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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어플-392화 (392/599)

<--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서둘러 걸음을 옮긴 덕분에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공원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예은이를 볼 수가 있었다.

“선배, 오셨어요?”

그 때, 예은이가 날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말을 건넸다. 이에 나는 오른손을 들어 화답하고는 입을 열었다.

“누구야?”

이런 내 물음에 예은이가 제 품에 안겨있는 여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대답했다.

“제 딸이에요.”

“어?”

“희은아, 인사해야지.”

이러한 예은이의 말에 희은이라 불린 여자 아이가 빼꼼 나를 올려다보더니, 이윽고 양 손을 가지런히 모으더니 날 향해 배꼽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 앙증맞은 인사말에 순간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 너무나도 귀엽다! 대체 이 귀여운 생물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서 예은이가 가져온 최종 병기인가? 아니, 그보다 자기 딸이라고 했지? 설마 유부녀였어? 아니, 남자친구가 있었으니 미혼모…….

‘그러고 보니 예은이는 처녀였잖아?’

처녀 수태라니? 성모 마리아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었다! 만약에 내가 조교의 방에서 예은이의 처녀를 손수 뚫어주지 않았다면 깜빡 속을 뻔 했다. 나는 쿵쿵 거세게 뛰는 심장을 겨우겨우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정말 네 딸이야?”

“거짓말인데요.”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서 이야기하는 게, 흡사 남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어처구니없단 표정으로 예은이를 바라보자, 그녀가 희은이라 불린 여자 아이를 제 품에 꼭 끌어안으며 내게 물었다.

“……설마 믿으셨어요?”

“그렇게 정색을 하고서 말하면 다 믿을 걸?”

“그래요? 그럼 내친 김에 은하 언니랑 지현이 언니한테도 해볼까요?”

“아니, 안 하는 게 좋을 걸.”

나는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는 예은이의 품에 안겨있는 앙증맞은 여자 아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누구야? 동생? 조카?”

“동생이에요. 식당이 바빠서 잠깐 제가 맡게 됐어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예은이한테서 부모님이 식당을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름이 희은이라고 했지?”

“네!”

내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 라고 대답하는 희은이다. 동시에 자두빛으로 물어들어 있는 양 볼을 내 눈에 들어왔다.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인지, 예은이를 닮아서 무척이나 예쁜 희은이었다.

특히나 짧은 단발로 잘라 꼬불거리게 파마까지 한 희은이의 얼굴은 한 입에 꽉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아 보였다. 거기다가 옷까지 공주님 풍으로 입혀놓아서 마치 작은 인형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희은이의 오동통한 뺨을 어루만지며 재차 물었다.

“몇 살이니?”

“다섯 살이요!”

다섯 살 밖에 안 되는데,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존댓말을 꼬박꼬박 하는 어린 아이는 그리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리며 희은이의 머리까지 쓰다듬어주고는 입을 열었다.

“아이스크림은 맛있니?”

“네!”

“그럼 오빠가 하나 더 사줄까?”

이러한 내 말에 희은이를 예은이가 제 동생을 꼬옥 끌어안으며 대신 대답했다.

“안 돼요. 배탈 나요, 선배.”

그 말에 희은이의 입술을 삐죽 튀어나왔다. 보아하니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언니인 예은이가 이리 말하니 사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예은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린 아이가 너무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날 테니 말이다.

나는 무언가 사줄만한 게 없을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과일 꼬치를 파는 가게를 발견하곤 입을 열었다.

“과일 꼬치는 괜찮지?”

“비싸잖아요.”

“괜찮아.”

이리 말한 나는 예은이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희은이도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두 자매를 일으켜 세운 나는 예은이와 희은이를 데리고서 과일 꼬치 가게로 향했다.

“과일 꼬치 세 개 주세요.”

“네, 잠시만요.”

과일 꼬치 세 개를 주문하자, 예은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전 괜찮아요, 선배.”

“희은이만 먹으면 우리가 심심하잖아.”

라고 말하며 희은이를 향해 그렇지? 라고 말하자, 희은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맞아요! 라고 대답해주었다. 어이쿠, 어린 게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른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다섯 살 때는 어리벙벙해선 눈치도 없었는데 말이다.

역시 사람은 눈치가 있어야지, 한 입 먹을 것도 두 입 먹는 법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과일 꼬치 세 개가 나오자, 나는 값을 지불한 뒤에 예은이와 희은이를 데리고서 다시 공원 벤치로 향했다.

“잘 먹겠습니다. 희은아, 인사해야지.”

자리에 앉은 예은이가 희은이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하자, 한 입 크게 과일 꼬치를 베어 먹으려던 희은이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잘 먹겠습니다!”

순간 심장이 또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안 그래도 에나한테 심장 폭행을 당해서 약해질 데로 약해져 있는 상태인데, 여기서 또 심장 폭행을 당하니 이대로 곧장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름하야 심쿵사!

나는 어떻게든 심쿵사를 당하지 않도록 왼손으로 가슴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한 편으론 두 자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많이 먹어. 부족하면 말하고. 오빠가 다 사줄게.”

“와아!”

이러한 내 말에 탄성까지 터트려주는 희은이다. 역시 어려서 그런지, 반응이 순진하고 귀여웠다. 역시 어린 아이는 재력으로 다스려야하는 법이었다. 반면에 예은이는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게 점잖게 주의를 주었다.

“그러다가 희은이 버릇 나빠져요.”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엄청 엄하네.”

“보통 아니에요?”

엄하다는 내 말에 예은이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물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혼란이 찾아왔다. 이게 보통이라니? 그럼 우리 집이 엄청 자유로운 편이었나? 나는 이제까지 우리 집이 보통이라고 생각했었다.

“언니, 저 딸기 먹었어요!”

그 때, 희은이가 과일 꼬치를 치켜들며 예은이한테 자랑했다. 그 모습이 흡사 적장, 쓰러트렸다! 라고 소리치는 용맹한 장수를 보는 듯했다. 반면에 예은이는 냉철한 책략가마냥 무표정한 얼굴로 희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잘 했어.”

“헤헤.”

자매가 어쩜 이렇게나 안 닮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외모적인 부분에선 엄마와 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쏙 빼닮았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희은이한테 말을 걸었다.

“희은이는 딸기를 좋아하나 보구나.”

“아뇨, 싫어해요.”

단호한 대답에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모습에 예은이가 작게 쿡쿡 웃으며 입을 열었다.

“희은이는 딸기 싫어해요.”

“그래?”

그제야 나는 희은이가 왜 그렇게까지 자랑스럽게 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자기가 싫어하는 걸 먹었으니, 칭찬해달라는 거였구나.’

과연, 어린 아이다운 행동이었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희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희은이는 왜 딸기가 싫어?”

“셔요. 오빠는 딸기가 좋아요?”

“그럼!”

호기심 어린 희은이의 물음에 나는 과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나는 예은이를 향해 슬쩍 시선을 주며 말을 이었다.

“……딸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그리고 딸기를 많이 먹으면 희은이도 예은이처럼 예뻐 질 걸?”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은이가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 요란한 기침 소리가 마치 나를 힐난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애당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예은이도 어디 가서 빠질 외모는 아니었다. 다만 지현이의 외모가 워낙에 압도적이다 보니, 밀리는 것뿐이었다.

“오빠는 우리 언니가 예뻐요?”

“그럼!”

내가 또다시 과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자, 예은이가 눈초리를 치켜뜨고서 나를 쏘아보았다. 그 이상은 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어찌나 무섭게 노려보던지,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아! 오빠는 우리 언니 남자친구에요?”

불쑥 희은이가 날 향해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예은이가 제 무릎 위에 앉아있는 희은이를 보다 세게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어찌나 칼 같이 대답하던지, 내가 다 상처를 받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먼저 놀린 건, 나였기 때문에 너그러이 이해하기로 했다. 게다가 틀린 말도 아니었고 말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손에 들려있는 과일 꼬치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다 먹어갈 무렵, 누군가 내 어깨를 양 손으로 꾹 누르며 소리쳤다.

“마지막 바나나는 내 꺼!”

누군지 딱히 확인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꼬치를 잡고 있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내 어깨를 양 손으로 짓누르고 있던 지현이가 활짝 웃으며 대뜸 고개를 내밀어 꼬치에 매달려 있는 마지막 바나나를 베어 물었다.

“……음! 맛있어!”

바나나를 꿀꺽 삼킨 지현이는 과장되게 소리치며 남은 바나나까지 깨끗이 다 먹었다. 그리고는 예은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던 지현이가 우뚝 희은이 쪽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여동생?”

“네. 희은아, 인사해야지.”

이러한 예은이의 말에 과일 꼬치를 먹던 희은이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다만 자리에 앉아있는 만큼 내게 처음 보여줬던 배꼽 인사를 보여주지 못 했다.

“안녕하세요.”

“꺄악!”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희은이의 사랑스러움은 세계 제일이었다. 아니, 우주 제일이었다. 지현이는 양 손으로 자기 볼을 감싸며 탄성을 터트리더니 이내 희은이를 꼬옥 제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몇 번 볼을 부비적거리던 지현이는 이윽고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셋이서만 과일 꼬치 먹은 거예요?”

“각자 돈으로 사먹은 거야. 먹고 싶으면 네 돈으로 사먹어.”

나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지현이는 무언가 냄새를 맡은 것처럼 제 품에 안겨있는 희은이를 걸고넘어지며 입을 열었다.

“그럼 희은이는 누가 사준 건데요?”

“너랑 희은이랑 같냐?”

내가 한심하단 어투로 말하자, 지현이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럼 전 오빠한테 그것 밖에 안 되는 거예요?”

되도 않는 말을 하며 나를 협박하는 지현이다.

이거 완전히 배만 안 타고 있다뿐이지, 바이킹이나 다름이 없었다. 역시 대학생활을 할 때는 여자 후배를 멀리하고 남자 후배를 가까이 해야 되는 법이었다.

나는 콧방귀를 끼며 입을 열었다.

“그럼 희은이처럼 애교를 부려봐. 만약에 희은이보다 귀여우면 사줄게.”

이러한 내 말에 지현이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에 서더니, 양 손을 가지런히 모아 좌우로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오빠앙! 과일 꼬치, 사주세요!”

이처럼 애교를 부리는 순간 지현이의 트레이드마크라 부를 수 있는 양 갈래 머리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더불어 가지런히 모인 양 손과 더불어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출렁이며 흔들렸다.

“탈락!”

나는 두 번 볼 것도 없이 탈락을 외쳤다.

“왜요!”

당연히 지현이가 반발했다. 이에 나는 여전히 쓸데없이 출렁출렁 흔들리는 커다란 가슴을 한번 쏘아보곤 입을 열었다.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없잖아.”

“저 정도면 딱 귀엽고 사랑스럽잖아요!”

이리 말하며 스스럼없이 자기 몸매를 내게 과시하는 지현이다.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지현이는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실제로 지현이의 몸매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머리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비율이 무척이나 좋았다.

하지만 뒤이은 내 말이 하늘을 찌르던 지현이의 자신감을 무참히 추락시켰다.

“희은이보다?”

“그, 그건…….”

순간 지현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가득 떠올랐다. 그렇다! 지현이가 아무리 뛰어난 미색을 자랑한다고 하더라도 희은이 앞에선 태양 아래 밝혀진 등불 정도에 불과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희은이한테 말했다.

“희은아, 아까 전에 오빠한테 인사했던 거 다시 보여줄래?”

이런 내 말에 과일 꼬치를 다 먹은 희은이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예은이의 무릎 위에 내려왔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앙증맞은 배꼽 인사를 선보였다.

“안녕하세요?”

“꺄악!”

희은이가 고개를 꾸벅 숙인 순간 지현이의 입술 사이로 자지러지는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녀가 온갖 호들갑을 떨며 희은이를 제 품에 꽉 끌어안았다.

이걸로 승부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도 잠시, 지현이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빠, 희은이가 과일 꼬치 또 먹고 싶대요.”

이 말과 동시에 희은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

올망똘망한 눈동자가 내게 쏟아지자, 순간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시선이었다. 나는 결국 백기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사줄게.”

“와아!”

이처럼 내게서 항복을 받아낸 지현이가 만세를 외치며 희은이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나와 함께 벤치에 앉아있던 예은이가 슬그머니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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