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09화 (409/599)

<--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일본이라니?’

주변의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걸 왜?’

안 좋은 생각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혹시라도 눈치 챈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시기가 너무나도 공교로웠다. 왜 하필 지금이란 말인가?

나는 당장에라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침착하자.’

여기서 서연이 누나의 시선을 피한 순간 그걸로 끝이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관계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될지도 몰랐다. 물론 가슴 한편으로는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은 서연이 누나였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었다.

천천히 숨을 고른 나는 누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흑진주 같은 눈동자부터 시작해서 얼굴 표정, 꾹 다물어져 있는 입술의 모양새까지. 그 모든 것을 꼼꼼히 살펴본 직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구나.’

누나는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라고 대답해. 라고 말이다. 서글픈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필사적으로 내 몸을 꽉 붙잡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하나 밖에 없었다.

서연이 누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리 묻는 까닭은 나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따라 유난히도 내게 사랑한다고 속삭였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누나는 이미 알고 있구나.’

어떠한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누나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듯이 싶었다. 내가 가면을 쓴 남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외통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외통수가 아니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내가 아니요. 라고 말을 하기만 해도 충분히 넘어갈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속고 속이는 관계가 지속될 것이 틀림없었다.

‘……차라리 여기서 떳떳하게 밝히고 사과하자.’

물론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이미 모든 게 들킨 마당에 끝까지 구질구질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본 적 있어요.”

이러한 내 대답에 누나는 한동안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윽고 내게 물었다.

“몇 번?”

“두 번이요.”

“…….”

누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서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 표정이 놀랍도록 차갑게 굳어있어서, 나도 모르게 흠칫 몸을 굳힐 정도였다.

“……비켜.”

“누나, 미안해요.”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넌 미안한 거 없잖아. 그냥…….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혼자 있게 해줘.”

힘없이 말을 쏟아낸 누나는 두 손으로 내 가슴을 밀쳤다. 그러나 그 손에는 조금도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나는 내 가슴에 데어져 있는 누나의 손을 꼭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사랑해요, 누나. 이건 정말로 진심이에요. 누나랑 사귀고 나서 행복하지 않았던 날은 단 하루도 없어요. 하루하루가 미칠 듯이 좋았어요.”

“그럼 일본에 간 적이 없다고 말해! 계속…….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란 말이야!”

원망 가득한 누나의 목소리에 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를 좋아하니까, 더 이상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왜 진작부터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거야?”

서연이 누나의 눈동자에 스며있는 불신의 그림자를 보니, 가슴 한구석이 절로 아려왔다. 확실히 내가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방법 밖에 없었다. 더 이상 서연이 누나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기적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누나와 확실한 관계를 맺고 싶었다.

“누나가 저를 떠날까봐 겁이 나서 말하지 못 했어요.”

이리 말한 나는 누나의 손을 보다 세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런 내 행동에 서연이 누나는 한동안 나를 올려다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렸다.

“이해 못 하겠어…….”

“누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단호히 말한 서연이 누나는 그대로 내 몸을 밀쳐내었다. 이번에는 확연하게 힘이 실려 있었다. 정말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이에 나는 더 이상 버티지 않고 얌전히 물러나주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누나는 소파에서 일어난 뒤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나가.”

차디찬 목소리가 또다시 내 가슴을 세차게 때렸다.

“누나.”

“여기서 나가줘.”

양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싸며 내게 부탁하는 서연이 누나의 태도에 가슴 한켠이 응어리 진 것처럼 답답해져왔다. 차라리 누나한테 한 대 맞는 게 훨씬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누나는 나를 때릴 생각이 조금도 없단 듯이 그저 고개를 돌린 채 나를 내쫓으려 하고 있었다.

“…….”

여기서 나가야 될지, 아니면 누나를 달래줘야 될지 선뜻 결단이 내려지지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누나의 몸을 끌어안아주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분위기도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한동안 누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옷을 추슬러 입고는 집 밖으로 나갔다.

∴ ∵ ∴ ∵ ∴

일본 열도가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열네 명으로 이루어진 일본인 마물 사냥꾼 중에 기무라 카즈나리를 제외한 열세 명 전원 마물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 기무라 카즈나리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어본다면 사실상 전멸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전멸한 일본인 마물 사냥꾼! 남은 건, 한국의 다섯 명의 마물 사냥꾼 뿐…….

-기무라 카즈나리의 스마트폰에 촬영된 영상의 정체는?

-한국인 마물 사냥꾼과 일본인 마물 사냥꾼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일본 언론은 마치 이때가 기회라는 것처럼 기사를 쏟아내었다. 한국 언론 또한 맞불을 놓듯이 기사를 쏟아내었다. 그만큼 이번 일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일단 마물 사냥꾼이 처음으로 사냥에 실패해서 죽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간간히 마물 사냥꾼을 임명한 인물에 대한 비난도 나왔다.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물 사냥꾼을 지키지 않는 이유는?

-그가 진작 나섰다면 열세 명의 일본인이 무고하게 죽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 했다. 왜냐하면 그에게 밉보일까 지레 겁을 먹은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사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전세계 기자들이 이 문제를 민감하게 생각하며 쉬쉬하고 있었다.

현재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간에 당장에 밉보여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마물을 사냥할 수 있는 건 마물 사냥꾼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마물 사냥꾼을 임명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뿐이었다. 여기서 그에게 밉보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마물로 가득 차버릴 게 틀림없었다.

그것은 곧 인류의 멸망을 뜻했다.

그러니 다들 쉬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다들 열네 명의 일본인 마물 사냥꾼이 본보기라는 것을 은연 중 깨닫고 있었다. 자신에게 대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본보기 말이다. 그러다보니 그에게 무어라 할 수 있을 국가 혹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한편 유일한 생존자인 기무라 카즈나리는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미처 영상을 올리기도 전에 일본 정부가 그의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일찍이 방송을 통해서 그가 기무라 카즈나리의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찍고 있었다는 사실을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스마트폰에 찍힌 영상을 확인한 일본 정부와 관계자들은 근심에 빠졌다.

왜냐하면 이번 영상에 찍힌 내용은 엄연한 경고였기 때문이었다. 자기 말에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주는 일방적인 경고 말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되는 건, 이 모든 문제가 바로 일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었다.

잘 못 하면 일본이 그에게 밉보였다는 인식을 전세계에 심어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국가 신뢰도와 연관이 되어 있었다. 치안이 불안한 나라로 그 누구 관광을 오겠는가? 일본 정부로선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또 올리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본 총리는 가면을 쓴 남성의 심복이라 알려져 있는 대한 에너지의 사장 이 현주 사장에게 직접 부탁했다. 그리고 그 부탁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대한 에너지 측에서 영상을 올리되, 그가 일본에 대해서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명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 일본 정부는 녹색 보석에 대한 개발 연구 지원을 내걸었다. 실제로 에너지 개발 쪽에 관해서는 한국보다 일본이 우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대한 에너지가 대한 그룹에 속해있다고는 하지만 신생 기업에 불과했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 정부가 무상으로 개발 연구를 지원해준다면 예정보다 일찍 녹색 보석을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을 게 틀림없었다.

결국 이렇게 이해가 일치되자, 이 현주 사장은 당일 21시에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리고 이 영상은 올라간 지 고작 1시간 만에 조회수 천만을 달성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동시에 이 현주 사장은 그분께서 일본에 따로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내비쳐 보이기 위해서 동영상으로 얻는 모든 수익을 교토 청수사 복원과 위안부 여성 지원 단체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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