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상황이 변했으니, 그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이 있었다. 더욱이 이건 게임이 아니었다.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러니 어제 내가 본 상황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차분히 숨을 몰아쉰 나는 마물 사냥꾼들을 호출했다.
[마물 사냥꾼을 호출합니다.]
[1분 뒤에 조교의 방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1분의 대기 시간을 두었다.
마물 사냥꾼들에게 미안한 일이긴 했지만 그 만큼 내 마음이 급했다. 나는 계속해서 일본 상황을 확인하며 조교의 방으로 이동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1분의 시간이 흐르자, 일순 눈앞이 흐려졌다가 이윽고 환하게 밝혀지며 저택 내부의 풍경이 비추어보여졌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벽에 걸려있는 가면을 챙겨들었다. 그런 다음에 얼굴에 쓴 나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바짝 긴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다섯 명의 여성들을 볼 수가 있었다.
나는 방 안에 서있는 여성들을 번갈아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마물 사냥꾼 여러분?”
마물 사냥꾼들에게 인사말을 건넨 나는 재빠르게 다섯 명의 무장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들 잘 챙겨왔군.’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이 소현을 비롯한 다섯 명의 마물 사냥꾼들을 번갈아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현재 일본에 오우거와 오크가 나타난 상태입니다. 덧붙여 이번에 추가로 오크 서른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때문에 현재 도쿄, 청수사에 도합 마흔 마리의 오우거와 오크가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내 말에 다들 하나 같이 침음성을 흘렸다.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유 지아 또한 이 순간만큼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정도로 마물 마흔 마리가 주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나 또한 공간 이동 반지를 얻지 못 했다면 이토록 여유롭게 있지 못 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현주에게 에나를 맡겨서 일본으로 보내고 있겠지.’
나는 잠시 그 모습을 상상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잡념을 떨쳐낸 나는 마물 사냥꾼들을 돌아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러한 내 말에 다들 감탄 어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기대감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다섯 쌍의 눈동자가 심히 부담되긴 했지만, 나는 담담히 그 시선을 받으며 말을 이었다.
“……수호자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수호자라는 내 말에 일순 감탄 어린 탄성이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동시에 다들 안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제야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만큼 그 날 본 에나의 저력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실제로 에나는 마정석 파편을 여러 개 집어 먹은 오크 족장, 올가조차도 일격에 쓰러트린 전적을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이상 에나만 나서준다면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수호자가 도착할 때까지 제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어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런 내 말에 이 소현을 선두로 다들 알겠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나는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건투를 빌겠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곧바로 마물 사냥꾼들을 마물 출현 지역으로 전송해주었다. 그러자 앞서 조교의 방 안으로 들어왔던 것처럼 눈앞이 흐려졌다가 이윽고 뚜렷해지며 자취방의 풍경을 비추어주었다.
그걸 확인한 나는 곧장 인터넷 방송을 틀어보았다. 그러자 일본 현지 방송을 연결해주고 있는 인터넷 개인 방송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이제 막 전송이 된 것으로 보이는 마물 사냥꾼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잘 갔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의자를 옆으로 치운 뒤에 입을 열었다.
“에나 소환.”
에나를 부른 순간, 내 앞에 은발의 여기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확실히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특히나 깎아내린 것만 같은 저 가슴은 언제 봐도 사랑스러웠다. 당장에 내 품에 꽉 끌어안고서 심장 고동소리를 만끽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분일초를 앞다투고 있는 급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충동을 애써 꾹 억눌렀다.
“유현 님?”
그 때, 에나가 나를 올려다보며 불렀다. 이에 나는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컴퓨터 화면에 비추어 보이고 있는 마물 사냥꾼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 여성분들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유현 님께서 도와주라고 하신 이들이 아닙니까?”
기억하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재차 입을 열었다.
“공간 이동 반지 소환.”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오른손 약지에 검푸른 반지 하나가 보란 듯이 끼워졌다. 이게 공간 이동 반지인 모양이었다. 나는 내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그것을 빼내고는 에나에게 건네주었다.
“……이 반지를 사용하면 저 여성이 있는 장소로 이동할 수가 있습니다.”
“설마 공간 이동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 반지에 그런 고위 마법이……. 역시 유현 님이십니다!”
내게서 공간 이동 반지를 건네받은 에나가 크게 감탄하며 검푸른 반지를 들여다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호기심 많은 어린 아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반지를 집어든 뒤에 직접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아…….”
불쑥 에나의 입술 사이로 탄성이 새어나왔다. 더불어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지는 반지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에 감격한 빛이 한가득 담겼다. 더불어 설렘 같은 것도 느꼈다. 아마도 내게 청혼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미안함이 밀려왔다. 나는 내 손에 잡혀있는 에나의 손을 꽉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이렇게 사무적인 반지를 끼워드리고 있지만, 다음에는 꼭 에나 씨를 위한 반지를 끼워드리겠습니다.”
“네? 아, 에……? 그, 그게 무슨……!”
이러한 내 속삭임에 순간 에나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마냥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는 곧 그녀가 내 시선을 황급히 피하며 양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
“……저, 전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유현 님에게 반지라니……. 그런……. 추, 충분히 이것만으로도 황홀합니다.”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정말이지 솔직하지 못 한 여기사였다. 쿡쿡,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녀의 몸을 잡아당긴 뒤에 입술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꽉 끌어안아주었다.
“후아, 아……. 하아, 유현 님…….”
열기를 머금은 한숨이 내 뺨을 간질였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에나는 내게 있어서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다른 여자들이 반찬이라고 한다면 에나는 밥이었다.
언제 어느 때라도 식탁 위에 올라오는 따끈한 밥 말이다.
나는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그녀의 분홍빛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이윽고 몸을 놓아주었다.
“이 다음은 나중에 이어서 하죠.”
이리 말한 나는 인터넷 방송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내가 말한대로 제자리에서 대기하고 있는 마물 사냥꾼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에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바로 이동해주시겠습니까? 저 여성이 있는 장소로 가시면 됩니다.”
이러한 내 말에 에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윽고 자기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다른 손으로 감싸며 두 눈을 감았다.
“…….”
“……?”
하지만 몇 초가 지나도 에나의 몸은 사라질 기미를 보여주지 않았다.
“안 되는 겁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에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그녀는 잠시 허둥대다가 이윽고 주먹을 꽉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하며 대답했다.
“다시 한 번 더 해보겠습니다.”
살짝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한 에나는 재차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작게 침음성을 흘리며 집중해보았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나의 몸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나는 잠시 턱을 쓰다듬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름을 몰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군요. 에나 씨, 지금 화면에 비추어 보이는 여성이 보이십니까?”
“네, 보입니다.”
“저 여성의 이름은 유 지아입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유 지아 씨의 곁으로 이동해보세요.”
“알겠습니다!”
아까보다 훨씬 더 커진 목소리로 대답한 에나는 두 눈을 꼭 감으며 유 지아의 이름을 읊조렸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나의 몸은 사라질 기미를 보여주지 않았다.
‘설마?’
버그? 불량품? 온갖 억측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나는 에나의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에나 씨, 반지를 잠깐 줘보시겠습니까?”
“아, 네…….”
공간 이동을 실패한 게,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에나의 입술 사이로 시무룩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이에 나는 그녀를 위로해주고자,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여주고는 공간 이동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두 번째 효과가 장소 이동이었지?’
재사용 대기 시간이 1시간인 만큼 인물 이동은 사용할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켜며 자취방 화장실을 떠올렸다. 그러자 순간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가 이윽고 착 가라앉으며 자취방 화장실로 이동되었다.
‘……뭐지? 그럼 뭐가 문제였지?’
공간 이동 반지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방 안을 둘러보고 있는 에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현 님!”
그러다가 눈이 딱 마주치자, 에나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이에 나는 그녀를 진정시켜줄 생각에서 가볍게 끌어안아주고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뭔가 제약이 걸려있는 것 같은데?’
예를 들어서 노예는 사용할 수 없다거나 말이다.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장비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공간 이동 반지 정보를 불러왔다.
[장비 ‘공간 이동 반지(B)’]
[효과 1 : 사용자가 기억하고 있는 대상의 곁으로 안전하게 이동합니다. (1시간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효과 2 : 사용자가 기억하고 있는 장소로 안전하게 이동합니다. (1시간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응?”
공간 이동 반지의 정보를 열람한 순간 한 가지 의아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B?’
이건 또 난생 처음 보는 등급이었다.
생소한 등급에 고개를 기울이는데, 문득 나는 사용할 수 있고 에나는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설마…….”
불길함이 엄습해왔다.
하지만 만약에 B가 belonging를 뜻하는 거라면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귀속 템이었냐?’
순간 눈앞이 어두컴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설마하니 귀속 템일 줄은 꿈에도 몰랐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내게는 투명화 아이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명화 아이템을 써서 몸을 숨긴 다음에 공간 이동 반지로 마물 사냥꾼 곁으로 가면 문제없잖아?’
물론 투명화 아이템의 지속 시간이 무척이나 짧기는 하지만, 그 지속 시간이 다 끝나기 전에 장소 이동으로 자취방으로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물론 현재 1시간이라는 재사용 대기 시간이 걸려있기는 하지만 1시간 정도는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가 있었다.
차분히 숨을 고른 나는 공간 이동 반지를 역소환한 뒤에 인터넷 방송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사방을 경계하며 서있는 마물 사냥꾼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적진에 발을 들이고 있는 만큼 다들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러면 심력 소모가 클 텐데…….”
본의 아니게 마물 사냥꾼들을 고생시키게 되었다. 하지만 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저러고 있음?
-설마 쫄은 거야? 지금 뭐하는 거야?
-교복 진짜 예쁜 듯
-언제 싸움? 언제 싸움? 언제 싸움?
-마물 좀 죽여라! 뭐하냐, 지금? 소풍 옴?
-정지 화면임?
-정지화면 아님 ㅡㅡ
-갓 지아 님, 오늘도 멋진 킥 한번 보여주세요!
여전히 쓰잘데기 없는 말들만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는 채팅창이었다.
혀를 내두른 나는 곧바로 채팅창을 끈 뒤에 마물 사냥꾼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 ∵ ∴ ∵ ∴
‘왜 안 오지?’
벌써 20분채였다.
한 자리에서 20분 동안 그 분이 보내주신다는 수호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타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반면에 언제 오크가 이곳으로 들이닥칠지 몰라서 잔뜩 긴장한 채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채원이와 예지 그리고 혜진이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한가득해보였다.
물론 그건 육체적인 피로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다들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나 지아 언니 같은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거뜬한 상태였다. 하지만 고등학생 밖에 안 되는 애들은……. 특히나 그 중에서도 채원이는 정신적으로 가장 빨리 지쳐가고 있었다.
특히나 때때로 저 멀리서 폭음이라던가, 살의가 담긴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면 더더욱 그랬다.
“크워어어어!!”
“히익!”
지금처럼 말이다. 심지어 그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현은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 분을 믿었다.
‘안 보내주실 리가 없어.’
하물며 자신들을 버릴 리도 없었다. 이건 다른 마물 사냥꾼들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평소 투덜투덜 대던 유 지아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있었다. 그저 묵묵히 주변을 경계하며 노려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믿고 있었다.
반드시 와줄 것이라고 말이다.
“소현아.”
그 때, 유 지아가 소현을 불렀다. 이에 정신이 번쩍 든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지아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를 집어 들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담벼락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빠른 속도로 날아간 돌멩이가 담벼락을 때렸다.
타악!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소리와 동시에 갑자기 쿵! 하고 담벼락이 흔들렸다. 어찌나 크게 충격을 받았는지, 쩌적 금이 가는 것과 동시에 새하얀 콘크리트 가루가 흩뿌려졌다.
‘설마.’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왔다.
쿵!
그 순간, 또다시 고막을 뒤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뒤, 우르르! 담벼락이 무너지더니 그 안에서 수십 마리의 오크들이 쏟아져 나왔다.
“취이이익!!”
오크들의 함성 소리가 마물 사냥꾼들의 고막을 때렸다. 한 채원과 김 예지는 그 고함 소리에 그만 넋을 잃은 모양인지,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나마 신 혜진이 버티고 서있긴 했지만, 서있는 게 고작이었다.
“정신 차려!”
유 지아가 큰 소리가 다그쳐 보지만, 한 채원과 김 예지 그리고 신 혜진은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있었다. 실제로 서른이 넘어가는 오크들의 돌격은 뼈가 저려올 만큼 오싹한 광경이었으니 말이다.
“……소현아, 호루라기 넘겨!”
“네?”
“넘기라고!”
대뜸 손을 내밀며 소리치는 유 지아의 태도에 소현은 그녀가 뭘 하려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어, 언니…….”
“지금 시간 없는 거 안 보여? 내가 유인할 테니까, 넌 애들 데리고 튀어!”
“하지만!”
“닥치고 내놓으라고!!”
우악스레 소리친 유 지아가 힘으로라도 빼앗을 생각인 모양인지, 이 소현의 목에 걸려있는 호루라기를 억지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지아가 호루라기를 잡아 뜯으려는 순간 커다란 손이 유 지아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제가 좀 늦었죠?”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자, 이 소현과 유 지아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윽고 자신들의 눈에 가면을 쓴 남자가 보이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
“오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