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팥빙수로 한 여름의 무더위를 식히고 나니 슬슬 기운이 돋는 모양인지, 애들이 하나둘씩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같이 모이면서 무슨 할 말이 그렇게나 많은 건지, 쉴 새 없이 재잘재잘 떠드는 애들을 보니 쓴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게다가 자세히 들어보면 정말로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요즘은 어떤 연예인이 예쁘다니, 화장품은 뭐가 좋다니, 옷은 이게 좋다 등등 딱히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작게 하품을 하며 내 무릎에 머리를 올려두고서 곤히 자고 있는 희은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처럼 시간이 4시 30분에 가까웠을 무렵, 지현이가 기지개를 쫙 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끝낼까?”
이리 말한 지현이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되니까, 다들 일찍 자둬.’라고 덧붙였다. 확실히 내일 있을 2차 예선을 생각해둔다면 일찍 집에 들어가서 쉬어두는 편이 좋았다.
이건 은하와 예은이도 공감하는 모양인지, 군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나둘씩 자리를 정리했다.
“희은아, 일어나야지.”
그 때, 예은이가 곤히 자고 있는 희은이를 흔들어 깨웠다. 그러나 한번 자면 쉽게 일어나지 못 하는 모양인지, 앓는 소리를 내며 좀처럼 눈을 뜨지 않는 희은이다. 이에 나는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리며 예은이에게 말했다.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
“네?”
“이렇게 곤히 자고 있는데, 깨우기 미안하잖아.”
“그래도……. 너무 오래 자면 밤에 못 자요.”
“어차피 여기서 깨우나, 식당에 가서 깨우나 비슷하잖아.”
“그렇긴 해도…….”
우물쭈물 대며 쉽사리 판단을 내리지 못 하는 예은이의 태도에 나는 재빨리 희은이를 품에 안았다.
“어서 가자.”
이러한 내 말에 예은이는 잠시 나와 내 품에 안겨있는 희은이를 번갈아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처럼 허락을 얻어낸 나는 혹시라도 희은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꼭 안아준 뒤에 빈 그릇이 올려져있는 쟁반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은하가 내 손에 잡혀있는 쟁판을 빼앗아 들며 입을 열었다.
“이건 제가 들게요, 오빠.”
라고 말하며 살갑게 웃어 보이는 은하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애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와서 나를 뒤흔드는지 모르겠다. 물론 아주 모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나는 은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흔들리지 말자.’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애들과 함께 팥빙수 집을 빠져나간 뒤에 예은이의 부모님이 운영한다는 식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더위가 한풀 꺾인 덕분에 희은이를 품에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희은이가 내뱉은 숨결이 내 목을 간질이며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주고 있었다. 반면에 지현이는 팥빙수 집에서 만끽하던 에어컨 바람을 잊지 못 하는 모양인지, 손으로 거듭 부채질하며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은하가 지현이를 툭 치며 ‘우리가 희은이랑 예은이 바래다줄 테니까, 넌 집에 먼저 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현이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리 대답했다.
“갈 땐 가더라도 희은이는 보고 가야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지현이의 뜻이 굳건해보였기에 은하도 더 이상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처럼 예은이 부모님이 하시는 식당에 도착하자, 어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와서 우리를 반겨주셨다.
“너희가 우리 예은이랑 대회에 나간다는 애들이구나? 더울텐데 어서 들어오렴.”
아주머니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우리를 살갑게 반겨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의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예은이가 희은이를 대할 때 보이는 엄한 태도를 비추어보았을 때, 부모님도 상당히 인상이 날카로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아주머니는 물론이고, 뒤늦게 나온 아저씨도 무척이나 푸근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엄청 미인이시네.’
확실히 예은이, 희은이 자매는 아주머니 쪽을 닮은 모양이었다.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저녁 먹고 가지 않을래?”
그 때, 아주머니가 우리를 향해 물었다. 이에 지현이가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을 지어보이며 자기 가슴을 탕탕 쳤다.
“밥은 우승하고 나서 먹을게요!”
조금 우스꽝스러워보이긴 했지만, 눈이 휘둥그레 질 정도로 예쁜 아가씨가 이리 말하니 마냥 귀엽게 보이기만 했다. 실제로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흐뭇하게 웃으며 ‘예쁜 처자가 말도 참 귀엽게 잘 하네.’라고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소란에 희은이가 잠에서 깬 모양인지, 제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희은아, 깼구나!”
그 모습에 지현이가 온갖 호들갑을 떨며 희은이를 반겼다. 그리고 격렬한 환영에 희은이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윽고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발견하곤 엄마! 라고 소리치며 아주머니 쪽으로 양 손을 쭉 뻗었다. 이에 지현이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면서도 결국 희은이를 놓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희은이, 일어났어?”
“네!”
아주머니가 희은이를 안아주자, 희은이가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며 제 엄마 얼굴에 뺨을 비비적거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쥘 정도였다. 역시 엄마와 딸은 위대했다. 나는 내심 감탄하며 아주머니와 희은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슬슬 돌아가야 된다는 것을 깨닫곤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벌써 가게? 뭐라도 좀 먹고 가는 게 어떠니?”
이리 말하며 재차 식사를 권하는 아주머니의 태도에 나는 넉살 좋게 웃으며 좋은 말로 거절했다. 물론 여기서 저녁을 해결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뜸 얻어먹을 정도로 염치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건 은하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나는 고개를 숙여 아주머니와 아저씨에게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라고 말한 뒤에 예은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예은아, 내일 보자.”
“네, 선배.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언니들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이처럼 예은이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작별 인사를 건네자, 은하와 지현이도 쾌활하게 그녀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아주머니의 품에 안겨있는 희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희은아, 다음에 또 보자.”
“오빠, 가는 거예요?”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 있는 희은이의 목소리에 또다시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정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납치해서 내 옆에 딱 붙여두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범죄였기 때문에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그럼 오빠도 이제 가야지.”
“가지 마세요. 저랑 더 놀아요.”
이리 말하며 내 옷소매를 붙잡는 자그마한 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꾸만 시선이 희은이에게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내 상황을 마치 짐작이라도 한 것처럼 아주머니가 희은이를 달래며 입을 열었다.
“희은아, 오빠한테 그러면 안 되지.”
“힝…….”
“자, 오빠 언니들한테 인사해야지.”
딱 잘라 말하며 아주머니가 희은이를 바닥에 내려놓자, 내 키에 반에 반도 안 되는 작은 소녀가 우리를 올려다보며 배꼽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희은이의 귀여운 모습에 당장이라도 가서 볼을 깨물고 싶은 충동이 물씬 느껴졌다. 비단 이건 나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 모양인지, 은하는 물론이고 지현이까지도 갖은 호들갑을 떨며 꺅꺅 탄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진짜 딸 하나 키우고 싶다.’
아니, 진짜로 키워볼까? 잠시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있는데, 문득 내 귀에 낯익은 단어가 들어왔다.
[……현재 일본, 도교에서 또다시 마물이 출현한 상태이며 그 장소가 이전과 동일한 청수사 일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마물 사냥꾼이 제대로 일을 끝마치지 못 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청수사에 존재하는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식당 내에 비치되어 있는 텔레비전에서 마물 사냥꾼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또?’
심지어 이번 마물도 오전과 동일하게 교토 청수사에 등장한 모양이었다. 나는 지금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하지만 지금 내 주위에는 은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꺼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뉴스를 들어보니까, 출현한지 꽤 된 것 같은데…….’
이리 생각하며 뉴스를 더 보자, 화면에 내가 오늘 오전에 마물 사냥꾼으로 임명했던 열 네 명의 남자들의 모습이 비추어 보였다.
[현재 일본 정부는 기무라 카즈나리를 비롯한 열 네 명의 남성을 마물 사냥꾼이라 판단한 상태이며, 교토 청수사에 투입하려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일본 언론에선 그들이 마물 사냥꾼이다, 아니다를 두고서 의견이 나뉜 상태이며 기존의 마물 사냥꾼들과 마찬가지로 호출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빠, 뭘 그렇게 봐요?”
그 때, 지현이가 나를 툭 치며 말했다. 이에 정신을 차린 나는 ‘잠깐 뉴스 좀 봤어.’라고 말한 뒤에 아주머니와 아저씨에게 다시 인사를 한 뒤에 애들과 함께 식당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