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십니까, 기무라 카즈나리 씨?”
이리 말하며 기무라 카즈나리를 일으켜 세운 나는 주변을 한번 돌아보았다. 그러자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눈에 보이는 사람의 수를 세어보니, 총 마흔 여섯 명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 열 네 명은 오늘 오전에 내가 마물 사냥꾼으로 임명한 남자들이었다.
“서, 선생님……! 저 좀 살려주십시오! 제가 전부 다 잘 못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저 떠밀렸을 뿐입니다! 이렇게까지 하려고 했었던 게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절 믿어주십시오!”
그 때, 기무라 카즈나리가 내 팔을 꽈악 붙잡으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호소에 주변에 서있던 사내 중에 한 명이 ‘기무라!’라고 소리치며 기무라 카즈나리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퍽! 소리와 함께 내 팔에 매달려 있던 그의 몸이 옆으로 넘어졌다.
“구차하구나, 기무라! 넌 일본인의 수치다! 이 겁쟁이 녀석!”
퉤! 하고 침을 뱉은 남성은 뒤에 서있는 다른 이들을 돌아보며 재차 소리쳤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자랑스러운 일본인이다! 하물며 우리는 선택받았다! 마물 사냥꾼으로 말이다! 우리가 마물을 쓰러트리지 않는다면 그 누가 쓰러트린다는 말인가! 하물며 미개한 조선인들조차도 해낸 일이다. 우리라고 해서 해내지 못 할 이유는 하등 없다! 우리는 해낼 것이다! 천황 폐하 만세!”
“천황 폐하 만세!!”
상황을 보아하니, 기존의 주동자였던 기무라 카즈나리가 쫓겨나고 새로운 주동자가 나타난 모양이었다. 잠시 새로운 주동자를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로 흐느껴 울고 있는 기무라 카즈나리를 흘겨보았다.
마음에 갈등이 일어났다. 일단 겉보기에 기무라 카즈나리는 자신이 저질렀던 일에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가 마음 속 깊이 반성을 하고 있는 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니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기무라 카즈나리로부터 시선을 거둔 뒤에 박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아주 멋진 연설이었습니다. 성함을 여쭈어 봐도 괜찮겠습니까?”
“사토 슌로쿠다!”
자신을 사토 슌로쿠라 소개한 그는 대뜸 날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다짜고짜 반말에 악수 신청이라니……. 꽤나 막무가내 식의 사내가 아닐 수 없었다. 오만방자한단 말로는 부족할 지경이었다.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악수를 무시했다. 그러자 순간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본 척 만 척 하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마물을 사냥 할 준비를 해볼까요?”
이리 말한 나는 에나를 소환했다. 그러자 검 열 네 자루를 제 품에 한 가득 끌어안고 있는 여기사가 인기척 없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움찔 몸을 떨긴 했지만, 에나의 아름다운 외모에 금세 경계심을 풀었다. 오히려 홀린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나 내 맞은편에 서있는 사토 슌로쿠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입을 반쯤 벌리고서 홀린 듯 에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주 단단히 반한 듯이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에나가 그에게 시선을 줄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에나의 품에 안겨있는 검 한 자루를 집어 들며 입을 열었다.
“……일단 한 자루씩 받으십시오.”
이러한 내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검을 한 자루씩 건네주자 다들 긴장한 얼굴로 검을 받아들었다. 몇몇 이들은 검을 받자마자, 바로 뽑아서 검을 살펴보기까지 했다.
“이게 진짜 검인가?”
“대단해!”
“이봐, 여기서 휘두르지 마!”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마치 열 살 배기 남자 아이들을 통솔하는 선생님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혀를 차며 남은 검을 다 나눠주고는 마지막 남은 검 한 자루를 기무라 카즈나리에게 넘겨주었다.
“받으시죠.”
“히익! 서, 선생님……!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새된 비명성을 터트린 그는 거듭 내게 죄송하단 말을 하며 한사코 검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그의 태도에 사토 슌로쿠가 입가를 이죽이며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발로 기무라 카즈나리의 머리를 밟으며 입을 열었다.
“겁쟁이 녀석! 같은 일본인으로서 부끄럽구나! 당장 할복해라! 그게 네 녀석에게 주어진 마지막 명예다!”
크게 소리치며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검을 뽑아드는 사토 슌로쿠의 행동에 헛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할복이라니? 대체 어느 시대 이야기라는 말인가? 기가 차지도 않았다.
나는 와락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검을 도로 집어넣으십시오.”
“우리 일에 신경 쓰지 마라! 이 자는 일본의 수치다!”
“검을 집어넣으라고 했습니다.”
“지금 날 협박하는 것이냐? 난 결코 협박에 굴복하지 않는다! 나는 사토 슌로쿠다!”
라고 소리치며 검을 높이 치켜드는 그의 행동에 나는 속박 스킬을 사용해서 그의 몸을 구속했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퍽! 소리와 함께 사토 슌로쿠의 몸이 허물어졌다.
“악!”
꽤나 인상 깊은 단말마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가 기무라 카즈나리에게 했듯이 똑같이 머리를 발로 잘근잘근 밟아주었다.
“오냐오냐 해주니까 제가 당신 따까리처럼 보이십니까?”
“끄으으윽!!”
이런 내 비아냥거림에 그가 분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제 몸을 일으켜보려고 했다. 그러나 스킬로 구속된 탓에 그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를 비웃어주며 머리를 지그시 밟아주다가 이윽고 기무라 카즈나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기무라 카즈나리 씨, 검을 드십시오.”
“서, 선생님…….”
“명령입니다. 당장 드세요.”
내가 재차 명령을 내리자, 그는 한동안 어쩔 줄 몰라해하다가 이윽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검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이처럼 그가 검을 집어든 순간 군복을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날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는 곧 슬쩍 내 발 아래 깔려있는 사토 슌로쿠를 쓰레기 보듯 한 번 보더니 이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일등육좌 이시하라 히로마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제야 좀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토 슌로쿠의 머리에서 발을 떼어낸 뒤에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에 그는 극도로 예의를 갖추며 내 악수를 받았다. 그리고는 나를 차량 쪽으로 안내하며 입을 열었다.
“마물이 출현한 지역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따로 보셔야 될 것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이시하라 히로마사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사토 슌로쿠를 비롯한 남은 남성들 또한 군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군용 차량에 올랐다.
이 때, 기무라 카즈나리가 타기 싫다며 소란을 부리긴 했지만 병사들에 의해서 금세 제압이 되었다.
여하튼 열 네 명의 남성들과는 다르게 일등육좌 이시하라 히로마사와 같은 군용 차량에 오르게 된 나는 그에게서 하나의 자료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주모자인 기무라 카즈나리를 비롯한 열 네 명의 신상 정보가 담겨있는 자료입니다. 한번 읽어보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사토 슌로쿠라는 자는 우익 중에서도 극우에 속하는 위험한 인물입니다.”
이시하라 히로마사의 말대로 사토 슌로쿠라 불린 남성의 신상 정보는 꽤나 화려했다. 혐한 시위부터 시작해서 인종 차별까지, 시대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나도 빠짐없이 하고 있었다. 심지어 위안부와 관련해서 창녀 발언까지 한 전력이 나와 있었다.
‘가관이네.’
읽으면 읽을수록 눈살만 찌푸려졌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 사토 슌로쿠에 비해서 조금 모자라다 뿐이지, 그에 준하는 행동과 발언을 하고 있었다. 내게 그토록 사과하던 기무라 카즈나리도 만만치 않은 행적을 보여줬었다.
“그리고 지금 아야세 공주님께서 오고 계신데, 잠시 보고 가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바로 마물 출현 지역으로 가겠습니다.”
이러한 내 말에 이시하라 히로마사가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는 곧 지극히 정중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약에 이번 일로 심기가 상하셨다면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이리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그의 태도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그의 고개를 일으켜 세우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등육좌면 대령에 속하는 계급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소탈한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군복무를 했을 당시에 본 대령들은 하나같이 목이 뻣뻣했으니 말이다.
“괜찮으시다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그나저나 이번에 임명하신 마물 사냥꾼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떻게 할 생각이냐니요?”
“지금이라도 당장 새로이 임명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마침 제 휘하에 딱 알맞은 청년들이 있습니다.”
은근하게 자기 휘하의 병사들을 마물 사냥꾼으로 임명해달라고 하는 그의 말에 나는 짧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아니요, 전 지금이 좋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