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시야가 안정되자, 나는 서둘러 일본의 상황부터 확인해보았다. 혹시라도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마물들이 날뛰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마물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얌전히 청수사 내에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뱀이 똬리를 틀듯이 말이다.
‘내가 가진 정기의 양이 줄어들어서 그런 걸까?’
실제로 일만에 달했던 정기가 이제는 이천 남짓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물들의 입장에선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일 것이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의자 등받이에 편히 등을 기대며 일본에 요구할 것들을 차분히 정리해보았다.
“일단 일본의 사과는 당연한 거고…….”
위안부 협상도 다시 해야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협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세상에, 10억 엔이라니? 심지어 이건 배상이 아닌 위로금이었다. 더욱이 그 돈을 받으려면 소녀상을 이전시켜야 된다는 조건까지 달려있었다.
이건 굴욕적이다 못 해, 납작 엎드려서 비는 격이었다.
차라리 이럴 거였다면 아예 합의를 하지 않은 편이 더 나았다.
‘어서 처리하자.’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린 뒤에 현주를 조교의 방으로 불러내었다.
[바로 조교의 방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조교의 방으로 이동할 거냐고 묻는 알림문구에 나는 곧바로 네를 눌렀다. 그러자 일순 전신이 허공에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윽고 발이 지면에 딱 붙는 느낌이 들자, 그대로 눈을 떴다. 그러자 텅 비어있는 저택 내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아도 운피레아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잠시 어디 나간 모양이었다. 아니면 엘레노아를 돌봐주고 있던가 말이다.
이리 짐작한 나는 곧바로 1번 방 쪽으로 다가갔다.
그 후, 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있는 현주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주인님!”
잔뜩 들떠있는 현주의 목소리에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성큼 걸음을 내딛어 그녀의 몸을 억압하고 있는 구속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와락 내 몸을 끌어안으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현주다.
분명 방금 전에 봤던 것 같은데, 질리지도 않고 내게 친근감을 표시하는 그녀였다.
나는 현주의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아주며 입을 열었다.
“일본에 마물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네, 봤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현주의 태도에 나는 그녀를 데리고서 침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다음에 침대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나는 현주를 바라보며 운을 띄웠다.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을 다시 했으면 합니다.”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렇게 될 거예요.”
“그렇습니까?”
“네, 그럼요. 지금 당장 마물을 없앨 수 있는 건, 주인님뿐인 걸요?”
확실히 그 말대로 마물을 제거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마물 사냥꾼들뿐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내가 마물 사냥꾼들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는 한 마물을 제거할 방법이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절대적인 갑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지나치게 과한 요구를 한다면 일본이 반발하겠지만, 위안부 재협상은 충분히 그들 선에서도 납득이 되는 일일 것이다. 물론 납득을 하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청수사 안에 있는 마물을 처리해주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주인님은 말씀만 해주세요. 제가 전부 다 주인님의 뜻대로 처리할게요.”
입에 발린 현주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듣기 좋은 아부였다.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리다가 이윽고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위안부 재협상을 해서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여 10억 엔도 늘려 받았으면 좋겠군요. 아, 물론 이건 위로금이 아니라 배상입니다.”
“네, 그럼요. 마땅히 그래야죠.”
이런 내 말에 현주가 맞장구치며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어찌나 빤히 쳐다보던지 내 얼굴이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나는 이어서 계속 말했다.
“그리고 소녀상 문제도 해결하고 싶습니다. 현재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그대로 보존해 두는 동시에 일본 주요 도시에 소녀상을 세워두었으면 합니다. 물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저쪽에서 먼저 소녀상을 이전하라며 도발을 했으니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대답을 해줘야 될 게 아니겠습니까?”
“네, 그럼요. 되갚아줘야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현주가 콧소리를 흘리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른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게, 마치 싱싱한 생선을 입에 물고 있는 암고양이와도 같았다. 나는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려, 서로 코끝이 닿을만한 거리까지 접근했다. 이에 현주는 내가 키스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두 눈을 꼭 감고서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영락없이 사랑에 푹 빠진 소녀였다. 누가 이런 그녀를 서른한 살 골드미스라고 생각할까?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입술을 맞춰주었다. 조금 난폭하게, 그녀의 입술을 헤집으며 키스를 해주자 현주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기분 좋아하고 있다는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 나는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쓸어주고는 고개를 떼어내었다. 그러자 현주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나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차마 또 키스해달라고 할 수가 없는 모양인지,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고개를 픽 떨어트렸다.
나는 그런 현주의 모습을 잠자코 바라보다가 이윽고 그녀의 턱을 붙잡아 들어 올리게 만들었다. 그러자 나를 올려다보는 눈이 고운 초승달 모양을 만들며 기대에 한껏 부푸는 게 보였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색녀였다. 현주는…….
슬쩍, 입꼬리를 올린 나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입맞춤을 해준 나는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 현주 씨만 믿고 있겠습니다.”
“아, 네!”
퍼뜩 정신을 차린 현주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자기만 믿으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조교를 끝마치기 위해서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겨서 현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협상은 언제쯤 끝날 것 같습니까?”
“반나절이면 끝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빨리요?”
“급한 건, 일본이니까요.”
확실히 마물이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손해를 보는 것은 일본이었다. 더욱이 마물은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였다. 당장은 얌전히 있을지 몰라도, 언제 어느 때 돌변해서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이번 마물은 오크뿐만이 아니라 일전에 본 오우거까지도 합해있었다.
잠시 상념에 잠겼던 나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조교를 끝마쳤다. 그러자 일순 눈앞이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환하게 밝아지며 자취방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됐군.’
현주에게 맡긴 이상 내가 시킨 것 이상으로 잘 해줄 것이 틀림없었다. 확실히 현주의 성욕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만 뺀다면 능력적인 면으로는 전혀 손색이 없었으니 말이다.
잠시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몸을 일으켰다.
여태까지 운피레아가 타준 차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기진 몸을 애써 일으킨 나는 뭘 먹을까 머릿속으로 고민해보았다. 하지만 내가 미처 결단을 내리기도 전에 스마트폰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현계 퀘스트 ‘오크와 오우거의 습격!’의 연계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연계 퀘스트 ‘오크 부대의 출현!’이 발생했습니다.]
[거점을 점령한 오크 족장이 오크 부대를 현계로 불러오는데 성공했습니다! 하나같이 뛰어난 전사들로 이루어진 오크 부대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크 족장의 말에 따라서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괴할 것입니다. 덧붙여 사용자의 정기를 갈취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또한 그들의 숫자는 사용자가 보유한 마물 사냥꾼의 숫자보다도 많습니다. 때문에 현재 사용자가 보유하고 있는 노예를 마물 사냥꾼으로 동원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허용합니다. 단, 노예의 경우에는 직접 전투 지역으로 데려가셔야 합니다]
-오크 부대를 처리하세요! (0/30) (보상 : 랜덤 스킬 상자x5)
“…….”
그 순간, 나는 그제야 오크와 오우거들이 왜 청수사 밖으로 나가지 않고 얌전히 있었던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오크 부대라니…….’
그것도 무려 서른 마리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렇게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나는 서둘러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인터넷 검색창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청수사 밖으로 뛰쳐나와서 본격적인 파괴 활동을 시작하고 있는 오크의 소식이 SNS를 통해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이런 SNS 소식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사진이 여러 장도 함께 올라왔다.
보아하니 헬기를 탄 기자가 오크의 모습을 촬영한 모양이었다.
“……음.”
잠시 오크와 오우거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던 나는 이윽고 결단을 내렸다.
‘일단 마물부터 처리하자.’
물론 내가 마물을 처리함으로서 위안부 재협상이 흐지부지 될지도 몰랐지만,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다음에 아주 제대로 본 떼를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아니면 마물의 습격으로 위장해서 일본 국회에 고블린들을 풀어놓거나 말이다.