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401화 (401/599)

<--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청수사 안쪽으로 들어서자, 경복궁을 연상케 하는 전통 가옥들이 눈에 속속히 들어왔다. 특히나 돌담과 잘 어우러져 있는 아름드리나무들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고풍스럽다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다만 이렇게나 넓은 장소에 나와 에나, 단 둘이 밖에 없다보니 살짝 음산한 기운마저도 감도는 듯했다.

나는 에나와 함께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붉은색 노을이 하늘을 포근하게 감싸며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굉장합니다.”

그 때, 에나가 감탄성을 터트렸다. 이에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보니, 높게 서있는 건물이 노을빛이 완전히 감싸여 완연한 붉은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감탄성을 터트릴 만도 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 뒤에 에나와 함께 그 풍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슬쩍 에나의 손을 붙잡아주자, 그녀의 얼굴 또한 노을빛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그 모습에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에나의 손을 몇 번 어루만지다가 이윽고 노을빛이 약해지자 다시금 돌담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슬슬 이 부근인데.’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장소를 확인해보았다. 그러자 지도에 표시된 붉은색 점이 정면에 보이는 반쯤 허물어진 건물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나는 에나를 데리고서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후, 칠흑의 지팡이로 나무나 돌 같은 잔해물을 걷어내자, 하나의 어두컴컴한 지하 통로가 내 눈에 들어왔다.

“여긴가?”

확실히 수상하기 짝이 없는 지하 통로였다. 하지만 거대 오우거가 들어갔다 나오기에는 지하 통로의 입구가 지나치게 좁아보였다. 기껏 해봐야 성인 남성 두세 명 정도가 한꺼번에 지나갈 수 있는 크기였다.

물론 그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넓은 크기이긴 했지만 신장이 5미터에 이르는 거대 오우거가 지나가긴 여러모로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도에 표시된 걸 보면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윽고 지하 통로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단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지도에 표시된 위치는 이곳이었고, 지도가 아니면 오크 족장이 설치한 소환진의 위치를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간도 없었다.

서연이 누나와 퇴근하기 전에 어떻게든 서둘러 일을 끝마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통로를 가로 막고 있는 잔해물을 완전히 걷어내었다. 그러자 희뿌연 먼지가 우수수 떨어지며 어두컴컴한 통로를 완전히 드러내었다. 그걸 본 나는 스마트폰을 꺼낸 뒤에 빛을 밝혔다.

“들어가죠.”

이리 말한 나는 에나와 함께 통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쾌쾌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불쾌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쾌한 냄새라곤 절대로 말 할 수 없었다.

나는 냄새에 금세 익숙해지기를 바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유현 님, 무언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때, 에나가 내 앞에 서며 말했다. 이에 귀를 기울여보니, 저 멀리서 따각 따각 거리는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보호의 반지를 소환한 뒤에 칠흑의 지팡이를 손에 꽉 쥐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 기다리자, 곧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불빛에 비추어진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스켈레톤?”

백골이라고 하기에는 진흙 따위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해골이었다. 살점이 하나도 붙어있지 않은 걸 보니, 죽은 지 꽤 오래된 사람들인 것 같았다. 아마도 청수사가 지어지기 이전에 땅속에 묻혀있던 해골들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잠시 스켈레톤을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칠흑의 지팡이를 들어서 주문을 외웠다.

“……어둠의 화살.”

빠르게 쏘아져 나간 검은색 화살은 다각다각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던 스켈레톤들의 머리를 으깨버렸다. 다만 뒤에 더 있었던 모양인지, 쓰러진 스켈레톤 뒤로 여러 마리의 스켈레톤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그 모습에 에나가 발걸음을 성큼 내딛으며 입을 열었다. 이에 깜짝 놀란 내가 그녀를 제지해보려고 하는데, 에나는 그보다 한발 더 빠르게 스켈레톤들에게 다가가 주먹을 휘두르며 머리를 박살내버렸다.

‘어라?’

방금 전에 내가 스켈레톤을 쓰러트렸듯이, 에나 또한 스켈레톤들을 무리 없이 쓰러트리자 나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계 퀘스트로 등장하는 마물은 오로지 나와 마물 사냥꾼만이 쓰러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외의 경우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잠깐, 이게 현계 퀘스트였던가?’

불현듯 떠오른 의문에 나는 재빨리 스마트폰의 화면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현계 퀘스트의 발생을 알리는 알림문구가 떠올라 있지 않았다.

‘현계 퀘스트가 아니면 공격이 통한다는 건가.’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느샌가 스켈레톤을 모조리 처치하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에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에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스마트폰의 불빛으로 통로를 비추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뭐, 나야 모로 가더라도 소환진만 처리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만.’

어깨를 으쓱인 나는 에나를 앞세워 통로를 막는 스켈레톤들을 차근차근 처리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안쪽으로 들어서는데, 문득 통로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정말이었다.

이건 에나도 눈치 챈 모양인지, 그녀가 걸음을 멈추며 내게 속삭였다.

“여기서 50미터 정도 더 걸어가면 공터가 나옵니다. 제법 큰 공터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꽤 많은 수의 적들이 있습니다. 따로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이전에 본 망자들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가보지도 않고 이런 정보들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건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 놀라움도 잠시,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지도를 확인해보았다. 그러자 에나의 말대로 이 앞에 붉은색 점이 표시되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제대로 찾아오긴 했나보네.’

이를 확인한 나는 에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갑시다.”

이러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앞으로 성큼 걸음을 내딛으며 대답했다.

“길을 열겠습니다.”

길을 열겠다고 말한 에나는 갑작스레 튀어나와 우리 앞길을 가로막으려는 스켈레톤들을 철저히 부숴버렸다.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다. 퍼석, 퍼석 소리를 내며 두개골이 깨지는 스켈레톤들이 도리어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나는 힘을 잃고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뼈들을 자박자박 밟으며 에나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렇게 에나가 말한 대로 50미터 정도를 걸어가자, 내 눈에 곧 꽤 넓은 공터 하나가 들어왔다.

“까드득. 까득.”

“까각. 깍.”

더불어 그 공터를 가득 채우고 있는 무수히 많은 스켈레톤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얼추 눈에 보이는 것만 세어보아도 최소 일백은 넘어보였다. 오크 족장이 괜히 이곳에서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아니었다.

‘징그럽게도 많이 만들어 놨네.’

나는 주변을 한번 훑어보고는 저 멀리 세워져 있는 구조물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저것이 거대 오우거를 소환한 구조물인 듯이 싶었다. 혀를 내두른 나는 칠흑의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구조물을 향해 그 끝을 겨누며 주문을 외웠다.

“어둠의 화살.”

이처럼 주문을 외운 순간 검은색 화살이 내가 목표한 구조물을 파괴하기 위해서 빠른 속도로 쏘아져나갔다. 그러나 미처 구조물에 닿기도 전에 갑자기 스켈레톤 하나가 허공에 나타나선 한 손으로 검은색 화살을 막아내었다. 이에 깜짝 놀란 내가 그 스켈레톤을 바라보자, 녀석 또한 음산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이를 딱딱 부닥쳤다.

“까득. 깍. 여긴. 까득. 망자의 땅이다. 깍. 까드득. 까득. 산 자는. 까득. 존재할 수 없다. 까드득.”

보아하니 저 녀석이 보스인 모양이었다.

‘보스라…….’

확실히 보스라는 이름값을 하는 듯이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대 오우거를 한 방에 쓰러트렸던 검은색 화살을 단번에 소멸시켰으니 말이다. 나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굳혔다.

‘……이거 재밌겠는데?’

낼름,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인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고블린 소환. 오크 소환.”

이처럼 고블린과 오크를 소환한 순간 내 주변에 아흔 여섯 마리의 고블린과 여섯 마리의 오크가 나타났다. 스켈레톤도 소환할 수 있었지만, 상대가 망자를 다스리는 것만큼 내가 소환한 스켈레톤이 적의 편으로 넘어갈 지도 몰랐기 때문에 일단은 소환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소환한 고블린과 오크만 하더라도 충분히 상대의 스켈레톤을 막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고블린과 오크를 소환하자, 녀석이 눈구덩이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며 말소리를 뽑아내었다.

“까득. 따악. 소환사였나! 까득. 까드득! 재밌군! 까득. 좋다, 그렇다면 나도…….”

무언가 보여줄 생각인 모양인지 녀석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이를 딱딱 부닥치는데 불현듯 내 앞에 서있던 에나가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마치 도움닫기를 하듯이 스켈레톤의 머리를 밟더니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헉!”

자신의 코앞까지 날아오른 에나의 주먹에 녀석이 헛숨을 들이켜며 뒤늦게 피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미처 피하기도 전에 에나의 주먹이 먼저 녀석의 머리에 꽂히더니, 이내 퍽!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숴버렸다.

후두둑!

그리고 이처럼 보스가 쓰러지자, 공터를 가득 채우고 있던 스켈레톤들 또한 일제히 힘을 잃으며 쓰러졌다.

타악.

에나는 허공에서 내려와 사뿐히 바닥에 착지하더니, 이윽고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선빵필승입니다, 유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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