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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어플-411화 (411/599)

<-- [2차 예선] -->

‘이걸로 화가 좀 풀렸으면 좋겠는데…….’

희망을 걸어보지만 전망은 어둡기만 했다.

“역시 괜히 말했나?”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긴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니, 후회하지 말자.”

나는 흐트러진 마음을 단호히 고쳐 잡으며 다시금 문자 메시지를 적기 시작했다. 서연이 누나의 마음을 어떻게든 돌려놓기 위해서였다. 설령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누나가 다시 마음을 돌릴 때까지 몇 번이고 계속해서 보낼 생각이었다.

“잘 될 거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이 중얼거린 나는 끊임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내 진심을 최대한 담아서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이처럼 집중해서 문자 메시지를 작성하는 동안 어느샌가 빌라 앞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잠시 스마트폰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은 뒤에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그런 다음에 집 안으로 들어선 나는 양치질을 한 뒤에 다시금 스마트폰을 붙잡고서 사과 문자를 적기 시작했다.

자고로 여자 친구가 화났을 때는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비는 것이 최고였다.

물론 이렇게까지 용서를 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친구의 화가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정말로 화가 났거나 아니면 이미 마음을 정리한 경우였다.

‘……누나는 아직 나한테 마음이 남아있어.’

생각 할 시간을 달라며 나를 내쫓던 누나의 모습에서 나는 일말의 작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에 누나가 정말로 내게 화가 났거나, 마음을 정리한 상태였다면 그런 식으로 나오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차분히 숨을 고른 나는 현재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그러자 어느샌가 약속 시간에 가까워진 시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슬슬 움직이지 않으면 약속 시간에 늦을 듯이 싶었다. 이에 나는 몸을 일으켠 뒤에 성큼 걸음을 내딛어 현관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 젖혔다.

“아……!”

그 때, 내 귓가에 낯익은 짧은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계단에 서있는 은하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나오세요?”

더없이 사랑스런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가슴 언저리를 간질이는 것만 같은 달콤함이었다.

나는 쿵쿵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은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귀여운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평균보다 살짝 큰 키에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내 눈에 확 들어왔다.

흔히들 이걸 두고서 베이글녀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어, 응.”

나도 모르게 조금 말을 더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당황한 것을 감추고자 재빨리 몸을 돌린 뒤에 문을 닫고 열쇠로 잠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은하가 계단에서 내려와 내 곁에 딱 섰다.

“오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같이 가도 돼요?”

집 안에 서연이 누나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아까보다 훨씬 더 작아진 목소리로 덧붙여 말하는 은하다. 자기 나름대로 나를 배려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 몰래 슬쩍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따로 가려고?”

“네? 아, 아뇨. 아니, 그게……. 아, 그러니까…….”

당황해선 어쩔 줄 몰라 하는 은하의 태도에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어서 가자, 약속 시간에 늦겠다.”

“네? 아, 네!”

이처럼 내 허락이 떨어지자, 은하의 얼굴에 그제야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 모습이 놀랍도록 사랑스러워서, 한순간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말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오른손으로 입 주변을 매만지며 정신을 추슬렀다.

‘뭘 설레고 그러는 거야?’

천천히 손을 떨어트린 나는 은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동글동글한 은하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지현이나 예은이가 선이 뚜렷한 서구적인 미인형이라면 은하는 전형적인 동양미인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한 듯 안 한 듯한 옅은 화장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고, 한데 묶어서 오른쪽 어깨에 내린 머리가 전혀 과하지 않게 예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저……. 이상하진 않죠?”

불쑥 은하가 제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내게 물었다. 익숙지 않은 화장에 옷까지 이렇게 차려입으니,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잠시 무어라 대답해줄까 고민하다가 이윽고 은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예뻐.”

“저, 정말요?”

“정말로.”

라며 딱 잘라 말해주자, 은하가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도 모르게 평소처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뻔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선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에서 애써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얼른 가자.”

이리 말하며 걸음을 내딛자, 은하가 네! 라고 대답하며 나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처럼 빌라를 벗어나 어느 정도 걸음을 옮기는데, 불현듯 안절부절 못 해하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은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계속 아무런 말도 없이 발걸음을 옮기니까, 어색한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은하에게 물었다.

“아침 먹었어?”

“네? 아……. 아뇨.”

고개를 도리질 치며 대답하는 은하의 태도에 나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재차 물었다.

“왜? 배고프지 않아?”

“그게……. 이것저것 준비하다보니까, 어느새 시간이 늦어서……. 게다가 긴장해서 그런지, 배도 안 고프고요.”

라고 말하며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는 은하의 태도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먹고 가자.”

“네? 아뇨, 그럴 필요는…….”

“너 그러다 쓰러진다.”

단호히 말한 나는 은하의 팔을 붙잡은 뒤에 근처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에 삼각 김밥과 샌드위치 하나씩 집어 들었다.

“……음료는 우유로 할래?”

“딸기 우유로 할게요.”

냉큼 대답하며 근처에 진열되어 있는 딸기 우유를 집어 드는 은하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아주 식욕이 없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도 익숙지 않은 화장을 하느라고 시간이 많이 잡아먹힌 것이 틀림없었다.

실제로 어제 있었던 연습에도 가장 늦게 도착한 은하였으니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삼각 김밥과 샌드위치 그리고 은하가 들고 있는 딸기 우유를 계산했다. 그런 다음에 나는 은하한테 딸기 우유를 넘겨주며 물었다.

“먹고 갈까?”

“아뇨, 걸으면서 먹을게요. 우리 늦었잖아요.”

확실히 그 말대로 시간이 빠듯하기는 했다.

“그래, 가면서 먹자.”

이리 말한 나는 은하와 함께 편의점을 나간 뒤에 샌드위치를 뜯어서 하나 넘겨주었다. 이에 은하는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 모습을 보니, 그제야 평소의 은하처럼 보였다.

“오빠는 안 드세요?”

“난 아침 먹었는데?”

“네? 그럼 그 김밥은 왜 산 거예요?”

“너 먹으라고.”

“에…….”

앓는 소리를 내며 내 손에 들려있는 삼각 김밥을 게슴츠레 쳐다보는 은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미 삼각 김밥을 은하에게 먹이기도 결정을 내린 생각이었다.

“앓는 소리 내지 말고 다 먹어. 너 오늘 노래 부르고 춤추려면 엄청 피곤할 걸?”

“그렇긴 해도……. 너무 많이 먹으면 배 나와요.”

“넌 배 나와도 예뻐.”

“……!”

순간 어째선지 은하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예쁘다는 말이 도통 적응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해가 되기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기 중엔 항상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선머슴마냥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그런 선머슴이 어떻게 이렇게 변하냐?’

절래절래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은하에게 삼각 김밥까지 꾸역꾸역 먹이고는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스마트폰을 꺼내보았다. 혹시라도 서연이 누나한테 답장이 오지는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서연이 누나한테서 온 문자는 한 건도 없었다.

‘……혹시 내 번호를 차단한 건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차단하진 않았을 거야.’

나를 경찰에 신고했다면 모를까, 번호를 차단할 서연이 누나가 아니었다.

‘……기다려보자. 오늘 하루 기다려보고, 계속 답장이 오지 않으면 내일 직접 찾아가보자.’

이리 생각을 굳히며 스마트폰을 도로 주머니 안에 집어넣는데, 문득 은하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응? 왜?”

“스마트폰을 보면서 엄청 심각한 표정을 지었잖아요. 왜요? 오늘 혹시 어디 가보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은하의 말에 나는 아차 싶은 생각에서 얼굴을 매만졌다. 서연이 누나에 대해서 너무 깊이 생각하다보니 무심코 표정으로 들어난 모양이었다. 쓴 웃음을 터트린 나는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무슨 일은……. 아무 일도 없어.”

“정말이요?”

재차 내게 질문을 던지는 은하의 태도에 나는 이걸 말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에 빠졌다.

‘아니, 이게 고민해야 될 일인가?’

이건 엄연히 사적인 일이었다. 후배인 은하한테 미주알고주알 말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은하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엄연히 나와 서연이 누나의 일이었다. 그러니 선을 딱 그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여보이고는 은하의 손에 들려있는 빈 우유팩과 비닐을 빼앗듯이 집어든 뒤에 근처에 놓여있는 쓰레기 통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런 내 행동에 은하가 어미 닭의 뒤를 쫓는 노란 아기 병아리마냥 쫄랑쫄랑 따라오며 입을 열었다.

“오늘 무슨 일 있으시면 제가 애들한테 잘 말해볼게요.”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은하의 태도에 무심코 그녀에게 이번 일을 상담하고 싶단 생각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 아무 일도 없으니까.”

이리 말한 나는 은하를 데리고서 곧바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가는 내내 은하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나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꾸준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윽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저 멀리 지하철 역 앞에 서있는 지현이와 예은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은하야!”

저쪽도 우리를 발견한 모양인지, 지현이가 큰 소리를 은하의 이름을 부르며 대뜸 뛰어왔다. 그리고는 그대로 은하의 몸을 꽉 끌어안으며 우정을 한껏 과시했다. 어찌나 격렬하게 끌어안던지,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오셨어요?”

그 때, 예은이가 평소와 같은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인사했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오래 기다렸어?”

“아뇨, 별로 안 기다렸어요.”

“그래? 다행이네.”

안도한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여전히 은하의 몸을 부둥켜안고 있는 지현이를 억지로 떼어낸 뒤에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섰다. 이 때, 지현이는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은하의 이름을 몇 번이고 외치며 달라붙으려고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힘이 넘치는 지현이었다.

‘예선 통과는 따 놓은 당상이네.’

아주 믿음직한 리더라고 할 수 있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현이를 바라보는데, 문득 지현이가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치며 물었다.

“오늘따라 은하가 달라 보이지 않아요?”

지현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은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오늘따라 여성성이 돋보이는 은하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달라 보이긴 하지.”

“어제 무슨 일 있었죠? 혹시……. 저질러 버린 거예요?”

라고 물으며 자그맣게 꺅꺅 소리를 지르는 지현이다. 심지어 오른손으로 내 등을 퍽퍽 치기까지 했다. 어찌나 세게 치던지 맞은 부위가 욱신거려올 정도였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

이런 내 말에 지현이의 손이 우뚝 멈추었다.

“정말로요?”

“정말로.”

나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확실하게 은하의 고백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걸 은하의 절친한 친구인 지현이에게 곧이곧대로 말해줄 이유가 없었다. 하물며 이건 내가 말할 게 아니라 은하가 말해야 되는 것이었다.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 철벽남이네요.”

“철벽남이 아니라 품절남이지.”

물론 지금은 도로 반품될 위기였지만 말이다.

‘반품남이라…….’

왠지 모르게 우울해지는 별명이었다. 나는 울컥 밀려오는 우울함을 애써 떨쳐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이전과 마찬가지로 예선을 치루기 위해서 월드컵 경기장(성산) 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이전처럼 지하철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많이 줄어들었네.’

눈에 띠게 줄어든 참가자들을 보니, 어쩐지 입맛이 썼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나만 하고 있는 게 아닌 모양인지, 은하의 표정도 그다지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특히나 이전에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던 환승역에서 얼마 되지 않는 참가자들이 탄 것을 확인한 순간 더더욱 애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현이가 은하와 예은이의 등을 탁 세게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기운 내! 우린 안 떨어질 거니까!”

라고 말한 지현이가 내 팔을 세게 잡아당기며 말을 이었다.

“……그렇죠, 오빠?”

이리 말하며 자기한테 협조하란 듯이 눈을 찡긋거리는 지현이다. 이에 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지. 솔직히 말해서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지.”

이러한 내 말에 순간 은하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예은이도 안 그런 척하고 있었지만 긴장이 많이 풀린 모양인지 피식 웃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 둘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지현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엄지를 척 내밀며 ‘잘 했어요, 매니저!’라고 작게 속삭이는 지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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