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예선] -->
“저, 저는 안 주셔도 괜찮아요!”
불쑥 채원이가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고개를 돌리자, 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서 양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채원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한동안 우물쭈물 거리다가 이윽고 제 가슴 앞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말을 이었다.
“……제 병을 고쳐주신 것만 하더라도……. 충분해요.”
라고 말하며 배시시 웃음은 터트리는 채원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마치 때 묻지 않은 새하얀 백지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누구의 손길도 타지 않은 순백의 도화지 말이다.
‘이런…….’
채원이를 보고 있자니, 또다시 음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매니저 어플을 얻고 나서 생긴 나쁜 버릇이었다.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음신을 떨쳐내었다. 이건 결코 품어서는 안 되는 욕정이었다. 하물며 채원이는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그런 어린 아이한테 욕정을 해서 뭘 어쩌란 말인가? 이건 크나큰 죄악이었다.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채원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예지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저도 필요 없어요!”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는 것이 마치 나보고 자기를 칭찬해달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확실히 어리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얘네들이 돈 쓸 일이 어디 있겠어?’
철부지라고 한다면 철부지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내 눈에는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하지?’
이리 생각하며 가면을 매만지는데, 이 소현이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저도 저번에 받은 돈으로 충분해요.”
“저번에 받은 돈이요?”
난생처음 듣는 말에 내가 의문을 표시하자, 내 곁에 있던 현주가 재빨리 입을 열어 설명해주었다.
“저번에 제게 말씀하셨잖아요. 마물 사냥꾼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라고요.”
라고 말하며 한쪽 눈만 살짝 감았다 뜨는 현주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내가 한 것처럼 만들어서 나를 띄워줄 속셈인 모양이었다. 이 얼마나 앙큼한 귀여운 짓이란 말인가? 고마운 마음에 현주의 엉덩이라도 한 차례 토닥여주고 싶었지만, 마물 사냥꾼들의 앞이었기 때문에 자제했다.
‘상은 조금 있다가 줘도 되니까.’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잠깐 잊고 있었군요.”
능청스레 말한 나는 다시금 마물 사냥꾼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위로금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저는 여러분들에게 수익을 나누어드리고 싶습니다.”
이러한 내 말에 다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뒤, 현주가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수익을 나누려고 하신다면 차라리 대한 에너지의 주식을 1만주씩 나누어주시는 게 어떠신가요?”
“주식을요?”
“네.”
자신만만해하는 현주의 말에 나는 잠시 입술을 꾹 다물었다.
‘1만주면 어느 정도 하는 거지?’
주식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1만주가 대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진 것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많은 건가?’
현주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걸 보면 꽤 많은 양인 것 같은데, 1만주라고 하니까 왠지 모르게 적어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걸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하며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자, 현주가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말소리를 뽑아내었다.
“1만주가 마음에 안 드시면……. 5만주까지 늘려보겠습니다.”
갑자기 다섯 배로 늘어났다. 게다가 말투도 지극히 정중해졌다. 아무래도 내가 화났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슬쩍 웃음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마물 사냥꾼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러한 내 물음에 다들 뭐가 뭔지 모르겠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윽고 대답했다.
“네, 뭐……. 주신다면 그렇게 받을게요.”
“저도 그렇게 할게요.”
“전 뭐로 주셔도 상관없어요.”
이처럼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나는 그제야 한숨 돌렸다.
‘더 정할 게 남아있나?’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럼 이제 마물 사냥꾼들의 의견을 수렴할 때가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까지 마물 사냥꾼들이 어떠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 했으니 말이다.
“그럼 다음으로 마물 사냥꾼 여러분들 중에 무언가 하고 싶으신 말은 없으십니까?”
이러한 내 물음에 김 예지가 재빨리 손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도 될까요?”
“다친 사람들을요?”
“네! 안 될까요?”
마치 비 맞은 강아지처럼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는 예지의 태도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상관없습니다. 다만 건강에 지장이 가지 않을 만큼만 하세요.”
“네! 걱정 마세요!”
내 허락이 떨어지자, 예지는 언제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었냐는 듯이 만세를 외치며 해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기운 넘치는 여고생이었다.
나는 잠시 예지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른 마물 사냥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다음으로 채원이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물었다.
“혹시 여자 친구 있으세요?”
“…….”
전혀 예상지도 못 한 질문에 그만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채원이의 질문이 떨어짐과 동시에 네 쌍의 눈동자가 무섭게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다들 무언의 압박을 보내오고 있었다.
어서 대답하라면서 말이다.
“없으세요?”
채원이가 다시금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더불어 그 옆에 있던 예지가 ‘얼른 대답해주세요! 네?’라며 내 대답을 다그치고 있었다. 이거 완전히 여학생들 앞에 선 선생님이라도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물씬 들었다.
‘이거 대답해도 괜찮으려나?’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윽고 대답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애당초 이건 지극히 사적인 내용이었다. 구태여 마물 사냥꾼들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때문에 나는 단호히 말했다.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에…….”
“사적인 질문은 하지 마세요.”
“우우…….”
내 말이 떨어질 때마다 채원이와 예지가 볼멘소리를 내며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단호히 무시며 계속해서 다른 마물 사냥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다음으로 신 혜진이 손을 들어 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한국 사람이세요?”
“…….”
이건 또 예상지 못 한 질문이었다. 나는 잠시 뜨끔하긴 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며 입을 열었다.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적인 질문은 하지 말라고요.”
“네,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한 신 혜진은 날 향해 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치 눈치 챘다는 것처럼 말이다. 역시 방심 할 수 없는 여고생이었다. 나는 크흠, 헛기침을 한 뒤에 다시금 마물 사냥꾼들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다들 쭈뼛쭈뼛 거리며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보아하니 다들 머릿속에 든 것이 사적인 질문 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못 말리겠군.’
쓴웃음을 터트린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마물 사냥꾼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더 이상 물어볼 게 없는 모양이로군요. 그럼 장비만 넘겨드리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고양이 귀 소환.”
고양이 귀를 소환하자, 내 손 위에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가 나타났다. 여전히 보들보들거리는 촉감이 일품이었다. 나는 잠시 손에 잡혀있는 머리띠를 만지작거리다가 이윽고 유 지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유 지아 씨, 이리 오세요.”
“뭐? 나?”
“그럼 여기에 유 지아 씨가 두 명 있습니까?”
이러한 내 말에 순간 유 지아의 얼굴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손에 들려있는 고양이 귀를 쳐다보았다.
“나보고 저걸 쓰라고?”
“무려 세트 아이템입니다.”
“아니, 세트고 뭐고 간에……. 진지하게 말해서 저게 나한테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라고 물으며 내 손에 들려있는 머리띠와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유 지아다. 이에 나는 냉정하게, 지극히 객관적으로 제 3 자가 되어서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를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결론.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미쳤어?”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발작하듯 소리치는 유 지아다. 그러자 옆에 있던 소현이가 지아의 팔을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언니, 한번만 써 봐요. 엄청 예쁘잖아요? 완전 귀여울 거예요!”
이러한 이 소현의 말에 한 채원과 김 예지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언니! 완전 귀엽잖아요!”
“언니는 귀엽지 않아요? 한번만 써보세요!”
꺅꺅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떠는 두 여고생의 태도에 유 지아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너네는 눈깔 삐었냐? 지금 내가 이 옷을 입고 있는 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끔찍한데……. 우리 엄마가 이걸 알면 존나 웃어재끼겠네.”
오른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싸며 한탄하는 유 지아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요정의 날개옷을 입은 것으로 어지간히도 놀림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긴 원래 바지만 입던 여자가 갑자기 치마를 입으면 그 모습이 낯설기 마련이었다.
실제로 은하가 그랬었고 말이다.
“그래도 언니, 지금은 잘 입고 다니시잖아요?”
“내가 이 속바지를 못 입었으면 진작 벗었어!”
대뜸 소리쳐 말한 유 지아는 오른손으로 치맛자락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말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야 될 허벅지와 종아리가 지금은 체육복 비슷한 바지에 감춰져있었다.
“유 지아 씨, 그러지 마시고 한번만 써보세요.”
“아니, 난 싫다니까? 나 말고 소현이한테 줘! 아니면 다른 애들한테 주던가!”
“유 지아 씨가 아니면 안 됩니다.”
“뭐……?”
이런 내 말에 순간 유 지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당황한 듯이 몸을 그대로 뻣뻣하게 굳힌 상태로 얼빠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에 제법 귀여웠기에 풉 웃음을 터트린 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유 지아 씨를 위해서 이 머리띠를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자, 잠깐……!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버럭 성을 내고 있기는 했지만 입꼬리가 금방이라도 귀밑에 매달릴 것처럼 올라가 있었다.
‘반쯤 넘어왔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양이 귀의 성능을 설명해주었다.
“이 머리띠로 말할 것 같으면 소리를 좀 더 잘 들을 수 있게 만들어주고, 민첩을 1 상승시켜줍니다.”
“응?”
“물론 당장 놓인 효과만 본다면 별 볼일 없습니다. 네,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가 앞서 말했듯이 이건 세트 장비입니다! 즉, 또 하나의 세트 장비를 모으게 되면 비로소 진가가 발휘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진가는 바로 묘인족의 체술입니다!”
“…….”
이리 말하며 유 지아의 안색을 살펴보는데,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뭐지? 뭔가 내가 말실수를 한 건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던 나는 이내 마음을 굳게 먹었다.
뭔가 실수를 했다면 만회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지체 없이 발걸음을 옮긴 뒤에 유 지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제가 준비한 게,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이러한 내 물음에 다시금 유 지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억울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쏘아보다가 이윽고 낚아채듯이 내 손에 들려있는 고양이 귀를 받아들며 입을 열었다.
“그래! 쓰면 되잖아! 쓴다고!”
크게 소리쳐 말한 유 지아는 그대로 고양이 머리띠를 썼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고개를 치켜들며 말을 이었다.
“……이제 마음에 드냥! 마음에 드냥고……. 냐앗? 냥! 이게 뭐냥! 내 말이 왜 이러냥! 너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냥! 야오오옹……!”
사납게 소리치던 유 지아는 퍼뜩 머리띠를 떠올린 모양인지, 재빨리 머리띠를 벗었다. 그리고는 지체 없이 땅바닥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이게 뭐야!!!”
기가 막힌 모양인지, 씩씩 거리며 내게 소리쳐 묻는 유 지아다. 반면에 이 소현을 비롯한 다른 마물 사냥꾼들이 우와! 우와! 하고 탄성을 터트리며 유 지아 곁으로 몰려들었다. 좀 더 정확히는 바닥에 내팽개쳐진 고양이 귀였다.
“저 이거 한번 써 봐도 되요?”
“아! 나도! 저도 써 봐도 되죠?”
한 채원과 김 예지는 뭔가 재미난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아이마냥 꺅꺅 소리를 내며 내게 물었다. 이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 채원이 얼른 자기 머리에 쓰며 입을 열었다.
“야옹! 야오오옹! 이거 신기해냥! 완전 신기냥! 냥냥냥! 저절로 끝에 냥 소리가 붙어냥!”
“꺅! 귀여워! 채원아, 더 말해봐!”
“이렇게냥? 야오오옹! 탄성도 야옹으로 바뀌어냥!”
채원이가 야옹 소리를 낼 때마다 김 예지와 이 소현이 곧 죽을 것만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자기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채원이는 뭐가 그리도 신이 나는지 연신 야옹야옹 거리며 귀까지 쫑긋 세웠다.
“언니, 방금 봤어요? 채원이 귀가 움직여요! 아, 그러고 보니까 이거 완전히 얼룩 고양이네!”
“어, 그러네? 아깐 분명히 귀가 은색이었는데, 지금은 검은색 얼룩이네?”
예지의 말에 채원이 머리에 씌워져 있는 고양이 귀를 보니,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 동그란 무늬가 그려져 있는 귀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앙증맞은 얼룩 고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