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여기까지 말한 나는 사토 슌로쿠의 머리를 도로 땅바닥에 처박았다.
“마물 사냥꾼이 만만해 보였습니까? 마물을 사냥하는 게, 간단해보였습니까? 마물 사냥꾼이 되면 무조건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틀렸습니다. 애당초 무조건 성공하는 것이었다면 마물 사냥꾼이 아니라 마물 학살자라고 이름을 붙였을 겁니다.”
“끄윽, 끅……. 꺽.”
“사토 슌로쿠 씨, 당신이 그토록 얕잡아 보았던 기존의 마물 사냥꾼들은 모두 이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물과 싸워서 당당히 승리했습니다. 반면에 당신들은 어떻습니까? 남성이란 신체적 우위와 좋은 무기 그리고 수적인 우세!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물에게 패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꺼억, 억……. 끅.”
“어디 한번 그 잘난 입으로 지껄여보시죠. 자랑스러운 일본이라고. 선택받았고. 천황 폐하 만세라고요.”
이리 말한 나는 사토 슌로쿠의 머리채를 붙잡아 다시금 일으켰다.
“으윽……. 꺽…….”
검붉은 피가 입술 사이로 울컥울컥 쏟아지고 있는 걸 보니, 대답하기 곤란해보였다. 아마도 이대로 놔둔다면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저절로 숨을 거두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에 나는 잠시 사토 슌로쿠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옆으로 눕혔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기무라 카즈나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기무라 카즈나리 씨, 그 스마트폰 줘보세요.”
“네? 아, 네! 네!”
갑작스러웠던 모양인지, 잠시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던 그는 이윽고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스마트폰을 건네받은 나는 기무라 카즈나리를 찍으며 입을 열었다.
“자, 기무라 카즈나리 씨가 대신해서 말해보세요. 이래도 마물 사냥꾼을 일본인으로 전부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침 잘 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당초 이 말을 꺼냈던 것은 기무라 카즈나리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내 질문에 그는 마치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무릎을 꿇었다.
“아닙니다. 바뀌면 안 됩니다. 한국인 마물 사냥꾼이야 말로 진정한 마물 사냥꾼입니다. 일본인은……. 일본인은 안 됩니다. 무리입니다! 마물은……! 괴, 괴물입니다! 괴물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가 느끼고 있는 절망감, 두려움이 여실히 전해져왔다. 그러나 일본인은 안 된다는 식의 발언은 무척이나 부적절했다. 나는 어느 민족 하나가 차별받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고개를 들어 올리도록 만들었다.
“기무라 카즈나리 씨, 일본인은 안 된다는 식의 생각은 잘 못 되었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기무라 카즈나리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을 이었다.
“……마물 사냥꾼은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구나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필요로 하는 마물 사냥꾼은 각오가 된 사람만이기 때문입니다. 기무라 카즈나리 씨처럼 말로만 떠드는 사람도 아니고, 사토 슌로쿠 씨처럼 생각이 모자란 사람도 아닙니다. 정말로 제 도움이 필요하고, 마물과 싸울 각오가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겁니다.”
여기까지 말한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기무라 카즈나리에게 도로 건네준 뒤에 한 걸음 내딛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 서로 사이좋게 나갑니다. 인류가 한 발자국 내딛으면 저도 한 발자국 내딛는 겁니다. 서로가 이렇게 호흡을 맞춰 나가는 게 얼마나 보기에 좋습니까? 게다가 제가 딱히 무슨 어려운 제안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 나는 스마트폰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이해가 되었다면 제가 하는 일이 간섭하지 마세요.”
이렇듯 말을 끝마친 나는 기무라 카즈나리에게 신호를 보내서 촬영을 끝마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그가 스마트폰을 내려놓자,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기무라 카즈나리 씨.”
“아! 그, 그럼…….”
“네, 이걸로 용서해드리겠습니다. 다만 다음에도 또 이런 짓을 하다가 걸린다면 그 땐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네, 네! 그럼요. 두 번 다신 이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번듯한 직장을 잡아서……. 아니, 뭐든지 하겠습니다! 성실하게 살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몇 번이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하단 말을 하는 기무라 카즈나리의 모습에 살짝 미심쩍었던 내 마음이 스르륵 풀렸다. 물론 사람의 본질이란 게, 쉽게 변하지는 않는 법이었지만 또 우습게도 한번 변하기 시작하면 금세 변해버리는 게 사람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 찍은 영상은 방송국에 넘기든지, 개인적으로 올리던지 상관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은폐하려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셔야 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꼭 올리겠습니다! 반드시 올리겠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올리겠습니다!”
다소 과장되게 소리치는 기무라 카즈나리의 태도에 절로 웃음을 터져 나왔다.
“그럼 믿겠습니다. 자, 먼저 가시죠. 저는 할 일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스마트폰을 꼭 쥐고서 거듭 허리를 꺾으며 감사하단 말을 한 기무라 카즈나리는 이윽고 도망치듯이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 저러다가 혹시 넘어지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내 시야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용케 넘어지지 않고 잘도 뛰어갔다.
‘일단 이걸로 일단락 된 건가?’
천천히 숨을 몰아쉰 나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러자 여전히 내 머리 위에 떠있는 헬기의 모습이 보였다.
‘……스마트폰을 꺼내야 될 텐데.’
물론 내가 가진 스마트폰이 워낙에 흔한 기종이다 보니, 설혹 노출이 된다고 하더라도 하등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껄끄러운 것은 여전했다. 게다가 이런 작은 정보가 하나둘씩 쌓여서 나중에는 내 목을 조여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칠흑의 지팡이 끝을 헬기 쪽으로 겨누었다. 그리고 이런 내 경고를 잘 알아들은 모양인지, 헬기는 곧장 방향을 바꾸어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에 만족한 나는 칠흑의 지팡이를 거둔 뒤에 헬기가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됐군.’
이윽고 헬기가 모습을 감추자, 나는 에나와 함께 청수사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 때, CCTV에 스마트폰이 찍히지 않도록 로브로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이걸로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놓고 노출시키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축하합니다!]
[현계 퀘스트 ‘거대 오우거!’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장비 상자가 주어집니다.]
[랜덤 장비 상자를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마물 사냥꾼을 호출해서 마물을 처리한 게 아니다 보니, 평소처럼 경험치 정산 알림문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경험치가 증발한 건가.’
아까운 일이었다. 혀를 내두른 나는 네를 눌러서 랜덤 장비 상자를 수령했다.
[축하합니다!]
[장비 ‘고양이 귀(S)’을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1 : 청각이 30% 증가합니다.]
[효과 2 : 민첩이 1 상승합니다.]
[세트 (2/2) : 묘인족의 체술이 적용됩니다. : 자세히 보기]
“오, 세트 장비!”
경험치 상실이 만회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화면에 나타난 세트 장비인 고양이 귀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소환해보았다. 그러자 내 손에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가 나타났다.
‘진짜 같네?’
머리띠에 달려있는 고양이 귀를 손으로 만져보자, 털의 촉감부터 시작해서 귀의 질감까지 실제 고양이와 똑같이 느껴졌다. 내심 감탄하며 몇 번 만지작거리던 나는 불현듯 이걸 머리에 쓴 에나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에나가 고양이 귀를…….’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아니, 구미 정도가 아니었다. 욕망이 거세게 소용돌이치면서 어서 빨리 에나의 머리에 머리띠를 씌워보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에나에게 고양이 귀를 내밀었다.
“에나 씨, 이걸 한번 써보시겠습니까?”
“이걸 말씀이십니까?”
“네, 한번 써보세요.”
이러한 내 말에 에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이윽고 내가 내민 고양이 귀를 머리에 썼다. 그러자 갈색이었던 고양이 귀가 에나의 머리카락 색에 맞춰서 점차 눈처럼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완벽하게 하얀색이 된 순간, 고양이 귀가 쫑긋 세워지며 자신의 귀여움을 마음껏 뽐냈다.
“오오……!”
나도 모르게 감탄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에나의 귀여움이 평소보다 배로 늘어난 것만 같았다. 이거 아무래도 숨겨진 히든 효과로 귀여움이 100% 증가합니다. 라는 게 숨겨져 있는 듯이 싶었다.
“이, 이상하진 않습니냥? 냐앙!”
“……!”
에나의 입술 사이로 말소리가 새어나온 순간 우리 둘 다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자기 입을 양 손으로 가로막았고, 나는 가슴을 움켜쥐고 말았다.
세상에, 세상에! 지금 내가 잘 못 들은 건 아니겠지? 나는 설마하며 입을 열었다.
“……에나 씨. 다시 한 번 더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러한 내 부탁에 에나는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다가 이윽고 말소리를 뽑아내었다.
“이건 이상합니냥. 냥냥, 계속 말끝에 냥 소리가 붙습니냥. 저주 받은 물건인 것 같습니냥. 정말로 불합리합니냥. 야옹.”
마지막에 에나가 야옹 하고 우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을 비틀거리고 말았다. 대체 이 귀여운 생물이 어디서 튀어나왔다는 말인가? 당장 여기서 에나를 덮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특히나 냐앙 냐앙 울면서 신음 할 에나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니, 하복부가 절로 뻐근해져왔다.
반면에 에나는 고양이 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손으로 머리띠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래선 기사의 품위가 유지되지 않습니냥. 곤란합니냥. 야오옹. 저는 기사입니냥.”
새하얀 머리카락이 흩날릴 정도로 거세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는 에나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파란색 눈망울이 나를 향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마치 고양이 종류 중에 하나인 먼치킨을 보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에나의 상황이 먼치킨이니,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짝 접힌 에나의 고양이 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엄청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러한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에나의 고양이 귀가 쫑긋 세워졌다. 보아하니 착용자의 감정에 따라서 고양이 귀가 변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속으로 오오오! 하고 탄성을 터트리며 에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 어울린다니냥? 그렇지 않습니냥. 야오옹. 냐아아앙.”
부끄러운 모양인지, 길게 울음소리를 내며 양 볼을 붉게 물들이는 에나다. 그 모습을 보니, 당장에 에나의 집사……. 아니, 노예라도 되고 싶을 지경이었다. 뭐라도 할 테니, 제발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살아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에나는 고양이 귀를 계속 착용하고 있을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었다.
“……냐앙, 유현 냥. 이제 그만 벗고 싶습니냥. 부담스럽냥. 냐앙. 말이 자꾸만 어색합니냥.”
확실히 말끝마다 냥을 붙이니, 어색하게 들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 어색함보다 사랑스러움이 더 크게 느껴지니, 그런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나는 계속 에나의 머리에 고양이 귀를 씌워둘까 싶다가 이윽고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벗으셔도 괜찮습니다.”
“냥! 감사합니냥!”
이러한 내 말에 에나는 더없이 기뻐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재빨리 머리띠를 벗었다. 그 모습을 보니, 차마 계속 쓰고 있으란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머리띠를 건네받은 뒤에 역소환했다.
‘이건 마물 사냥꾼에게 줘야겠네.’
그리고 그 유력 후보로는 역시나 유 지아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전사 계열인 이 소현이나 궁수 계열인 신 혜진에게 주어도 괜찮았지만, 자고로 민첩이라 하면 도적 계열이 으뜸이었다. 게다가 마물 사냥꾼들 중에서도 유 지아의 민첩이 82로 가장 높으니, 그녀에게 주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오크 족장이 만들어둔 소환진을 찾아내기 위해서 지도를 열람해보았다. 그러자 곧 내가 서있는 위치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위치에 표시되어 있는 붉은색 점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저긴가 보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지점의 방향과 거리를 가늠해본 나는 이윽고 스마트폰을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가죠.”
이리 말한 나는 에나와 함께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