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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예선]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사물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운 거실 안, 그곳의 소파 위에는 유 서연이 쪼그려 앉은 채로 자신의 다리를 두 팔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유 서연은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졌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현이 가면을 쓴 남자라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애당초 처음부터 알아봤으니 말이다.
처음 딱 마주한 순간 그리고 시선을 마주친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유현을 억지로 데리고 다니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그의 정체를 밝혀낼 기회를 말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지도 못 한 일이 발생했다.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숲 속에 덩그러니 버려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생생한 꿈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괴물과 마주한 순간, 이게 꿈이 아니란 것을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현이 나타난 순간 그가 이 모든 걸을 꾸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끊임없이 그를 의심했고, 경계했다. 그러나 의심도, 경계심도 위험과 고통이 거듭 될수록 무뎌지고 말았다.
특히나 그가 자신을 대신해서 늑대에 물렸을 때는 모든 게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바보 같아…….’
그래, 바보 같았다. 자기가 꾸민 일이었으니까, 적당히 해도 됐을 텐데 바보처럼 늑대에게 물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에 혹하고 말았다.
피를 흘리면서까지 자신을 걱정해주던 유현의 모습에 그만 마음이 동하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그와 섹스까지 하고 말았다.
그 때, 분명히 첫 경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나 기분 좋은 걸, 왜 이제까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섹스를 즐기지 않은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그와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좀 더 일찍 만났다면 보다 즐겁게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유현을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연에게 있어서 삶이란 따분함, 그 자체였다.
뭘 해도 즐겁지가 않았고, 무얼 해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유치했다. 뭐든지 쉬웠으니까, 재미가 있을 리가 없었다.
단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자신을 떠받들어 주었다.
아버지는 그런 자신을 다그치기 위해서 인턴부터 시작하도록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녀의 위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비록 인턴이지만 사장의 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대우 받을 자격은 충분했다.
따분한 인생이었다.
‘난 왜 물어본 걸까?’
그런 인생에서 자신을 구해준 것이 유현이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항상 즐거웠다. 뭘 해도 재밌고, 뭘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가 내 남자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했다.
왜냐하면 그는 가면을 쓴 남자였으니까 말이다.
그의 곁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성이 많았다.
‘……마물 사냥꾼.’
그리고 이 현주, 그 더러운 여자하고도 무언가 관계를 맺었을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에나라는 여성도…….
“질투한 걸까?”
유현을 독점하고 싶었기에 물어본 것일지도 몰랐다. 나에게 집중하라고. 넌 내 꺼라고. 무의식중에 표출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표출 방식으로 일본에 관한 것을 물어본 것일지도 몰랐다.
삐뚤어졌다.
어딘가 망가진 것인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좀 충격이야.”
평소처럼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할 줄 알았는데, 왜 사실대로 말한 걸까? 이제 와서 새삼 양심이 찔리기라도 한 걸까? 혼란스러웠다. 혹시 자신과 헤어지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자신에게 무언가 달리 요구하고 싶은 게 있기라도 한 걸까? 머릿속이 터질 것처럼 복잡했다.
“보고 싶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현과 함께 앉아있던 소파가 유난히도 쓸쓸하게 느껴졌다. 유 서연은 슬쩍 고개를 돌려 그가 앉아있던 소파 위를 어루만졌다. 하지만 차게 식은 소파는 그의 온기를 조금도 머금고 있지 않았다.
“……유현.”
자그마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데, 불쑥 그녀의 귓가에 누나라고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구나.”
유 서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동시에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을 어루만졌다.
마치 연인의 몸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듯이 말이다.
∴ ∵ ∴ ∵ ∴
눈을 뜨자, 어두운 방 안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오른손을 뻗어보지만, 손에 잡히는 건 오로지 차디찬 이불뿐이었다.
약간 허무해질 정도였다.
“누나…….”
내 품에 서연이 누나가 없다는 사실이 이다지도 쓸쓸하게 느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많이 화났을까?”
불쑥 걱정이 치밀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전화를 걸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새벽에 가까운 만큼 전화를 받지 않을 확률이 다분했다. 설혹 나처럼 일어나 있다고 하더라도 전화를 받아줄 지는 미지수였다.
나는 한동안 머리맡에 놓여있는 스마트폰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몸을 일으켰다.
창문 밖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나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싼 뒤에 깊이 숨을 들이켰다. 그러자 조금씩 정신이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우울한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위에 무거운 돌이 얹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나도 참 피곤하게 사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어제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일본에 가본 적 있어? 그 질문에 평소처럼 서연이 누나를 기만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그랬다면 적어도 지금쯤 누나의 부드러운 몸을 꼭 끌어안고서 곤히 자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만을 선택하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으로 서연이 누나한테 모든 것을 밝혔다. 그리고 이게 그 결과물이었다.
누나의 집에서 쫓겨났고, 지금 내 곁에는 서연이 누나가 없었다. 어찌 보면 참 비참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속은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네.’
갑갑한 가슴을 주먹으로 몇 차례 두드려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거 설마……. 서우 때처럼 되는 거 아닐까?’
그 당시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해서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 상황은 비슷했지만 아주 똑같다고는 볼 수 없었다. 애당초 그 때는 불가항력이었다.
더욱이 이별통보를 한 뒤에 나는 곧바로 입대를 했다.
그러다보니 이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시간이 충분히 있었고, 서연이 누나와 완전히 헤어진 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누나는 내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래, 믿자.’
설혹 누나가 나를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만큼 노력하면 되었다. 애당초 방학 기간이기 때문에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더욱이 돈도 문제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더 이상 서연이 누나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현주한테서 얼마든지 얻어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될 거야.”
이리 중얼거린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그런 다음에 혹시라도 서연이 누나한테서 온 전화가 없을까 싶어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전화는커녕 메시지 한 통도 없었다. 씁쓸함이 밀려왔지만, 이윽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매니저 어플을 실행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알림문구가 화면에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출석 체크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아이템 상자가 주어집니다.]
[랜덤 아이템 상자를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축하합니다!]
[30일 동안 매일 출석 체크를 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종합 선물 세트(LV10)이 주어집니다.]
[종합 선물 세트(LV10)를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오…….”
설마하니 30일 출석 체크 보상이 준비되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작게 탄성을 내뱉으며 곧바로 두 개의 보상을 수령했다.
[축하합니다!]
[아이템 ‘속마음 스티커 (1회)’을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 대상은 속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대상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말로 나오게 됩니다.]
[유효한 시간 : 1시간]
[축하합니다!]
[경험치 2000을 획득했습니다!]
[강화 보호권 (장비) (1회)를 획득하셨습니다!]
[랜덤 세트 장비 상자를 획득했습니다!]
[랜덤 세트 장비 상자를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축하합니다!]
[사용자의 레벨이 10에서 11로 상승했습니다.]
[현계 퀘스트의 범위가 2000킬로미터로 증가합니다.]
[보유 할 수 있는 마물 사냥꾼의 숫자가 7명으로 증가합니다.]
[현재 5 명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용자는 마물 사냥꾼을 고르실 수 있습니다. 마물 사냥꾼을 고르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화끈하네.”
이 정도면 거의 퍼주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경험치를 획득한 건, 조금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뒤이어 준 강화 보호권과 랜덤 세트 장비 상자는 그걸 상쇄시키고도 충분했다.
“……그나저나 랜덤 세트 장비 상자면 무조건 세트 장비를 준다는 거겠지?”
그 말은 즉, 유령 기사 세트를 충분히 노려볼만하다는 것이었다.
꿀꺽, 군침을 삼킨 나는 조심스럽게 네를 눌렀다. 그러자 일반적인 랜덤 장비 상자와는 다르게 황금으로 만들어진 호화로운 상자가 화면에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는 곧 부들부들 떨더니, 이윽고 팡파르와 함께 뚜껑이 열렸다.
[축하합니다!]
[장비 ‘이프리의 유물, 지팡이(S)’을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1 : 턴 언데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경 5M 이내, Rare 등급 이하의 모든 언데드를 소멸시킵니다. (5초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효과 2 : 권능 : 소생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대상을 치유할 경우, 치유 속도가 30% 증가합니다. (1분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효과 3 : 소생의 빛을 사용 할 수 있습니다. 반경 10M 이내 존재하는 아군의 상처와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5분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세트 (2/4) : 신의 가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자세히 보기 (10분 동안 지속됩니다.)]
[세트 (3/4) : 전장의 처녀 : 발키리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최대 1마리)]
[세트 (4/4) : 권능 : 부활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30일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단지 효과 설명을 읽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 들었다.
‘뭐, 이런…….’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장비라고 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내가 보유하고 있는 유령 기사 세트의 완벽한 천적이었다. 턴 언데드라니? 단지 주문을 한번 외우는 것만으로 반경 5미터 이내의 모든 언데드가 소멸하는 것이었다.
물론 희귀 등급 이하라는 단서가 붙어있기는 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희귀 등급 이하의 언데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다는 말과 똑같았다.
게다가 만약에 여기서 더 강화 단계가 올라가게 된다면 틀림없이 등급 제한 또한 자연스레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이것도 엄청 탐나네.”
특히나 세트 장비 세 개를 모았을 때, 쓸 수 있는 세트 스킬인 전장의 처녀 발키리는 꼭 한번 써보고 싶었다.
‘대체 무슨 모습일까?’
북유럽 신화에서 주신인 오딘을 섬기는 발키리는 고대 노르웨이어로 전사자를 고르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그녀들은 인간계의 전쟁에서 용감한 전사자가 생기면 오딘의 명에 따라 여신 프레이야의 통솔을 받으며 전장에 나가 전사자들을 아스가르드 혹은 발할라 궁전으로 데려온다.
여기서 묘사되는 발키리의 모습은 대부분 아름다우니, 분명 이 세트 스킬로 소환되는 발키리 역시 아름다울 것이 틀림없었다.
“…….”
잠시 그 모습을 상상하던 나는 이윽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중하자, 자중.’
일단 당장 급선무는 서연이 누나를 달래는 일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서우 때와 같은 결말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하는 편이 좋았다. 천천히 숨을 고른 나는 몸을 일으킨 뒤에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다음에 몸을 깨끗이 씻은 나는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편의점에 가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사먹었다.
‘……슬슬 누나도 일어나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전화가 나을까? 아니면 문자가 나을까?’
내 진심을 전하기 위해서는 전화가 나았고, 천천히 다가가려면 문자가 더 나았다. 스마트폰을 붙잡고서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이윽고 문자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누나, 잘 잤어요? 아니, 너무 뜬금없나?’
하지만 문자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마음에 드는 문장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대부분 머릿속을 겉돌며 나를 심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뭐라고 써야지, 화가 풀릴까?”
한참을 끙끙 앓던 나는 이내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적어서 보냈다. 정말로 길게 적어서, 내가 지금 반성하고 있다는 걸 누나한테 최대한 내비쳐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