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뭐야? 이걸로 끝이야?’
점차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거대 오우거의 모습에 나는 어이가 두개골에서 가출해버리는 것을 느꼈다.
한 방이라니? 아무리 칠흑의 지팡이가 강화 5단계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질 녀석이 아니었다. 거대 오우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에 나타난 마물은 일반적인 오우거가 아닌 네임드 몬스터였다.
“…….”
하지만 지금 내 앞에 놓여있는 결과물은 명확했다.
내가 쏜 어둠의 화살이 녀석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으며 숨통을 앗아갔다. 단 한 방에 말이다! 좀 더 극적인 상황을 만들고자 했던 나로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서 ‘이럴 순 없어!’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지금 내 머리 위에는 헬기가 떠있는 상태였다. 수천, 수만……. 어쩌면 수십만 명이 지금 내 모습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러자 헬기에 탄 채로 나를 정신없이 찍고 있는 기자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걸 보아하니, 아주 단단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무라 카즈나리 씨.”
“히익! 자, 잘 못 했습니다! 잘 못 했습니다! 잘 못 했습니다!”
몇 번이고 목소리를 높여 잘 못 했다고 용서를 비는 그의 모습이 제법 걸작이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고서 양 손을 싹싹 비벼대고 있는 그를 일으켜 세운 뒤에 입을 열었다.
“진정하시죠, 기무라 카즈나리 씨.”
“서, 선생님…….”
눈물로 얼룩진 사내의 모습이 그다지 썩 보기에 좋지 않았다.
나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윽고 그를 놓아주며 입을 열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계십니까?”
“네? 네! 네! 물론입니다!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기무라 카즈나리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내게 보여주었다. 이에 나는 그의 등을 탁 치며 입을 열었다.
“혹시 다큐멘터리를 보신 적 있으십니까?”
“네?”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는 기무라 카즈나리의 태도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여기저기 땅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사내들을 가리켰다. 그 모습이 상당히 흉물스러웠었는데, 어떤 사람은 다리가 뜯겨져 나가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허리가 폴더 폰처럼 접혀있었다.
심지어 씹다만 껌처럼 머리가 반쯤 으깨어져 있는 사람도 있었다.
만약에 내가 일반인이었다면 저 장면을 보자마자 토악질을 해대며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보다 더한 광경도 봤던 사람이었다. 이 정도 광경쯤은 웃으면서 넘길 수가 있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켠 나는 새빨간 피로 점철된 장소 족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실제로 있었던 어떠한 사건을 극적인 허구성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다큐멘터리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아마존의 눈물이 있죠. 꽤나 감명 깊은 다큐멘터리였습니다.”
“…….”
“우리도 한번 찍어보죠. 제목은……. 그렇군요. 마물 사냥꾼의 눈물이 어떻겠습니까? 아니, 그것보단 마물 사냥꾼의 피가 좋겠군요.”
이리 말하며 과장스럽게 양 팔을 펼친 나는 기무라 카즈나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기무라 카즈나리 씨, 그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어주세요. 하나도 빠짐없어요. 아시겠습니까?”
“지, 지금 말씀이십니까?”
“그럼 지금이 아니면 언제 찍습니까?”
이러한 내 말에 그는 잠시 부르르 몸을 떨더니, 이윽고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나는 기무라 카즈나리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향해 멋들어지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지금 이 영상을 보고 계신 여러분?”
나는 어눌한 목소리로 최대한 친근감을 표시했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들을 만난 게, 이번이 두 번째로군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로 반갑습니다! 아? 지금 제가 있는 곳이 어디냐고요? 기무라 카즈나리 씨, 주변을 한번 찍어주시겠습니까?”
이러한 내 요구에 그는 재빨리 스마트폰을 돌려서 주변을 찍었다. 그리고 이윽고 스마트폰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나는 반가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보셨습니까? 전 지금 교토의 청수사에 와있습니다. 게다가 해질녘이라서 그런지,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저기 보이는 붉은 노을이 보이십니까?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라고 말하며 잠시 감상적인 분위기가 되었던 나는 이윽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제가 이렇게 여러분을 뵙게 된 것은 한 가지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자, 기무라 카즈나리 씨. 저를 따라오시죠.”
이리 말한 나는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는 사내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윽고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나는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찍기 전에 한 가지 주의드릴 게 있군요. 지금부터 보여드릴 장면은 무척이나 잔인하니까, 어린아이와 노약자 그리고 임산부는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음, 조금 늦었나요? 뭐, 알아서 처음 부분에 경고 문구를 넣어 주리라고 믿고 있겠습니다.”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 나는 적당한 것을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았다. 이 때, 이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고자 일부러 시체를 발로 뒤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건 목이 잘렸으니까 안 되고, 이건 내장이 보이네요. 음, 이건 그나마 깨끗하긴 한데 역시 미관상 보기에 좋지가 않군요.”
“우욱!”
이처럼 내가 시체를 발로 차며 뒤적거리자, 결국 참다 못 한 기무라 카즈나리가 토악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래, 이해한다. 나도 이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는 꺽꺽 대며 토악질을 해댔으니 말이다.
심지어 비릿한 피냄새를 맡고서 토악질을 해대기까지 했다. 그런 의미에서 기무라 카즈나리가 나보다 더 비위가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꺽……. 꺼억, 꺽……. 사, 살려……. 줘. 커억.”
그 때, 내 귓가에 꺽꺽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피거품을 물고서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는 사토 슌로쿠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무척이나 공교로웠다.
운명의 여신이 나를 위해서 밑장이라도 빼놓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겨 사토 슌로쿠에게 다가간 뒤에 그의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살긴 글렀군.’
오우거에게 밟힌 모양인지 양 쪽 다리가 완전히 박살나있었다. 물론 박살난 곳에는 그의 고환도 포함되어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허리 아래론 전부 다 짓뭉개져있다고 볼 수 있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쪼그려 앉은 뒤에 기무라 카즈나리를 향해 손짓했다.
“기무라 카즈나리 씨, 이쪽으로 와서 이 분 좀 찍어주시겠습니까?”
이러한 내 말에 그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으로 사토 슌로쿠의 모습을 찍기 시작하자, 나는 사토 슌로쿠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끄아아아악!!”
그 순간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기무라 카즈나리의 안색이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그러나 나는 눈 하나 깜빡 하지 않고서 말했다.
“사토 슌로쿠 씨, 지금 이 영상을 보고 계신 여러분에게 인사 한 마디 해주시겠습니까?”
“아, 으……. 아아, 사……. 살려……. 줘. 살려…….”
“네? 살려달라고요? 아, 저도 물론 살려드리고야 싶습니다. 그런데 이걸 어쩝니까?”
무척이나 곤란하단 목소리로 말한 나는 검지로 아래를 가리키며 아래를 찍도록 했다. 그리고 이런 내 손짓을 알아본 기무라 카즈나리가 서둘러 스마트폰을 아래로 내려서 사토 슌로쿠의 하체를 찍었다.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흉측하게 짓눌려있는 하체를 말이다.
“……다리가 이 지경이 되어버렸는데요? 이건 화타가 와도 못 고칠 겁니다. 정말로 유감스럽습니다.”
라고 말한 나는 도로 손짓해서 사토 슌로쿠의 얼굴을 찍도록 했다.
“자, 사토 슌로쿠 씨. 이제 슬슬 자기소개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꺽, 꺼억……. 주, 죽고 싶지……. 않아. 끄윽. 사, 살려……. 줘.”
“자기소개를 하기 힘들어 보이는군요. 그럼 제가 대신 해드리죠.”
딱 잘라 말한 나는 사토 슌로쿠의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으며 말을 이었다.
“……이 쓰레기의 이름은 사토 슌로쿠라고 합니다. 민족우월주의에 빠져서 일본인이야말로 가장 우월한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가 기존에 임명한 마물 사냥꾼들을 미개한 조선인이라고 부르더군요. 지금 시대에 어느 시대인데, 대한민국 사람을 조선인이라고 부릅니까? 지금이 1910년입니까? 아직도 일제강점기입니까?”
코웃음을 친 나는 사토 슌로쿠의 얼굴을 다시 들어 올려 스마트폰에 찍히도록 했다.
“이보세요, 사토 슌로쿠 씨. 당신은 어느 시대 사람입니까?”
“끄으윽, 윽…….”
“당신이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건, 일왕 사진을 보며 딸딸이를 치건 저는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적당히 하셨어야죠. 사토 슌로쿠 씨, 당신은 남이 싼 좆물에 얼굴이 맞으면 기분이 좋습니까? 제 기분이 딱 그렇습니다. 당신이 치고 싼 좆물에 맞은 기분입니다.”
나는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상스러운 단어들을 입에 담으면서 내 기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 마디로 존나게 기분이 더럽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