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예기치 못 한 아야세 공주의 등장에 유현의 얼굴 위로 황당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런 그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 했다. 유현 또한 지금 이 순간,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칠흑의 지팡이를 만지작거렸다.
“공주님께서 무슨 일로 여기에 오신 겁니까?”
유현의 질문에 아야세 공주가 일본인 특유의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괜찮으시다면 마물 사냥꾼 여러분들을 제가 직접 대접해드려도 되겠습니까?”
마물 사냥꾼을 언급하고 있기는 했지만 아야세 공주의 시선은 유현에게 꽂혀있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제법 귀여운 외모를 가진 아야세 공주는 남성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풋풋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165정도의 키에 조금 마른 듯한 체형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머리까지 다소 곱슬거리도록 파마를 넣어 양 쪽으로 묶어 놓은 탓에 깜짝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 아야세 공주가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유현을 바라보니, 그 누가 보아도 공주가 유현에게 반한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실제로 공주는 일전에 유현이 찍은 영상을 보고서 반할대로 반한 상태였다. 때문에 유현이 직접 마물 출현 지역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서둘러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물론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빠르게 올 순 없었겠지만, 마물들 때문에 임시로 피난하게 된 도쿄 시민들을 위로하고자 이곳에 방문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토록 빨리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야세 공주는 이것이야 말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운명이 아니고서야 이토록 딱딱 들어맞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대접이라…….’
반면에 유현은 이걸 받아들여야 될지, 아니면 받지 말아야 될지 고민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공주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여러모로 언론이 시끄러워질 것이 틀림없었다.
안 봐도 비디오였다.
한국에선 자신이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려 한다며 떠들어 댈 것이고, 일본에선 아야세 공주가 자신을 회유하는데 성공했다며 떠들어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야세 공주가 이렇게까지 직접 마중을 나와줬는데, 면전 앞에서 면박을 주는 것도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안 될까요?”
그 때, 아야세 공주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인양 애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유현을 올려다보았다. 간절하다 못 해, 가슴 한켠이 간질간질 거릴 지경이었다. 유현은 한동안 그런 공주를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언제 그런 걸 신경 썼었나?’
어차피 언론에서 뭐라 떠들든 유현, 자신만 편하면 그만이었다.
더욱이 당장에 남은 시간 동안 마땅히 할 일도 없었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돈이 없었다. 그에게 엔화가 있을 리가 만무했고, 하물며 지갑도 챙겨오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서 멍 때리느니, 차라리 아야세 공주의 대접을 받으며 편안히 시간을 보내는 편이 훨씬 나았다.
“아닙니다, 공주님. 괜찮습니다.”
“아, 그런가요?”
이처럼 유현의 입술 사이로 허락이 말이 떨어지자, 아야세 공주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더불어 앵두처럼 붉은 입술이 만개하는 꽃처럼 예쁘게 활짝 벌어졌다. 반면에 마물 사냥꾼들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가라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하나 같이 유현과의 즐거운 여가 시간을 꿈 꿨기 때문이었다. 도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말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훼방꾼이 나타났으니, 실망하지 않으려야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걸 모르는 유현은 아야세 공주의 안내를 받으며 리무진에 올랐다. 그리고 뒤이어 마물 사냥꾼들이 유현이 탄 리무진에 오르려고 하자, 아야세 공주가 활짝 웃으며 다른 리무진 쪽으로 손을 가리켰다.
“다 함께 타기엔 좁을 테니, 나누어 타는 게 좋을 겁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적게는 세 사람, 많게는 다섯 사람까지 더 들어갈 수 있는 크기를 가진 리무진이었다. 하지만 다섯 사람까지는 너무 많으니, 세 사람이 딱 적당했다. 그리고 여기서 한 자리는 아야세 공주가 차지하게 될 테니, 결국 두 자리 밖에 남지 않는 셈이었다.
“…….”
순간 마물 사냥꾼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장 먼저 신 혜진이 뒤로 빠졌다. 유현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 진흙탕 싸움을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예지와 채원이가 빠졌다. 소현이 언니한테 양보해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리더였고 말이다.
그리고 이처럼 결정이 내려진 듯이 싶었을 때, 에나가 아무런 말도 없이 유현이 먼저 탄 리무진 안쪽으로 들어갔다.
“야, 잠깐……!”
그 광경에 유 지아가 날이 선 목소리로 에나를 불러보았지만, 그녀는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유현의 옆자리에 앉았다. 심지어 그런 그녀를 유현이 반갑게 맞이해주기까지 하니, 도로 나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 여우같은 계집…….’
한동안 에나를 쏘아보던 유 지아는 이내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소현, 네가 타. 난 다른 애들이랑 탈게.”
이리 말한 유 지아는 소현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남은 애들을 데리고서 다른 리무진에 탔다. 그리고 이처럼 이 소현 홀로 남게 되자, 아야세 공주가 붙임성 좋게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소현 씨 맞죠? 마물 사냥꾼의 리더라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아, 아뇨! 저야 말로. 에……. 아, 공주님.”
“아야세라고 불러주세요.”
라고 말한 아야세 공주는 소현과 함께 유현이 타고 있는 리무진을 올랐다.
이 때, 공주는 소현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부러워.’
아야세 공주도 딱히 못난 외모를 가진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쁜 외모를 가진 건 아니었다. 미인이라기보다는 귀여운 여성이었다. 반면에 이 소현은 어떤가? 보면 볼수록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다.
특히나 가죽 갑옷에 감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핏 보이는 그녀의 몸매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붙잡을 만큼 유혹적이었다. 특히나 한줌에 쥐어질 듯 보이는 가는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 그리고 머리만큼 커다란 가슴은 같은 여성인 아야세조차도 쉽사리 시선을 떼지 못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렇다면 외모는 또 어떤가? 이 소현이 가진 몸매 이상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설혹 그녀가 누더기 옷을 입는다고 하더라도 반짝반짝 빛을 내며 자신의 매력을 한껏 발산할 것이 틀림없었다.
아야세 공주는 소현의 뒤를 따라 리무진에 오르며 손을 꽉 쥐었다.
‘나도 마물 사냥꾼이 되면 아름다워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가면을 쓴 그의 마음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가문에서도 그걸 원하고 있었다. 가문의 자녀가 마물 사냥꾼이 되기를 말이다. 너무나도 좋은 환경이었다.
적어도 정략결혼이 아닌 아야세 본인이 원하는 상대와 연애결혼 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그 상대는 장차 세계를 주무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일본에선 그를 세계의 주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물은 오로지 마물 사냥꾼으로 밖에 처리할 수 없었다. 그건 일본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마물 사냥꾼을 임명하고 해고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가면을 쓴 남성뿐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세상은 그를 중심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보석을 회수하지 않았군요.”
그 때, 유현이 아차 싶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소현이 얼른 입을 열어 대답했다.
“보석은 대한 그룹 사람들이 일본 정부 측과 협력해서 회수할 거예요.”
“과연……. 그렇군요.”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자, 소현은 왠지 모르게 뿌듯해지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한 건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일본에 나타난 마물을 처리할 때, 꼼꼼히 물어보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소현에게 할 말을 빼앗긴 아야세 공주는 아쉬운 마음에 애꿎은 눈동자만 도록도록 굴려대었다. 그러다가 문득 유현의 시선에 자신에게 꽂혀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랐다. 쿵쿵 가슴이 뛰는 것이 터질 것만 같았다. 동시에 영상을 통해서 보았던 그의 입술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열기가 후끈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걸 모르는 유현은 유심히 아야세 공주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공주님께선 마물 사냥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까?”
“아, 네! 방송을 통해서 보고 있었어요.”
“상당히 빨리 오셨군요.”
“네?”
대뜸 튀어나온 유현의 말에 아야세 공주가 놀란 목소리를 내자, 그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제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오시지 않았습니까?”
“아…….”
작게 탄성을 터트리던 공주는 이윽고 예의 웃는 얼굴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건 제가 시민들을 위로하고자 도쿄에 방문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러한 아야세 공주의 대답에 이번에는 유현이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시민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마물 사냥꾼 여러분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다들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쯤 다들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을 겁니다. 물론 파괴된 도로는 당분간 이용하지 못 하겠지만,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마물을 처리한 것이니 기꺼이 감수해야 되겠지요.”
왕족이라서 그런지, 아야세 공주의 말투는 지극히 정중했다. 또한 마물 사냥꾼들을 은근히 띄워주고 있어서 유현의 마음이 쏙 들었다.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정다감한 눈길로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받은 아야세 공주는 일순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것만 같은 전율에 잠시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을 뻔했다.
아까 전, 곤두박질쳤던 기분이 지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아야세 : 그 분에게 시선을 받았어! 황홀해!
이 소현 : 그 분의 궁금증을 해결해드렸어! 너무 좋아!
에나 : 섹스
아야세 : 헐
이 소현 :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