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94화 (394/599)

<--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노래가 시작되자, 내 품에 안겨 있던 희은이가 불쑥 고개를 돌려 예은이와 은하 그리고 지현이를 바라보았다.

희은이의 관심을 빼앗긴 게 내심 서운하긴 했지만, 은하네들의 춤 연습을 지켜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나 이제는 거의 수준급에 다다른 춤 실력은 어지간한 아이돌 못지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면 거의 열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지현이의 말대로 우승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승이라.’

사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내 손에는 매니저 어플이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희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춤 연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한 곡이 끝나자, 희은이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박수를 쳤다.

덩달아 주변에서 구경하고 계시던 어르신들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박수를 쳐주셨다.

지현이는 이마를 흥건하게 적시고 있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넉살 좋게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은하와 예은이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모양인지, 지현이를 따라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여기서 연습을 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숫기가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하지도 못 하던 은하와 예은이였으니 말이다. 그마저도 지현이가 억지로 끌고서 인사를 시켜야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현이가 딱히 무어라 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척척 하고 있었다. 춤도 그랬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모습이었다. 물론 실전은 엄연히 다르겠지만 말이다.

“희은아, 언니 어땠어?”

그 때, 지현이가 가방 안에 들어있는 물병을 꺼내 마시며 희은이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희은이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예뻤어요!”

“으이구, 예뻤어요? 어쩜 이렇게 예쁜 말만 속속 골라서 할까?”

희은이의 말에 지현이가 헤벌쭉 웃으며 물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뒤이어 은하가 예은이와 함께 내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누구에요?”

“예은이 동생이야. 희은아, 인사해야지.”

은하의 물음에 나는 내 품에 안겨있는 희은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양 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배꼽 인사를 하는 희은이다.

“안녕하세요.”

희은이의 인사에 은하의 표정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역시 다섯 살 여자 아이의 배꼽인사는 남녀 불문하고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과연 그 누가 이보다 더 강한 공격을 보유할 수 있을까? 북한의 핵도 안 무서웠다. 나는 살며시 가슴을 움켜쥐며 감격했다.

은하도 한동안 풀어진 얼굴로 희은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고치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희은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이 물음에 이번에는 예은이가 입을 열어 말했다.

“식당이 바빠서 제가 잠깐 맡게 됐어요.”

“식당? 아! 그러고 보니까 부모님이 식당을 하신다고 했지?”

“네.”

“어디에 있어? 나중에 다 같이 가서 밥 한끼 먹어야 되는 거 아냐?”

이러한 은하의 말에 지현이가 희은이의 몸을 와락 끌어안으며 소리치듯 말했다.

“말 나온 김에 오늘 저녁에 갈까?”

희은이를 좀 더 보고 싶다는 사심이 가득 묻어있었다. 물론 나도 지현이와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오늘 저녁은 서연이 누나와 함께 먹기로 선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저녁은 무리였다.

“나는 좀 힘들 거 같은데?”

“왜요? 우리 희은이 보기 싫은 거예요?”

물론 나야 보고 싶지. 가능하다면 하루 종일 희은이를 내 옆에 붙여두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애당초 남의 아이를 하루 종일 내 곁에 붙이고 다닌다면 그건 범죄였다. 어쩌면 납치한 것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희은이를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보고 싶지. 근데 오늘 저녁엔 따로 약속이 있거든.”

“아, 혹시…….”

라고 말하던 지현이가 불현듯 말끝을 흐렸다. 내가 오늘 저녁에 누구를 만날지 얼추 짐작이 가는 모양이었다. 동시에 은하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모양인지, 어깨를 가늘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동요하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긴 싫은 모양인지, 애써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연습하자, 연습!”

이리 소리쳐 말한 은하가 물병을 내려놓자, 예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음악을 고르기 시작했다. 지현이도 제 품에 안겨있는 희은이를 놓아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나는 희은이를 번뜩 들어 안은 뒤에 내 무릎 위에 올렸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양 손을 쭉 뻗어 내 허리를 감싸며 머리를 기대는 희은이다.

“졸려?”

내 가슴팍에 뺨을 기대는 희은이의 태도에 내가 이리 묻자, 희은이가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나는 희은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며 편히 낮잠을 잘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물론 희은이의 애교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건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었지만, 내 품에 안긴 채로 새끈새끈 고르게 숨을 내쉬며 자는 희은이 또한 무척이나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나는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희은이를 재우는 동시에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은하네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3시가 되자, 지현이가 가쁘게 숨을 토해내며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이건 예은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체력이 좋은 은하가 선 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뿐이었다.

“수고했어.”

내가 이리 말하며 벤치에 올려져있는 물병을 던져주자, 다들 능숙하게 받아내며 개운하게 웃었다. 땡볕 아래에서 연습을 하느라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그 누구 한명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참 대견하면서도 기특했다.

“아, 더워! 우리 팥빙수 먹어요!”

그 때, 지현이가 양 손을 하늘 위로 높게 뻗으며 소리쳤다. 그리고 이런 지현이의 말에 예은이와 은하가 동의하듯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2시간 동안 열심히 춤을 추고 나더니, 차가운 걸 먹고 싶은 생각이 아주 간절하게 드는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먹으러 가자. 짐 챙겨.”

이리 말한 나는 곤히 자고 있는 희은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품에 안은 뒤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모습에 지현이가 온갖 호들갑을 떨며 내 품에 안겨있는 희은이의 볼을 검지로 콕콕 찔러보았다.

“완전 뽀송뽀송해!”

“야, 그러다 희은이 깨겠다.”

“좀 있다가 팥빙수 먹을 텐데, 일찍 깨우는 게 낫지 않아요?”

“아무리 그래도 억지로 깨우는 건, 좀 그렇지 않아?”

희은이의 뺨을 콕콕 찌르고 있는 지현이의 검지를 팔꿈치로 툭 치며 말하자, 지현이의 입술이 대쪽처럼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생각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가방을 등에 맸다.

그리고 이처럼 지현이와 토닥거리고 있는 사이에 어느샌가 준비를 마친 은하와 예은이가 땀으로 흠뻑 젖은 채로 내게 다가왔다. 이를 본 나는 세 사람을 데리고서 근처 팥빙수 집으로 향했다.

“후아, 이제야 살 것 같다!”

팥빙수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지현이가 크게 숨을 들이켜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은하와 예은이가 이제야 좀 살 것 같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실제로 팥빙수 집 안은 굉장히 시원했다.

나는 에어컨 바람에 흠뻑 취한 애들을 데리고서 메뉴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뭐, 시킬까?”

“초코 빙수!”

내 물음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현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 말에 은하가 지현이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살 쪄.”

그 말에 지현이의 표정이 단박에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예은이가 한 마디 거들었다.

“팥빙수는 뭘 먹어도 찔 걸요?”

“…….”

이러한 예은이의 말에 지현이의 표정이 다시금 환해졌다. 그리고는 마치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며 은하를 바라보았다. 제발 초코 빙수로 먹자면서 말이다. 예은이도 안 그런 척 하고 있었지만, 초코 빙수가 간절한 모양인지 은하의 동의만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은하가 도움을 바라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에 나는 상냥하게 웃어 보이며 주문했다.

“초코 빙수 하나요.”

미안해, 은하야. 나도 초코 빙수가 더 좋아. 나는 속으로 사과하며 초코 빙수로 주문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초코 빙수로 주문하자, 결국 은하도 포기한 모양인지 ‘그래, 먹고 살찌자!’라고 외치고는 망고 팥빙수를 하나 더 시켰다. 아주 바람직한 상황이었다.

다들 키득키득 웃고는 이내 자리를 잡았다.

그 후, 지현이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알지?”

“뭘?”

희은이를 소파에 눕히며 내가 묻자, 지현이가 다소 충격 먹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잊은 거예요? 은하, 예은이. 너희들도?”

“…….”

지현이의 추궁에 나는 물론이고, 은하와 예은이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에 지현이가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내일 2차 예선이잖아.”

이러한 지현이의 말에 은하가 맥 빠진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그거야 당연히 알고 있지.”

“그럼 왜 모른 척 했어?”

“대뜸 다들 알지라고 물으면 우리가 어떻게 알아? 그쵸?”

이리 말하며 예은이와 내게 동의를 구하는 은하다. 그리고 그 말에 예은이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고,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내일 2차 예선이란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참 정신없네.’

하지만 이것에 관해서라면 얼마든지 변명할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가 진행하고 있는 게, 아이돌 프로젝트 이외에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마정석 파편을 모으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었다.

그 탓에 아이돌 프로젝트를 도통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아침 일찍 출발할 거니까, 지하철역으로 모이고……. 아, 그리고 1박 2일인 것도 다 알고 있지?”

지현이가 우리를 돌아보며 말하자, 예은이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알고 있어요.”

“부모님, 허락은?”

“괜찮다고 하셨어요.”

이러한 예은이의 대답에 안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인 지현이는 나와 은하를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에 은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야 문제없지. 오빠도 문제 없죠?”

이어진 물음에 나도 별다른 고민 없이 대답했다.

“나도 문제없지어”

물론 서연이 누나가 무어라 할지도 몰랐지만, 딱히 반대를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처럼 마지막 확인이 끝나자, 지현이의 표정이 그제야 스르륵 풀어졌다.

“그럼 챙겨야 할 물건 알려줄게.”

이리 말한 지현이는 내일 우리가 챙겨가야 될 물건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물론 그래봤자, 여분의 옷과 화장품 정도였지만 말이다.

‘옷을 챙겨야 되려나?’

다만 나 같은 경우에는 은하네들과는 다르게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땀이 날 일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여분의 옷을 챙겨야 될지 말지 고민이 되었다. 아니, 그보다 참가자도 아닌 나를 재워줄지도 의문이었다.

“지현아, 거기서 나도 재워줄까?”

“그럼요. 오빠는 우리 보호자 자격으로 참여하게 될 텐데, 당연히 잠잘 곳을 마련해주겠죠. 게다가 학생 참가자들도 많잖아요. 아마도 오빠는 학부모님들이랑 같이 있게 될 걸요?”

“하긴 그렇긴 하겠네.”

지현이의 설명에 나는 단번에 납득했다. 실제로 예선전에서 무수히 많은 학생 참가자들을 직접 보았으니 말이다.

‘확실히 학생들만 보내기에는 불안하지.’

아마도 많은 학부모들이 동반할 것이 분명했다.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지현의 말을 듣던 나는 문득 진동벨이 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주문한 팥빙수를 받아왔다. 그리고 이처럼 초코 빙수와 망고 빙수를 가져오자, 다들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서 잔뜩 신이 난 표정을 지어보이며 팥빙수를 숟가락으로 떠먹기 시작했다.

“으으, 맛있어!”

“하아.”

다들 팥빙수를 한 입씩 먹어도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희은이를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희은이도 깨울까?”

이런 내 물음에 예은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뇨, 깨우지 마세요.”

“왜?”

“배탈 나요.”

“아이스크림 먹은 지, 한참 지났잖아.”

“그래도 안 돼요.”

과보호인지, 아니면 엄한 건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희은이를 바라보는 예은이의 시선을 다정하기 짝이 없었다. 확실히 동생을 아끼는 언니의 모습이었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애들과 함께 초코 빙수와 망고 빙수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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