 조금해하지 마십시오. 검술이란 게, 하루 이틀 한다고 해서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말끝을 잠시 늘린 소피아는 이내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검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래선 그녀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 정도로 강합니까?”

“강하단 말로는 부족하다. 그녀는……. 내가 감히 올려다 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소피아는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소녀의 표정은 감탄을 넘어선 경외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나는 소피아가 말한 그녀가 대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원수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저토록 필사적으로 검술을 익힐 까닭이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리 짐작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소피아와 시류 발렌시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문득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처럼 두 사람을 몰래 지켜보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비춰 보였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마른 체형, 머리 위로 리본을 한 것 같은 형상이 있는 걸 보면 여성인 모양이었다.

‘……누구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슬쩍 소피아와 시류 발렌시아 쪽을 바라보고는 이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사람의 그림자가 비춰 보이고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윽고 그곳에 도착하자, 머리에 빨간 리본을 달고 있는 여성이 자기 손톱을 까득까득 깨물며 두 사람을 훔쳐보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집중해서 보고 있던지, 내가 바로 등 뒤까지 접근한 줄도 모른 채 소피아와 시류 발렌시아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다.

“저, 저 불여시 같은 게……. 나만의 시류인데……! 시류, 저런 불여시한테 홀리면 안 돼! 으으, 시류! 시류우……!”

시류 발렌시아의 이름을 서럽게 울부짖고 있는 걸 보니, 시류와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그 때, 같이 잡힌 시류의 동료들인가.’

이쯤 되니, 슬슬 상황 파악이 되었다.

지금 이 여성은 시류를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었고, 현재 소피아가 시류에게 꼬리를 치고 있다고 착각하고서 이렇게 울분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마왕에게 자신의 연인을 빼앗긴 용사처럼 말이다.

“저 불여시 같은 게, 또 시류의 손을……! 안 돼, 시류……. 제발 그러지 마.”

심지어 흐느껴 울기까지 하고 있었다. 정말로 시류를 사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짝사랑이란 말인가? 나는 이 안타까운 짝사랑의 종지부를 찍어 주기 위해서 여성의 어깨를 검지로 툭툭 두 차례 두드려주었다.

“……꺅!”

일순 높은 소프라노 음의 비명 소리가 통로 전체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덕분에 검술을 연습하고 있던 소피아와 시류 발렌시아의 고개가 이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이내 다급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대가 여긴 어쩐 일인가?”

소피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내게 물음을 던지자, 나는 어깨를 살짝 으쓱이며 대답했다.

“어쩐 일이긴요. 레이첼 영애를 이바이크 백작 가로 데려가기 위해서 왔지요.”

“아아……. 그렇군.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군.”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소피아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검집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류 발렌시아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여성의 몸을 일으켜 세워주며 입을 열었다.

“리나? 네가 왜 여기에……?”

“아, 그게……. 그러니까……. 걱정이 돼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질투에 눈이 멀어서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던 주제에 지금은 정숙한 여인마냥 수줍게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까는 리나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모습이 놀랍도록 잘 어울리고 있었다. 긴 속눈썹이라던가, 샛노랗게 물들어 있는 머리카락이라던가. 특히나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새빨간 리본이 그녀의 사랑스러움을 한층 더해주고 있었다.

‘가식인가…….’

감탄성이 절로 터져 나올 정도였다. 그녀의 연기력에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주고 싶을 정도였다. 만약에 리나가 할리우드 배우였다면 틀림없이 오스카 연기상을 수상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리나가 곧 다시 눈꺼풀을 들어 올려 시류 발렌시아를 바라보았다.

이 때, 금색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을 내어서 그런지 사랑스러움이 절정에 달하는 듯했다.

“나도 같이 있으면 안 될까, 시류?”

도저히 거절 할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목소리였다. 특히나 그 대상이 남자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이런 리나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시류 발렌시아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리나의 옷에 묻어있는 흙을 털어주며 대답했다.

“미안해, 리나. 이건 사적인 일이라서 그럴 수 없어.”

“…….”

“자, 다른 애들이 걱정하겠다. 어서 가봐. 난 금방 갈 테니까.”

“…….”

아무런 대답 없이 멍하니 시류를 올려다보는 리나의 태도에 그는 잠시 고개를 기울이더니, 이내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아주며 입을 열었다.

“리나? 어디 다친 거야? 내가 바래다줄까?”

이런 그의 물음에 그제야 앗! 하고 짧은 외마디를 내뱉은 리나는 이윽고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으응……. 아니,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나 혼자 갈 수 있어……. 응, 아마 갈 수 있을 거야……. 아마도…….”

여기까지 말한 리나는 처연하게 말꼬리를 축 내렸다. 그리고는 슬쩍 시류를 올려다보며 ‘바래다주겠다고 고집을 부려줘.’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시류는 그 신호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 한 듯이 다행이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리나의 손을 내려놓았다.

“그래? 다행이네. 그럼 어서 가봐.”

“…….”

이러한 시류 발렌시아의 태도에 리나의 어깨가 눈에 뜨게 떨어졌다. 보아하니 그녀의 짝사랑이 이루어지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이 싶었다. 아니, 애당초 짝사랑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시류의 성별은 여자 같았으니 말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새하얀 피부라던가 오뚝한 코 그리고 큼지막한 눈동자와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는 그 누가 보더라도 전형적인 미인의 자태였다.

‘……여기서 머리를 조금만 더 기른다면…….’

지금은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친 상태였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길러서 어깨까지 내려오게 만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런 미소녀의 될 것이 틀림없었다.

“음…….”

아주 잠깐 그 모습을 상상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근질거려왔다.

‘이번 기회에 데리고 다니면서 확인해볼까?’

슬쩍 웃은 나는 몸을 돌리려는 리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리나 씨.”

“네?”

내 부름에 리나는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흠칫, 어깨를 떨더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처럼 눈망울을 그렁그렁 거리며 시류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기를 지켜달란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시선에 시류는 용사의 씨앗이란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답게 리나를 보호하듯 앞에 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시류의 물음에 나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웃음을 애써 꾹 삼키며 대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이번에 레이첼 영애를 이바이크 백작 가로 데려가는데, 동행을 요구할까 해서 붙잡은 겁니다.”

“동행을요? 음……. 그렇다면 저를 대신 데려가주십시오. 리나보단 제가 더 나을 겁니다.”

이처럼 자신이 대신해서 나서는 시류 발렌시아의 태도에 리나는 감동 어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술을 살짝 벌렸다. 아주 단단히 사랑에 빠진 여성의 태도였다. 하긴 그러니까 이렇게 몰래 훔쳐보고 있었던 것일 것이다.

쓴웃음을 터트린 나는 리나와 시류를 번갈아보며 대답했다.

“글쎄요. 그것보단 두 사람을 데려가는 편이 더 나을 것 같군요. 일단 하나보단 둘이 더 낫지 않습니까?”

“하지만 리나는…….”

이러한 내 말에 시류가 무어라 반박하려 하자, 리나가 재빨리 그의 팔을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괜찮아! 나도 갈 수 있어! 응, 나도 같이 갈게. 시류와 함께라면 괜찮아.”

“하지만 리나……. 넌 아직 상처도 다 낫지 않았는데.”

“벌써 나았어! 거뜬해!”

라고 말하며 꼭 함께 가고 싶단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하는 리나의 태도에 시류는 한동안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그리고 이처럼 동행 문제를 해결한 나는 소피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바이크 백작의 유언이 담긴 반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내 물음에 소피아는 재빨리 주머니 안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 보이며 대답했다.

“여기 있다. 이 반지의 여기를 만지면 이바이크 백작이 남긴 유언이 흘러나오게 된다.”

“편리하군요. 이건도 마법 장비인 겁니까?”

“그렇다. 매우 고가에 거래되는 장비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소피아는 내 손에 반지를 조심스럽게 쥐어주었다. 그리고 그 반지를 건네받은 나는 주머니 안에 반지를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소피아 씨도 이바이크 백작령으로 갈 준비를 서둘러주세요. 레이첼 씨는 제가 부르러 가겠습니다.”

“소녀도 데려갈 생각이냐? 음, 그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아니, 소녀가 따라가게 된다면 괜한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의심이라니요?”

“소녀는 이미 한 차례 유언이 든 반지를 가지고서 이바이크 백작령을 방문했다. 그런데 갑자기 레이첼 영애와 함께 방문하게 된다면 다들 의구심을 품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 일에선 소녀가 빠지는 것이 좋다. 물론 그녀도 마찬가지다.”

“그녀? 에나 씨요?”

“그렇다. 그녀 또한 이 일에서 빠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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