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예선] -->
“오빠!”
2조 합격자 무리에 속하게 된 은하와 지현이 그리고 예은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곧장 내 곁으로 달려와 합격의 기쁨을 마음껏 표시했다. 나는 그런 애들을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잘 했어, 애들아. 고생했다.”
이리 말하며 세 사람의 어깨를 한 번씩 두드려주는데, 카메라를 든 남성이 우리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합격자시죠? 지금 소감 좀 말씀해주시겠어요?”
보아하니 이것도 방송으로 나가는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살짝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인터뷰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내 행동에 남성이 살짝 고개를 숙여 내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는 지현이에게 카메라를 겨누었다.
“어……. 지금 말하면 되는 건가요?”
“네, 지금 말씀하시면 되세요. 그냥 지금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씀하시면 되요. 편하게요. 어차피 편집해서 나가니까 말실수는 걱정 마시고요.”
“아, 이거 혹시 악마의 편집 같은 거 되는 거 아니죠?”
“하하, 그건 걱정 마세요. 그러진 않을 테니까요.”
카메라를 든 남성의 말에 지현이는 장난스럽게 히히 웃더니, 이내 오른손으로 자기 머리를 뒤로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많이 떨렸는데……. 생각보다 실수를 안 해서 다행이었고요. 그리고 합격자 명단, 마지막에 불려서져……. 너무 기뻤어요.”
라고 말하며 눈물을 살짝 글썽이는 지현이다. 확실히 팀의 리더를 맡고 있는 만큼 부담감도 남달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지현이의 말에 카메라를 든 남성도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하 쪽으로 카메라를 돌리며 물었다.
“지금 가장 생각나는 분이 누구세요?”
“네? 저요? 아……. 부모님이요.”
“왜요?”
“저 이제까지 이런 건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 그래서 엄마, 아빠한테 뭐 보여드린 적이 없는데……. 이거 보여드리면 되게 좋아하실 것 같아요.”
배시시 웃음을 터트린 은하는 사뭇 뿌듯하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왠지 모르게 뿌듯해지는 듯했다. 카메라를 든 남성은 잠시 은하의 모습을 찍다가 이윽고 예은이 쪽으로 넘기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의 각오 한 마디, 해주시겠어요?”
“각오요?”
“네, 각오요.”
“어……. 음,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리 말한 예은이는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말을 끝마쳤다. 확실히 예은이다운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카메라를 든 남성은 잠시 당황한 듯이 싶긴 했지만, 이내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하셨습니다. 편히 쉬시고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이처럼 카메라를 든 남성이 다른 합격자들의 인터뷰를 받기 위해서 자리를 떠나자, 언제 왔는지 윤우를 비롯한 윤서랑 해민이가 우리 곁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누나들 축하드려요.”
“언니, 축하해요!”
윤우는 번듯하게 고개를 숙여 축하 인사를 했고, 윤서랑 해민이는 어리광을 피우듯이 은하와 지현이 그리고 예은이의 품에 안기며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환영에 은하네들은 헤실헤실 웃음을 터트리며 두 여고생을 마주 안아주었다.
“근데 누나들 실력이 장난 아니던데요? 어디 연습생이셨어요?”
“맞아요, 언니들 완전 멋졌어요!”
“저 완전 팬 됐어요!”
윤우의 칭찬에 윤서랑 해민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엄지를 척 내밀며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칭찬 세례에 은하와 예은이는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겸손함을 내보였고, 지현이는 반대로 콧대를 한껏 세우며 ‘이 정도는 기본이지!’라고 잘난 척을 했다.
‘지현이는 여전하네.’
쓴웃음을 터트리며 애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걸 지켜보는데, 열린 문을 통해서 3조 인원들이 들어오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에 나는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 애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다음 조 들어온다. 너희도 슬슬 자리로 돌아가라.”
“우리 그냥 여기에 앉아있으면 안 돼요?”
자리로 돌아가란 내 말에 지현이가 내 옆자리에 넉살좋게 엉덩이를 깔고 앉으며 물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행동에 나는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여긴 보호자들이 앉는 자리잖아. 너희는 합격자 자리에 앉아있어야지. 자, 얼른 가.”
“네…….”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한 지현이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애들을 데리고서 합격자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처럼 애들이 자리를 떠나고 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떠들썩했던 게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이거야 원, 폭풍이 따로 없네.’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자리에 앉은 뒤에 3조를 지켜보았다.
‘……이번 조도 화려하네.’
앞선 2조와 마찬가지로 3조 역시도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노래를 불렀다. 물론 얌전하게 노래만 부르는 팀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춤과 노래를 함께 선보이는 팀이 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다들 1차 예선을 통과한 팀이라서 그런지 실력이 대단하네.’
눈과 귀가 간만에 호사스런 사치를 누리는 듯했다.
물론 눈은 평소에도 호강을 하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3조와 4조 그리고 마지막 5조까지 전부 다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5조의 합격자까지 발표되고 나자, 합격자들을 위해서 마련되어 있던 자리가 어느샌가 꽉 차게 되었다.
“그럼 여기서 잠시 식사를 하고, 다음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 진행 요원 한 분이 나와서 소리치더니, 이내 큼지막한 상자를 든 남성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리고 이윽고 상자가 바닥에 내려지자, 진행 요원이 직접 상자를 연 뒤에 그 안에 들어있는 도시락과 음료수를 꺼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도시락과 음료수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으니까, 필요하신 분은 더 드셔도 됩니다. 자, 이거 뒤로 돌려주세요.”
이리 말한 진행 요원은 도시락과 음료수를 열 개 정도 꺼낸 뒤에 가장 앞 열에 앉아있는 참가자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걸 받은 참가자는 다시 뒤에 사람에게 넘겨주었고, 그런 식으로 마지막 뒷줄에 앉아있는 사람에게까지 전달되었다.
“보호자 분들도 하나씩 받으세요.”
그 때, 진행 요원으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내 곁으로 다가와 도시락과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에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은하한테 가볼까?’
이리 생각하며 은하네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도시락과 음료수를 하나씩 손에 쥐고서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여섯 명의 남녀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여섯 명의 남녀는 따로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더라도 바로 알 수가 있었다.
“오빠, 같이 먹어요.”
지현이가 쾌활하게 웃더니, 은하를 잡아당겨 내 옆자리에 뚝 앉혔다.
“지, 지현아!”
깜작 놀란 은하가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하자, 지현이가 ‘어허, 이거 왜 이러시나?’라고 말하며 두 손으로 은하의 어깨를 꾹 누르며 일어나지 못 하도록 만들었다. 슬쩍 지현이의 표정을 보니, 나와 은하를 어떤 식으로든 이어주겠다는 결의가 엿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쓴웃음을 터트린 나는 어쩔 줄 몰라해하고 있는 은하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그냥 편하게 먹어.”
이런 내 말에 은하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고, 지현이는 음흉하게 웃으며 반대편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윤우는 한동안 내 주변을 얼쩡거리다가 이내 내 뒤에 앉았다. 보아하니 내 옆자리에 앉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온통 사방이 여자들뿐인데, 같은 남자끼리 좀 뭉쳐야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불운하게도 내겐 자리 배정에 관한 발언권이 없었다.
“와, 맛있겠다.”
“얼른 먹자.”
여하튼 모두가 자리에 앉게 되자, 다들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도시락을 열어서 먹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렇게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니, 왠지 소풍을 나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만 나는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인가…….’
무언가 알 수 없는 괴리감이 느껴졌다. 실제로 여기서 내 나이가 가장 많기도 했고 말이다.
잠시 어깨를 축 늘어트리던 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는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처럼 도시락을 먹는데, 지현이가 칠칠맞지 못 하게 떡갈비 하나를 짚다가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으, 아까워라.”
울상을 지어보이며 바닥에 떨어진 떡갈비를 바라보는 지현이의 태도에 나는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리곤 내가 먹던 걸 하나 짚어서 지현이 도시락 위에 올려주었다.
“이거 먹어.”
“어? 정말요?”
“그럼 가짜겠냐?”
이런 내 핀잔에 히히 웃음을 터트린 지현이는 젓가락으로 냉큼 떡갈비를 집어먹었다. 그리고는 아! 하고 작게 탄성을 터트리더니 이내 양 볼을 발그레 붉히며 입을 열었다.
“와, 이거 진짜 맛있다! 오빠 꺼, 완전 맛있는데요?”
“응? 뭐, 달라?”
“막……. 그 때, 먹었던 와플 같아요.”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는 지현이의 태도에 나는 마지막 하나 남은 떡갈비를 흘겨보았다.
“그래서 달라고?”
“에이, 알면서.”
라고 말하며 은근슬쩍 내 떡갈비 쪽으로 젓가락을 내미는 지현이다. 이거 완전히 날강도가 따로 없었다. 어떻게 마지막 하나 남은 떡갈비를 노린다는 말인가? 흔히들 이걸 두고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놓았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란 격이 아닌가? 나는 잠시 지현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앞에 놓여있는 도시락 상자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더 먹고 싶으면 저기 도시락 하나 더 가져와서 먹어.”
“그러면 너무 많잖아요.”
입술을 삐죽 내민 지현이는 젓가락으로 떡갈비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니, 아주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혀를 내두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너 먹어라.”
“와! 오빠, 사랑해요!”
다 큰 처녀가 떡갈비 하나에 사랑한다고 외친다. 이 얼마나 값이 저렴한 사랑이란 말인가?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마저 밥을 먹었다. 그리고 사랑한단 말을 저염가에 팔아치운 지현이는 내게서 받아낸 떡갈비를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응……?”
그런데 이번엔 반응이 사뭇 달랐다.
“왜 그래?”
“음……. 맛이 좀……. 덜해져서요.”
“양념이 덜 묻었나보지.”
“그런가.”
마저 떡갈비를 입 안에 털어 넣은 지현이는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아쉬운 듯이 나무젓가락을 쪽쪽 빨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