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지금 이대로 좋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나는 손에 들려있는 서류를 이시하라 히로마사에게 돌려주었다.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이것을 내가 보았던 안 보았던 간에 상관없이 그들의 처우는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여기서 더 나빠질 수도, 좋아질 수도 없었다.
물론 유일하게 내게 사과하던 기무라 카즈나리에 대한 동정이 조금은 남아있긴 했지만, 그것도 딱 거기까지였다.
동정은 어디까지나 동정이었다. 결코 용서가 될 수 없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이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은 상태였다. 이제 와서 발을 뺀다는 건 불가능했다.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담담히 생각을 정리하고는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그러자 서서히 목적한 곳에 도착한 모양인지, 차량의 속도가 처음에 비해서 많이 느려진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내 예상이 맞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얼마 가지 않아서 차량이 완전히 정차했다.
“더 진입하고 싶지만, 이 이상은 위험하기 때문에 그게 불가능합니다.”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리 대답한 나는 차량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자위대의 안내를 받아서 한 자리로 모이고 있는 남성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이 때, 속박의 지속 시간이 끝난 모양인지, 사토 슌로쿠가 씩씩 거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나와 시선을 마주치자, 그가 갑자기 사납게 나를 쏘아보았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군.’
자신이 한 성깔 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남성을 과시하고 싶은 걸까. 그는 시뻘겋게 물든 얼굴로 나를 한동안 쏘아보더니, 발로 전봇대를 세게 걷어찼다. 열 살 배기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는 그의 태도에 고개가 절로 가로저어졌다.
나는 사토 슌로쿠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에 이시하라 히로마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데려다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잠시나마 모실 수 있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진심을 담아 말한 그는 날 향해 경례를 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일동 군인들이 나를 향해 경례를 했다. 이에 나는 잠시 속으로 감탄하다가 이윽고 오른손을 들어 경례를 받아주었다. 전역을 하고나서 오랜만에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군 복무 당시에 수만 번도 더 했던 경례였기 때문에 그런지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확실히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를 때도 그렇고, 딱히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몸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모양이었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이시하라 히로마사 일등육좌를 뒤로 하고서 열 네 명의 남성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 그럼 가실까요?”
“…….”
이러한 내 말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되는 것처럼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바로 이 근처에 마물이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토 슌로쿠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나서며 힘껏 목소리를 높였다.
“어서 안내하기나 해!”
이처럼 사토 슌로쿠가 나서서 소리치자, 몇몇 남성들이 동조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물결이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모두를 움직이게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인지, 기무라 카즈나리를 비롯한 몇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뭔가 계기를 만들어줘야겠군.’
나는 우거지상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남성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팔다리 하나씩 부러트려 놓겠습니다.”
“네?”
“말 그대로입니다. 에나 씨, 이 사람의 팔을 부러트려주세요.”
나는 두 번 말하지 않았다. 수십 번 말하는 것보다는 한 번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에나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남성의 왼팔을 붙잡은 뒤에 그대로 수수깡 꺾듯이 꺾어버렸다.
“으아아아아악!!!”
순간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사방에 가득 울려 퍼졌다. 특히나 여기엔 마흔 명에 달하는 자위대와 마물 사냥꾼으로 임명된 남성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괜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내, 내 팔! 아악! 내 팔!”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땅바닥을 뒹구는 남성의 태도에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의 몸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꺾인 팔을 대충 원래 상대로 만든 뒤에 저번에 새로 얻은 스킬인 치유를 사용해서 치료해주었다. 그러자 대충 원래 모양으로 맞춰놓았던 팔이 보다 정교하게 모양을 바꾸며 원상태로 돌아갔다.
또한 고통도 잦아드는 모양인지, 남성의 비명 소리가 금세 사그라졌다.
“허억, 억……. 억.”
다만 고통의 잔재는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있는 모양인지, 게거품을 물고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이에 나는 그의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보셨습니까? 이렇게 되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어서 빨리 움직이십시오.”
이러한 내 말에 다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내 손에 잡혀있는 남성을 일으켜 세우며 속삭였다.
“……당신도 어서 움직이는 편이 좋을 겁니다. 안 그러면 이번엔 다리를 부러트려 놓겠습니다.”
“히익!”
경고가 확실히 들어 먹힌 모양인지, 그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먼저 앞서 달려간 사람들을 뒤쫓아 뛰기 시작했다. 이를 본 나는 에나와 함께 열 네 명의 남성들을 쫓아 청수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렇게 십여 분 정도를 걸어서 붉은색이 유독 돋보이는 청수사 정문이 내 눈에 들어왔다. 굉장히 화려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심 감탄하며 남성들과 함께 돌계단을 올라갔다.
“크워어어어어!!”
그 순간, 사나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찌나 크고 사납게 들려오던지 오금이 저려올 정도였다. 동시에 앞서 가던 남성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다들 사색이 된 얼굴로 정신없이 검을 뽑아들며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마, 망할! 어디야! 당장 나와!”
“우리가 마물 사냥꾼이다! 마물 사냥꾼이라고!”
발작적으로 소리치는 남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독 크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사토 슌로쿠였다. 그 때문일까? 열 세 명 중에 열 명 정도가 사토 슌로쿠 주변으로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반면에 모이지 않은 남은 세 명은 울음소리에 겁을 먹은 모양인지, 검을 내던지고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나, 난 죽고 싶지 않아!!”
당연하게도 그 안에는 기무라 카즈나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곧장 스킬 구속을 사용해서 기무라 카즈나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남은 두 명을 붙잡기 위해서 에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니, 내리려고 했다.
“크워어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오우거가 무리를 이탈한 남성 두 명을 순식간에 낚아채더니, 그대로 으깨버렸다. 우직! 하고 말이다. 삽시간이었다. 양 손에 잡힌 남성 두명은 피곤죽이 되어서 그대로 죽고 말았다.
동시에 두두두! 소리를 내며 상공을 날고 있는 헬기가 내 눈에 들어왔다.
고공을 낮추어 우리에게 접근한 뒤에 오우거의 기습을 알려주려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헬기에 탄 기자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기도 전에 먼저 거대 오우거가 한 발 빠르게 포효성을 터트려 겁을 준 뒤에 무리를 이탈한 사람을 낚아채서 잡아먹은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영리한 녀석이었다.
“모, 못 이겨!”
“저렇게 큰 녀석을 어떻게 이기란 거야!”
“으아아!!”
몇몇 사람들이 공황 증세를 호소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게다가 더욱 더 심각한 건, 그 누구도 오우거에게 선뜻 달려들려고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나는 사토 슌로쿠를 비롯한 열 명의 사내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다들 뭐 하시는 겁니까? 어서 저 마물을 쓰러트리십시오.”
“저딴 괴물을 어떻게 이겨!!”
사토 슌로쿠가 기다렸다는 듯이 큰 소리로 대들었다. 이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못 싸우겠다는 겁니까? 이해할 수가 없군요. 방금 전에 당신이 분명히 말했었죠. 미개인 조선인들조차도 해낸 일을 자신들이라고 해서 해내지 못 할 리가 없다고요. 그 말대로입니다. 자, 여러분들의 힘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영웅이 되는 겁니다.”
“우, 웃기지 마! 저런 괴물을……. 무리라고!”
“하! 그럼 당신은 지금까지 마물 사냥을 뭐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쥐몰이? 아니면 뒷산 뱀 사냥?”
“…….”
순간 사토 슌로쿠를 비롯한 모든 남성들이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술을 꾹 다물어졌다. 반면에 오우거는 우리가 분열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그르릉 소리를 내며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손에 잡혀 피떡이 되어버린 남성 두 명을 으적으적 씹어 먹으면서 말이다.
“잘 생각해보세요. 지금 당신들은 기존의 마물 사냥꾼들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기존의 마물 사냥꾼들은 전부 여성이었습니다. 반면에 당신들은 어떻습니까? 전원 건장한 신체를 가진 남성으로 이루어져있죠. 안 그렇습니까?”
“…….”
“그리고 장비는 또 어떻습니까? 당시 마물 사냥꾼들이 오크와 처음 대면했을 때, 쓴 장비라곤 손바닥만한 단검과 지팡이 그리고 날이 무딘 검이었습니다. 그에 반해서 여러분이 가진 장비는 어떻습니까? 그 누가 보더라도 하나같이 훌륭한 검들입니다.”
이러한 내 말에 몇몇 남성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숫자는 또 어떻습니까? 다섯 명보다 훨씬 많은 열 네 명입니다. 아, 물론 앞선 두 명은 지레 겁을 먹고서 도망치다가 오우거에게 살해당했지만요. 이건 자업자득이니 너무 깊이 생각하진 맙시다.”
라고 말한 나는 사토 슌로쿠를 비롯한 열두 명의 남성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지금 기존의 마물 사냥꾼들보다 몇 배는 더 월등히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대로 물러나실 겁니까? 잘 생각하세요. 지금 일본의 전 국민들이 여러분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 말에 남성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하늘 위에 떠있는 헬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결심을 굳힌 모양인지, 사토 슌로쿠가 검을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그래, 우리가 미개한 조선인보다 못 할게 어디 있나! 우리는 자랑스러운 일본인이다! 한낱 조선인 따위보다 우리 민족이 훨씬 뛰어나단 말이다!”
이처럼 사토 슌로쿠가 크게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남성들 또한 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우리 일본인은 위대하다!”
“천황 폐하, 만세!!”
“일본 만세!”
아까 전까지만 해도 궁지에 몰린 쥐처럼 벌벌 떨었던 주제에 지금은 큰 목소리로 전의를 다지고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혀를 내두르고는 에나와 함께 옆으로 비켜섰다.
이 때, 기무라 카즈나리의 구속을 풀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옆으로 비켜서는 것을 신호로 사토 슌로쿠가 남자들을 이끌고서 거대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히야아아앗!!”
“천황 폐하, 만세!!”
“돌격!!”
검 한 자루를 손에 쥐고서 달려가는 모습이 마치 일본 전국시대 사무라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헬기에 타고 있는 기자 또한 카메라로 열 한 명의 남성들을 정신없이 찍고 있었다.
그들이 검 한 자루로 거대 오우거를 쓰러트려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응? 열한 명?’
문득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기무라 카즈나리가 눈물을 줄줄 쏟으며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지간히도 간이 작은 사내였다. 대체 이런 남자가 어떻게 그런 간 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거대 오우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오우거를 향해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는 남성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마물 사냥꾼도 아닌 그들이 오우거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크워어어어어!!”
오우거는 잔뜩 신이 난 것처럼 포효성을 내지르며 마치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남자들을 으깨고 던지고 잡아 뜯고 있었다.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비록 내가 그들을 내몰긴 했지만, 조금 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으아아악!!”
“내 다리! 아악! 내, 내 다리!!”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불과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오우거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뒤늦게 도망쳐보려 한 남자가 있었지만, 거대 오우거는 그 남자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재빨리 집어 들어 다리를 부러트렸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되자, 헬기를 타고 있는 기자가 카메라를 돌려 나를 찍기 시작했다.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를 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호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마물을 사냥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물 사냥꾼이라고 해서 마물을 상대로 죽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죽을 수가 있다. 이것을 전세계에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영국의 헬레나 공주처럼 얼토당토 않는 사람이 지원하지 않기를 바랐다.
덧붙여 기존의 마물 사냥꾼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서 싸우고 있었던 건지도 알려주고 싶었다.
“크르릉.”
그 때, 거대 오우거가 진득한 피를 뚝뚝 떨어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노란 눈이 번들거리는 것이 상당히 소름끼쳤다.
나는 입가를 이죽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다 끝났냐?”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칠흑의 지팡이를 소환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거대 오우거가 날 향해 뛰었다. 다만 몸집이 5미터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 높이가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녀석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주문을 외웠다.
“……어둠의 화살.”
딱 주문을 외운 순간 검게 빛을 내는 화살이 나타나더니, 그대로 거대 오우거의 미간을 꿰뚫었다.
쿵!
순간 거대 오우거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더니, 이윽고 커다란 원을 그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우거의 몸이 가루로 변하더니 이윽고 완전히 사라지며 녹색 보석을 떨어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